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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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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울트라 슬림의 지속적인 계승. 바쉐론 콘스탄틴 히스토릭 울트라 파인 1955 (케이스 두께 4.13mm)


아주 얇은 무브먼트, 시계를 의미하는 울트라 슬림은 울트라 씬, 엑스트라 플랫 등 브랜드의 입맛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울트라 슬림은 최근 대중화 된 경향이 있으나 컴플리케이션처럼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블랑팡의 6대 걸작에 스플릿 세컨드, 미닛 리피터와 같은 컴플리케이션의 하나로 고작 바늘 두 개 달린 울트라 슬림이 포함되어 있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 얇은 시계가 가지는 기술적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울트라 슬림은 단순한 기능과 구조에 비해 조립 난이도, 기술 숙련도를 요구하며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도 같은 기능의 상대적으로 보다 두꺼운 시계에 비해 길어집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많은 부품을 정교하게 축적해 완성하는 컴플리케이션과 정반대 방향에 있는 컴플리케이션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울트라 슬림은 하이엔드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와 예거 르쿨트르가 독점적으로 공급한 에보슈를 탑재했던 파텍 필립, 오데마 피게, 바쉐론 콘스탄틴. 프레드릭 피게로 이를 달성한 블랑팡 그리고 이들 수준에는 못 미쳤지만 꾸준하게 울트라 슬림을 만들었던 피아제가 전부였고, 제법 긴 기간 이 체계가 유지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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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팡의 칼리버 21

변화는 피아제가 새로운 울트라 슬림을 전면에 내세우며 남성용 시계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 2000년 후반부터입니다. 사실 이 무렵 울트라 슬림은 떨어지는 생산성에 비해 인기가 없어 종말을 고하려던 직전이기도 합니다. 블랑팡은 예거 르쿨트르(가 에보슈 공급했으나 자신들은 탑재한 적이 없는)의 두께 1.64mm인 칼리버 803에 필적하는 칼리버 21(두께 1.73mm)을 생산 종료시키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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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제 알티플라노 오토매틱. 등장 당시 가장 얇은 케이스 두께를 자랑했으나 곧 왕좌를 내어준다. 
피아제는 당시까지 무브먼트 두께만 따지면 울트라 슬림 개념에서 케이스 두께만을 따지기도 해 다른 의미로도 영감을 주었다. 

피아제는 새 울트라 슬림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한 알티플라노를 선보이며, 또 거의 매년 컴플리케이션에 울트라 슬림 개념을 적용한 시계를 선보입니다. 어찌 보면 비워내야 하는 울트라 슬림과 채워야 완성되는 컴플리케이션이라는 대비되는 개념을 양립했는데, 이를 통해 다른 메이커에 적지 않은 영감을 전달합니다. (만 이 때문에 각 기능에서 세계최고의 얇기라는 타이틀은 채 1, 2년을 지키지 못하고 다른 메이커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마케팅에서 타이틀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자기 꾀에 빠진 측면도 없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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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리페럴 방식 로터로 케이스 두께 7mm(무브먼트 두께 3mm)의 자동 투르비용. 브레게 엑스트라 플랫 Ref. 5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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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흐름에서 나타난 울트라 슬림. 불가리 옥토 피니시모 투르비용(케이스 두께 5mm, 무브먼트 두께 1.95mm)

이렇게 피아제가 다시 촉발시킨 울트라 슬림 덕분에 얻은 영감은 다른 메이커에서 많은 울트라 슬림을 낳게 됩니다. 그 결과의 하나가 무브먼트 가장자리 공간만 이용하는 퍼리페럴(Peripheral) 로터라는 기술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앞서처럼 원천적으로 울트라 슬림 무브먼트를 지닌 메이커는 소수에 불과했고 이들이 다른 메이커에게 무브먼트를 공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새로운 흐름이 된 울트라 슬림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불가리처럼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죠. 그럼에도 이것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지난번 컬럼에서 본 케이스 지름의 흐름과 영향이 적지 않은데요. 늘어난 지름의 시계는 그 만큼에 비례해 두께를 더할 수 있었고, 또 이것은 울트라 슬림의 기준치를 확대 할 수 있도록 마케팅은 인식을 마비시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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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워낙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파네라이도 슬림 워치를 주장한다. 루미노르 듀에(케이스 두께 10.5mm)

어느정도는 케이스 두께를 줄이는 방법으로 효과를 보기도 했지만, 울트라 슬림의 핵심은 건드리지 못한채 ETA 같은 범용 무브먼트를 그대로 탑재하면서 울트라 슬림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환경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하이엔드에서 내놓은 것이 아닌 울트라 슬림은 엄격한 기준으로 봤을 때 그저 슬림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며, 요즘의 울트라 슬림을 드러내는 단면으로 마케팅이 기술과 아름다움을 흐리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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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하이엔드 메이커의 울트라 슬림이 가능토록 한 원동력을 제공한 예거 르쿨트르. 위는 두께 1.85mm의 칼리버 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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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 르쿨트르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예거 르쿨트르 로고가 들어간 칼리버 920. 실제로는 오데마 피게를 비롯한 다른 메이커의 로고가 들어가 독점 탑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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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츠 무브먼트로 1mm의 두께를 실현한 시티즌의 에코드라이브 원. 울트라 슬림의 또 다른 성취다

그렇다면 엄격한 기준의 울트라 슬림은 무엇일까요? 그 기준은 예거 르쿨트르가 에보슈로 공급했던 수동과 자동 울트라 슬림 무브먼트이지 싶습니다. 수동은 두께 1.64mm, 자동은 칼리버 920의 두께 2.45mm이지 싶습니다. (피아제는 마이크로 로터 방식의 자동이므로 동일선상에 놓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기술적 완성도와 성능에서 긴 사용기간을 통해 이를 증명해 왔기 때문일 것인데요. 혼란한 울트라 슬림의 흐름에서 얇기를 명확하게 나타내는 숫자도 중요하겠지만, 울트라 슬림 특유의 손을 베일듯한 얇기가 주는 짜릿한 아름다움이야 말로 그 진정한 가치로 이 두 무브먼트가 이룬 업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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