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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1871  공감:2 2012.12.21 14:49

아침에 잠시 달리기를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

높임말이 아닌 것은 조금 더 서정성이 있었으면 하는 글쓴이의 바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 양해 부탁드려요.

눈이 내리네요.. :) 잠시라도 따뜻한 실내에서 추억할만한 기억 하나 꺼내보시는 여유 있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의미를 잠시 잃어버리고 있었다.

꿈은 무뎌져가고 있었고, 나는 어느새 과업을 끝마치는 기계처럼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늘 11시쯤에 일어났었다. 새벽까지 과업을 마치고나면 늘 그 시간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그보다 일찍일어나는 날은 약속이 있는 날 뿐이었다. 의무감이 있어야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생각보다 일찍 눈이 뜨였다.

 나는 머리맡을 더듬어 손목시계를 집어들었다.

 '7시 23분'

"끄응..." 나는 싱숭생숭한 마음과 찌뿌둥한 몸 때문에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잠은 다시 오지 않았고, 나는 방문을 열어보았다. 모두들 자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금요일이기에 서두르는 사람 하나 없었다. 나는 그렇게 30분을 앉아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멍하니.

 30분간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자, 내 몸과 마음은 무언가 텅 비어있는 듯 공허해졌다. 마치 누군가가 간밤에 내 모든 걱정을 비워내준 느낌이었다. 아니, 걱정 뿐만 아니라 내 모든 행복마저도 깨끗이 긁어간 기분이었다. 공허.

 나는 그 공허를 무언가로 채우고 싶었다. 걸려있는 후드와 목도리를 아무렇게나 두르고 밖으로 나섰다.


 소복소복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새벽의 선선한 기운은 눈발에 그 기운이 눌린듯 한기가 채 가시지 않았다. 하아하아. 나는 내 안경 위로 물기가 어리는 것을 확인하며, 서서히 걸음을 내딛었다. 조금 추웠고, 바닥은 살얼음이 얼기 시작했지만, 뛰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조금 뛰어보자.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귀에 이미 충분히 익은 음악들이다. 고전 명곡들이나 재즈곡은 아니지만, 아이돌 노래들 중에서도 서정성을 느낄 수 있는 음악들. 그런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나는 20초도 채 듣지 못하고, 귀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었던 이어폰을 다시 뽑았다. 노래가 성가셨다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속세의 것과 멀어지고 싶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려나..


 저 쪽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것 같았는데, 눈이 내려서 그런가 내가 운동을 안해서 그런가 숨이 많이 차오른다. 선선한 바람에 속도가 붙으니 귓가와 손끝이 둔감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렇게 달렸음에도 이른 아침의 공허감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억누르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계속 뛰어보자. 


 꽤 오래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만큼 밖에 오지 않았네.

 딱히 목표를 정해놓고 달리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저 달리고 싶었을 뿐이었고, 색다른 아침에 느끼는 공허의 정체가 궁금했을 뿐이다. 나는 그저 내 몸이 시키는 대로 밖으로 나왔고, 다시 본능이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본능이 시키는대로 따라가도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나를 속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정신은 이렇게 고고한데,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떨어지는 눈에 시야는 바늘구멍만큼 좁아졌다. 


 나는 이내 지쳤고, '이쯤이면 됐다.'며 몸을 돌렸다.
뭐가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속도를 서서히 줄이기 시작했다. 집에 가야지. 뒤를 돌았다. 눈앞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내가 걸어왔던 발자국과 누군가가 개척했지만 서서히 흐릿해져가는 타인의 흔적들이다. 이윽고 고르지 못했던 숨이 폐포에서부터 수축되며 뿜어져 나왔다. 나는 하늘을 한 번 쳐다보다가 이내 눈이 감겼다. 턱끝까지 차올랐던 한계가 고통이 되어 몸을 움츠렸다.


 나는 숨을 한 번 깊게 짜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평야와 우거진 숲, 갈대, 앙상한 나무들이 보였다. 모두 다 쓸쓸해 보였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의 영광을 모두 추억하는 계절이 왔다는 듯, 이들은 모두 가식을 벗어던진 채, 화려했던 시절을 추억하고 있었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몸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눈이라곤 하지만 비와 같은 탓일까. 나는 하염없이 눈의 무게를 느끼며 이 길을 되돌아가고 있다. 이제 턱 끝에서 쌉쌀한 피 맛 같은 것이 느껴진다. 대체 얼마나 열심히 뛰었길래..

 몸이 무겁다. 눈... 비... 눈... 비.... 사실 눈도 물이니까. 몸이 무거워지는건 당연한가.

 비...
 예전에 한참 어렸을적, 너와 함께 흠뻑 비를 맞으며 하교하던 그 때가 문득 생각났다. 그렇게 비에 젖으면, 빨래때문에 부모님께 혼난다는 것 조차 생각 못하던, 그 어린 날. 우리는 들고 있던 우산을 집어던지고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렇게 집으로 뛰어갔었다. 입가에는 광고에 나오는 음악, 한 소절을 반복해서 부르면서.. 그 뒤에 음악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가사가 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렇게 동네가 떠나가라 그 한 소절만 흥얼거리며 빙글빙글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얼마나 뛰어다니며 목청껏 웃었는지 목에서 알싸한 피 맛 같은게 느껴졌었다. 나는 그때의 내 모습과 네 모습을 기억하다가.. 왠지 머쓱해져서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이내 다른 사람들이 혼잣말하는 나를 봤을까 얼굴이 붉어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다.

 나는 다시 머쓱해져서는, 한 번 크게 "콜록" 기침을 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뽀드득 뽀드득' 이제는 제법 쌓인 눈이 가는 걸음걸음을 지루하지 않게 배웅해주었고,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몸을 털었다. 버튼을 누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길. 15층을 누르고 혼자 오른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친구의 모습이 잠시 아른거렸다.

 그때의 나는 여기 있는데,

 지금 너는 어디에 있니?

 보고싶다. 추억아.



소고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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