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세이코(Grand Seiko)는 지난해 스프링 드라이브 U.F.A. 컬렉션을 새롭게 론칭했습니다. U.F.A.는 Ultra Fine Accuracy의 준말로 극도로 세밀한 정확성을 뜻합니다. U.F.A.라는 명칭이 그냥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도 아닙니다. 때는 1960년대 후반, 시간당 진동수 36,000vph(5Hz)의 하이비트 모델 44GS가 데뷔해 그랜드 세이코의 이름을 널리 알린 바 있습니다. 당시 44GS 컬렉션 중 천문대 크로노미터 경진대회 출품을 목적으로 또 한번 세밀한 조정을 거친 V.F.A.(Very Fine Adjusted.) 라인까지 별도로 나왔고, V.F.A.는 한 달 오차가 ±1분으로 실제로 스위스 뇌샤텔 천문대 크로노미터 경진대회를 씹어먹다시피 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V.F.A.라는 이름은 과거의 영광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U.F.A.가 그 이름에서 연유해 새 시대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 44GS

- 스프링 드라이브 U.F.A. SLGB001(플래티넘 케이스)

- 스프링 드라이브 U.F.A. SLGB003(티타늄 케이스)
스프링 드라이브 U.F.A.는 단순히 과거의 이름에서만 영감을 얻은 게 아닙니다. 극도로 세밀한 정확성이이라는 그 의미처럼 ‘월’ 오차가 ±3초, ‘연’ 오차는 ±20초에 불과합니다. 그랜드 세이코는 이를 위해 기계식을 베이스로 쿼츠의 정확성을 결합한 스프링 드라이브의 차세대 칼리버로 9RB2를 새롭게 개발했고, 지난해 완성된 무브먼트와 함께 U.F.A. 컬렉션이 워치스앤원더스에서 신고식을 치뤘습니다. 당시 컬렉션은 티타늄(SLGB003) 또는 플래티넘(SLGB001) 케이스로 먼저 선보였습니다. 리뷰 모델인 SLGB005는 지난해 하반기 ‘에버 브릴리언트 스틸’ 소재로 새롭게 출시된 리미티드 에디션입니다.



세이코 그룹의 독자적인 에버 브릴리언트 스틸(Ever-Brilliant Steel, EBS)는 이름처럼 밝게 빛나는 스틸 소재입니다. 일반 스틸이 본래 살짝 잿빛을 띠는 반면, 이 소재는 조금 과장해서 화이트 골드나 플래티넘처럼 눈부신 화이트 톤을 띱니다. 내식성 역시 일반 스틸은 물론 904L 스틸보다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에버 브릴리언트 스틸의 효과는 그랜드 세이코가 자랑하는 자랏츠 폴리싱과 만나면서 더욱 극대화됩니다. 자랏츠 폴리싱으로 마감한 베젤 및 미들 케이스의 모서리가 왜곡 없이 흡사 거울 같은 광택을 냅니다. 나머지 면은 또 그와 대비되게 표면의 결을 살리는 새틴 브러시드 가공으로 마감한 덕분에 거울처럼 빛나는 유광 면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케이스 사이즈는 지름 37mm, 두께 11.4mm로 기존 티타늄 및 플래티넘 모델과 동일합니다. 방수 사양은 100m입니다.

- SLGB003

- SLGB005
먼저 나온 티타늄과 플래티넘 모델은 그랜드 세이코의 신슈 워치스 스튜디오와 인접한 키리가미네(Kirigamine, 霧ヶ峰) 고원에서 영감을 받아 서리로 뒤덮인 숲을 특유의 텍스처 다이얼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뒤이어 나온 에버 브릴리언트 스틸의 SLGB005는 그 위에 퍼플 컬러와 함께 그라데이션 효과까지 곁들여 해가 뜨기 시작하는 새벽녘을 은유적으로 나타냈습니다.






보라색이 과한 색감이 아니라 크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라데이션 효과 때문에 빛 반사에 따라 보라색과 검은색을 오가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표면의 패턴도 그에 따라 은은하게 드러납니다. 끝이 뭉툭하게 생긴 두툼한 시침, 끝을 칼처럼 날카롭게 벼린 분침, 입체적인 아플리케 타입 아워 마커는 모서리 하나하나를 깎아서 가공했습니다. 깎아낸 면은 또 일일이 다듬어서 광을 냈습니다. 빛 반사에 따라서 각각의 음영이 시시각각 달라집니다. 실제로 보면, 상당한 공을 들여 하나하나를 제작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면에서 다이얼과 케이스를 통해 그랜드 세이코의 빈틈없는 마감을 감상했다면, 뒷면에서는 브랜드의 진보한 기술력과 마주합니다. 차세대 스프링 드라이브 9RB2가 케이스백을 가득 채우며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원래 스프링 드라이브는 기계식을 베이스로 이스케이프먼트를 트라이 싱크로 레귤레이터(Tri-synchro Regulator)라 일컫는 쿼츠 방식으로 대체한 하이브리드 메커니즘을 가리킵니다. 배터리 없이 동력을 생성할 수 있는 기계식의 장점과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쿼츠의 정확성을 결합한 셈입니다. 정확성의 핵심인 ‘트라이 싱크로 레귤레이터’는 한 쌍의 코일 블록과 쿼츠 진동자, 그리고 IC(직접회로)로 이루어집니다.

스프링 드라이브의 구동은 메인 스프링이 풀리면서 생긴 에너지가 기어 트레인을 거쳐 글라이드 휠(Glide Weel)이라 부르는 로테이팅 휠에 도달하면서 시작됩니다. 동력을 받은 글라이드 휠은 이때 회전과 동시에 무브먼트 내부의 코일을 통해 소량의 전기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미세한 이 전기가 트라이 싱크로 레귤레이터의 IC와 쿼츠 진동자를 깨우게 됩니다. 이후 쿼츠 진동자는 1초에 무려 32,768번 진동하고, IC는 쿼츠 진동자와 글라이드 휠의 회전 속도를 실시간으로 비교합니다. 만약, 글라이드 휠이 조금이라도 빨리 돌면, IC가 코일에 역전류를 흘려 전자기 브레이크로 제동을 걸어 글라이드 휠이 일정하게 회전하도록 속도를 조절합니다. 글라이드 휠은 이렇게 마찰 없이 자력으로만 속도가 제어되기에, 그와 연결된 4번 휠 역시 떨림 없이 부드럽게 회전하게 됩니다. 초침이 아무런 소음과 파동도 없이 물 흐르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스프링 드라이브 특유의 ‘글라이드 모션(Glide Motion)’이 이 메커니즘에서 비롯합니다.
차세대 9RB2는 스프링 드라이브의 핵심인 트라이 싱크로 레귤레이터에서 글라이드 휠의 속도를 제어하는 IC를 새롭게 설계했습니다. 새로운 IC는 저전력으로 열 발생을 자체적으로 보정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함으로써 온도 차이를 최소화해 안정적인 성능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3개월간 에이징 처리한 쿼츠 진동자는 진공으로 밀봉한 덕분에 외부 요인으로부터 성능이 떨어지는 걸 미연에 방지합니다. 결과적으로 9RB2는 이를 통해 월’ 오차 ±3초, ‘연’ 오차 ±20초의 놀라운 정확성을 실현하게 됩니다. 파워리저브는 약 72시간(3일). 동력의 남은 잔량은 무브먼트 브릿지에 표시된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9RB2는 사이즈도 컴팩트합니다. 지름 30mm, 두께 5.02mm로 비교 대상인 기존 9R65(지름 30mm, 두께 5.8mm)보다 얇습니다. 케이스를 두께 11.4mm로 기존 9R65를 탑재한 시계(두께 12~13mm)보다 얇게 설계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케이스 지름을 37mm로 줄일 수 있었던 비결도 두 무브먼트의 설계에서 비롯합니다. 기존 9R65는 혹시 모를 자성에 대비해 무브먼트 주변으로 연철 링을 두르는 반면, 차세대 9RB2는 무브먼트 내부에 항자성 소재를 두르고 있기 때문에 연철 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즉, 연철 링을 사용하지 않는 만큼 케이스를 작게 만들고, 무브먼트를 케이스에 보다 밀착시켜서 시계를 제작할 수 있는 겁니다. 무브먼트가 보기 좋게 뒷면을 꽉 채우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조작감은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편이지만 크라운 포지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스크루 다운 방식의 크라운을 아래쪽으로 돌리면서 풀면 크라운이 톡 튀어나오고, 해당 포지션에서 크라운을 위쪽으로 돌리면 무브먼트에 밥을 줄 수 있습니다. 크게 걸리는 것 없이 쓱쓱하는 소리와 함께 크라운이 부드럽게 잘 돌아갑니다. 크라운을 1단으로 뽑고 아래쪽으로 돌리면 날짜가 바뀝니다. 찰칵찰칵거리는 소리가 다른 무브먼트에 비해서는 작은 편입니다. 회전 디스크가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손끝에 전해지지 않을 정도로 디스크가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크라운 포지션 2단에서는 시간을 세팅할 수 있습니다. 와인딩, 날짜를 바꿀 때의 부드러운 느낌을 생각하면, 시간을 맞추는 조작감은 그와 상반됩니다. 기어가 맞물려서 돌아가는 드르륵드르륵하는 느낌이 손끝에 확실히 전해집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불편하다면 불편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SLGB005에서 옥의 티는 브레이슬릿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케이스와 같은 소재의 에버 브릴리언트 스틸로 만든 3연 링크 타입이지만, 훌륭한 다이얼과 케이스에 비해 특색이 없고 평이해 보입니다. 좋게 말하면 크게 흠잡을 데 없이 무난합니다. 다이얼과 케이스에 좀 더 집중될 수 있도록 브레이슬릿이 한발짝 물러서준 것이라 뇌이징을 해봅니다. 다만, 뇌이징이 도통 먹히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존 티타늄 버전에서 쌍수를 들어 환영했던 미세 조정 시스템이 SLGB005에서는 빠졌습니다. 대신 한정판의 표식 중 하나인 골드 메달리온 장식이 단방향으로 열리는 폴딩 버클을 빛냅니다.


착용감은 훌륭합니다. 아시아권 애호가들이 특히 좋아할만한 지름 37mm 사이즈도 사이즈지만,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한 미들 케이스와 얇은 케이스백으로 인해 시계와 손목 사이에 뜨는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시계가 손목에 착 붙습니다. 두께(11.4mm)가 1mm만 더 얇았으면 완벽할 뻔 했습니다.


SLGB005는 U.F.A.라는 이름에 걸맞게 월’ 오차 ±3초, ‘연’ 오차 ±20초를 실현한 차세대 스프링 드라이브, 자랏츠 폴리싱과 함께 한 치의 오차없이 마감한 케이스, 독창적이고 섬세한 패턴에 서정적인 의미까지 부여한 다이얼에 이르기까지, 다른 브랜드에서는 쉽게 맛 볼 수 없는 별미로 가득합니다. 국내 정가는 1740만 원. 전 세계 1300명만이 그랜드 세이코의 별미 중 별미를 맛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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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GB005, 퍼플 컬러와 다이얼 패턴이 끝내주는군요. 최근 SBGK007구매시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모델이라 더 눈이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