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혀가...길어질수밖에 없다... Others
고니는 말합니다. 혓바닥이 왜이렇게 길어?
다음엔 쫄리면 뒈지시라고 하는걸 보니 쫄리면 혓바닥이 길어지게 된다는 명제가 성립하게 되나봅니다.
이 시계는 독일 연방군(Bundeswehr) 공군에서 사용하던 Heuer 1550 SG 입니다.
Heuer는 1968년 독일 연방군으로부터 이 군용 크로노그래프 파일럿 공급 계약을 따냈고,
1970년대 후반까지 대략 10년동안 1550 SG를 공급했습니다.
그 후에는 Sinn이 이 계약을 이어받아서 1990년대까지 독일 연방군에 공급되었던 1550 SG를 유지, 보수했습니다.
즉, 이 시계는 오래되었고...
군용 시계의 특성상 험블하게 관리되었으며,
유지, 보수업체도 중간에 바뀌었고,
군 특성상 한정된 예산에서 싼마이 유지, 보수가 이루어 졌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시계는 구입 전은 물론 구입 후에도 고민이 이어집니다.
과연 진짜인가? 하는 측면에서 말이죠...
사실 1550 SG는 오마쥬 시계들은 몇몇 있지만 노골적인 소위 말하는 '짭'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시계입니다.
하지만 몇몇 부품이 바꿔치기 당하거나, 다이얼이나 핸즈에 리터치가 가해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죠...
그래서 혓바닥이 길어지기 시작합니다...쫄리는 거죠...ㅎㅎ
첫번째 쫄리는 점은 구매 전의 고민이었습니다.
사실 이 시계의 매력중 상당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특히 제 마음을 살살 녹인 러블리한 부분이 바로 노랗게 잘 익은 트리튬 핸즈와 인덱스의 야광이었죠...
특히 이놈은 아예 다이얼 하단에 자신의 장점을 크고 뻘겋게 써 놨죠...'3H'...삼중수소...트리튬 이라고...
과연 이게 리터치일까 아닐까...왜 인덱스와 핸즈의 야광 워싱의 정도가 다를까...이게 저의 쫄리는 점이었습니다.
논리적으로 추론해 보면...또 트리튬 야광을 가지고 있는 시계들의 사진을 구글링 해 보면 인덱스와 핸즈의 야광 워싱 차이는 충분히 가능하고, 어쩌면 당연합니다.
인덱스는 다이얼에 칠해져서 윗면만 자외선과 공기에 노출이 되고, 핸즈는 위아래로 모두 외부에 노출이 되기때문에 삭는 정도에 차이가 있게 됩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인덱스나 핸즈 야광에 손상이 있어 판매자가 리터치를 했다면 핸즈와 인덱스의 깔을 맞출려고 했을 가능성도 있기때문에 오히려 오리지날 트리튬 야광일 가능성이 클수도 있겠다...라는 희망회로를 돌려볼수도 있습니다.
암튼 이런걸 구매하는건 일종의 가챠입니다. 시계가격 받고 거기에 관세까지 얹게 되는 배팅이죠...도박 중독자 수준의 시계중독자의 배팅 말이죠.
다행히 배팅은 성공했습니다.
일단 시계를 받고 나면 트리튬 야광시계의 야광이 리터치인가 아닌가는 쉽게 판별할 수 있습니다.
UV 라이트를 비춰보면 리터치는 축광이 안돼서 야광이 없고, 트리튬 반감기가 지난 오리지날 트리튬 야광은 잠깐이지만 야광이 되살아 납니다.
물론 이때 야광은 현대 야광의 대세인 슈퍼루미노바보다 약하고 짧게 빛나다 사그라들게 되죠.
https://www.timeforum.co.kr/ewg/20399420
관련 내용은 위에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암튼 가챠 성공!
하지만 행복하게 잘 살았는가? 아~니죠~
이런류의 시계는 언제든 갑자기 깜짝 놀라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날이 올수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자기증명 이슈라고나 할까요...
https://www.fratellowatches.com/tbt-leonidas-heuer-bund-chronographs/#gref
발단은 1550 SG를 만족스럽게 받아보고 얼마 후 보게 된 fratellow의 한 기사때문이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fratellow의 에디터는 1550 SG의 케이스 러그 베젤쪽 'flat spot'을 언급하며 이런 flat area가 없으면 'fake' 일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OMG! OMG~!
제 1550 SG에는 평평한 부분이라곤 존재하지 않거든요~ ㅠㅜ
뒤늦게 케이스쪽을 파고 드니까 더 가관입니다~
대부분의 1550 SG 케이스에는 크로노그래프 푸셔 부분 케이스에 턱?이 존재합니다.
제껀 그것도 없고...
러그 사이에 각인되어 있어야 할 1550 SG 레터링도...
없어요...제껀 없어요...
아아...나는 도대체 얼마를 주고 이쁜 똥을 사고 만 것인가...ㅠㅜ
충격과 공포 속에서 결국 몇날 몇일을 구글링을 하며 심화학습을 한 끝에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Heuer와 독일연방공군의 계약이 끝난 후 Sinn은 이 계약을 이어받아 꽤 오랜 기간동안 Heuer 1550 SG를 유지, 보수하였습니다.
당연히 교체 부품이나 케이스가 필요했고, Sinn이 생산을 했든 다른 업체로부터 납품을 받았든, 새로운 부품이나 케이스가 계속 공급되었고,
Sinn은 그런 부품과 케이스로 Heuer 1550 SG를 유지, 보수했습니다.
때로는 그런 부품과 케이스로 'Sinn' 의 이름으로 1550 SG를 제작, 민간에 판매도 했었죠.
제 Heuer 1550 SG는 바로 이런 Sinn의 'serviced case' 로 수리된 1550 SG 였습니다.
다이얼은 다르지만 제것과 동일한 케이스로 수리된 Heuer 1550 SG 입니다.
더불어 문제의 케이스에 평평한 부분이 없는 중국산 'fake' 도 찾아 냈습니다.
사실 그동안의 고민이 무색한 퀄이 상당히 떨어지는 fake 입니다.
케이스 뒷면에 나사가 없고, 오리지날은 다이얼쪽에서 무브먼트를 들어내는 2 피스 케이스인데 fake는 뒤에서 케이스백을 여는 3 피스 케이스입니다.
이런건 설사 '프랭큰' 이라도 쉽사리 알아낼 수 있죠...
다행히 해피앤딩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론 모양빠지게 혀가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래된 시계, 빈티지 중에서도 특히 군용 시계들은 언제든지 쫄릴 수 있고, 본의아니게 혀가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나마 혀만 길어지면 다행인것이, 아예 fake나 franken을 살 가능성도 높구요.
군용 시계의 특성이 민간에서 사용하는 고오급 시계들과는 다르게 군에서 요구하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유지, 보수가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군과 계약한 유지보수 업체들은 서로 들어만 맞는다면 다양한 루트로 구입하거나 생산한 부품들로 중구난방 격으로 유지보수를 진행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업체와 서로 다른 시대의 부품이 짜맞춰진 오리지날 프랭큰?이 탄생하기도 하고요,
이런 경우 메이저에서 벗어나는 소수의 마이너한 개체들은 짭으로 몰리기 쉽게 됩니다.
그래서 군용 빈티지를 수집하시려는 분들은 언제나 혀를 길게 빼고 돌리실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피같은 내돈 주고 산 시계가 짭이나 프랭큰이 아니라는 것을 열심히 변호하셔야 하니까요...
각 브랜드에 진위 여부를 물어보면 되지 않겠냐구요?
그들도 모릅니다...
브레게가 프랑스 공군에 Type 20만 공급하고 Type 21 계약은 실패한 이유가 프랑스 공군의 예산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군이 소요장비의 예산을 후려치는건 여전했기 때문이고 쥐꼬리만한 돈에 이익을 남겨야 했던 브레게가 Type 20을 어떻게 관리했겠습니까?
브레게가 Type XX를 리뉴얼 했을때 간보러 브레게 매장을 방문했던 적이 있더랬죠...
그때 메니저분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Type XX를 리뉴얼 할때 원본을 철저하게 참조했지만...버클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브레게도 본인들이 사용한 버클이 어떤건지 알수 없었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수천만원짜리 브레게 빈티지 Type XX를 구입했는데, 이게 오리지날인지 프랭큰인지, 다이얼이 리터치 된건지 순정인지 아무도...심지어 브레게조차 보증해 줄 수 없다는걸요...
몇년전 호딩키 시계모임 기사에서 모임 참석자들의 시계를 하나씩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한분이 브레게 빈티지 Type XX를 착용하고 있었고...그분은 그 Type XX를 무려 그 옛날 프랑스 공군 파일럿 원소유주에게서 구매했다고 하더군요...
Type XX처럼 오래되고, 군용이었고, 가격이 높은 시계는 구매 루트가 이정도는 되야 혓바닥이 길어지는걸 막을 수 있습니다...^^
경매에서 10만불을 경신한 블랑팡의 에어커맨드 빈티지를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블랑팡 자체가 망해서 언제 어떤 부품으로 몇개를 생산해서 어디에 팔았는지...시리얼 넘버는 어떻게 되는지 전혀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몇개 안되는 개체중 상당수는 블랑팡이 문을 닫은 후 팩토리에 남아있던 부품들이 부품체로 팔린 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조립되어 팔린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브레게의 Type XX나 블랑팡의 에어커맨드 빈티지를 노릴 정도로 중증의 불치병을 앓고 계실 분들은 아마 없겠지만...(없을거예요? 그쵸?)
그리고 다행히도 그동안 군용 빈티지 시계들은 그나마 기계식 시계들 중 비교적 싼?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혓바닥을 길게 놀리는것만으로 감당 못할 참담한 상황이 발생했을때,
심리적 타격은 차제하고 괴멸적인 경제적 타격만은 막을 수 있었겠지만...
시계 가격은 점점 오르고, 간땡이는 점점 커져가고...
병이 점점 깊어지면서 언젠가 닿을수 없었던 드림워치를 눈이 멀어 성급히 결제했을때,
어쩌면 여러분은 심리적, 경제적 타격으로 이 취미생활을 조기 은퇴하게 될 수 있습니다.
도박판에서 손목 멀쩡하게 손을 땔수 있었던 고니의 말은 진리입니다.
뭐라구요?
쫄리면 뒈지는게 낫습니다...
여러분이 노리는 빈티지 군용시계에 조금이라도 뭔가 쫄리는게 있다면...구매를 포기하시는게 정답입니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듯이,
시계생활에 득템의 즐거움만 있진 않을겁니다.
그동안 너무 뽐뿌글만 써온걸 반성하며 여러분의 폭주를 경계하는 글을 한번 써 봤습니다.
모두 현명한 시계생활 하세요~
PS ; 이 글은 네이버 까페 '역시모' 가입 기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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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꽂히지 않은 이상 각 브랜드의 복각을 기다려 보는게 현명한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Claudio 님처럼 3브랄은 아니어도 806이나 AVI 둘중에 하나는 잡았어야 했는데...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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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살짝 뽐뿌샷 남기고 갑니다~ㅋ
(뽐뿌라는 말을 요즘은 안 쓰는듯 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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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흥미롭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깊게 가기는 힘들겠지만 이미 대리만족이 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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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뽐뿌로 남들에게 경제적 손실을 끼치는걸 인생의 낙으로 살아온 사악한 제가 이번엔 좋은일 한번 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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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mdoc님께서 '호이어'로 긴장의 끈을 잡고 계셨던 상황이 느껴지는군요.
빈티지의 세계란 참..
웬만한 히스토리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접근하기 무서운 곳인듯 합니다.(가격도 물론 무섭구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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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전에 뭔가 공부하고 사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습니다. 제대로 공부 안하면...바로 멘탈 바사삭~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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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역사
2025.03.04 10:47
크..이맛에 빈티지 하는게 아니겠습니까..무한한 파고들기가 가능한 세계..그러다가 아 내가 좀 아는구나..하다가 내상 한 번 쎄게 먹고 학사경고도 당하고 뭐 그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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옙. 제대로 공부 안하면 바로 F 때려맞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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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 봤습니다. 가챠라는 말에 동의 합니다.ㅎㅎ
저도 빈티지, 클래식 좋아해서 클래식컬을 쓰게 됐는데 이런 것 또한 그것들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희로애락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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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하면 현행을 좋아하는데...그 왠만함을 채울수 없는 뭔가가 빈티지에 있을때는...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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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파네라이도 이런 이슈들이 있습니다. 롤렉스나 안젤루스 무브먼트 그리고 다이얼 핸즈들이 서비스 과정에서 일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무조건 프랑켄이라고 주장하는데 군납으로 납품된 시계의 경우 오리지널리티에 상관없이 기능유지를 위해 서비스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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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네라이, 브레게, 블랑팡, 오메가...암튼 군용시계에 발담갔던 브랜드들 모두 동일한 상황이 가능하죠. 시계판에 오래 있으면 결국 밀리터리, 빈티지로 흥미가 가게 되는데 조심해야 하는 부분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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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쫄보가 들어가긴 무서운 세계군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전 쫄리면 뒈지는 쪽으로 방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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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십니다. 저도 나름 쫄본데...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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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재밌게 읽었습니다. 공감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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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는 역시 어렵죠~ 그나저나 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트리튬 야광의 경우 10몇 년 지나면 야광이 아예 죽어버리는 케이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ㅎㅎㅎ
흐흐흐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기승전결이 있어서 재미나게 봤습니다ㅎ
전 구글링이 약해서라도 특히나 군용 빈티지쪽은 쳐다보지도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