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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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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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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안 부저와 친구들

규모가 작지만 하이엔드 시계를 만드는 메이커를 마이크로 하이엔드라고 지칭하지만 공식적인 용어는 아닙니다. 마이크로 하이엔드의 등장은 비교적 최근인데요. 제 관점에서는 해리 윈스턴의 오푸스 I의 발표가 마이크로 하이엔드의 신호탄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이크로 하이엔드는 점차 대중화되어 가는 하이엔드에 싫증을 느낀 소수의 시계 매니아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며 발전합니다. 과거에는 독립 시계제작가 학회인 AHCI의 멤버들이 만든 시계가 마이크로 하이엔드의 역할을 수행했다면, 그 이후에는 AHCI 출신, 시계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완성된 말 그대로 마이크로 하이엔드가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둘의 차이점은 얼마나 ‘브랜드’ 이미지를 잘 구축했는가로 나뉜다고 보는데요. AHCI가 좀 투박했지만 순수한 시계만들기로 매니아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 이름이 기억되었다면, 본격적인 마이크로 하이엔드는 여기에 세련됨과 자본력을 더해 뚜렷한 브랜드를 지니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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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오푸스 3, 4, 5

해리 윈스턴의 본업은 아시다시피 다이아몬드입니다. 주얼러라고 봐도 무방한데요. 이들이 시계 시장에 눈독을 들이면서 주얼러의 포지션 그대로 하이엔드 시장의 진입을 꾀하죠. 이 때 진행한 프로젝트가 오푸스(OPUS)입니다. AHCI의 멤버들에게 오푸스의 이름을 단 시계 제작을 의뢰하고 소량(이후에는 아니지만) 제작하여 매년 하나씩 발표하는 연작 형태를 취합니다. 다이아몬드에서는 몰라도 시계에서는 별 볼일 없던 해리 윈스턴은 프랑소와 폴 쥬른의 레조넌스로 오푸스 원, 안토니오 프레지우소의 오푸스 투, 비아니 할터의 오푸스 쓰리, 크리스토프 클라레의 오푸스 포, 펠릭스 바움가트너의 오푸스 파이브 등을 매년 선보입니다. 오푸스 원이 처음 나왔던 때가 2001년부터 2000년 중반 무렵까지 이런 퍼포먼스를 지닌 시계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화제를 몰고 옵니다. 좀 더 자세하게 보면 오푸스 원, 투, 포 각 제작자의 시그니처 모델이면서 전통적인 컴플리케이션을 빌려왔다면, 오푸스 쓰리와 파이브의 경우 아예 새로운 형태이거나 시그니처라고 해도 신선한 메커니즘이었습니다. 해리 윈스턴 입장에서는 시계 브랜드의 포지션을 견인하면서 주목을 받을 수 있으니 성공적인 프로젝트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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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안 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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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 1 (위), HM 4(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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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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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센스

아마 이 광경을 보고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시장을 발견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있었죠. 바로 해리 윈스턴에서 오푸스 시리즈에 참여했던 막시밀리언 부저로 자신의 이름과 친구들을 의미하는 MB&F를 세웁니다. 그는 아마도 오푸스 쓰리나 파이브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나 싶은데요. MB라는 기획자가 시계를 기획하면 이를 현실화 시켜줄 친구들이 모여 시계를 만듭니다. 시계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형태를 취했는데 첫 모델인 HM1은 당시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이렇게 생긴 시계도 있구나 싶을 만큼 시계의 형태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이후 HM2, HM3로 이어졌고 결정타는 HM4였는데 제트 엔진이 둘 달린 케이스의 시계라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파텍 필립의 수동 크로노그래프를 시리즈로 모으고 랑에 1을 색깔 별로 모으며 지루함을 느끼던 컬렉터 중의 컬렉터 들을 들뜨게 만들 훌륭한 장난감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물건이 했겠죠. 이들이 격찬을 하기 시작한 MB&F의 시계가 세상에 알려지자, 오푸스 파이브를 만든 펠릭스 바움가트너의 우르베르크(Urewerk)와 같은 시계들도 주목 받기 시작합니다. 이들의 세틀라이트 메커니즘은 분명 전통적인 컴플리케이션은 아니었지만 파격적인 형태의 케이스와 함께 상당히 충격적이었죠. 이런 움직임에 데본(Devon) 1처럼 핸드폰 배터리를 동력으로 삼은 시계 장난감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싱가폴의 유명 컬렉터인 버나드 청이 단돈 만 달러에 살 수 있는 훌륭한 시계라며 직접 추천해주기도 했었는데요. 이런 시계가 된다는 흐름이 생겨나며 새로운 메커니즘 한, 두 개와 개성, 고급스러움, 소량 생산을 조건으로 소수의 입맛만을 맞춰주는 작은 메이커가 여럿 생겨납니다. 마이크로 하이엔드라는 말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 수량의 기준도 명확하지 않지만 느낌상, 마이크로 하이엔드가 경계에 걸친 메이커로 드 뷔툰(드 뷔툰은 사실 마이크로 하이엔드의 선구자격의 하나지만), 모저 앤 씨(Moser & Cie), HYT, 르센스(Ressence), 올런스(Hautlence) 등등이 이 대열에 올라 새로움 관점과 컴플리케이션의 경이로 승부합니다. 한, 두 모델의 성공으로 브랜드의 운명(?)이 바뀌는 장르이기 때문에 아이디어와 이를 실현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관전자 입장에서는 한 방(?)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지켜보는 재미가 가장 큰 장르기도 하죠. 

마이크로 하이엔드의 등장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발명가와 디자이너가 합당한 하이라이트를 맞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발전해 이들의 스타성으로 승부하는 경우도 생겨났는데요. 메이커들의 어려운 문제(대부분 컴플리케이션의 설계)을 해결해 주고, 자신들은 뒤로 들어가 조용히 지냈던 과거와 달리 이름을 걸고 당당히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판이 마련된 것입니다. 블랑팡의 플라잉 투르비용을 설계했던 빈센트 칼라브레제는 계약조건에 의해 아마도 평생동안 자신이 그것의 설계자라고 밝힐 수 없었을 겁니다. (캐리어 말년에 블랑팡에 입사하며 설계자라고 공개됩니다) 성공한 프랑소아 폴 쥬른은 포드로이얀트 설계에서 스위스 내 독보적인 존재로 소문에 의하면 메이커의 포드로이얀트가 그의 작품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이름 대신 설계를 판 대가로 돈을 모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할 수도 있게 되긴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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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런스

또 이들의 등장은 컴플리케이션 장르의 다각화, 기준의 파괴를 가져옵니다. 스플릿 세컨드, 미닛 리피터처럼 명확했던 컴플리케이션의 기준이 흔들리게 되는데, 이는 오푸스 3, 오푸스 5 같은 시계가 가져온 파급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이크로 하이엔드의 승부수인 독창적 메커니즘의 등장은 대형(마이크로 하이엔드) 하이엔드를 자극헤 새로운 즐거움을 계속 선사하게 됩니다. 

이처럼 마이크로 하이엔드의 등장은 시계업계에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기계식 시계라는 극히 제한된 약속 속에서도 고정관념을 깨고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해주었죠. 덕분에 시계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이들이 선사는 즐거움이 무척 큽니다. 한편 기업을 일으키려는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게 아닌가 합니다. 마이크로 하이엔드는 스위스 판 벤처기업의 방식이 아닐까도 싶은데요. 이 때문에 경쟁의 심화로 성공률이 점차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계속 새로운 메이커가 등장하지 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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