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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그래프 시계애호가들에게 1969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해일 것입니다. 브라이틀링(Breitling), 호이어(Heuer), 해밀턴(Hamilton) 등이 공동 개발한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크로노매틱 11(Chrono-Matic 11)을 비롯해, 제니스(Zenith)의 엘 프리메로(El Primero), 세이코(Seiko)의 6139 칼리버와 같은 손목시계 역사상 최초로 선보이는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와 시계들이 대거 쏟아진 기념비적인 해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시계 커뮤니티에서는 이 셋 중에 세계 최초의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타이틀을 놓고 설왕설래가 오가기도 했지만,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은 이 세 무브먼트가 지닌 개성과 기술적인 성취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1969년은 시계 제조 역사에 길이 남을 마법과도 같은 해로 시계애호가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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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밀턴 크로노-매틱 50 오토 크로노 (1,972피스 한정)

그리고 어느덧 최초의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와 시계가 탄생한지 올해로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위에 언급한 제조사들은 저마다 올해 자사의 역사적인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며 50년 전 당시의 제품을 떠올리게 하는 복고풍의 신제품을 선보였는데요. 해밀턴 역시 최근 아주 강렬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했습니다. 이에 타임포럼이 스페셜 컬럼을 통해 보다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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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의 크로노-매틱 50 오토 크로노(Chrono-Matic 50 Auto Chrono)는 지난 몇 년간 출시한 또 다른 종류의 빈티지 복각 크로노그래프 라인업 인트라-매틱 오토 크로노(Intra-Matic Auto Chrono)처럼 아메리칸 클래식(American Classic) 컬렉션을 통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트라-매틱 시리즈와는 그 외형부터 큰 차이를 보이는데요. 커다란 직경의 쿠션형(혹은 헬멧형) 케이스에 러그가 돌출되지 않고 케이스 안쪽에 통합돼 있으면서 케이스 끝부분이 막혀 있는 현행 해밀턴 컬렉션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외형부터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역사적인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와 시계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한정판인 만큼 이러한 케이스 형태 및 유니크한 디자인 역시 오리지널의 그것을 따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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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펜실베니아주 랭카스터에 위치한 옛 해밀턴 본사

스와치 그룹에 인수되기 전인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해밀턴은 미국이 자랑하는 시계제조사였습니다. 시계 업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선구적인 기업 중 하나였던 만큼 해밀턴은 20세기 초중반에 걸쳐 손목시계 디자인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실로 다양한 실험을 했는데요. 물론 이 과정에서 외부 업체 혹은 기관과의 협업 활동도 두드러졌습니다. 미국의 시계제조사로서 스위스의 높은 장벽을 뛰어넘고자 했던 해밀턴은 자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보다 적극적인 기술 개발과 사업 확장을 위해 1966년 비엘의 한 유명 무브먼트 및 시계제조사인 뷰렌(Büren Watch Co.)을 인수하게 됩니다. 이후 해밀턴 스위스 자회사의 사명이 해밀턴-뷰렌으로 한동안 바뀐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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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노-매틱 칼리버 11 분해도 
해밀턴-뷰렌의 마이크로-로터 자동 베이스 위에 뒤부아 데프라의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얹는 구조를 취했다. 

뷰렌은 1950년대 말부터 당시 테크니컬 디렉터인 한츠 코에르(Hanz Kocher)가 개발한 마이크로-로터(Micro-rotor) 타입의 두께가 얇은 자동 무브먼트 개발에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 접어들면서 울트라-씬 자동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자동 크로노그래프 제작을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되는데, 이때 발레드주의 크로노그래프 스페셜리스 뒤부아 데프라(Dubois Dépraz)가 참여함으로써 본격적인 탄력이 붙게 됩니다. 하지만 최초로 시도하는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연구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게 되자 당시 크로노그래프 시계제조사로 유명한 브라이틀링과 호이어(당시엔 호이어-레오니다스)를 끌어들였고, 이들과의 공동출자 방식으로 비밀리에 ‘프로젝트 99(Project 99)’이란 코드명까지 부여하면서 기술 개발에 열을 올렸습니다. 나아가 이 프로젝트에 흥미를 느낀 해밀턴까지 가세하면서 크로노그래프와 오토매틱을 결합한 그 이름부터 의미심장한 ‘크로노-매틱’ 무브먼트와 시계가 마침내 1969년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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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제작된 브라이틀링 내비타이머 크로노-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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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제작된 호이어 오타비아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호이어는 차츰 크로노-매틱 표기 대신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를 사용했다. 

이렇듯 크로노-매틱 칼리버 11의 개발에 참여한 회사가 여럿이다 보니 메인 3사 브랜드- 브라이틀링, 호이어, 해밀턴 -에서는 1969년부터 1970년대 중반 사이 예외 없이 비슷비슷한 형태의 시계들이 연이어 출시됩니다. 그런데 같은 무브먼트를 공유하면서도 각 브랜드별로 조금씩 다른 케이스 형태와 다이얼 디자인을 적용함으로써 자신들만의 개성을 살린 점이 재미있습니다. 이들의 크로노-매틱 시리즈는 물론 비슷한 시기 세이코의 쿼츠 아스트론이 촉발한 쿼츠 혁명(혹은 쿼츠 위기)의 여파로 실제 시장에서의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기술적인 성취가 재조명을 받았고, 21세기 들어 기계식 시계 시장이 다시 부활하면서 크로노그래프 시계애호가 및 열혈 컬렉터들 사이에서 크로노-매틱의 명성도 한층 견고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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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초반 해밀턴 크로노-매틱 지면 광고 비주얼 
“세계 최초의 셀프-와인딩(자동) 크로노그래프다!”라는 카피 문구에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상대적으로 브라이틀링과 호이어의 크로노-매틱 빈티지는 온라인상에서도 종종 접할 기회가 있는 반면, 해밀턴의 그것은 좀처럼 보기가 어려운데요. 그만큼 생산량 자체가 적었고, 브랜드가 주력하는 라인이 아니다 보니 쿼츠 위기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과정에서 생산 기간을 제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됐든 1970년대 중반까지 해밀턴은 몇 종의 인상적인 크로노-매틱 베리에이션 제품들을 선보였고, 그 중 가장 유니크하고 마니아 취향의 시계가 바로 크로노-매틱 E(Chrono-Matic E) 혹은 크로노-매틱 GMT 카운트-다운(Chrono-Matic GMT Count-Down)으로 불린 모델입니다. 오리지널 모델의 자료 사진을 구하진 못해 아쉽지만, 올해 새롭게 선보인 크로노-매틱 50 오토 크로노와 모습은 거의 흡사합니다. 그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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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이 새롭게 선보인 크로노-매틱 50 오토 크로노는 그 제품명에서부터 크로노-매틱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케이스 사이즈 및 형태부터 1970년대 오리지널 크로노-매틱 E를 거의 똑같이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물론 푸셔와 다이얼 디테일이 바뀌긴 했지만 케이스 형태만 봤을 때는 오리지널 모델과의 싱크로가 거의 90% 이상에 가깝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흡사 헬멧을 연상시키는 독특하면서도 볼륨 있는 케이스는 전체 무광으로 브러시드 가공되어 특유의 스포티한 필드 워치 느낌을 더합니다. 한눈에 봐도 오버사이즈로 보이는 케이스는 실제 스펙을 보면, 가로 직경 48.5 x 세로 51.5mm에 달하며, 두께는 위로 불룩하게 솟은 박스 형태의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포함해 16.05mm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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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언급했듯 크로노-매틱 칼리버 11을 탑재한 1960~70년대 오리지널 피스들이 당시 기준으로는 대담한 사이즈와 특유의 볼륨감 있는 케이스 형태로 제작된 결정적인 이유를 꼽자면, 크로노-매틱 칼리버 자체가 기본 자동 베이스 위에 뒤부아 데프라의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얹어 수정하는 과정에서 꽤 사이즈가 커지고 두꺼워졌기(약 7.7mm)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이 현대에 와서는 모던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설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특유의 대담한 디자인 역시 1970년대 빈티지 크로노그래프를 상징하는 아이코닉한 요소처럼 후대 시계애호가들의 뇌리에 각인되게 됩니다. 크로노-매틱 50 오토 크로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설적인 크로노-매틱 E의 상징적인 모습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재현함으로써 빈티지 크로노그래프 시계마니아들의 감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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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리지널 모델과의 몇 가지 차이점도 눈에 띕니다. 크라운/푸셔의 형태와 기능 조작 위치가 다른데요. 오리지널 모델은 케이스 우측에 시간을 조정하는 크라운과 이너 베젤 형태의 24시간 및 멀티-타임존 회전링을 조작하는 크라운이 위치하고, 크로노그래프 기능 조작 푸셔는 케이스 좌측에 위치해 있었다면, 현행 복각 신제품은 기존의 크로노그래프 제품들이 그러했듯, 케이스 우측에 크라운과 크로노그래프 푸셔가 위치, 좌측 8시 방향의 크라운은 이너 베젤 형태의 카운트-다운 스케일을 조작할 때 사용하고, 10시 방향에 위치한 블랙 푸셔는 날짜 조정을 위한 것입니다. 총 5개의 크라운과 푸셔를 기능별로 실버 혹은 레드, 블랙 컬러로 보기 쉽게 분류한 것은 오리지널 모델과도 상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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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다이얼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70년대 오리지널 크로노-매틱 E 모델과 매우 흡사하지만 또 다른 게 다이얼 디테일입니다. 우선 오리지널 모델에 있었던 24시 및 세계 주요 타임존을 새긴 회전링 대신 특정 구간의 평균 속도를 계측할 수 있는 타키미터 스케일과 카운트-다운 스케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모델의 흑백 바이-컬러 조합의 다이얼, 흔히 말하는 리버스-판다(Reverse-panda, 판다의 눈을 연상시키는 다이얼의 역전한 형태) 다이얼은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투 카운터의 위치와 기능이 다릅니다. 오리지널 모델은 3시와 9시 방향에 시와 분 카운터가 각각 위치했다면, 현행 복각 신제품에는 3시 방향에 30분 카운터를, 9시 방향에 스몰 세컨드(초침)가 위치해 있습니다. 30분 카운터 바탕을 5분 단위로 띄엄띄엄 레드 프린트 처리한 디테일은 또 오리지널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날짜창은 다이얼 6시 방향에 위치해 있습니다. 야광 도료(수퍼루미노바)를 도포한 핸즈와 인덱스의 형태, 컬러 조합 등 기타 세부적인 디테일은 오리지널 모델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박스 형태의 꽤 두께가 있는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전면 글라스 소재로 사용한 것도 오리지널 모델의 플렉시글라스 느낌을 현대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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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리버 H-31

무브먼트는 당연히 현행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를 탑재했습니다. H-31이 그것인데요. 로버스트하고 안정적인 ETA 7753을 베이스로 레귤레이터 형태와 데코레이션(브릿지 일부 H 이니셜 로고 각인), 파워리저브(약 60시간) 등 몇 가지 사항을 개선, 수정한 것입니다. 칼리버 ETA 7750을 베이스로 하는 H-21를 탑재한 제품들과는 크로노그래프 카운터 배열이 달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좀 더 클래식한 느낌의 다이얼 디자인 연출에 유리합니다. 다만 기존의 7753 베이스들이 그렇듯 크라운을 이용한 날짜 조정이 불가능해 케이스 좌측 프로파일 상단에 있는 코렉터를 핀형의 도구로 눌러 날짜 변경을 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제품 크로노-매틱 50 오토 크로노는 디자인 상의 이유로 배치한 10시 방향의 푸셔 덕분에 별도의 도구 없이 간편하게 날짜를 조정할 수 있어 이 또한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참고로 케이스 방수 사양은 1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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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랩은 매트한 블랙 송아지 가죽에 펀칭 가공을 통해 구멍을 뚫고 레드 컬러 송아지 가죽을 안감으로 덧대 펀칭 홀 디테일 사이로 레드 컬러가 비춰지도록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다이얼과 마찬가지로 스포티하면서도 빈티지한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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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크로노-매틱 50주년을 기념하는 한편 자사의 1970년대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향한 그리움을 투영한 해밀턴의 색다른 신작, 크로노-매틱 50 오토 크로노(Ref. H51616731)는 모델에 직접적인 영감을 준 크로노-매틱 E의 출시 연도에서 착안해 단 1,972개 한정 제작되었습니다. 이제 곧 국내 매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으며, 국내 출시 가격은 3백 29만 원으로 책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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