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소규모 워치메이커들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대 인스타그램 시대답게 당장 인스타그램만 보더라도 피드에선 그들의 작업 과정을 매일매일 볼 수 있으며, 해외 웹진도 심심할때마다 다루는 주제가 소규모 워치메이커이기도 합니다.
소규모 워치메이커를 나누는 기준은 대부분 같을겁니다.
A: 무브먼트 제조와 피니싱을 직접 하는 경우
B: 일부 수정+피니싱을 직접 하는 경우
C: 둘 다 직접 하지 않는 경우
무브먼트를 직접 만들면서 피니싱을 직접 안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고, C의 경우 마이크로 브랜드라고 불러도 되는 경우가 많으니 오늘은 B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B의 경우 근래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치열한 카테고리일겁니다. 동 가격대에선 경험할 수 없는 수준의 피니싱을 가성비 좋게 경험할 수 있는 카테고리니깐요. 당장 생각만 하더라도 Laine, Garrick의 엔트리 라인(현재는 6498라인업은 단종), Kudoke, Naoya Hida, Habring의 단순 쓰리 핸즈, Felipe Pikullik, 한국의 유민훈씨까지 줄줄이 나옵니다. 그런데 저기서 쓰는 무브먼트를 보면 다 비슷합니다. 가격도 대부분 만불~2만불 선에서 형성되는 것도 동일합니다. 해브링의 수정 정도가 제일 강하면서 가장 저렴하단건 아이러니지만요.
그렇다면 저 브랜드들은 왜 우리가 흔히 아는 ETA의 범용 무브먼트들을 쓰는걸까요? 한번 수동 심플 워치를 만들어본다고 가정하고 생각해보겠습니다. B의 가격대를 목표로, 사이즈는 대부분 유저들이 심플 드레스 워치로 선호하는 36mm 정도로 가정해보겠습니다.
1.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직접 만들기
이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우리가 제조하는 시계에 맞춰서 사이즈나 크기, 스펙도 모두 정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브릿지 디자인까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방에서 모든 시행착오를 거쳐가면서 제조한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만들고자 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까요.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2. 빈티지 무브먼트 사용
Kortela Valta(오메가 Cal.266)나 예전 Atelier de Chronometrie(오메가 266 & 283), Garrick의 현재 엔트리인 S7(Unitas 6425)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방식입니다.
셋 중 가장 비싼 AdC와 원본이 된 283을 보면 베이스 칼리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합니다. 거의 10년전에도 4만유로였던 시계니 당연할 수 있겠지만요...
여튼 신뢰성있는 설계를 가져와서 활용할 수 있지만, 단종된 무브먼트인 만큼 유지보수에 문제가 있거나 오래된 무브먼트답게 중간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생산량에도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안정적인 부품 수급을 위해서는 당연히 현행 무브먼트중에 골라야겠죠. 한번 대안을 찾아봅시다.
3. Chronode C101/102
이제 점차 현실적인 선택지로 넘어오게 됩니다. 그래도 작정하고 만드는데 모양빠지게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에타를 쓸순 없잖아요?
우리가 유명한 워치메이커가 되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테니 유명한 워치메이커의 무브먼트를 써봅시다. 무려 업계 유명인들만 참여했다는 해리 윈스턴의 오푸스 프로젝트에도 당당히 이름을 내걸고, MB&F, 우르반 위르겐센의 무브먼트 제작에도 참여한 장 프랑수아 모종의 크로노드에서 만든 물건입니다. 그만큼 메이저 브랜드는 물론, (B 기준) 고가의 소규모 워치메이커들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무브먼트이기도 합니다.
수동 버전인 C101은 무브먼트 직경도 31mm, 두께는 4mm입니다. 36mm 케이스에 넣으면 무브먼트도 나름 꽉 차면서 브릿지의 깊이감도 살릴 수 있는 정말 좋은 옵션이 되겠습니다. 심지어 프리스프렁 옵션까지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가격은 어떻게 될까요? MOQ는 10개, 개당 가격은 1370chf(약 230만원)입니다. 무브먼트 하나에만 생각보다 큰 금액이 들어가는 것이죠. 여기에 피니싱까지 손으로 한다면... 인건비가 더 드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가 쓸 물건은 못되겠습니다. 케이스와 다이얼에서 원가절감을 한다면 이걸 쓰는 의미도 없어질테니까요.
4. LTM 5050
(중앙의 로터 없는 친구가 5050입니다.)
이번에는 Le Temps Manufactures의 수동 칼리버 5050입니다. 스펙은 직경 30mm, 두께 3.3mm로 아주 훌륭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밸런스가 큰 저진동을 선호하지만(5050은 4Hz), 그래도 꽉 찬 무브먼트를 볼 수 있는 사양입니다. 스위스메이드? 당연합니다. 연간 생산량도 n00개라 힙스터 감성까지 충족합니다. 근데 어떤게 문제일까요? 바로 개당 2000chf(약 330만원)가 넘는 가격입니다. 바로 다음 타자를 알아봅시다.
5. OISA 29-50
이태리의 무브먼트 제조사 OISA에서 내놓은 29-50입니다. 직경 29.5mm, 두께 3.5mm, 파르미지아니의 보쉐 산하에서 밸런스, 이스케이프먼트, 헤어스프링, 기어트레인 등을 만드는 아토칼파에서 만든 밸런스 휠, KIF Parechoc의 내진장치까지 스펙은 흠잡을 곳 없습니다. 브릿지 디자인도 사진처럼 3/4플레이드 디자인을 제공하니 톱질만 잘하면 차별화하는데는 문제 없겠습니다. 골드나 루테늄 도금까지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으니 편하긴 할거같습니다. MOQ는 10개, 가격은 855유로(약 130만원)입니다.
정말 완벽해보입니다. 곧 소규모 워치메이커들이 우후죽순 쓸 게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이태리 무브먼트라...적어도 제가 먼저 사용해서 검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6. LJP 7380
폴로 랄프로렌에서 사용한 무브먼트로 익숙한 그 친구입니다. 직경 30mm에 2.7mm로 크기도 좋습니다. OISA와 달리 스위스 메이드인 것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LJP의 문제는 MOQ가 n00개 단위라는 겁니다. 다음 타자로 넘어갑시다.
7. 셀리타 AMT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요즘 핫한 AMT에서 우리 입맛대로 제조를 해봅시다. 벌써부터 뒤포 맛을 만들지, 로저 스미스 맛을 만들지 군침이 돕니다.
"We apply a minimum order quantity (MOQ) of 1,000 movements per order."
LJP보다 한술 더뜹니다. 다음 타자로 넘어갑니다.
8. ETA
-가장 최근 버전의 유민훈 7001.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개선되어서 놀랐습니다.
https://calibercorner.com/minhoon-yoo-carved-piece/
리차드 해브링의 7750 수정 A11. 쿠도케도 해브링에게 무브먼트를 받아다가 사용합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ETA로 넘어왔습니다. 6498은 37.2mm이기에 사용할 수 없으니 이제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합니다.
- 7001을 사용한다.
- 7750을 수정해 사용한다.
첫 번째 선택지의 경우, 수정하는 비용이 없기에 브릿지를 새롭게 제작해 다른 곳에 투자하거나, 레귤레이터나 클릭같은 부분을 수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깁니다. 하지만 23.3mm의 직경과 2.5mm라는 두께때문에 보는 맛이 줄어든다는 문제점도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두 번째 선택지의 경우, 30mm에 수정시 4mm대라는 보는 맛이 좋은 무브먼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정 자체가 기능상 문제가 될 수 있음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전자를 선택한게 유민훈씨와 라이네입니다. 유민훈씨는 클릭을 화려하게 수정하고 저먼 실버로 브릿지 포함 부품 일부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라이네는 반대로 클릭을 그대로 두었지만, 역시 브릿지를 새롭게 제작하고 기요셰 머신으로 꾸몄습니다. 눈길이 자연스럽게 가게 만드는 콕은 덤이구요. 하지만 둘 다 무브먼트의 크기면에서 아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7750을 봅시다.
7750을 박은 걸 보니 사이즈부터 가슴이 편안해집니다. 그런데 누가 수정해줄까요? 스테판 쿠도케는 아내분의 인맥으로 해결(마리아 해브링과 이브 쿠도케가 친함)했지만, 우리는 벌써 막막합니다. 그래도 대 AI시대니 GPT가 해주지 않을까요?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기존에는 7001이 대세였지만, 근래에는 7750을 쓰는 워치메이커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언급한 해브링과 쿠도케, 나오야 히다는 물론 요즘 핫한 워치메이커 라울 파게스도 마세나 랩과 콜라보할때 사용한 것이 7750일 정도니까요.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B에 해당하는 워치메이커들이 섣불리 인하우스 무브먼트는 물론 크로노드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브먼트 가격만 따졌지만, 무브먼트 비용이 전부가 아니거든요. 브릿지도 새로 만들어야되고, 케이스, 다이얼까지...벌써 복잡합니다. 당장 크로노드를 사용하는 브랜드들의 가격만 봐도 B에서 벗어나는 것이 대다수고, 인하우스 무브먼트에 도전하는 순간 B에 있을 필요성도 못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사진찍다가 푸조따리 잘나와서 썼는데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
정답은 고민없이 A사면 되는데 제 지갑이 죄지요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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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SA의 신작 무브먼트에 아토칼파의 부품들이 들어간다는 건 처음알았네요! ㅋㅋ 7750 수정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국내에서도 7750 수정 무브먼트를 사용한 시계가 나왔으면 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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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글 잘 읽었습니다! 2번을 택한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stud block / regulator block이 이쁜 무브가 베이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그걸 최소한 바꾸던지요. 브릿지 피니싱은 열심히 하시지만 막상 에타크론식 레귤레이터는 그대로 두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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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아쉬운 부분이긴하지만 좀 생각해 보니, 금속공예에서 출발한 경우는 Timing organ 을 손대는게 많이 부담스럽겠더라구요. 생각치 못한 디펜던시도 있을테구요. 쌍제이님 글을 읽어보면 에타크론에서 프리스프렁으로 점프하기엔 총 예산상 포기할게 많아질테니 참 어려운 결정일듯 합니다. (에타크론이나 트리오비스나 도긴개긴이라 생각해서 어쩌면 밸런스콕등의 피니싱에 집중하는게 나을수도 라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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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글이지만 사진이 일취월장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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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7750 수정이 확실히 멋있는듯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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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
2025.06.04 07:46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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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초
2025.06.04 15:12
저도 부담없는 선에서 인디 워치 발들여보려고 같은 의식의 흐름으로 가다가 결국 결론은 가장 인하우스에 근접하고 나름의 레전드인 Habring2로 기울었으나... 사실 또 그럴바에는 그냥 가격도 더 착하고 금통인 빈티지 iwc 3750이나 가볼까라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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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세상
2025.06.05 15:49
와우~ 사진이 디테일하니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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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포스팅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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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크크크
2025.06.19 14:59
무브먼트가 이렇게 멋진걸 알고 가네요~^^
A는 걍 책정하는게 값이고 C는 싼맛에 들이는거니 결국은 B인데, 사실 B 카테고리에서 1~2만불이 리즈너블 하다고 느끼게 퍼포먼스를 내는게 넘나 힘들겠네요...우리 어릴적 꿈에 AI 시대가 열리면 우리네 닝겐들은 우아하게 창작활동과 여가를 즐기고, 로봇들이 허드렛일을 하는 세상을 꿈꿨는데...꿈에서 깨보니 그림도, 작곡도, 수학문제도 AI가 다 해주지만 정작 청소, 빨래, 허드렛일 다 내가하고 있는 현실이 어이없는데...뭐, GPT 님이 무브먼트 설계는 해줘도 피니슁은 닝겐이 열심히 쭈구리고 앉아 앵글라쥐 쳐야하는...미래는 결국 디스토피아인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