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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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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I-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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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상승에 대한 부담과 범용 무브먼트 공급 중단 사태로 인해 고민에 빠진 브랜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무브먼트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엔트리 컬렉션의 중요성이 점점 커져가는 상황에서 신형 엔진은 브랜드의 앞날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브랜드 더 나아가 그룹의 달라진 정책까지 엿볼 수 있는 신작 칼리버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네 브랜드를 살펴보려 합니다. 

BAUME & MERCIER 보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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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올해 SIHH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제품 중 하나는 보메 메르시에의 클립튼 보매틱이었습니다. 단정한 얼굴 뒤에 숨은 무브먼트가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보메 메르시에는 거의 모든 시계에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해왔습니다. 클립튼 퍼페추얼 캘린더 같은 일부 모델에 한해 라주페레(La Joux-Perret)나 보셰(Vaucher)의 것을 쓰기도 했죠. 이런 기조를 무너뜨린 것이 지난해에 등장한 클립튼 매뉴얼 1830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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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튼 매뉴얼 1830과 칼리버 BM12-1975M

여기에는 리치몬트 그룹의 발 플러리에(Val Fleurier) 매뉴팩처가 개발한 칼리버 BM12-1975M가 담겨 있었죠. 그룹 차원에서 엔트리 브랜드를 위해 무브먼트 개발을 지원한 겁니다. 클립튼 매뉴얼 1830은 그룹 최초로 실리콘 헤어스프링을 상용화한 모델이었습니다. 트윈스퍼(Twinspir™)라고 명명한 헤어스프링은 결정 방향이 다른 두 개의 실리콘 층을 45°로 번갈아 접합한 것으로, 자세 변화와 충격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두 개의 실리콘 사이를 채우는 이산화규소 층은 온도 변화에 따른 오차를 상쇄시켜 뛰어난 성능을 보장하죠. 보매틱은 클립튼 매뉴얼 1830의 후속이자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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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매틱 칼리버 BM12-1975A. 5일 파워리저브와 뛰어난 항자성이 돋보입니다. COSC 인증을 받지 않은 모델도 있습니다. 

셀프와인딩 방식으로 진화한 칼리버 BM12-1975A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트윈스퍼 헤어스프링을 갖췄습니다. 여기에 독특한 기하학적 구조를 갖춘 실리콘 이스케이프먼트인 파워스케이프(POWERSCAPE™)를 추가해 에너지 전달 효율을 30%정도 증가시켰습니다. 실리콘으로 무장한 보매틱은 항자성 시계의 기준인 60가우스(4,800A/m)의 25배에 달하는 1500가우스의 자기장까지 견뎌낼 수 있습니다. 5일이라는 긴 파워리저브와 COSC 인증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보매틱은 인상적인 성능만큼 남다른 의미를 지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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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몬트 그룹은 IWC의 다 빈치 투르비용 레트로그레이드 크로노그래프나 몽블랑의 니콜라스 뤼섹 크로노그래프 등 일부 모델을 통해 실리콘 이스케이프먼트를 선보이긴 했지만 헤어스프링까지 실리콘으로 제작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스와치 그룹과는 대조적으로 실리콘과 일정 거리를 유지해온 리치몬트 그룹이 보매틱을 통해 이스케이프먼트의 완전한 실리콘화를 공표한 겁니다. 리치몬트 그룹이 실리콘 헤어스프링 사용을 확대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다음 브랜드는 누가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IWC 칼리버 8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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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기즈 오토매틱 2000을 신호탄으로 매뉴팩처 칼리버 개발을 본격적으로 재개한 IWC. 이들은 롱 파워리저브와 퍼페추얼 캘린더 열풍을 이끈 장본인이지만 모든 시계에 매뉴팩처 무브먼트를 사용하는 건 아닙니다. 엔트리 모델에는 포지션과 가격을 고려해 에보슈 칼리버를 수정한 무브먼트를 탑재합니다.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2018년은 IWC에게 뜻 깊은 해입니다. 브랜드 창립 150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이죠. 이를 자축하는 의미로 샤프하우젠의 매뉴팩처는 주빌레(Jubilee) 컬렉션을 발표했습니다. 그중에는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폴 베버와 함께 눈길을 끄는 시계가 있었습니다. 다 빈치 오토매틱 에디션 150주년(Da Vinci Automatic Edition “150 Years”)입니다. 이 시계에 주목한 이유는 무브먼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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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인딩 폴과 휠에 베릴륨-구리 합금을 사용한 칼리버 51113과 (아래)블랙 세라믹으로 교체한 칼리버 52615

칼리버 82200은 펠라톤 와인딩 시스템을 갖춘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로, 갈고리 모양의 폴(pawl)을 이용한 양방향 와인딩이 특징이죠. 1950년 알버트 펠라톤(Albert Pellaton)이 칼리버 85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인 이 메커니즘은 개선을 거듭해왔습니다. 스테인리스스틸로 제작한 최초의 와인딩 폴은 마모를 이유로 베릴륨-구리 합금을 거쳐 현재는 블랙 세라믹으로 진화했습니다. 와인딩 폴과 연결된 와인딩 휠 역시 블랙 세라믹으로 제작해 반영구적입니다. IWC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칼리버 52000 시리즈에 세라믹 부품을 먼저 도입했습니다. 포르투기저 오토매틱이나 빅 파일럿 워치 같은 간판 모델만이 수혜를 얻었죠. 하지만 이제는 엔트리 모델에서도 동일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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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버 82110을 탑재한 아쿠아타이머 오토매틱 에디션 "컬렉터스 포럼 워치". 

칼리버 82200의 시조는 2005년에 개발한 칼리버 80110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서스펜션을 갖춘 이 무브먼트는 견고함 덕분에 인제니어의 엔진으로 낙점됐죠. 하지만 뚜렷한 단점도 있었습니다. 기능이 단순한 무브먼트 치고는 너무 두꺼웠던 겁니다. IWC는 비만에 가까운 칼리버 80110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던 칼리버 80000 시리즈가 재기를 선언한 건 2017년이었습니다. IWC는 아쿠아타이머 오토매틱 에디션 "컬렉터스 포럼 워치"(Aquatimer Automatic Edition “Collectors Forum Watch”)라는 한정 모델과 함께 칼리버 82110를 선보입니다. 1개의 배럴과 60시간 파워리저브, 블랙 세라믹 펠라톤 와인딩 시스템, 시간당 28,800vph의 고진동을 내세운 칼리버 82110에서 전작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름은 30mm로 그대로지만 문제가 됐던 두께를 7.3mm에서 5.95mm로 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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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A 공법으로 제작한 이스케이프먼트 휠과 팰릿 포크를 통해 에너지 전달 효율을 높인 칼리버 82200. 로터의 움직임을 펠라톤 와인딩 시스템에 전달하는 세라믹 캠을 로터와 일체화했습니다. 

다 빈치 오토매틱 에디션 150주년에 들어간 칼리버 82200은 이 칼리버 82110의 스몰 세컨드 버전인 겁니다. 칼리버 82200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IWC는 아쿠아타이머나 인제니어 더 나아가 파일럿 컬렉션의 엔트리 모델에 칼리버 80000 시리즈를 사용할지도 모릅니다. 매뉴팩처 칼리버 69000 시리즈로 ETA 7750과도 결별할 준비를 마친 IWC가 완전한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PANERAI 칼리버 P.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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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버 P.6000을 탑재한 루미노르 베이스 로고 쓰리 데이즈 PAM00775.

뚜렷한 정체성과 확고한 스타일은 수많은 이들을 파네라이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만큼 무브먼트 역시 파네라이만의 수사로 가득합니다. 이는 칼리버 P.6000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파네라이는 2005년 칼리버 P.2002를 시작으로 다양한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개발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ETA의 유니타스 무브먼트와 밀월관계를 유지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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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A의 유니타스 무브먼트를 수정한 칼리버 OP 시리즈. 

하지만 ETA가 무브먼트 공급을 중단하는 2020년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파네라이가 내놓은 칼리버 P.6000은 부품수가 110개에 불과한 핸드와인딩 무브먼트입니다. 크기(지름 35.1mm, 두께 4.5mm)는 ETA6497-2(지름 36.6mm, 두께 4.5mm)와 큰 차이가 없으며, 진동수도 시간당 21,600vph로 동일합니다. 두 무브먼트의 차이점은 파워리저브입니다. 이틀을 조금 상회했던 ETA6497-2와 달리 파워리저브가 3일로 대폭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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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적 관점에서 P.6000은 P.5000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P.6000은 P.5000과 지름과 두께가 동일합니다. 대신 주얼은 더블 배럴로 8일 파워리저브를 구현한 P.5000에 비해 하나가 적습니다. 배럴을 하나 없애면서 배럴 아버의 마찰을 줄이는 주얼을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P.6000의 기어트레인 레이아웃 역시 P.5000의 그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오프센터 기어열, 다시 말해 센터 휠과 세컨드 휠이 무브먼트의 중앙에서 비켜난 구조입니다. 이는 P.1000, P.2002, P.3000 계열의 핸드와인딩 무브먼트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 이유는 파네라이의 디자인 전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파네라이는 초침 없이 시침과 분침만을 이용한 디자인과 다이얼 9시 방향에 스몰 세컨드를 설치하는 레핀(Lepine) 스타일을 고수합니다. 이를 위해 초침이 꽂히는 세컨드 휠은 크라운과 동일 선상에 있어야 합니다. 만약 세컨드 휠의 위치가 바뀌면 몇 개의 휠을 추가해 초침의 위치를 억지로 옮겨야 합니다. 이는 제조 비용이나 동력 전달의 효율면에서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디자인과 성능을 고려하면 파네라이가 취할 수 있는 레이아웃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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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먼트 분할을 자제해 시각적 아름다움 대신 견고함을 취한 것도 특징입니다. 프리스프렁 밸런스 휠은 콕 대신 브리지로 고정해 안정성을 높였습니다. 롤렉스나 보셰처럼 밸런스의 엔드셰이크(상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주는 미세한 여유)를 조정해 정확성을 높이는 볼트를 브리지 아래에 설치했습니다. 화려한 멋과 창조성은 부족하지만 준수한 사양을 자랑하는 칼리버 P.6000은 유니타스 무브먼트의 빈자리를 부족함 없이 채울 수 있을 겁니다. 

VACHERON CONSTANTIN 칼리버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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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지켜온 가치를 포기했을 때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새로운 시대를 향한 과감한 변신에 박수를 보내든, 변절이라는 가혹한 평가를 내리든 그것은 보는 이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올해 바쉐론 콘스탄틴이 론칭한 피프티식스(FIFTYSIX)는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빈티지 모델에서 영감을 얻은 새로운 컬렉션에는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의 엔트리 모델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1490만원. 바쉐론 콘스탄틴의 지위를 생각하면 파격적입니다. 참고로 스테인리스스틸로 제작한 오버시즈의 엔트리 모델의 가격은 2600만원입니다. 여러 세부 사항을 비교해보더라도 천 만원이 넘는 가격 차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듭니다. 그 차이는 무브먼트에서 비롯합니다. 피프티식스 셀프와인딩 모델에 탑재한 칼리버 1326의 사양은 지극히 평범합니다. 지름과 두께는 각각 26.2mm와 4.3mm고, 시간당 진동수는 28,800vph, 날짜 기능에 48시간 파워리저브를 갖췄습니다. 만약 바쉐론 콘스탄틴이 무브먼트를 직접 개발했다면 이 시계의 가격은 지금보다 더 높았을 겁니다. 가격을 고려해야 했던 바쉐론 콘스탄틴은 개발 대신 차용을 택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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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바쉐론 콘스탄틴 칼리버 1326과 (아래)까르띠에의 칼리버 1904-PS MC. 두 무브먼트의 차이는 초침의 위치입니다. 사진 12시 방향에 있는 주얼에 세컨드 휠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초침의 위치를 결정합니다. 

2010년 까르띠에는 브랜드 최초의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칼리버 1904-PS MC를 탑재한 칼리브 드 까르띠에 컬렉션을 발표했습니다. 발 플러리에가 개발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죠. 바쉐론 콘스탄틴은 이 무브먼트를 빌려왔습니다. 이보다 앞서 칼리버 1904 MC를 사용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피아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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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제 폴로 S와 칼리버 1110P. 

피아제는 폴로 S 컬렉션의 엔트리 모델에 1904 MC를 수정한 칼리버 1110P를 이식했습니다. 둘은 이전에도 무브먼트를 공유한 경험이 있습니다. 주얼리와 시계를 함께 다루는 메종이 무브먼트 공유를 통해 개발 비용의 절감을 도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선택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리버 1326은 1904 MC와 동일한 무브먼트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초침의 위치가 다릅니다. 칼리버 1904-PS MC의 세컨드 휠은 중앙에 놓여 있습니다. 세컨드 휠을 하나 더 동원해 이스케이프먼트 휠의 피니언 위 아래로 물려 초침을 6시 방향으로 옮긴 겁니다. 이에 반해 칼리버 1326은 센터 세컨드 방식이죠. 주얼 수도 상이합니다. 1904 MC가 27개인 반면에 칼리버 1362은 25개로 2개가 적습니다(어디에서 주얼을 제거했는지 아직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칼리버 1326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상징과도 같았던 제네바 홀마크가 사라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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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버 1326의 전면부. 날짜 디스크 고정 레버를 잡아주는 사진 중앙의 와이어 스프링은 제네바 실의 규정에 어긋납니다. 

밸런스 스프링 스터드 고정 방식이나 날짜 디스크를 고정하는 와이어 스프링처럼 제네바 실을 포기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칼리버 1326의 운명은 피프티식스 컬렉션의 성패에 달렸습니다. 피프티식스 컬렉션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칼리버 1326 영입은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습니다. 모험을 감행한 바쉐론 콘스탄틴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얻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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