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미터 전쟁 Part.1
2024년 9월, 모두의 허를 찌르는 소식이 제네바 워치 데이즈를 통해 들려옵니다. 러시아 출신의 독립 시계제조사 콘스탄틴 샤이킨이 두께 1.65mm의 울트라-씬 프로토타입을 깜짝 공개했습니다. 씽킹(ThinKing)이라 이름 지은 시계는 단숨에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손목시계에 등극하기에 이릅니다. 종전 기록은 불가리가 같은 해 4월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COSC로 세운 1.7mm였습니다. 신기록이 불과 5달 만에 깨진 셈입니다. 2022년이 묘하게 오버랩됩니다. 불가리는 그해 4월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두께 1.8mm)로 관련 기록을 경신하고 축배를 든 바 있습니다. 다만, 파티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바로 두 달 뒤, 리차드밀 RM UP-01 페라리(두께 1.75mm)가 스포트라이트를 가로챘습니다. 2022년과 2024년 두 번의 치열한 타이틀 쟁탈전 중 임팩트가 강한 쪽은 역시나 후자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울트라-씬이 워치메이커에게 어떤 의미이기에 언더독까지 치열한 전장에 뛰어들게 됐는지, 그 배경이 궁금해집니다.
-콘스탄틴 샤이킨 씽킹(두께 1.65mm)
얇은 손목시계의 본질은 우아한 맵시와 뛰어난 착용감에 있습니다. 오늘날 울트라-씬은 그를 극한으로 몰아붙인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보통의 손목시계는 드레스 워치 기준으로 셔츠 소매 안에 넉넉하게 들어갈 정도만 돼도 충분히 우아하고 착용감 역시 좋습니다. 굳이 두께 5mm 이하의 울트라-씬 영역에 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일부 워치메이커는 그럼에도 “얇게, 더 얇게”를 외칩니다. 울트라-씬이 서로의 기술력으로 자웅을 겨루는 하나의 장이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근 몇 년 사이에 과열된 경쟁으로 울트라-씬이 화두에 올랐을 뿐, 얇은 두께를 향한 워치메이커의 도전은 꽤 오래전에 시작됐습니다. 시곗바늘은 19세기로 돌아갑니다.
-초창기 ‘레핀’ 무브먼트
19세기 유럽 남성들은 로코코 양식이 성행한 18세기 스타일을 온몸으로 거부했습니다. 18세기 남자들이 주름과 레이스가 들어간 풍성한 옷을 입었다면, 19세기 남성들은 자신의 몸에 맞게 잘 재단된 양복이나 코트 등 직선적인 실루엣의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의복의 변화는 곧장 시계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시절 신사들은 두껍고 화려한 시계 대신 주머니에 넣어도 실루엣을 크게 해치지 않는 얇은 회중시계가 필요했습니다. 다행히도 19세기는 장 앙투안 레핀(Jean-Antoine Lépine, 1720-1814)이 18세기에 고안한 평평한 구조의 ‘레핀’ 무브먼트가 완전히 정착한 시기였습니다. 오늘날 무브먼트에도 적용되는 레핀 타입은 분할된 브리지에 부품을 수평으로 배치한 형태를 가리킵니다. 풀-플레이트에 따라 층을 나눠 배럴과 주요 부품을 배치하는 이전과 비교하면 두께가 비약적으로 얇습니다. 체인으로 동력을 전달하던 상당한 두께의 퓨제-체인 시스템 역시 톱니가 맞물리는 간결한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얇은 시계를 만들기 위한 최적의 여건이 조성된 셈입니다. 19세기 워치메이커들은 이를 바탕으로 시계 두께를 계속해서 줄여나갔습니다. 극한의 경지는 한 세기를 지나 20세기 초에 마침내 도달하게 됩니다.
-예거 르쿨트르 칼리버 145(두께 1.38mm)
전쟁의 서막
때는 1903년, 프랑스 출신 워치메이커 에드몽 예거(Edmond Jaeger)와 자크 다비드 르쿨트르(Jacques-David LeCoultre)는 함께 두께 2mm 아래의 무브먼트를 제작하기로 합니다. 미지의 영역에 도전한 지 약 4년, 훗날 ‘예거 르쿨트르’가 되는 듀오는 마침내 두께 1.38mm의 칼리버 145를 완성합니다. 당시 이 무브먼트는 쿠토(Couteau, 나이프)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칼날만큼 얇았기 때문입니다. 칼리버 145는 극한의 두께에도 기대 이상의 안정성을 자랑했다고 합니다. 1960년대까지 현역으로 활약했다는 사실이 그를 증명합니다. 예거 르쿨트르는 지난 2020년 두께 4.25mm의 킹스맨 나이프 워치를 출시하며 위대한 전설을 기린 바 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 칼리버 145를 탑재한 회중시계
2mm의 벽을 처음 허문 칼리버 145는 20세기 초 울트라-씬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몇몇 워치메이커를 자극했습니다. 오데마 피게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1918년과 1919년, 창립자 줄스 오데마(Jules Audemars )와 에드워드 피게(Edward Piguet)가 나란히 세상을 떠났지만, 각자의 아들인 폴 루이스 오데마(Paul Louis Audemars)와 폴 에드워드 피게(Paul Edward Piguet)가 유지를 받들어 관련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둘 다 잘 훈련된 워치메이커이기도 했지만, 연구의 결실은 생각보다 빨리 맺었습니다. 1921년 두께 1.32mm의 칼리버 17SVF#5가 나와 보란듯이 예거 르쿨트르의 기록을 뛰어넘었습니다. 오데마 피게는 그에 그치지 않고 손목시계용 울트라-씬 무브먼트 개발에도 곧장 착수했습니다. 당시 시계 헤게모니가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 점점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데마 피게 칼리버 2003(두께 1.64mm)
-바쉐론 콘스탄틴 칼리버 1003(두께 1.64mm)
이행기를 틈타 손목시계에서 위치를 선점한 워치메이커는 다름아닌 스위스 발레드주 출신의 프레드릭 피게(Frederic Piguet)였습니다. 10년 넘게 공을 들인 두께 1.75mm의 칼리버 99가 1925년 등장하며 제일 먼저 새 시대를 맞았습니다. 훗날 칼리버 21로 불리는 이 ‘명기’는 울트라-씬 무브먼트의 교본으로 불리곤 합니다. 이후 등장한 대다수의 무브먼트가 칼리버 99의 브릿지 분할, 기어 배치를 비롯한 안정적인 설계를 참고했기 때문입니다. 1938년 두께 1.64mm로 이전 기록을 깬 오데마 피게 칼리버 9ML 역시 그와 비슷한 구석 때문에 기록 달성과는 별개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내구성 이슈도 잊을 만하면 불거졌습니다. 칼리버 9ML은 결국 15년 동안 약 772개만 생산되고 곧장 수술대에 오르게 됩니다. 집도의는 오데마 피게뿐만 아니었습니다. 경쟁자였던 바쉐론 콘스탄틴, 예거 르쿨트르까지 합심해 9ML을 손봤습니다. 수술의 쟁점은 역시나 내구성이었습니다. 머리를 맞댄 세 브랜드는 두께 1.64mm를 유지하는 선에서 브릿지 수를 줄이고 구조를 간소화하는 식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1953년, 20세기를 대표하는 울트라-씬 무브먼트 중 하나인 칼리버 2003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오데마 피게는 칼리버 2003을 법적으로 2년 동안 독점했고, 바쉐론 콘스탄틴은 이후(1955년)부터 칼리버 1003이라는 새 이름으로 해당 무브먼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예거 르쿨트르는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만 했을 뿐, 칼리버 803이라 명명한 무브먼트를 대중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아제의 수동 칼리버 9P(두께 2mm).
명가의 대결
1950년대 연합군의 공세는 또 다른 거인을 깨웁니다. 1957년, 스위스 라 코토페의 터줏대감 피아제가 두께 2mm의 칼리버 9P를 통해 숨겨둔 발톱을 드러냅니다. 새로운 울트라-씬 명가의 탄생을 알린 영광스러운 이름은 무브먼트 지름인 9리뉴(20.5mm)에서 비롯했습니다. 당시 9P는 칼리버 2003보다 두껍긴 했지만 큰 밸런스와 널찍한 브릿지를 바탕으로 보다 안정적이고 뛰어난 정확성을 뽐냈다고 합니다. 피아제는 9P의 성공에 힘입어 자동 울트라-씬 무브먼트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러길 약 3년, 그들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마이크로 로터를 도입하며 수동과 큰 차이 없는 두께 2.3mm의 자동 칼리버 12P를 완성했습니다. 마이크로 로터는 무브먼트를 완전히 덮는 풀-로터와 달리 로터가 무브먼트의 수평 공간 한켠을 차지합니다. 즉, 로터가 브릿지와 비슷한 높이에서 회전해 무브먼트 두께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울트라-씬 자동 무브먼트에 크나큰 해법을 제시한 마이크로 로터는 1950년대 유니버설 제네바(Universal Genève)와 뷰렌(Buren)이 먼저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아제는 이를 바탕으로 자동 무브먼트를 울트라-씬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선구자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표작 칼리버 12P는 반세기 넘게 세계에서 가장 얇은 자동 무브먼트로 위용을 떨쳤습니다.
-피아제의 자동 칼리버 12P(두께 2.3mm)
-피아제 칼리버 12P 광고
획기적인 마이크로 로터가 마냥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풀 로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내구성과 낮은 회전력이 약점으로 대두되곤 했습니다. 당시 울트라-씬을 추구하는 워치메이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피아제가 ‘마이크로 로터’파였다면, 예거 르쿨트르는 ‘풀-로터’파였습니다. 다만, 전자에게는 칼리버 12P가 있었지만 후자에게는 1960년대 중반까지 그에 대응할 만한 마땅한 카드가 없었습니다. 반격은 1967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예거 르쿨트르가 그해 공개한 자동 칼리버 920이 선봉에 섰습니다. 두께는 2.45mm로 칼리버 12P보다 살짝 두껍긴 했지만, 풀-로터 타입답게 안정성은 역시나 한 수 위였습니다. 칼리버 920의 우수성은 고객 리스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등 내로라하는 시계제조사들이 해당 무브먼트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가공해 사용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오데마 피게는 그를 바탕으로 울트라-씬 퍼페추얼 캘린더까지 제작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칼리버 920을 베이스로 만든 오데마 피게 칼리버 2120.
기계식 vs 쿼츠
강호들의 울트라-씬 대전도 1969년 일본에서 시작된 쿼츠 파동으로 기세가 한 풀 꺾입니다. 스위스 시계 산업이 완전히 침몰한 가운데 관련 연구를 이어갈 강심장이 있을리 만무했습니다. 위기는 역시나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기회인 법입니다. 1974년 스위스 제네바에 터를 잡은 장 라살(Jean Lassale)이 설립 2년 만에 바젤월드에서 두께 3mm의 놀라운 시계 두 점을 출시했습니다. 각 시계에 탑재한 수동 칼리버 1200과 자동 칼리버 2000의 두께는 고작 1.2mm와 2.08mm였습니다. 장 라살은 밸런스에만 상부 브릿지를 사용하고 배럴을 비롯한 나머지 기어는 하나의 플레이트에 파묻듯이 배치하는 이른바 ‘행잉(Hanging)’ 방식으로 각 무브먼트를 설계했습니다. 즉, 무브먼트 대부분의 부품이 브릿지 없이 한 쪽(메인 플레이트)에만 ‘매달리는’ 방식인 겁니다. 장 앙투안 레핀이 18세기 고안한 ‘행잉 배럴’은 예부터 기계식 무브먼트에 공공연히 쓰여왔지만, 이처럼 무브먼트 대부분의 부품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건 처음이었습니다. 분명 혁신적이었지만,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내구성 문제가 이내 불거졌습니다. 시계 스트랩을 세게 조였을 때 다이얼 글라스가 손상되는가 하면, 수리를 위해 케이스를 분해했을 때는 무브먼트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 불상사까지 발생하곤 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 칼리버 839의 후기형인 849(두께 1.85mm)
장 라살의 반쪽짜리 혁신은 예거 르쿨트르가 이듬해(1975년) 선보인 칼리버 839와 비교되곤 합니다. 수동 방식의 칼리버 839(두께 1.85mm)는 예거 르쿨트르가 연합군 시절에 만든 칼리버 803을 토대로 두께를 0.21mm가량 늘리는 대신 내구성을 크게 개선했습니다. 타협의 결과는 그 쓰임새로 바로 나타났습니다. 예거 르쿨트르는 칼리버 839를 20년 가까이 워크호스로 활용했고, 1994년 개량된 후기형(칼리버 849)은 2020년까지 현역으로 활약했습니다. 노련한 이 베테랑은 지금도 언제든 투입될 준비가 돼있습니다.
-콩코드 딜리리엄
울트라-씬 기계식 무브먼트가 1970년대 또 한 번 최대 약점인 내구성과 싸우는 사이, 신개념 쿼츠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쿼츠로 재빠르게 전환한 스위스 비엘 출신의 콩코드(Concord)가 1979년 기습적으로 두께 1.98mm의 쿼츠 손목시계 딜리리엄(Delirium)을 선보였습니다. 심지어 이듬해 나온 딜리리엄 IV는 비현실적인 두께 0.98mm로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참고로,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 올라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데마 피게 투르비용 Ref. 25643BA(두께 4.8mm)
1970년대 쿼츠의 득세에 잠잠하던 기계식 진영에 다시 파장을 일으킨 히어로는 이번에도 오데마 피게였습니다. 로열 오크의 성공으로 1970년대 위기를 버텨낸 오데마 피게는 1980년대 들어 또 한 번 울트라-씬에 도전했습니다. 타깃도 훨씬 더 까다로운 투르비용으로 바뀌었습니다. 결실은 꽤나 달콤했습니다. 1986년 Ref. 25643BA가 자동 투르비용임에도 두께 4.8mm를 실현하며 명가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단순히 두께만 얇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로터를 궤종 시계의 진자 형태로 변형해 무브먼트 두께를 줄인 방식도 탁월했지만, 무엇보다 케이스백을 무브먼트의 메인 플레이트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 많은 이들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훗날 이 묘안은 울트라-씬의 한계를 뛰어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물론, 그때는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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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시계 대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