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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포럼은 워치스앤원더스 제네바(Watches and Wonders Geneva 2021) 개최 기간 불가리(Bvlgari)의 워치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매니징 디렉터 앙투안 핀(Antoine Pin)과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올해 워치스앤원더스에서 공개한 주요 신제품에 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눈 인터뷰 내용을 여러분들에게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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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핀 약력: 
앙투안 핀은 1994년 태그호이어의 면세 및 중동 지역의 세일즈 매니저로 시계 업계 경력을 시작했다. 1998년 돌연 부쉐론으로 이직한 그는 마케팅 매니저로 활약하며 시계뿐 아니라 주얼리 업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LVMH 그룹에 합류한 그는 제니스의 인터내셔널 마케팅 디렉터로 활약하며 브랜드의 리뉴얼을 주도하고 탁월한 감각과 전략 수립 능력을 인정받아 영국 LVHM 워치 및 주얼리 부문 매니징 디렉터를 역임, 태그호이어, 제니스, 디올 워치 브랜드를 총괄했다. 또한 태그호이어 일본 지역 제너럴 매니저와 불가리의 중화권 및 호주 지역을 관장하는 지역 매니징 디렉터, 벨루티의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2019년 9월 9일자로 불가리의 워치 비즈니스 매니징 디렉터로 임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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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트라-씬 워치 세계 신기록의 주인공들

지난 7년간 거의 매년 울트라-씬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불가리가 울트라-씬 워치메이킹 카테고리에서 단기간에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울트라-씬 워치를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중요한 건 방향성이란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불가리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로마를 대표하는 주얼러다. 하지만 워치메이킹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력과 매뉴팩처 설비로 스위스에서 입지를 쌓기 시작한 건 불과 20년 전부터다. 그리고 약 8년 전부터 옥토 피니씨모(Octo Finissimo) 라인을 선보이면서 비로소 불가리는 한층 성숙한 워치메이커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불가리가 앞으로 선보일 컬렉션과 테마, 워치메이커로서 최고가 되고 싶은, 아니면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분야를 정립하며 한층 성숙해진 것이다. 지금까지 선보인 결과물들을 떠나 굉장히 장기적인 비전을 실행해 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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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펜티 세두토리 뚜르비용 

우리에게 있어 장기적인 비전은 바로 소형 칼리버 제작에 있어 마이크로-메커니즘의 정수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칼리버를 더욱 얇고 작게 만들어 최대한 작은 면적 안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린 태생이 주얼러이기에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와 디자이너는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고객들이 최대한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작년에 출시한 세르펜티 세두토리 뚜르비용(Serpenti Seduttori Tourbillon)이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작은 뚜르비용 워치로, 우리에게 굉장히 유의미한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고객들이 원하는 디자인에 맞는 다양한 사이즈의 칼리버를 구현하겠다는 불가리의 의지와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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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퍼페추얼 캘린더 칼리버를 살펴보는 워치메이커 

사실 한 분야에서 매년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는 건 좋게 비춰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매년 다음 해에 무엇을 달성하겠다고 미리 서로 공모하지는 않는다. 보다 광범위한 비전을 갖고 작업에 임하는 것이다. 동시에 다양한 컴플리케이션을 고려하면서 작업한다. 또한 몇 개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지만 실제 제품을 출시할 때는 다른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느리게도 가고 싶진 않다. 구조가 좀 더 복잡한 제품이 있는가 하면 좀 덜 복잡한 제품도 있게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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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출시한 옥토 피니씨모 뚜르비용 크로노그래프 

일례로 작년에 출시한 옥토 피니씨모 뚜르비용 크로노그래프 스켈레톤 오토매틱(Octo Finissimo Tourbillon Chronograph Skeleton Automatic)은 올해 공개한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Octo Finissimo Perpetual Calendar)와 거의 동시에 개발이 완료됐다. 하지만 크로노그래프의 경우 기존의 모듈 설계를 활용해 상대적으로 기능 구현이 어렵지 않았다면, 퍼페추얼 캘린더의 경우 훨씬 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세계 신기록을 경신할 두 제품을 동시에 출시하지 않고 후자는 좀 더 시간 여유를 두고 추가적인 테스트를 한 뒤에 출시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메커니즘에 많은 힘이 가해지는 레트로그레이드 기능까지 탑재했기 때문에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자칫 퀄리티 이슈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 레트로그레이드 핸드의 보정 작업이 있었다. 핸드가 굉장히 가는데 원래는 더 두껍고 폭도 넓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파브리지오- 불가리의 워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파브리지오 부오나마싸(Fabrizio Buonamassa)를 일컬음- 는 레트로그레이드 핸드가 시분침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테스트를 해보니 개선 전의 레트로그레이드 핸드의 두께와 무게로 인해 31일에서 1일로 바뀌는 순간 관성 때문에 핸드가 더 움직이는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더 얇고 가벼운 핸드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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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신제품,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

불가리는 이렇듯 치밀한 연구와 전략에 따라 필요한 모든 요소를 최적화하는 작업을 한다. 여러분들에게 미리 밝힐 수 있는 사실 하나는 내년에 출시할 칼리버 몇 개는 이미 승인 막바지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2023년, 2024년에 출시할 제품에 대한 작업도 물론 진행 중이다. 1년 단위로 닥쳐서 작업을 하기보다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글로벌 전략을 세워 마이크로-메커니즘의 정수를 이룩하겠다는 궁극적 비전 실현에 우리의 자원과 경험, 테스트를 집중하고 있다. 고백하자면 우리는 정확성을 높이는 작업에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둔다. 우리가 전문성을 쌓아가고자 하는 영역이 정확성에만 집중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방향성을 만들어나가면 어느 부분에 더 투자를 하고 어느 부분에 덜 애를 쓰는 식으로 작업의 프로세스가 한층 명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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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 플래티넘 버전 

불가리의 7번째 세계 신기록 시계인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를 제작할 때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

구조와 승인이다. 구조를 짜는 데만 대략 1년이 걸렸고, 승인에만 1년 반이 소요됐다. 왜냐면 새로운 부품들이 계속 추가됐기 때문이다.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 관련해 시분초를 표시하는 기존의 울트라-씬 자동 칼리버 BVL 138를 기반으로 담아내고자 분투했다. 

이제 불가리의 도전 과제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시계’ 정도만 남은 것 같다. 내구성을 고려하면 쉽지 않겠지만 도전할 의향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경쟁을 하는 건 분명 즐거운 측면이 있다. 당신이 말한 부문에서 피아제가 이미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는 사실은 굉장하다! << 편집자주: 케이스와 무브먼트 통합 설계로 불과 2mm 두께를 실현한 피아제의 알티플라노 울티메이트 컨셉(Altiplano Ultimate Concept) 워치를 일컫는다. >> 이러한 엄청난 기록들은 우리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기폭제가 된다. 건강하고 공정한 경쟁 중인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칼리버의 소형화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항상 다른 것에 도전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기술을 실제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끊임없이 자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근 시일 내 어떻게 해보겠다는 식으로 호기롭게 말하기는 어렵다. 현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불가리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정도다. 관련해 앞으로 풀어가야 할 까다로운 질문들이 굉장히 많다. 그 중 하나가 다른 업계에서는 이미 소재물리학이 핵심 분야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 복잡한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최선의 합금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저항력, 견고함, 내구성, 윤활 등 다양한 요소를 충족시켜야 하는 워치메이킹을 위해 새롭게 도입할 수 있는 소재와 합금을 찾고 있는데 이러한 소재는 세상에 이미 너무 많다. 워치메이킹 산업이 아닌 다른 산업에서 사용하는 소재 중에도 시계 부품 구성과 관련해 앞으로 연구해야 할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연구가 앞으로 워치메이킹 산업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건 시간이 흐를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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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페추얼 캘린더 칼리버 BVL 305 조립 모습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에 탑재한 BVL 305 칼리버에 관해 묻고 싶다. 새로운 칼리버 BVL 305의 핵심 부품은 무엇인가?

이 칼리버에서 중요한 건 특정 부품이 아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구조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용된 소재나 부품 자체에 대한 정보로 놀랄 만한 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능에 비해 극도로 얇은 칼리버이기 때문에 사용된 합금 일부를 내구성을 강화한 소재로 바꾸기는 했다. 하지만 이게 핵심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이 칼리버가 레트로그레이드 기능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부품 보다는 새로운 구조를 선보였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설계도를 보면 알겠지만 기존의 모듈 방식이 아닌 베이스 칼리버에서 빈 공간을 채우는 방식으로 공간을 최적화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심플하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케이스 내부 공간의 약 85%까지 채우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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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요일, 월, 심지어 윤년 인디케이터까지 레트로그레이드 형태로 설계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앞서 말한 전략의 일부라 봐도 무방하다.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어떤 제품 개발을 시작할 때 우리의 스튜디오 구성원 전체가 첫날부터 함께 한다. 리차드 밀이나 MB&F와 같은 일부 독립 시계제조사들은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한 두 사람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지만, 우리는 이러한 작업을 매번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자리에 엔지니어, 무브먼트 개발 팀장들, 제작 팀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덕분에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와 같은 시계도 탄생할 수 있었다. 기획 회의 첫날부터 레트로그레이드 핸드에 관한 아이디어가 나왔고, 시중에 있는 타제조사들의 퍼페추얼 캘린더와 다른 유형의 디스플레이를 적용하고 싶다는 의견이 특히 지배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퍼페추얼 캘린더, 즉 가장 얇은 퍼페추얼 캘린더를 선보이겠다는 공통된 비전을 바탕으로 워치메이커와 엔지니어가 조화를 이루며 함께 작업한 결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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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 다이얼 핸드 세팅 모습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에 문페이즈 기능은 탑재하지 않았는데, 두께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당신이 말한 두께 맞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디자인 때문이다. 우리 스튜디오에서는 매우 모던한 퍼페추얼 캘린더를 원했다. 동시에 디스플레이 정보가 아주 깔끔하고 명료하길 바랬다. 그래서 처음부터 문페이즈 기능은 배제된 것이다. 디스플레이를 상대적으로 단순화하면서 가독성을 높이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21세기에 선보이는 퍼페추얼 캘린더와 클래식한 문페이즈가 우리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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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토 피니씨모 뚜르비용 오토매틱 조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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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의 얇은 티타늄 다이얼

일부 고객들은 옥토 피니씨모의 다이얼에 왜 슈퍼루미노바를 사용하지 않는지 의문을 갖곤 한다. 어두운 곳에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요소인 만큼 혹시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울트라-씬 세계 기록과 티타늄 소재를 사용한다는 걸 염두에 두면 두께에 영향을 미치는 0.1mm 이하도 고려 대상이 된다. 슈퍼루미노바 레이어는 두께가 0.1mm~0.2mm 정도이기 때문에 레이어를 굳이 인덱스에 더하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는 처음부터 다이얼에 티타늄 소재를 사용하면서 미학적인 측면뿐 아니라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슈퍼루미노바 코팅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슈퍼루미노바와 관련한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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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토 피니씨모 안도 타다오 리미티드 에디션

올해 옥토 피니씨모 안도 타다오 리미티드 에디션(Octo Finissimo Tadao Ando Limited Edition)을 또 선보였다. 과거 자하 하디드와 협업한 비제로원에 이어 세계적인 건축가와의 디자인 협업을 이어가는 이유라도 있는가? 옥토 피니씨모 라인에 특별히 안토 타다오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불가리는 주얼리 메이커이자 디자이너다. 그렇기에 창의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할 기회를 우리 스스로 찾는다.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와도 컬렉션을 함께 했고, 영향력 있는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와도 비제로원(B.zero1) 링 콜라보레이션을 함께 했다. 그리고 불가리는 모던 아티스트들에게 수여하는 이탈리아의 가장 큰 상 중 하나인 로마의 맥시 프라이즈(MAXXI Bvlgari Prize)의 타이틀 스폰서이기도 하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뉴 사우스 웨일즈 미술관과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과도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다. 불가리에는 창의적인 인재들이 정말 많은데,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치아 실베스트리와 워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파브리지오 부오나마싸 등이 대표적이다. 불가리라는 브랜드를 표현하는 하나의 커뮤니티가 있다고 볼 수 있고, 덕분에 다양한 예술가들과도 아주 수월하게 협업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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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출시된 안도 타다오 리미티드 시리즈 

개인적으로도 안도 타다오와의 협업이 정말 좋았다.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컬렉션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우리도 남성 워치 작업을 할 때 안도 타다오처럼 거친 소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소재들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드러내주는 것처럼, 안도 타다오는 콘크리트를 이용해 주로 작업을 한다. 인공적인 재료인 콘크리트와 자연적인 요소인 빛이 어우러진 작품이 많은 것이다. 불가리 역시 티타늄, 알루미늄과 같은 공업용 소재를 이용해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때문에 안도 타다오와 우리가 잘 통한다고 생각한다.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둘 다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창의성은 이성에서 출발한다. 안도 타다오의 작품은 아주 창의적이고 놀라운 측면이 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성과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불가리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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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9년 10월 한국 방문 당시의 앙투안 핀

불가리를 계속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두 가지 원동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불균형 속의 균형(Unbalanced balance)'이라고 부른다. 공 위의 나무막대기에 서서 균형을 잡는 서커스의 곡예사를 보면 불균형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지닌 노하우와 성취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아직도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점, 더 이해해야 할 분야가 많다는 점을 견지하고 있다. 실존주의적인 마인드를 갖고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하며 발전시켜 나가는 것!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도전하며 발전 중이다. 불가리 한 브랜드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팀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말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기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분야에서 세계 신기록을 연달아 수립하다 보면 때론 당연한 일처럼 여겨질 때가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임해야 한다. 우리의 강점을 인지하면서도 발전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마치 등산을 가서 정상에 올랐는데 더 높은 정상이 있다는 걸 깨닫는 이치와 같이 전문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항상 발전의 여지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불가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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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펜티 미스테리오시 클레오파트라 유니크 피스

올해 처음으로 워치스앤원더스에 참여했다. 제네바 워치 데이즈, LVMH 워치 위크와 더불어 디지털 이벤트에 적극적인 이유가 궁금하다. 

고객들과 일 년에 한 번만 만나는 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지금처럼 더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일 년에 한 번만 만나게 되면 모든 연간 일정과 프로젝트에 관해 한꺼번에 이야기해야 하지만, 디지털 상으로는 3~4개월에 한 번 꼴로 향후 1~3개월 안에 나올 제품에 관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저널리스트들도 6~9개월 후에 나올 제품이 아니라 시장에 곧 출시할 제품을 바로 기사화할 수 있고 말이다. 오늘 나 역시 한 번에 여러 신제품을 소개하기보다는 특정 모델에 관해 당신과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은가. 디지털 만남의 미학은 효율성 추구에 있다. 주어진 짧은 시간을 활용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남은 시간에 각자의 할 일을 할 수 있다. 기자들은 기사를 쓰고 리테일러들은 판매를 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더 자주 만날수록 더 명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가능해진다. 물론 이번 워치스앤원더스와 같은 경우 한꺼번에 많은 브랜드의 정보를 접하게 되어 굉장히 빡빡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도 단기간에 한자리에서 다양한 브랜드의 발표와 리뷰가 이뤄지기 때문에 굉장히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워치스앤원더스에 참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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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 워치 비즈니스 매니징 디렉터로서 향후 워치 트렌드가 어떻게 될 거라고 전망하는가? 

현재 전 세계 스마트워치 유저가 5천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스위스 워치 산업에 대한 위협이라 보기도 하는데, 나는 굉장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실제 시계를 착용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손목에서 정보를 얻고 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시계를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행위에 익숙해진 것이다. 디지털 디바이스 및 스마트워치에 대한 관심을 기계식 시계, 다시 말해 워치메이킹의 아름다움으로 돌리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역량에 달려있다. 돌이켜보면 1970~80년도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기계식 시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 현재에 이르렀듯, 우리가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발전한다면 젊은 고객들이 현재는 비록 스마트워치를 더 선호하더라도 언젠가는 오랜 세월 가치가 유지되고 후대에 물려줄 수도 있는 기계식 시계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마치고 화상 인터뷰에 함께 해줘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