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잡설[1편] Cartier
격조하였습니다. 두리번입니다.
요즘 들어 문득 시계 얘기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키보드에 손을 올려 봅니다.
무슨 얘기를 할까 하다가 제 보유시계 중 갯수가 가장 많은 브랜드인 까르띠에 얘기를 해보려고요. 요즘 까르띠에 인기가 대단하죠, 약간 낯설기도 합니다.
전 사람이 된장끼가 심한지 시계생활 하면서 어려서부터 까르띠에를 좋아했는데 예전엔 이런 어마어마한 인기는 아니었거든요. 지금은 본업인 주얼리 쪽(보석 말고 금제품)도 정말 강세인 것 같습니다. 이제 스톤보다 아이코닉 디자인을 좇는 분위기이니 이쪽의 최강자인 까르띠에가 하입을 크게 받는 것 같아요. 조상을 잘 둔 덕에 아카이브에 명작이 그득..
아무튼 지금의 까르띠에 시계 인기를 보면 애호가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지난 10여년간의 대중화 전략, 그러니까 금시계 프리미엄라인을 없애고 더 상위의 프리베컬렉션과 스틸 중심의 일반라인으로 구성하는 이원화 전략이 대성공인 듯 합니다.
역시 많이 팔고 봐야죠.
이 마케팅 전략이 구체적으로 뭔지 궁금하신 분이 있으실텐데, 그 예시로 산토스 뒤몽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이 제 시계 소개도 할게요.

제 시계입니다. 산토스 탄생 100주년인 2004년에 처음 선을 보인 뒤몽 구형입니다. 라지모델이고, 가로 폭이 용두 제외 34.6이니 사각 시계임을 감안할 때 꽤 존재감이 있는 사이즈입니다.
2010년대까지는 까르띠에가 스틸 시계를 만들지 않는 라인, 즉 프리미엄 라인의 시계들이 꽤 있었어요. 2004년 나온 이 산토스 뒤몽이 그러했고, 또 탱크 중에서는 아메리칸이 있었죠, 탱크루이까르띠에(LC)는 당연하고요. 또 정규라인으로는 그리 길게 나오지 않았지만 토노와 똑뛰, 그리고 여성시계 중에 베누아가 있겠네요. 그 외 자잘한게 조금 있기는 한데 영향력 있는 시계 라인은 이 정도인 것 같아요.
뭘 프리미엄 모델로 했는지 보이는 것 같죠? 제 생각에는 까르띠에 시계 아카이브 짬밥 상위권 시계들인 것 같아요. 많이들 토노와 똑뛰를 간과하고 지나치지만, 1904년 산토스와 1917 탱크 사이의 기간 동안 루이까르띠에 시계 디자인을 안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906년 토노가 나왔고, 1912년에 똑뛰를 창조했으니 그의 능력은 실로 위대합니다. 까르띠에 홈페이지에서는 베누아의 시작을 1958년(개띠)으로 말하지만, 몇몇 사이트에서는 1912년 오벌 시계를 기원으로 말하기도 하니 이 역시 나름의 족보가 깊고요. 그리고 1921년 만들어진 중요모델이 탱크 상트레였고 그 유산을 이어받은 것이 탱크 아메리칸입니다. 1922년의 탱크 LC보다 더 오래된 디자인입니다.
그래서 저는 까르띠에가 본인들 워치메이킹의 시작을 알린 제품들을 프리미엄 라인으로 두고자 했던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런데 이게 계속 유지되지는 않았고 이젠 이 중 탱크LC와 베누아 정도가 프리미엄 라인으로 유지되는데, 여기에는 그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똑뛰도 일반라인으로 있지 않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는데, 여성시계만 그렇고 남성용 수동시계는 한정판입니다. 이 부분은 있다가 더 부연해보겠습니다, 제가 안까먹으면.
아무튼 2004년 이전까지 산토스 뒤몽은 CPCP 등의 프리베 컬렉션에서 보는 특별모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정규 라인으로 뽑아낸 것에 저는 나름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탱크에 LC가 있다면, 산토스에는 뒤몽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리면서 산토스 계열의 기함으로 정했다고 봤어요. 까르띠에 안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 손목시계에서 최초를 논하는 시계라는 점에서 충분히 그럴 만 했고요.

금속을 새틴 피니싱한 다이얼은 생각보다 밝지 않은 그레이 색감입니다. 크라운을 케이스 안쪽으로 넣은 것과 레일웨이 미닛트랙 대신 바 타입으로 넣은 것도 파격입니다.
이 쯤에서 잠시 시계를 살펴볼게요. 산토스 뒤몽 핑크골드 라지모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산토스와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파격적인 디자인인데, 극 초창기 산토스의 오마쥬로 산토스의 상징과도 같은 나사달린 이중베젤을 없앴습니다. 그 모티프는 아래 시계입니다.
극초기 산토스로 알려져 있는 시계이고 이중베젤이 아닙니다. 로마자와 슈망드페흐 인덱스의 조합, 크라운 디자인 등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이중베젤을 버린 결과 산토스의 케이스 쉐입이 극단적으로 강조됩니다. 이건 까르띠에의 특기죠, 케이스의 형태가 곧 시계를 말하는 방식. (산토스가 사람 이름을 따와서 그렇지 대부분의 까르띠에 시계 라인은 케이스 모양을 따라 이름 붙인게 대부분입니다. 롱드, 토노, 똑뛰, 베누아, 그리고 탱크 등등)
거기다 인지하지 못한 분도 계실 거라 생각하는데 다이얼이 좌우로 더 긴 드문 시계입니다. 사실 탱크 프랑세즈나 산토스 같은 시계가 정사각형이라고 머릿속에 딱 떠오르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두 시계 모두 러그가 꽤 강조된 시계라서 그 러그의 상하 확장성 때문에 약간 위아래로 길어보이는 느낌을 받거든요. 같은 맥락에서 이 시계는 좌우로 긴 시계라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스퀘어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레일웨이미닛트랙, 불란서 식으로 말해보면 슈망드페흐(불뽕이 차오른다!!)가 없습니다. 이 슈망드페흐는 위 사진의 초기 산토스부터 내려오는 전통인데 이걸 바 타입으로 바꾸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초기 산토스를 계승하는 시계이고 또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는데, 정작 하나하나 뜯어보다 보면 다 조금씩 비튼 약간 신기한 시계입니다. 구동방식은 수동이고 다들 아시는 피아제 cal.430을 써서 두께가 5.5mm 정도로 초박형 시계라 할 만 합니다.

5.58mm의 얇은 측면이 초박형 수동 무브가 들어갔음을 말해줍니다.
피아제 에보슈를 사용하는 Cal.430MC는 2.05mm의 얇은 두께를 자랑합니다.
이 피아제 Cal.430P를 까르띠에에서 430MC라고 부릅니다. 더블C로고를 징그럽게 나열하는 피니싱을 한 다음 MC(매뉴팩쳐 까르띠에)라니 맘에 안들지만, 아무튼 하이엔드 슬림 무브먼트의 최강자 피아제의 무브인 만큼 프리베컬렉션, 금통 시계들에 사용해 왔습니다.
아, 까르띠에 마케팅 전략 얘기하고 있었죠.
2019년이었나요? 까르띠에는 이 라인을 스틸 시계도 만드는 일반라인으로 내립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사실 이 시그널이 그 전에도 있기는 했아요. 임팩트가 적어서 그렇지, 남성용 똑뛰 같은 것도 프리베로 수납한 바 있고, 2017년에는 탱크 아메리칸을 프리미엄 라인에서 스틸이 나오는 일반 라인으로 내렸죠.
그런데 뒤몽에 이르러서 까르띠에가 많이 파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걸 더 확실히 느꼈어요. 말씀드렸듯 뒤몽은 산토스 패밀리에서 탱크 루이까르띠에를 의미했으니까요. 그런데 많이 파는 다른 방법도 있을텐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를테면 탱크 루이처럼 스틸을 파는거죠. 루이에 스틸이 있냐고요?
앞서 탱크 루이까르띠에와 베누아에 대해서 다시 얘기해본다 했으니 이 대목에서 얘기해볼게요. 저는 탱크 루이의 스틸모델이 없는게 아니라 머스트나 솔로 같은 다른 이름으로 판매된다고 생각합니다. 베젤이 조금 플랫하니, 초침이 있니 없니 이런건 소소한 문제일 뿐입니다. 특히 몇년전 솔로가 머스트로 대체되면서 디자인을 루이와 더 같게 하며 그걸 노골적으로 보여줬죠. 베누아를 스틸로 파는건 까르띠에가 스틸 팔찌를 파는 것과 비슷하기에 그럴 것 같지는 않아예외이고요.
그러니까 제 의견은, 산토스 뒤몽을 프리미엄 라인으로 둔 상태에서 리뉴얼하고, 산토스 솔로든 머스트든 뭐든, 뭔가 다른 이름으로 같은 디자인의 스틸 라인을 전개하면 더 나았을텐데 그러한 가능성을 지운게 저는 놀라웠습니다. 산토스는 최초시계라는 왕관을 쓰고는 있지만 디자인 아카이브가 탱크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더 아쉬웠고요.
부연하자면 탱크 프리미엄 라인을 다 일반 라인으로 끌어내려도 노르말이니, 생트레니, 어비스니 뭐니 하면서 프리베 컬렉션으로 금시계를 팔 수 있습니다. 반면 산토스는 1970년대 들어 까레, 이후 갈베가 나오기까지 별게 없습니다. 까레와 갈베는 스틸로도 많이 팔렸고, 지금은 그냥 산토스라는 이름으로 계승됐으니 프리베컬렉션 금시계로 꺼내 쓰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이런 와중에 뒤몽이란 이름을 일반 라인으로 아예 내려버린 것이 참 의외였네요.

꺄르띠에의 유서깊은 디플로이먼트 버클은 참 아름답습니다. 430은 직경이 20mm로 많이 작아서 큰 시계에서는 모습을 가리는 편입니다.
제 맘에 들건 말건 일단 이 전략은 상업적으로 대성공이었습니다. 물론 탱크 아메리칸이나 산토스 뒤몽 스틸을 정말 많이 팔아 돈을 벌었다기 보다는 탱크 솔로나 머스트로 접근 가능성으로 높여 전반적으로 매출을 올렸다고 보지만, 어찌됐든 이런 대량판매 전략은 크게 성공했습니다.
1970년대 탱크 머스트의 판매를 기점으로 까르띠에가 디자인 메종에서 워치 인더스트리로 탈바꿈 했다면, 2010년대의 까르띠에는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판매량 증대에 성공하면서 이젠 시계업계 2위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구매자에게도 일단은 이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산토스 뒤몽이라는 이름을 스틸 시계에서도 누릴 수 있게 해줬고, 특히나 피아제 430을 스틸 시계에 담아준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스틸케이스에 이 무브먼트를 담은건 한번도 못봤던 것 같은데, 뒤몽 스틸이나 콤비를 수동 사신 분들은 수혜를 받았다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럭셔리 시장에서 대량판매가 영원히 좋은건 아니니 장기적으로의 여파는 우리 모두 천천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시장이 언제까지 받아주는지 궁금하고요.

버클의 닫힌 모습이 깔끔합니다. 스트랩 길이 조절은 불편하나, 전 얇고 예쁘기로는 까르띠에 디버클을 최고로 칩니다.
2004년에 까르띠에가 산토스 100주년을 맞아 산토스에 힘을 주면서 이 시계만 발매한건 아니었고, 뒤몽의 여성형 버전이라 할 만한 산토스 드모아젤과 상남자의 시계 산토스100을 같이 선보였습니다. 둘다 이 시계보다 먼저 단종시켰는데, 드모아젤을 단종시키면서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팬더를 부활시킨 타이밍은 절묘합니다. 반대로 2004년 드모아젤 선 보이면서 팬더를 단종시킨 바 있었는데 말이죠. 참고로 드모아젤은 귀족여성을 의미하지만 실잠자리라는 뜻도 있어요. 산토스 뒤몽이 탔던 비행기가 실잠자리를 닮았고, 그 별명이 시계에도 이어진 것입니다. 뒤몽과 페어를 이루기에 이만한 작명도 없다고 봅니다. 이건 와이프 시계로 가지고 있는데 기회 되면 와이프 시계도 소개해 볼게요.

시크한 느낌의 새틴 피니싱 다이얼. 빛을 받음에 따라 밝게도 어둡게도 변화합니다.
그나저나 이런 얘기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한건 아닌데 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글입니다. 키보드로 쓰기 시작했다가 지금은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쓰고 있네요.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편을 나눠야겠어요. 제 다른 까르띠에 소개도 해야 하니..
예고편처럼 보여드리면 제 까르띠에 시계는 아래의 세개입니다. 사실 하나 더 있긴 한데 판매 예정이라 뺐어요.

동글이 길쭉이 넙죽이
이런 잡글 몇분이나 정독하실지 모르지만, 혹시나 몰라 노파심에 한가지 말씀드리면, 이 글은 온갖 편견으로 가득한 제 머릿 속에서 나온 뇌피셜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혹여 맘에 안드시거나 동의하실 수 없는 내용이 있으면 가볍게 무시하시길 당부드립니다.
그럼 다시 필이 꽂히면 2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씨유~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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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번
2026.06.03 14:22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잡글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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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독했습니다! 저도 2편 기다리겠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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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번
2026.06.03 23:23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좀더 읽기 좋은 글을 써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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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花
2026.06.04 10:18
까르띠에에서 똑뛰와 더불어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모델입니다.
리뉴얼 되면서 사실상 다운그레이드된 것도 아쉽고,, 저도 가지고 있었던 모델인데 매력적인데 별로 인기가 없었던 점도 정말 의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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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번
2026.06.04 15:32
동감입니다. 현행 산토스나 이전 갈베에 비해 스포티함이 덜해서 그런 것 같아요. 클래식 시계는 탱크 쪽으로 많이 가고요. 그래서 접근성을 높이려고 스틸 모델을 확장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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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잡글 재미나게 잘 보고 갑니다~
2편도 기대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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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번
2026.06.05 12:40
감사합니다. 2편도 정말 잡스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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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탱크 아메리칸 라지 화이트골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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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번
2026.06.05 12:41
네, 맞습니다. 동일모델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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