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슈테 오리지널 매뉴팩처 방문기
글라슈테 오리지널(Glashütte Original)은 글라슈테 정통 워치메이킹을 계승한 성골 중 성골로 통합니다. 적통으로 전통을 이어온 그 역사는 꽤나 드라마틱합니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 정부는 글라슈테의 시계 공장을 하나로 병합한 VEB 글라슈테 시계공장(VEB Glashütte Uhrenbetriebe, 줄여서 GUB)을 출범합니다. 연간 생산량 300만 개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던 GUB는 독일이 통일되자 국유기업에서 민간 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 속에 ‘글라슈테 시계회사(Glashütter Uhrenbetrieb GmbH, 1990년)’로 이름을 바꿨고, 1994년에는 지금의 ‘글라슈테 오리지널’로 또 한번 개명하게 됩니다. 이후 고급 시계제조사로 노선을 변경한 글라슈테 오리지널은 2000년 스와치 그룹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글라슈테 오리지널은 오늘날 무브먼트의 나사 하나부터 다이얼까지 시계에 들어가는 부품의 95% 이상을 직접 만들고 조립하는 ‘진짜’ 매뉴팩처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브랜드의 심장부인 매뉴팩처는 2000년 스와치 그룹에 합류한 이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쳤고, 지금은 디자인, 설계, 생산, 조립, 검수에 이르는 거의 모든 공정이 한 지붕 아래(Under One Roof)에서 이루어집니다. 물론, ‘한 지붕 아래’를 외치는 매뉴팩처는 다른 브랜드도 제법 있긴 합니다. 하지만 글라슈테 오리지널이 강조하는 ‘한 지붕’의 범위는 좀 더 포괄적입니다. 워치메이킹에 사용되는 툴(도구)까지 매뉴팩처 내에서 직접 만들기 때문입니다.



- 툴 메이킹 워크숍

- 주얼을 압입하는 도구의 설계도


여느 브랜드와 차별화된 ‘툴 메이킹’ 워크숍은 매뉴팩처 1층에 자리합니다. 실내는 흡사 어느 대학교 기계공학과의 실습실 같습니다. 온갖 장비로 가득한 이곳에서 시계 부품을 다듬고 깎는 도구는 물론 미세한 부품을 고정하는 전용 홀더까지 직접 제작합니다. 각 홀더는 작디작은 무브먼트 부품을 폴리싱하거나 모서리를 다듬는 과정을 진행할 때 부품이 튀거나 상하지 않도록 꽉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무브먼트를 조립할 때 베이스를 고정하는 장치를 포함해 각 부품에 맞춰 생산되는 전용 홀더만 약 300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 스탬핑 부서

- 다양한 스탬핑 툴



- 스탬핑 과정

- 스탬핑으로 찍어낸 휠의 초기 형태


- CNC 머신


- CNC 머신으로 가공한 브릿지 및 메인 플레이트
메인 플레이트 및 브릿지를 비롯한 무브먼트 주요 부품 제작에는 스탬핑, 와이어 방전 가공(Spark erosion), CNC 머신이 적재적소에 활용됩니다. 가령, 각종 휠의 초기 형태인 원반 모양은 스탬핑으로 찍어내고, 메인 플레이트 및 브릿지를 다듬고 표면에 홀(Hole)을 뚫는 작업은 업계의 정석대로 CNC 머신이 맡고, 글라슈테 워치메이킹 특유의 스완넥 스프링이나 투르비용 케이지와 같이 굴곡이 많고 복잡한 모양의 부품을 성형할 때는 와이어 방전 가공을 활용하는 식입니다.

- 와이어 방전 가공으로 성형한 스완넥 스프링
방전 가공 부서는 아쉽게도 매뉴팩처 투어 당일에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와이어 방전 가공은 쉽게 말해 전류가 흐르는 얇은 와이어로 금속을 깎아내는 공정을 가리킵니다. 와이어와 금속이 닿는 과정 속에 스파크가 발생하기에 이 공정은 일반적으로 물속에서 진행됩니다. 방전 가공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금속의 가장자리에 거친 잔재가 남지 않고 보다 깨끗한 단면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글라슈테 오리지널은 이 과정을 달궈진 칼로 버터를 깔끔하게 자르는 것과 비교하곤 합니다. 단, 방전 가공으로 성형된 모든 부품은 기능적인 형태일 뿐입니다. 추후 피니싱 부서에서 각 부품을 일일이 다듬고 광을 내는 수작업을 별도로 진행합니다.

- 하드닝 과정
성형이 완료된 일부 부품은 이후 열처리를 통해 하드닝(경화)을 거칩니다. 물론, 부품마다 열처리 온도가 다르고 그에 따른 경도도 달라집니다. 일례로, 밸런스 스프링의 유효 길이를 조정하는 레귤레이터에 쓰이는 스완넥 스프링의 경우 단단하기보다는 유연해야 합니다. 각 부품의 경도는 특수한 비커스 경도기를 통해 측정합니다. 끝부분에 다이아몬드 팁이 달린 장치가 금속을 꾹 누른 뒤, 표면에 남긴 자국의 깊이나 형태를 보고 해당 부품의 경도를 먼저 판단합니다. 다이아몬드 팁이 너무 깊게 들어가면 너무 무른 상태이고, 흠집이 거의 나지 않으면 너무 단단하게 열처리된 걸 의미합니다. 고기가 레어인지 너무 바짝 익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보면 쉽습니다. 하드닝 부서에는 그에 따라 각 부품의 적정 열처리 온도를 기록한 전용 기준표가 별도로 있습니다.


- 골드 샤통을 고정하는 용도의 작디작은 블루 스크루
글라슈테 워치메이킹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블루 스크루 역시 스틸 소재를 정확한 온도로 가열해야지만 원하는 푸른색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매뉴팩처에서 직접 만든 스틸 나사를 구리판 위에 놓고 가열하면, 나사가 은색에서 노란색, 갈색, 보라색, 그리고 푸른색으로 점진적으로 변합니다. 글라슈테 오리지널이 원하는 영롱한 빛깔의 콘플라워 블루(Cornflower blue, 수레국화 청색)는 300°C 내외에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블루잉 과정은 대략 20~40분, 길게는 45분까지 소요됩니다. 만약 스틸 나사를 구리판 위에서 빼내는 타이밍을 놓치면, 나사는 회색이 되었다가 완전히 타서 하얀 재처럼 색깔이 변해버립니다.


- 페를라주 가공 과정

- 페를라주 가공을 마친 브릿지

- 밸런스 콕의 인그레이빙 장식

- 글라슈테 스트라이프를 새기는 자동화 장비

- 글라슈테 스트라이프를 새긴 브릿지
열처리를 마친 부품은 본격적으로 표면 마감에 들어갑니다. 일부 공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피니싱이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집니다. 스크루 헤드 폴리싱, 무브먼트 브릿지나 스완넥 스프링의 모서리를 다듬고 광을 내는 앙글라주(Anglage), 메인 플레이트 표면의 페를라주, 밸런스 콕 표면에 인그레이빙 장식을 더하는 글라슈테 오리지널 특유의 공정은 장인이 일일이 마감하는 반면, 글라슈테 스트라이프라 일컫는 브릿지 장식은 자동화 장비의 힘을 빌리긴 합니다.



- 앙글라주 과정
특히, 글라슈테 오리지널 매뉴팩처에서는 고급 워치메이킹의 척도 중 하나인 앙글라주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앙글라주는 크게 세 가지 단계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먼저, ‘프리-그라인딩’이라 하여 모서리를 섬세하게 갈아낸 다음, ‘프리-폴리싱’ 공정에서 표면을 다듬고 1차적으로 광을 냅니다. 여기까지는 초벌 과정으로 보면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끝부분에 특수한 크림을 묻힌 뾰족한 나무 도구로 초벌을 끝낸 면을 여러 번 문질러서 마무리합니다.

- 푸른색 보호 래커를 칠한 밸런스 브릿지

- 푸른색 보호 래커가 초음파 세척조에서 씻겨 나가는 과정

- 브릿지에 새긴 문구와 인그레이빙 장식이 금빛을 띠는 자동 칼리버 92-09
글라슈테 오리지널의 무브먼트 대부분은 브릿지에 새긴 문구나 인그레이빙 장식이 금빛으로 빛납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이러한 부분도 글라슈테 오리지널은 공을 들입니다. 몇 단계로 나뉘는 그 과정도 꽤나 수고스럽습니다. 황동 베이스의 부품을 먼저 골드로 도금합니다. 이후 공정에서는 금색을 유지하고 싶은 인그레이빙 부분 위에 파란색 보호 래커를 세밀하게 바른 다음, 플레이트 전체를 로듐으로 도금합니다. 이때 보호 래커가 칠해진 곳을 제외한 모든 면이 로듐 특유의 은빛을 띠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로듐 도금을 마친 부품을 초음파 세척조에 넣으면, 파란색 래커가 씻겨 나가면서 감춰져 있던 금빛 각인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무브먼트 브릿지, 밸런스 콕 외 글라슈테 오리지널이 즐겨 사용하는 투-톤 컬러의 스켈레톤 로터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됩니다.


- 골드 샤통을 블루 스크루로 고정하는 과정
가공을 모두 끝낸 부품은 본격적인 조립에 앞서 서브그룹 어셈블리(Subgroup Assembly) 부서로 이동합니다. 적막이 흐르는 이곳에서 세부 부품의 1차 조립이 먼저 이루어집니다. 내부적으로 ‘금가루’라 부르는 극도로 작은 나사를 활용해 밸런스를 조립하고, 밸런스 휠이 회전할 때 뒤틀림이 없는지를 1차적으로 확인하는 식입니다. 메인 플레이트 및 브릿지에 주얼을 끼워 넣는 과정도 이곳에서 진행됩니다. 각 공정은 무브먼트를 최종적으로 조립하는 상위 워치메이커들의 일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서브그룹 어셈블리’ 파트에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신입 워치메이커들이 많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부서 한켠에서는 46년 경력의 숙련된 워치메이커가 글라슈테 워치메이킹의 전통을 따라 주얼 위에 골드 샤통을 얹고 블루 스크루를 고정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인 근무 환경은 새내기들이 아버지뻘 되는 베테랑의 참된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됩니다. 서브그룹 어셈블리 부서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배움의 장까지 되는 셈입니다.

- 파노라마 빅 데이트의 회전 디스크 조립 과정

- 다이얼 매뉴팩처에서 제작한 파노매틱루나의 다이얼
마지막으로 어셈블리 워크숍에는 앞선 부서에서 1차 조립이 끝난 파트를 비롯해 무브먼트를 구성하는 모든 부품이 모입니다. 숙련된 워치메이커가 이곳에서 최종적으로 무브먼트를 조립합니다. 이후 최종 검수를 거친 다음 다이얼, 케이스, 글라스, 스트랩 및 브레이슬릿을 차례대로 결합합니다. 잘 알려진 대로 다이얼은 글라슈테 오리지널의 자랑인 다이얼 매뉴팩처에서 직접 만듭니다. 다이얼 매뉴팩처는 원래 독일 포르츠하임에 있었지만 최근에 본사 바로 옆으로 이전했습니다. 다이얼을 제외한 케이스, 글라스, 스트랩 및 브레이슬릿은 외부 업체에 생산을 맡긴다고 합니다.


- 세나토 엑설런스 퍼페추얼 캘린더

- 파노매틱루나
“작은 나사 하나를 굽거나 부품 하나를 마감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또 워치메이커가 하루에 몇 개의 무브먼트를 조립할까요?” 매뉴팩처 투어 담당자가 가이드 중에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질문에 대해 소리 높여 강조한 답변은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온 및 습도에 따른 외부 환경이나 워치메이커의 컨디션에 따라 작업의 능률이 매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즉, 글라슈테 오리지널에는 하루에 채워야 하는 정량적인 할당량이나 목표 수량이 없습니다. 오직 완성된 부품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엄격한 품질 사양에 만족하는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만이 존재합니다. 혹자는 이러한 생산 방식이 추상적이고 비효율적이라 말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글라슈테 오리지널은 오랜 기간 이어온 그들의 워치메이킹이 전통이라 굳건히 믿고 지켜오고 있습니다. 다른 최신 매뉴팩처에 비해 자동화도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졌고,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부품 하나하나에 깊게 닿아 있습니다. 물론, 글라슈테 오리지널이 추구하는 워치메이킹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최첨단 설비가 가세한 대량 생산 시대에 ‘고급 워치메이킹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또 하나의 묵직한 화두를 던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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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품이 만들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