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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eats of legendary pioneers and their Longines
전설적인 선구자들의 업적 그리고 그들의 론진 워치

세르주 판추크 SERGE PANCZ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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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에어하트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하늘, 땅, 바다를 정복하기 위해 과감하게 위험을 무릅써야 했던 시대에는 믿을 수 있는 정확한 시계를 소유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선구자들은 성공에 확실하게 도움을 주는 최상의 도구를 찾았다. 그들은 종종 론진 시계를 선택했는데, 론진 시계가 극도의 조건에도 저항이 강하고 정확하며 유니크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구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인한 정신이다. 아멜리아 에어하트(Amelia Earhart)와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를 포함해서 함께 소개하는 선구자들은 모험심과 불굴의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재능도 마찬가지다. 비행의 선구자들을 돕기 위해 개발되었던 론진 시계의 특징(한결같은 정확성, 파일럿 워치 특징이 엿보이는 크라운, 가독성 높은 숫자, 밤 비행을 위한 야광 핸즈)이 론진 스피릿 컬렉션을 통해 한곳에 모였다. 최근 COSC 인증을 받은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 무브먼트로 구동되는 스피릿 타임피스는 크로노미터 사양의 정확성을 보장했다. 이제 선구자들의 개척 정신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할 때다.

아멜리아 에어하트, 하늘의 스윗하트
그녀의 삶은 영화, 책, 심지어 음악에까지 표현되었다. 그녀의 남다른 운명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20세기 초에 비행을 시작했고 가장 유명한 여성 파일럿으로 알려져 있다. 장거리 조종사이자 하늘의 스윗하트인 그녀는 론진 시계와 함께 비행기를 조종했다. 두려움을 모르는 이 여성은 1921년에 파일럿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다음 해에 그녀는 1만4,000피트의 고도에 도달하면서 자신의 첫 번째 기록을 세웠다. 1932년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미국을 횡단했고 캐나다부터 북부 아일랜드까지 14시간 56분에 걸쳐 비행했다. 그녀는 대서양을 단독 비행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러한 면모 덕에 여성으로서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그녀의 비행기 록히드 베가(Lockheed Vega)가 착륙한 후 그녀는 하와이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최초의 단독 비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1935년 1월 11일에 이 목표를 달성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마지막 비행 세계일주를 계획하면서 그녀는 “여성은 남성이 시도했던 것들 을 무조건 해봐야 한다. 그들이 실패했을 때 그 실패는 또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본인의 마 지막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1937년 태평양에서 비행 중 실종되면서 도전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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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노어 스미스

엘리노어 스미스, 하늘을 나는 기록 경신 소녀
엘리노어 스미스(Elinor Smith)가 조숙한 7세 소녀였던 1918년은 그녀가 처음 탄 비행기를 만든 때이기도 했다. 그녀가 10세 때 그녀의 선생님은 키 페달에 벽돌을 묶어 그녀의 발이 닿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6년 후 그녀는 처음으로 혼자 비행했고 공식적인 파일럿 라이선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그녀는 16세에 불과했고 미국에서 최연소 파일럿이 되었다. 이후 엘리노어 스미스는 고도 3,624m 기록을 시작으로 연속적으로 새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1928년 뉴욕의 이스트강(East River)에 4개의 다리 밑을 비행하는 데 실패한 남성이 그곳을 비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신뢰하는 비행기 웨이코를 조종하면서 비행에 성공했다. 이 업적을 달성한 최초이자 유일한 비행사였다. 1929년 1월 30일 영하 18℃에서 오픈된 복엽기(날개가 2조로 되어 있던 초창기의 비행기)의 조종석에서 비행하던 엘리노어 스미스는 여성 단독 비행 기록을 13시간 16분으로 연장시켰고, 이어 몇 달 뒤에 26시간 21분으로 본인의 기록을 깼다. 최초의 여성 전문 비행사인 그녀는 1931년 고도 기록을 경신했는데, 이때 그녀는 론진 시계를 착용했다. 9,145m 고도에서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비행기의 기화기는 얼어붙었고 엔진은 멈춘 상태였다. 비행기는 급격히 하강했고, 지상 1,800m쯤에서 엘리노어가 의식을 되찾으면서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 그녀의 전보에서 “고도 신기록을 세웠음을 알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 신기록은 론진 시계들과 함께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론진 시계는 언제 어디서든 완벽하게 작동합니다”라고 전했다. 그녀는 결혼 후 항공업계에서 은퇴했지만 남편이 사망하자 항공업
계로 돌아왔다. 2001년 4월 90세의 나이로 그녀는 버지니아 랭글리에서 여전히 실험적인 비행기 비치크래프트 보난자 C33로 하늘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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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진 스피릿
LONGINES SPIRIT
지름 : 40mm
케이스 : 스틸 케이스 
무브먼트 :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 64시간의 파워 리저브, COSC 크로노미터 인증 셀프 와인딩 기계식 무브먼트
다이얼 : 실버 다이얼 위 아라비아숫자 
스트랩 : 브라운 가죽 스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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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휴즈

하워드 휴즈, 하늘을 나는 선구자
하워드 휴즈는 14세 나이에 비행 수업을 들을 정도로 항공 분야에 대한 열망이 컸고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특출난 사람이 되었고 동시에 과대망상가가 되었다. 그가 최초의 항공사를 설립했을 때는 고작 25세에 불과했다. 하늘의 선구자로서 그는 기록을 하나하나 경신해나갔다. 그의 탐험은 1935년 9월 13일 시속 566km에 달하는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H-1 Racer를 개발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1937년 휴즈는 7시간 28분 25초 동안 미국을 횡단하면서 자신의 기록을 깼다. 어쩌다 보니 그는 스스로 비행의 프로토타입이 되었고 최초로 LA에서 뉴욕으로 가는 루트를 만들면서 비행 시대의 막을 열었다. 그다음 해에 그는 론진 시계와 크로노미터와 함께 그의 록히드14 N2(Lockheed14 N2)로 3일 19시간 14분간 비행해 세계일주 기록을 경신했다. 1936년 항공 내비게이션을 위해 발명된 론진 사이드로그래프(Longines Siderograph)는 그의 록히드에 탑재되었다. 이 사이드로그래프는 태양이 아닌 별의 움직임에 따라 지구의 회전을 측정했고, 이는 밤하늘을 날 때 비행기의 위치 및 바다를 비행할 때 비행기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론진은 가볍고, 항자성이 강하고, 단단한 알루미늄 케이스에 비행에 특히 이상적인 사이드로그래프를 탑재했다. 현대 항공학의 기초를 세우고,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대통령, 자선가의 절친한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휴즈는 고독하게 생을 마감한 괴짜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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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진 스피릿
LONGINES SPIRIT
지름 : 42mm
케이스 : 스틸 케이스
무브먼트 :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 COSC 크로노미터 인증 셀프 와인딩 기계식 무브먼트
다이얼 : 실버 다이얼 위 아라비아숫자
스트랩 : 브라운 가죽 스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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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에밀 빅토르

폴-에밀 빅토르, 극지 탐험가
폴-에밀 빅토르(Paul-Émile Victor)는 190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해군 장교이자 24세에 파일럿 자격증을 취득한 뛰어난 파일럿이었다. 1941년 그는 미국으로 보내졌고 공군 비행사가 된 이후에는 낙하산 부대원으로 활동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극지의 비행 대대를 관리했다. 그가 관할한 지역은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였다. 극지를 탐험하는 것은 그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그는 이누이트(캐나다 북부 및 그린란드와 알래스카 일부 지역에 사는 종족) 언어를 습득했고 프랑스 극지 탐험대를 설립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왕성한 호기심을 보유한 세계적으로 저명한 민족학자이자 다작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이기도 했던 폴-에밀 빅토르는 150회 이상의 극지 탐험에 참가했고, 그중 17회는 테르 아델리와 남극대륙을, 14회는 그린란드와 북극 탐험을 개인적으로 이끌었다. 자연을 탐험하는 선구자인 그는 진실성, 독립성 같은 가치에 이끌렸고, 그 가치를 계속 이어나갔다. 나침반의 내비게이션이 확실하지 않고, 해안선이 없는 극지의 환경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데 지표가 되어주는 것은 오로지 지도, 시계, 육분의(각도와 거리를 정확하게 재는 데 쓰는 광학 기계)였다. 폴-에밀 빅토르는 그가 탐험을 하는 49일 동안 영하 40℃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론진 시계, 라디오 타임 시그널과 동시에 움직이는 크로노미터에 의지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는 극지 탐험 성공 후 스위스 쥐라산맥 인근 상티미에에 위치한 론진에 편지를 보냈다. “제가 1936년 그린란드 빙하 사막을 건너는 동안 그 당시의 감정도 기억하지만, 경도를 계산하기위해 제가 가져갔던 3개의 론진 크로노미터도 기억합니다. 그 크로노미터들은 저의 실패와 성공을 판가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듯 하늘과 땅을 정복하고자 한 위대한 탐험가들의 손목에는 언제나 론진의 시계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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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of the legends, 전설들의 귀환
오늘날 항공 분야의 개척자들이 사용한 전설적인 론진 모델은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날개 사이에 모래시계를 결합한 로고가 특징인 론진은 개척자들의 업적을 동반한 시계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시계들을 다시 만들어냈다. 이 시계는 선구자들과 같은 정신세계를 공유한다. 캐시드랄(cathedral)핸즈에서 영감을 받은 샌드블라스트 시 · 분 핸즈, 빈티지 폰트, 레드 트라이앵글 세컨드 핸즈, 날짜창, 야광 아라비아숫자, 조종사들이 장갑으로 돌릴수 있는 큰 크라운. 시계의 다이얼에 ‘크로노미터’라고 새김으로써 이 컬렉션의 무브먼트는 COSC에서 인증받은 시계의 정확성을 증명했다. 이 무브먼트는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 자기장과 온도 변화에 저항이 강한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확성과 지속성을 보장한다. 각 시계의 케이스 백에는 스피릿 컬렉션을 보여주는 인그레이빙이 새겨져 있다. 40mm 혹은 42mm로 구매 가능한 첫 번째 모델은 64시간 파워 리저브와 함께 가독성을 높여주는 블랙, 그레인드 실버 혹은 블루 다이얼이 특징이다. 빈티지 다크 브라운 가죽 스트랩 표면에는 폴리싱과 새틴 마감을 교차적으로 적용했다. 론진은 60시간의 파워 리저브, 선레이 패턴 다이얼 위 3개의 원형 기요셰 패턴 카운터(다이얼과 같은 색깔로 구매 가능)를 탑재한 42mm 칼럼 휠 크로노그래프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