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내눈의와치 855  공감:5  비공감:-2 2019.09.04 23:55

F6FD7155-1374-4D37-868C-62694C3D941B.jpeg7D7AA0BB-C222-4CB0-976B-0EA5C7BA7CE3.jpeg 인간이 어른이 되어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단계가 있다.

바로 '상징놀이'의 단계 보통은 소꼽장난이라고 부른다만 아이들은 전화를 거는 시늉을 하고 인형의 밥을 먹이고 장난감으로 저녁상을 차리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유치해 보이는 아이들의 행동이지만 이것은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기초가 된다. 사실 언어란 아무 의미없는 소리들에 약속된 의미를 부여하는 일종의 '놀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징놀이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세계를 머릿속에 그려내는 기능을 한다.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많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그려내고 이를 현실에 만들어 낸다. 이를 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기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결국 인류가 발달해 온 것은 이런 능력들 때문이다.


그럼 상징놀이는 어른이 되면 사라질까? 그렇지는 않다. 노골적인 상징놀이는 줄어들지 몰라도 성인이 된 아이들은 보다 교묘한 형태로 상징놀이를 즐기기 시작한다.


시계를 사랑하는 많은 매니아들은 다이버워치, 파일럿워치, 레이싱워치에 열광한다. 서브마리너와 데이토나 그리고 IWC에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는 이유는 그 시계들에 금붙이가 가득 들어서는 아닐것이다. 사실 우리는 심해 300미터를 다이빙할 일이 전혀 없다. 그런 많은 사람들이 굳이 방수성능을 운운하며 다이빙워치의 품질을 논한다. 물론 비행기를 탈 일은 더더욱 없으며, 레이싱에 참여할 일도 당연히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시계들을 사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까?


어쩌면 툴워치의 소비욕구 자체의 이면에 상징놀이의 본능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브마리너를 차고 출근하며 심해 300미터를 탐험하는 상상을 하고, 플리거 스타일 파일럿 워치를 차고 적진을 폭격하는 파일럿의 비장한 심정을 체험하는지 모른다. 데이토나를 차며 F1머신을 호쾌하게 몰아제끼는 상상은 개인의 자유이다. 이 모든 것은 현실과는 무관하다.


우연히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구하게 된 오리스 플라이트 타이머는 그 모양 자체가 괴이했다.

대체 다이얼에 수직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저 큼직한 단추는 무엇이란 말인가? 현대시계의 디자인 문법을 일거에 거부하는 저 괴이한 혹부리영감에 짐짓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외의 좋은 가격에 충동적으로 이 시계를 구입한 순간부터 나는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시간의 계측수단이 파일럿의 손목시계밖에 없던 그 시기의 조종사가 바로 나라는 상상을 하면서, 추운 비행기 안에서 장갑을 끼고도 버튼을 조작하려면 당연히 크라운이 클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이해시켜가면서 다이얼을 돌려 다른 시간대의 시간을 설정하기 시작한다. 지금 내 손목에는 항상 서울의 시간과 얼마전 다녀온 리스본의 시간이 공존하고 있다. 한 공간속에 존재하는 평행우주...  파일럿 와치는 공존할 수 없는 두개의 시간차원을 나에게 제공하며 나를 리스본의 추억속으로 안내한다. 나는 그 시계 덕분에 여전히 리스본의 거리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가시계속 기능은 솔직히 아무런 실용적 가치가 없다.

그러나 그 시계의 가치는 오히려 그 실용적 가치보다 상상속 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사고 싶어하는 어떤 고가의 물건도 실용적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오히려.. 실용적 가치는 없으대 상상적 가치가 높은 것을 만들 수 있는게 명품브랜드의 조건이고 선진국인지도 모른다. 스위스와 독일이 그런 것처럼.


오늘도 나는 비행을 통해 서울과 리스본을 오가고 있다. 오직 이 오리스 플라이트 타이머 덕분이다.


---------------

본 리뷰는 시계의 기계적 특성에 대한 이해와는 전혀 관련없는 저자의 주관적 만족에 따른 것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감 수
공지 [득템신고] DOXA SUB 300T와의 조우. [17] energy 2023.09.03 1165 12
공지 하와이 와이키키 ft H08 [30] 현승시계 2023.05.22 1344 11
공지 스위스포럼 게시글 이동원칙 안내 [4] 토리노 2015.03.02 1724 0
공지 [스위스포럼 이벤트 공지]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주세요 [5] 토리노 2011.01.31 4323 2
공지 남들과 다른 시계 사진을 찍으려면...^^; [395] Picus_K 2010.12.02 17862 69
공지 [선택과 구매]어떤 시계를 고를것인가? [282] 토리노 2010.01.14 28069 56
Hot 오랜만에 빵뎅이가 들썩거릴만한 신제품 [6] Tic Toc 2024.02.20 4617 2
Hot 나의 50대 첫 시계는... [21] 딸바보아빠 2024.02.09 14829 6
Hot 🎊 스와치 x 블랑팡 Ocean of storms 득템신고! 🎊 [12] 타치코마 2024.01.30 2464 6
Hot [응답하라 2006] 2006.08.31 참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3] Tic Toc 2024.01.27 376 10
17709 [Tudor] 첫인사 드립니다 [7] file Skx007 2019.09.21 466 1
17708 [Glycine] DC-4 퓨리스트 [2] file 모낙호 2019.09.19 588 1
17707 [Tudor] 튜더 펠라고스 LHD [8] file 킴zet 2019.09.17 974 2
17706 [Montblanc] 몽블랑 보헴 기추했습니다. [6] file 김개 2019.09.16 752 1
17705 [Oris] 오리스 복각 모델 크로노리스의 매력 [5] file kotomi 2019.09.16 991 2
17704 [Cartier] 오랜만에 파샤 [3] file Vicier 2019.09.15 583 3
17703 [Longines] 하이드로콘퀘스트 세라믹 청판 [7] file 556 2019.09.14 967 2
17702 [Tissot] 깔끔한 르로끌! [6] file 자유인의삶 2019.09.11 681 0
17701 [Hamilton] 카키 필드 메카니칼 (기추 ^^) [3] file 쩌니 2019.09.09 830 1
17700 [Chronoswiss] 오버홀을 마치고 [6] file Hanli 2019.09.09 627 3
17699 [Cartier] 산토스 가을맞이 줄질~! [7] file 로크스 2019.09.06 1167 1
» [Oris] 시계소비심리학개론(1): 오리스 플라이트 타이머 [8] file 내눈의와치 2019.09.04 855 5
17697 [Tudor] 튜더 gmt 구매했습니다만 무브먼트 문제로 cs에 갔습니다. [22] file 구매는충동구매 2019.09.02 1317 2
17696 [Montblanc] 오일풀업 스트랩 착용샷입니다. [6] file 프레디 2019.08.31 606 1
17695 [Oris] 오랜만에 식파 그린과 함께~ [3] file 시계존심 2019.08.31 766 1
17694 [Chronoswiss] 요즘 크스당이 조용하네요. [10] file 판에나이 2019.08.30 582 1
17693 [Tissot] 질리지 않는 르로끌입니다 [4] file 웨슬리99 2019.08.28 732 1
17692 [Hamilton] 역시 메카니컬 [7] file 블루폭시 2019.08.28 782 1
17691 [ETC(기타브랜드)] 샤넬 j12 와이프 조공 입문 [8] file coloringu 2019.08.27 598 0
17690 [ETC(기타브랜드)] Ebel 1911 [2] file Energico 2019.08.26 363 0
17689 [Zenith] 제니스 엘 프리메로 [26] file 오렌지독수리 2019.08.25 5134 4
17688 [Cartier] 까르띠에 산토스 100 [13] file Preferbaik 2019.08.25 1459 1
17687 [단체샷] 부케러 한정판 모음 - 블루 에디션 [1] file JLCMaster 2019.08.23 653 0
17686 [Tudor] 투더 브론즈에 이어서 gmt를 구매해 보았습니다. [14] file 요짱 2019.08.22 789 1
17685 [Oris] 파일럿차고 부산으로! [4] file 밍구1 2019.08.22 698 0
17684 [Ulysse Nardin] 오랜만에 빈티지 나르당..^^ [7] file 서브마리너 2019.08.22 430 0
17683 [Mido] 미도 멀티포트 패트리모니 [4] file 허히 2019.08.20 1028 3
17682 [Hamilton] 해밀턴 카키필드 머피오토 구입했습니다. [9] file 아이린양 2019.08.19 1257 6
17681 [ETC(기타브랜드)] 자사 자동 크로노그래프의 마지막 단계?-2개의 새로운 범용 자동 크로노그래프 소개 [12] file mdoc 2019.08.18 672 8
17680 [ETC(기타브랜드)] 몬데인 [1] file Miss큄 2019.08.17 324 2
17679 [Fortis] 나의 처음 오토매틱 시계 포티스 B42 [9] file 카리스토 2019.08.16 639 2
17678 [Montblanc] 007나토 샀습니다^~^ [4] file 프레디 2019.08.16 639 1
17677 [Tudor] 비오는 날에는 버건디 다이버 [2] file kotomi 2019.08.15 710 2
17676 [Cartier] 오늘은 탱크 [8] file 밍구1 2019.08.14 755 1
17675 [Oris] 식파 브론즈 콤비와 운동 후~ [3] file 시계존심 2019.08.11 72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