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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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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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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팡 6대 걸작

시계를 고를 때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의 하나로 케이스 지름을 들 수 있습니다. 지름은 옷을 고를 때 사이즈와 마찬가지로 손목에 어울리는 지름이 아니면 아무리 멋진 시계라고 해도 온전한 내 것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바지를 예를 들면 요즘 슬림 핏이 득세하고 있지만,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면 커다란 통을 지닌 바지가 유행한 적이 있죠. 또 이 유행이라는 게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데요. 시계의 지름도 패션만큼은 아니지만 흐름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1920-1930년대에 접어들며 정착한 손목시계는 그 지름의 변화가 꽤 오랫동안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드레스 워치의 지름은 몇mm, 1950년대부터 본격화 된 스포츠 워치의 지름 몇mm 처럼 업계의 표준화 된 공식은 없었지만, 대체로 드레스 워치의 경우 34mm 전후, 스포츠 워치는 40mm 전후가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것은 무브먼트의 지름과 영향이 있다고 보는데 당시 소형화에 안착한 손목시계 무브먼트를 담았을 때 가장 좋은 케이스 사이즈가 34mm 전후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에 비해 컴플리케이션은 상대적으로 지름이 컸는데 그 이유 역시 상대적으로 지름이 큰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를 탑재했기 때문이죠. 

이것은 블랑팡이 1970년대 기계식 시계의 암흑기를 지난 뒤 기계식 시계의 부활을 알리는 6대 걸작(6 Masterpieces)를 내놓고 명확해 집니다. 울트라 슬림, 풀 캘린더 + 문 페이즈, 투르비용, 퍼페추얼 캘린더, 미닛 리피터 등 기계식 무브먼트로 이룰 수 있는 기능과 아름다움을 담아낸 6개의 기계식 시계들이었는데 이들은 약 34mm의 지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보면 그 이후, 블랑팡이 내놓은 시계들은 스포티 타입의 르망이 38mm 정도로 다소 예전에 비해 커졌으나, 드레스 워치인 빌레레 라인은 34mm를 유지하고 있었고 다른 메이커도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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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빅 워치 흐름 이전 40mm 지름의 루미노르 마리나 PAM 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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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워치 흐름과 무관했던 빅 파일럿(오리지날 B-Uhr은 55mm). 이후 빅 워치 흐름을 주도한 하나가 된다. 

변화는 2000년 중반 무렵으로 파네라이를 필두로 한 ‘빅 워치 붐’이 일어납니다. 사실 파네라이가 아직 대중적이지 않던 2000년 초에는 44mm 지름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이 더 강했습니다. 지금도 40mm 모델이 없지 않으나, 당시 모델이 다양하지 않던 시절임을 고려할 때 40mm 모델을 보유했고 이는 큰 지름이 수용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파네라이나 포르투기저 5000, 빅 파일럿 워치 처럼 큰 무브먼트의 신뢰성을 이유로 큰 지름을 택했던 IWC 등의 메이커가 내놓은 시계가 호응을 얻으며 한 순간에 지름이 확대 되기 시작합니다. 빅 워치 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절로 작은 지름의 시계를 찼던 설움(?)을 한 순간에 풀려는 양, 커다란 시계가 엄청나게 등장합니다. 이 때 드레스 워치의 지름은 예전 스포츠 워치의 수준인 40mm, 스포츠 워치는 44mm, 45mm는 예사였고 50mm를 초과하는 시계도 종종 나오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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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먼트 지름과 케이스 지름 간의 불균형

빅 워치 붐은 스포츠 워치의 강세에 힘입어 그 기세가 대단했습니다. 일시적인 일탈(?)이 아닌 시계 케이스 지름의 재고를 가져옵니다. 문제는 쉽게 확대할 수 있는 케이스 지름에 비해, 무브먼트는 그렇지 못했죠. 기본적으로 무브먼트 지름에 케이스 지름을 맞춰왔던 예전과 달리 역전이 된 결과 케이스에 무브먼트를 맞추게 되는데, 그러면서 둘 사이에 갭이 발생합니다. 케이스에 비해 작은 무브먼트는 그리 균형이 좋지 못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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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에 운트 죄네의 1815. 최초 36mm에서 40mm로. 다시 38.5mm로

지금도 이런 불균형은 계속되고 있으나 변화는 보여집니다. 드레스 워치 위주이긴 하나 케이스 지름이 조금 줄어 들고 있죠. 원인은 여러가지로 볼 수 있는데 중국을 중심으로 시계 소비처가 이동되며 그들의 체형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본질적인 부분인데 드레스 워치의 구성은 40mm 미만의 케이스에서 더 아름답기 때문이지 싶은데요. 랑에 운트 죄네, 피아제 등이 즉각적인 반응을 했습니다. 신제품으로 이런 변화를 드러내지 않은 메이커라고 해도 케이스 지름의 지속적인 대형화에서 발을 빼는 모습이죠. 스포츠 워치의 경우는 조금 이야기가 다른데요. 적극적인 리사이즈 대신 필요에 따라서는 커다란 케이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보이지 않는 제한 아닌 제한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겠군요. 확실한 것은 드레스, 스포츠 워치 할 것 없이 관습적인 수치에 얽매지 않고, 케이스 지름을 표현의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 점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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