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GMT_Korea

조회 2975·댓글 29
2020년 브랜드를 대표하는 신모델 5

구교철 KOO KYO CHUL

2020년 초반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의 영향으로 시계업계의 톱니바퀴가 어그러졌다. 전 세계적인 혼란 속에서 시계업계는 코로나 대책과 더불어 신속한 전략 수정을 통해 하반기에 접어들며 틀어진 톱니바퀴를 수정했다. 덕분에 2020년에도 시계 애호가를 매료시키는 다양한 신제품이 등장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계의 즐거움으로 충만했던 시기로 기억할 것이다.

5177BB_2Y_9V6_face_rvb_High_resolution__300_dpi___JPG__9274-1.jpg
Breguet_Classique_5177_Email_Bleu_Grand_Feu_life_style__2__High_resolution__300_dpi___JPG__8179-1.jpg
16_BR_RK_BB5A9188_RET_A4vertical_High_resolution__300_dpi___JPG__8908-사본-1.jpg
Caliber_Breguet_777Q_Assembly_1_High_resolution__300_dpi___JPG__8185-1.jpg
BREGUET Classique 5177
브레게의 클래식 5177은 롱 셀러 모델이다. 2006년 처음 선보인 이 모델은 당시 시계 시장의 기술적 선도로 여기던 실리시움 부품과 에나멜 다이얼로 일견 상반되는 조합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적인 실리시움과 전통적인 에나멜 다이얼이라고 여기지만, 에나멜 다이얼에는 현대적인 기술이 녹아 있다. 에나멜 다이얼의 메탈 플레이트를 뒷면에 메탈 플레이트를 더한 세라믹 플레이트로 대체해 생산 효율을 증대했다. 불에 구워내는 에나멜 다이얼은 열에 의한 플레이트의 수축과 뒤틀림이 낮은 수율에 영향을 끼친다. 세라믹 플레이트는 이 점을 개선한 현대적 접근으로 실리시움 기술과 궤를 함께한다. 클래식 5177에는 실리시움을 이용한 헤어스프링과 이스케이프먼트를 구성하는 주요 부품인 팔랫 포크, 이스케이프 휠을 사용했다. 반도체 웨이퍼 가공 기술을 응용한 실리시움 부품은 가공 오차와 편차가 최소화된다. 즉 정교하게 가공한 부품을 사용해 정확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비금속인 실리시움의 특성은 헤어스프링과 이스케이프먼트에서 적극적으로 발휘된다. 금속 소재에 비해 가벼울뿐더러 내자성능은 비교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기계식 시계를 집요하게 괴롭혀왔던 자성의 영향에서 단숨에 벗어나게 했다. 브레게라고 하면 이미지 때문인지 클래식하다고 쉽게 정의하곤 하지만 이는 성급한 결론이다.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시계 기술을 200년가량 앞당겼다고 평할 만큼 기술적으로 진보적이었고, 클래식 5177의 실리시움과 세라믹 플레이트의 에나멜 다이얼 역시 진보의 산물로 브랜드의 일관성을 드러낸다. 올해 발표한 다크 네이비 컬러의 에나멜 다이얼은 단순히 롱 셀러 모델의 생명력을 연장하기 위함만은 아닐 것이다. 브레게의 진보적인 성향을 아름다움으로 환원해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는 또 다른 접근이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인 듯하다.



WSPA0009_2.jpg
WSPA0013.jpg

15_Cartier_PASHA_close-up-1-1.jpg
17_Cartier_PASHA_close-up-3-1.jpg
05_WSPA0009_Cartier_PASHA_STEEL-41-WOMAN-1.jpg
07_WSPA0009_Cartier_PASHA_STEEL-41_LEATHER-41-1.jpg
CARTIER Pasha De Cartier Watch
파샤(Pasha)는 오스만제국 시대에 군주나 고위 관료에게 붙이던 호칭이다. 까르띠에 워치의 모델명에 사용하며 더욱 널리 알려진 단어가 아닐까 싶다. 파샤 워치의 기원은 1930년대 모로코 마라케시의 파샤가 까르띠에에 주문한 방수 시계로 알려져 있다. 시계를 착용한 채 물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기를 원했던 퍄사의 요청이 시작점이라고 하나, 까르띠에는 1943년 라운드 케이스의 방수 시계를 공식적인 기원으로 인정한다. 현대와 같은 방수 기법이 확립되지 않은 1930년대에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퍄사 워치의 대표적인 디테일로 자리 잡은 크라운 커버는 방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1930~1940년대 방수 시계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방수 성능은 스포티즘과 스포츠 시계라는 새로운 장르의 등장을 불러왔다. 1985년 레귤러 에디션으로 등장한 파샤 드 까르띠에 워치는 디테일로 스포티즘을 드러냈다. 카보숑 컷 블루 사파이어로 장식한 크라운 커버를 달았고, 당시 까르띠에 라인업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방수 성능을 갖췄다. 기능 면에서는 스포티즘을 대표하는 크로노그래프를 포함했으며 다이버 워치를 파샤 씨타이머로 재해석해 독특한 매력과 포지셔닝을 확보했다. 탱크, 산토스의 성공적인 리뉴얼을 이끈 까르띠에는 올해 파샤의 부활을 완수했다. 새로운 파샤 워치는 100m 방수라는 스포티즘과 내자성능으로 본연의 포지셔닝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외관은 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디테일을 세련되게 다듬었다. 정교한 플랑케 다이얼에 아라비아 인덱스를 올려 파샤만의 개성을 다시 드러냈고, 크라운 커버와 케이스의 연결 방법을 재고했다. 덕분에 케이스 측면은 매끄러운 곡선을 드러내며 이니셜이나 짧은 단어를 새길 수 있는 비밀 공간을 확보했다. 인하우스 자동 무브먼트로 독자성을 강화하는 한편, 탱크, 산토스에서 강조한 손쉬운 스트랩 탈착법을 이어받아 사용자 편의성을 극대화하며 새로운 세대를 자사의 헤리티지로 인도했다. 새 퍄샤 워치의 발표로 헤리티지 현대화에 마침표를 찍은 까르띠에는 헤리티지 운용과 리뉴얼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005.jpg
007.jpg
004.jpg
폴라리스-마리너-메모복스-(4)-사본-1.jpg
009.jpg
JAEGER-LECOULTRE Polaris Mariner Memovox
voice(목소리)를 뜻하는 라틴어 ‘vox’와 memory(기억)의 ‘memo’를 조합해 만든 Memovox(메모복스)는 기능을 강조하기 위한 작명이다. 기억의 목소리, 즉 소리로 주위를 환기하는 알람 기능을 갖춘 메모복스는 예거 르쿨트르에 의해 1950년에 데뷔했다. 이후 수동이었던 메모복스는 로터를 단 자동으로 업그레이드되었고, 다이버 워치라는 새로운 장르가 정립되어갈 때 메모복스 폴라리스를 통해 다이버 워치에 알람 기능을 접목했다. 메모복스는 기능성과 실용성 이외에도 소리라는 요소를 통해 고유한 입지를 구축해갔다. 또 쿼츠 손목시계의 등장으로 기계식 시계의 가치가 재정립된 이후, 핵심 가치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시스루 백을 유행처럼 도입했다. 투명한 케이스 백을 통해 보이는 피니싱이 아름다운 무브먼트는 기계식 시계의 가치를 가장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메모복스는 케이스 백을 소리의 진동판으로 사용하는 특유의 구조 때문에 무브먼트를 볼 수 없었다(1990년대 후반 3~4년가량 소량으로 시스루 백 버전의 수동 메모복스를 내놓은 적은 있다). 이는 요즘 트렌드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대가를 지불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기분이 들게 했다. 올해 다이버 워치로 등장한 폴라리스 마리너 메모복스는 진화를 통해 유일한 단점을 해결했다. 케이스 백을 울림판으로 쓰지 않는 대신, 리피터와 유사한 공(gong) 구조의 미들 케이스를 택했다. 덕분에 시스루 백으로 무브먼트는 물론 알람 시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해머를 볼 수 있다. ISO 6425 규격을 충족하는 300m 다이버 워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시스루 백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시스루 백은 방수 난도를 올리는 요소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 구조의 알람은 과거 스쿨벨로 불리던 기능에는 충실하지만 시끄러운 소리를 부드럽게 바꿔놓으며 알람 기능에 사운드라는 개념을 담기 시작했다. 예거 르쿨트르는 과거와 같은 알람 소리가 더 이상 고급 기계식 시계를 착용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0007.jpg
002.jpg
003.jpg
0006.jpg
OMEGA Speedmaster Calibre 321 Chronograph 39.7mm
특정 기능이 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시계 역사에서 드문 일이지만, 1930~1960년대는 수동 크로노그래프의 시대라 칭해도 좋다. 이 시기에는 수동 크로노그래프 걸작이 다수 등장했는데,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문워치도 그에 해당한다. 자동 크로노그래프가 등장한 후 수동 크로노그래프가 주역에서 물러났지만 스피드마스터 문워치는 지금까지 생생한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사실 이 점만으로도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스피드마스터 문워치는 시대의 변화에 기민한 적응력보다는 우직함을 고수해왔다. 1957년 첫 모델인 Ref. CK2915를 발표하고 6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지만 무브먼트는 최근 가세한 칼리버 3861을 포함해 단 네 번의 변화만 겪었다. 칼리버 861 이후 1861, 3861이 하나의 뿌리에 서 파생한 점을 고려하면 변화의 폭은 더욱 작다. 디테일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기에 쉽사리 구형이 되지 않는다. 최근 오메가는 스피드마스터 1~3세대에 걸쳐 1960년대 중·후반까지 장착했던 칼리버 321을 재생산했다. 당시 오메가의 자회사 격인 르마니아가 고급 수동 크로노그래프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칼리버 27 CHRO C12(지름 27mm, 크로노그래프, 12시간 카운터를 의미)를 베이스로 칼리버 321을 완성했다. 과거 칼럼 휠은 크로노그래프의 품질을 가리는 명확한 기준이었고, 칼럼 휠과 캐링 암 클러치를 갖춘 칼리버 321의 그레이드를 가늠케 했다. 이는 칼리버 861로 대체되며 사라졌지만 수동 크로노그래프 애호가들의 오랜 열망에 화답하듯 재등장하게 되었다. 단종되었던 칼리버 321은 시계업계에서는 드물게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거쳐 재생산에 성공했다. 부활한 칼리버 321은 스피드마스터 3세대에 해당하는 Ref. ST105.003(1963년)의 옷을 다시 입었다. 지금처럼 비대칭이 아닌 대칭형 케이스에 블랙 다이얼과 대비를 이루는 화이트 바톤 핸즈를 갖췄다. 당시 아직 다이얼에 ‘프로페셔널’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지 않았던 부분까지 재현했고, 흠잡을 데 없는 내·외관으로 완벽한 부활을 이뤘다.




IW503312-1.jpg
[IWC]-Calibre-52615-1.jpg
IW503312_Mood-사본-1.jpg
IWC SCHAFFHAUSEN Portugieser Perpetual Calendar Ref. IW503312
CAD에 기반한 설계 기술이 표준으로 자리 잡으며 시계 애호가들은 몇 가지 경우에 있어 수혜를 입었다. 그중 하나는 과거 비싼 가격으로 선뜻 구매하기 어려웠던 컴플리케이션을 시야에 두게 된 것이다. 퍼페추얼 캘린더는 가장 호의적인 손짓을 보내는 컴플리케이션 장르로, 골드 대신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를 택한다면 조금 무리해서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절대적으로 데이트, GMT 기능처럼 많은 숫자의 퍼페추얼 캘린더를 만들지 않는다. 과거에 비해 접근성이 좋아진 덕분에 선택지가 늘어났다고 해도, 컴플리케이션의 고정관념까지는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IWC의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는 독특한 예로 꼽는다. 볼륨 모델이 될 수 없다는 컴플리케이션의 관념적 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골드 케이스의 퍼페추얼 캘린더를 4,000만 원 중·후반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은 볼륨 모델이 되기 어렵다는 관념에 변화를 주는 가장 큰 요인이다.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표현이 부족한 가격 책정은 하이엔드 브랜드의 엔트리급 모델을 고민하던 애호가들을 불러들였고, IWC가 오랜 기간에 걸쳐 숙성한 퍼페추얼 캘린더의 노하우는 이들을 만족시켰다. 1980년대 초, 기계식 시계의 부활을 꿰뚫어 본 군터 블럼라인의 지시로 IWC에서 평생을 몸담아온 엔지니어 커트 클라우스는 퍼페추얼 캘린더의 설계를 완성한다. 약 80개의 부품으로 구성한 간결한 구조는 연도 표시를 포함한 날짜 정보와 정교한 문페이즈까지 수행해낸다. IWC는 올해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부티크 에디션 Ref. IW503312를 발표했다. 골드 소재의 약점인 표면 경도를 크게 향상시킨 아머 골드 케이스에 블루 다이얼을 매치했다. 아머 골드는 표면 경도를 제외한다면 레드 골드의 컬러감에 가까워 블루 다이얼과 상성이 조화롭다. 케이스 속 칼리버 52610은 7일간의 넉넉한 파워 리저브로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새로운 부티크 에디션의 가세로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의 선택 폭을 한층 넓혔고, 컴플리케이션의 관념적 한계를 바꿔나갈 것이다. 동시에 한계 극복을 이룬 만큼 독보적인 지위도 스스로의 몫으로 가져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