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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애호가 및 수집가들 사이에서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명에 그치지 않고 일생에 거쳐 올려다 볼 준령과도 같습니다. 


파텍 필립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매뉴팩처를 방문한다는 것은 고로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며, 두고두고 회자할 만한 추억이 될 수 있습니다. 



각설하고 지난 5월 말 저와 manual7 님은 파텍 필립 스위스 본사 및 매뉴팩처를 다녀왔습니다. 


- 제네바 파텍 필립 뮤지엄 방문 후기: https://www.timeforum.co.kr/TimeForumExclusivBaselSIHH/12889895

- 런던 <파텍 필립 시계 예술 대전> 전시 후기: https://www.timeforum.co.kr/TimeForumExclusivBaselSIHH/12813931 



한국 매체 중 유일하게 타임포럼은 두 명의 필진이 파텍 필립으로부터 공식 초청을 받았으며, 

국내 기자단이 파텍 필립의 매뉴팩처 투어를 하게 된 것도 이번이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브랜드 VIP나 세일즈 관계자 일부 외엔 어지간해서 시설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 파텍 필립이기에 

우여곡절 끝에 저도 매뉴팩처 투어 일정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실감이 잘 나질 않았습니다. 

제네바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고 나니 그제서야 '아... 내가 정말 파텍 필립을 가는 구나'라고 되새길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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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 첫 날 저녁 숙소 창가에서 바라본 제네바 야경. 



한국 기자단의 파텍 필립 매뉴팩처 투어 일정은 5월 26일, 27일 양 이틀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날은 상티미에와 라쇼드퐁에 위치한 파텍 필립의 하부 매뉴팩처 시설들을 둘러 봤으며, 

둘째 날에는 제네바 외곽 플랑레와트에 위치한 파텍 필립 본사 및 주 매뉴팩처를 방문했습니다. 


매뉴팩처 방문 후기 역시 이같은 타임라인 순으로 두 번에 걸쳐 나눠서 게재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스위스 상티미에에 위치한 파텍 필립의 다이얼 제조사인 카드랑 플뤼키거(Cadrans Fluckiger)와 

라쇼드퐁에 SHG, 칼라메(Calame), 폴리-아트(Poli-Art)가 함께 몰려 있는 대규모 매뉴팩처 시설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이하 시설들은 모두 내부 촬영이 원칙적으로 전면 금지돼 있으나, 

투어에 동행한 파텍 필립 국내 수입사 우림FMG 담당자의 거듭된 설득과 노련한 회유(?!)로 사진 촬영을 일부 허가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우림FMG 관계자분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덕분에 국내에선 보기 힘든 파텍 필립의 심부를 보다 생생하게 담아 타임포럼 회원님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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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텍 필립의 다이얼 제조사인 카드랑 플뤼키거(Cadrans Fluckiger)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투어 버스에 올랐습니다. 

제네바 시내서 약 2시간 가량을 달려 상티미에(Saint-Imier)로 향했는데요. 상티미에는 아시다시피 론진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차창밖 풍경은 끊임없이 펼쳐진 풍경화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가는 중간에 로잔, 뇌샤텔, 르로끌 등의 도시를 관통하는데, 인근 칸톤 지방이 스위스선 드물게 와인으로도 유명한 곳이라서 드넓은 와이너리가 펼쳐지기도 하고, 

스위스의 가장 큰 호수인 뇌샤텔 호와 그 반대편 멀리는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주라(Jura) 산맥 자락이 보이는 등 눈요깃거리가 쏠쏠합니다. 


주로 평야 지대를 달리다가 상티미에 초입에 들어서면 약간 길이 험난해 지는데요. 야트막한 산을 올라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나타나는 마을은 고즈넉하면서 예스러운 느낌으로 가득합니다. 이곳을 조금만 지나치면 바로 카드랑 플뤼키거 건물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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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파텍 필립의 주요 서플라이어 중 하나가 왜 이렇게 본사서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위스 워치메이킹 전통을 돌이켜 본다면 이는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전통의 스위스 시계 제조사들은 예부터 타 제조사와의 분업/협업 형태를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통합형 매뉴팩처는 사실 현대적인 개념이고 이를 고수하는 업체도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파텍 필립의 역사적으로도 보면, 샤를과 장 스턴 형제가 1932년 파텍 필립을 인수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파텍 필립의 다이얼 공급사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협업사 관계에서 사세가 커지면 거래사를 인수 합병하는 식으로 

스위스 시계 업계는 발전해 왔고, 파텍 필립 역시 협업사와의 공고한 파트너십 속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스위스 시계 업계 역시 독불장군이란 없습니다. 

인재는 돈 보다는 관계에 의해서 움직이고 신뢰할 만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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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랑 플뤼키거는 무려 1860년에 설립된 하이엔드 다이얼 및 인덱스 제조 공방입니다. 

파텍 필립과는 오랜 세월 파트너십을 유지해 오다가 2004년에 완전히 파텍 필립 소유가 되었지요. 


현재 11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연간 10만 개 정도의 다이얼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다이얼 종류만도 150개 정도에 달하며, 하나의 다이얼이 완벽하게 완성되기까지 평균 4~5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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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부로 들어오자마자 작은 프레젠테이션 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회사에 관한 간단한 연혁과 생산되는 주요 다이얼 및 세부 공정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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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표면 처리 방식으로 완성된 베이스 다이얼 샘플들. 



흥미롭게도 카드랑 플뤼키거는 파텍 필립 소유이면서도 파텍 필립의 다이얼만 제조하진 않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스위스 제조사들은 타 업체와도 수익과 이해 관계만 맞으면 협업을 즐기는데, 

카드랑 플뤼키거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몇몇 브랜드들과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파텍 필립 외에 오데마 피게, 쇼파드, IWC 등이 고객사 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하네요. 


참고로 카드랑 플뤼키거의 한해 다이얼 생산량이 10만 개인데, 파텍 필립의 연간 시계 생산량이 5만여 개인 것을 감안하면 나머지는 외주 공급용일 확률이 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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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텍 필립의 마더오브펄 다이얼(주: Cadran Nacre는 마더오브펄 다이얼이란 뜻임)이 어떤 식으로 제작되는지를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 자료입니다. 


보통 대다수 브랜드들이 다이얼 베이스 소재로 브라스(Brass, 황동)를 사용하는데 반해,  

파텍 필립은 컴플리케이션 컬렉션 이상의 다이얼은 골드(Gold) 소재의 베이스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인덱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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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오브펄도 그 컬러나 결에 따라 종류가 다양합니다. 

해수 조개냐 담수 조개냐 양식이나 천연이냐에 따라서도 값어치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파텍 필립용 다이얼은 가장 고가의 선별된 마더오브펄만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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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텍 필립 다이얼 제작 과정을 스텝별로 보여주는 또다른 샘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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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인덱스 제조 공정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보통 메탈틀에 골드를 주입해 인덱스를 제작하는데, 카드랑 플뤼키거는 몇년 전부터 기존의 CNC 머신 대신에 

새로운 고주파 정밀 레이저 머신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물론 생산량 전체를 이 레이저 머신으로 소화하진 않지만, 

적어도 파텍 필립 용으로는 레이저 머신만을 사용한다고 하네요. 어찌됐든 레이저 컷 인덱스를 사용하는 회사는 시계 업계에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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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CNC 머신과 파텍 필립 인덱스만을 위한 레이저 머신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같은 아라빅 인덱스라고 하더라도 레이저 커팅된 인덱스가 훨씬 더 마감이 깔끔하고 제조 하자가 적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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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본격적인 시설 투어에 나섭니다. 


투어에 앞서 하얀 의사 가운 같은 것을 입고 이동합니다. 매뉴팩처 시설에 가면 으레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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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향한 곳은 건물 3층에 위치한 메티에 다르(Metiers D'art) 워크샵입니다. 


18세기 장인들도 사용했을 법한 오래된 엔진턴 기계들이 입구에 늘어서 있고 실제로 기요셰 다이얼을 이곳에서 제작합니다. 


기요셰 다이얼은 패턴은 기계가 만들지만 이를 리드하는 건 오롯이 사람의 몫입니다. 

고로 개인의 역량과 숙련도가 결정적으로 중요한데요. 카드랑 플뤼키거의 경우 2명의 마스터와 4명의 견습생이 기요셰 다이얼 제작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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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방문했을 때 마침 마스터인 페르난도 드 아브로씨 씨가 기요셰 패턴 제작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전에는 루페를 끼고 손의 감을 이용해 주로 기요셰 패턴을 음각했다면, 이제는 고해상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더욱 정밀하게 작업합니다. 


페르난도 씨는 카드랑 플뤼키거에 무려 45년간 근무한 베테랑이라고 하네요. 그는 고급 다이얼 제작 과정 전반에 숙련된 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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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동한 방은 그랑 푸(Grand Feu) 에나멜 다이얼을 만드는 워크샵입니다. 


입구 한 테이블 위에 다양한 컬러의 에나멜 파우더와 작업 진행 순서를 엿볼 수 있는 다이얼 샘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스위스 시계 업계 내에서도 자체적인 에나멜 다이얼 공방과 전문 에나멜러를 둔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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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토 베이스의 규소 화합물을 물과 함께 녹여서 에나멜 도료를 만드는데요. 

이 도료를 붓으로 일일이 하나씩 다이얼 위에 덧바른 다음에 800도씨 고온의 가마에 구워내는 식으로 그랑 푸 에나멜 다이얼을 완성합니다. 


섬세하고 보기보다 꽤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인지라 주로 여성 에나멜러가 작업하며, 한 사람이 하루에 4개 정도만 제작합니다. 


또한 다이얼 베이스가 동(브라스)이냐 금이냐에 따라서도 에나멜을 도포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하네요. 

골드 소재가 상대적으로 연약해서 굽는 과정에서 뒤틀릴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두껍게 도포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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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푸 에나멜 다이얼을 소성하는 오븐은 생각보다 무척 아담했습니다. 

에나멜 다이얼은 파텍 필립의 일부 모델에만 한정되기 때문이거니와 

소량씩 그때 그때 구워내는 방식이 작업에도 효율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희가 방문했을 때는 기본적인 화이트 에나멜 다이얼 제작 시연만 공개하고, 

보다 정교하고 화려한 에나멜 다이얼 제작 과정은 아쉽게도 볼 수 없었습니다. 


샹르베나 미니어처 페인팅 방식의 에나멜링 작업은 작업 자체가 훨씬 더 까다롭고 높은 집중도가 요구되는지라 공개하기가 어려웠을 줄 압니다. 


파텍 필립은 전문 에나멜러를 단순히 기술직으로 생각하지 않고 아티스트로 대우한다고 합니다. 

최근 메티에 다르 모델의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걸 감안할 때 회사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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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동한 방은 첨단 기계들이 즐비한 인덱스 제조 워크샵입니다. 


앞서 프레젠테이션 시간 때 들었던 레이저 머신을 볼 수 있었는데요. 모든 과정이 완벽하게 컴퓨터로 제어되고 자동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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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 모양의 틀에 골드를 주입해 고압의 프레스로 눌러 형태를 만든 다음에 기존의 CNC 머신 대신 정밀한 레이저 머신으로 커팅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커팅된 인덱스를 다시 레이저 머신으로 각 면마다 하이 폴리싱 처리를 거칩니다. 


인덱스는 안쪽에 두 개의 작은 핀(리벳)이 있어서 다이얼에 미리 뚫린 구멍에 고정 후 이 핀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제거하는 방식으로 다이얼을 완성합니다. 

중저가 시계들은 제조단가를 낮추기 위해 인덱스를 단순히 접착제로 부착하는 방식을 택하지만, 파텍 필립처럼 하이엔드 제조사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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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인덱스 외에 아라빅, 로만 인덱스도 별도의 틀에 의해 제작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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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이얼 제조 워크샵으로 이동합니다. 


다이얼 에보슈 CNC 공방으로도 불리는데요. 다이얼의 날짜창이나 문페이즈창처럼 외부로 드러나는 디스플레이 윈도우는 물론 

무브먼트와 맞닿는 하부 부분의 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정밀하게 CNC 머신으로 제작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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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다이얼 베이스 플레이트에 작은 구멍(인덱스 고정용) 하나부터 각종 캘린더 휠이 피트될 자리와 디스플레이 윈도우 등을 

설계 도면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대조해 가며 한치의 오차 없이 제작합니다. 정확한 계측은 이러한 공정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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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완성되는 각종 다이얼 샘플도 한 편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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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과정 자체를 본 건 아니지만, 한쪽 방에서는 특수한 기계가 갈바나이징, 즉 전기 도금 형태로 다이얼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 또한 일종의 컬러링 작업인데, 플레이트 표면을 전기 분해하는 과정에서 골드, 실버, 로듐, 루테늄, 니켈 등의 합금을 섞어서 머리카락 두께로 얇게 입힙니다. 


은은한 실버톤부터 노틸러스에 사용되는 특유의 다크 블루 컬러 다이얼까지 고급스러운 다이얼을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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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향한 방은 다이얼 표면에 매트, 샌드 블라스트, 벨벳, 선버스트, 새틴 피니시 등 몇 가지 주요 피니시 작업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전체 에나멜 다이얼이나 기요셰 다이얼, 혹은 이미 매끈하게 갈바닉 코팅 처리된 다이얼은 이 방까지 올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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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솔레이, 즉 선레이(선버스트) 피니시를 위한 기계입니다. 

저 틀 위에 다이얼을 고정시키고, 수세미 솔 같은 거친 철심(?)이 박힌 원판을 빠르게 회전시켜 특유의 방사형 패턴을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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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버티컬 새틴 피니시를 위한 작업입니다. 


종이가 돌처럼 굳어진 틀 위에 처리하고자 하는 다이얼을 올려놓고 모래 느낌(정확히 어떠한 혼합물인지는 모름)의 가루를 흩뿌린 다음에 

솔 같은 도구로 꾹 눌러 한번에 위에서 아래로 쓸어 내리듯이 하면 새틴 피니시가 완성됩니다.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이 또한 상당한 숙련도가 요구되는 작업으로 도구를 이용해 누르듯이 끌어내릴 때 특히나 요령이 필요합니다. 

너무 세게 눌러도 다이얼 표면에 불필요한 생채기를 입힐 수 있고, 너무 살짝 누르거나 여러번 끊어서 눌렀다 떼어도 제대로된 피니시가 되지 않습니다. 


피니시의 결과물은 사진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다이얼을 들어 자세히 보면 은은하게 세로로 줄이 생긴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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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정 과정을 보진 못했습니다만 다이얼 프린트만을 하는 방도 따로 마련돼 있었습니다. 

먼지가 없는 깨끗한 진공의 방에서 실시되기 때문에 담당자 외엔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네요. 


특수 제작된 실크 스크린용 잉크를 실리콘 소재의 콘형 프레스 끝에 묻혀서(기계에 고정 시킨 다음) 사람의 손으로 눌러서 프린트 다이얼을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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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랑 플뤼키거에서 마지막으로 향한 방은 건물 1층에 위치한 다이얼에 아플리케 인덱스를 고정시키는 곳이었습니다.


갔을 때 마침 한 여 직원분이 올해 파텍 필립 신제품인 칼라트라바 파일럿 트래블 타임(Calatrava Pilot Travel Time, Ref. 5524G)의 다이얼에 

아라빅 인덱스를 세팅하고 있더군요. 따끈따끈한 신제품 다이얼이 완성돼 가는 모습이 어쩐지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것으로 파텍 필립의 다이얼 제조사인 카드랑 플뤼키거에서의 투어 일정은 끝났습니다. 


국내 기자단은 다시 투어 버스에 올라 라쇼드퐁으로 이동, 

라쇼드퐁 시계 박물관 근처 한 작은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라쇼드퐁 외곽의 전원에 위치한 파텍 필립의 또다른 매뉴팩처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목에 태그호이어의 매뉴팩처를 비롯해, 라 쥬 페레와 아놀드 앤 썬의 건물도 볼 수 있었고,

파텍 필립 매뉴팩처 바로 앞에는 자케 드로의 매뉴팩처 또한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까르띠에의 매뉴팩처도 있지요. 


라쇼드퐁에 오니 고급 시계의 본고장에 왔음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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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드퐁 외곽 르 크레-뒤-로클(Le Crêt-du-Locle) 지방에 도착하니 날씨가 갑자기 좀 쌀쌀해졌습니다. 

한 차례 소나기가 내리더니 안개까지 자욱해져서 뜬금없게도 저는 김승옥의 단편 소설 '무진기행'을 떠올리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마침내 도착한 파텍 필립의 라쇼드퐁 매뉴팩처는 한눈에도 앞서 본 카드랑 플뤼키거에 비해 시설 규모가 상당히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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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3개의 부품 제조사가 한데 통합돼 있는데요. 


2001년에 파텍 필립이 인수한 고급 케이스 제조업체인 칼라메(Calame)와 

2003년에 파텍 필립에 합류한 그 이름 그대로 폴리싱 전문 제조업체인 폴리-아트(Poli-art),

2004년에 설립한 젬세팅 전문 업체 SHG(Sertissage Haut de Gamme)가 바로 그것입니다. 


파텍 필립은 2007년 르 크레-뒤-로클 지역에 18,000 제곱미터의 부지를 매입하고 

2008년 말에 SHG, 칼라메, 폴리-아트 세 업체를 통합시킨 매뉴팩처 건물을 완공했습니다. 


이들 업체들은 과거에도 파텍 필립의 협력사였으나 2007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파텍 필립 소유가 되었으며, 

앞서 보신 카드랑 플뤼키거와 달리 타 메이커에는 부품을 공급하지 않고 오직 파텍 필립의 부품만을 독점 제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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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향한 곳은 SHG, 즉 파텍 필립의 하이 주얼리 시계의 다이얼과 케이스, 브레이슬릿에 각종 젬 세팅을 하는 워크샵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등 고급 보석을 다루고 세팅하는 공간이다 보니 입구서부터 철통 보안이 돼 있습니다. 

젬 세팅이 완료된 제품은 따로 트레이에 담아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려 보낼 정도로 작업의 선후 관리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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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총 6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2명의 견습생도 있습니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헤드폰을 낀 채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도 곧잘 목격하게 됩니다. 


모든 젬 세팅 과정은 기본적으로 보석 감정 및 세공 자격증을 취득하고 수년 간 파텍 필립 산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전문 인력에 의해서만 다뤄집니다. 


다이얼 세팅은 크기나 세팅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길게는 3일까지 소요되며, 케이스 전체 스노우 세팅의 경우 1주일에서 길게는 2주일 가까이 걸린다고 합니다.

 

다이아몬드 세팅의 경우 균일한 크기일 경우에는 소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절약되지만 크기가 제각각인 랜덤 세팅의 경우 더 오랜 기간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일부 다이아몬드는 케이스 형태(곡선에 따른 위치)를 고려해 제네바 본사서 추가로 컨펌을 받고 커팅을 새로 하는 등의 작업 공정의 까다로움이 요구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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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텍 필립에서 23년간 근무한 주얼리 장인인 보이사르 로맹 씨가 젬 세팅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최근 작업한 여성용 곤돌로(Ref. 7099R) 케이스와 다이얼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인비저블 세팅, 혹은 스노우 세팅으로 불리는 매끈하고 물림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고난위도 세팅 기법을 적용한 하이 주얼리 피스의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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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정교하고 아름답지요?! 하지만 이걸로 작업이 끝난 건 아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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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 세터가 하는 일이란 크로키 화가의 작업과도 비슷합니다. 


밋밋한 케이스에 밑그림을 그리듯 재빨리 선을 넣고(보석이 세팅될 길을 만들고), 끌과 드릴을 이용해 보석이 고정될 자리를 다듬고,  

남은 여백의 공간을 모따기해 보석을 옆에서 잡아주는 프롱을 만들어 고정시키는 것에 이르기까지 머뭇거림 없이 유연하면서 정확하게 작업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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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 세팅은 귀금속을 다루는 분야인데다 눈 깜짝할 사이의 실수로 인해 제품 폐기와 금전적 손실의 리스크 또한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프로페셔널한 자질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세팅이 까다로운 케이스나 다이얼은 십수년 경력의 마스터급 테크니션이 작업하며, 작업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본사 측과 공유하기도 합니다. 


한편, 모 브랜드는 젬 세팅 과정에서 소모되는 골드 조각들까지도 쓸어담아 혹은 이를 작업한 바탕 헝겁까지 연소시켜 골드 잔여물을 남김없이 활용한다고 하는데, 

파텍 필립은 쿨하게 골드 잔여 조각 정도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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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씨가 작업한 또 다른 하이 주얼리 피스 여성용 칼라트라바(Ref. 4895R)의 케이스입니다.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심하게 세팅했습니다. 그런데 이 케이스 역시 완성품이 아닙니다. 

러그 쪽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 하나가 크기 문제 때문에 본사에 재커팅을 요청해논 상태라고 하네요. 


SHG서 보통 하루 평균 완성하는 젬 세팅 케이스 및 다이얼은 적게는 40여 개에서 많게는 90개 정도에 달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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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건물 지하 2층에 있는 케이스 가공 매뉴팩처 칼라메(Calame)로 이동하겠습니다. 


2001년 파텍 필립 소유가 된 칼라메는 인수 당시에는 직원수가 60여명 정도였으나 현재는 200명 정도로 크게 증가했으며, 

케이스 기본 가공부터 일부 피니싱 및 어셈블리(멀티 피스 케이스 경우), 방수 테스트에 이르기까지 케이스 제조와 관련된 전반적인 공정들을 관장합니다. 


케이스 매뉴팩처 시설이다 보니 아무래도 타 워크샵에 비해 기계 소음이 끊이질 않으며, 각 섹터마다 고가의 기계들도 즐비합니다. 

이쪽은 시설 대부분이 대외비로 촬영이 엄격히 금지된 터라 기계나 공정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대략적인 소개만 해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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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시다시피 노틸러스와 아쿠아넛 케이스 가공 시설입니다. 

아직까지는 러프하게 틀만 잡힌 케이스를 다시 다듬고 세척하는 작업들이 이어지는데요. 


최종 피니싱 전 단계의 케이스만 가공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시설 전체가 거의 자동화 시스템으로 기계가 알아서 척척 만듭니다. 엔지니어는 기계 감독 정도만 하고요. 


케이스 전면에 사파이어 크리스탈 글라스를 세팅하는 작업이나 테프론으로 불리는 딱딱한 소재의 가스켓을 피팅하는 작업은 물론 사람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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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버명까지 표기된 틀로는 골드 로터를 제작할 수도 있습니다(풀 로터 외에 마이크로 로터도 이곳에서 제작). 


로터 표면의 코트 드 제네바 패턴이나 로터 안쪽 보이지 않는 곳까지 콜리마송 즉 원형의 패턴을 새기는 작업은 절대적으로 사람의 손을 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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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외부 피니시는 차후 폴리싱 전문인 폴리-아트 부서로 옮겨져 진행되지만, 

케이스 내부의 섬세한 부분들은 칼라메 한쪽에 마련된 별도의 폴리싱 부서에서 처리됩니다. 


이 과정에서 테크니션은 케이스의 전반적인 가공 상태를 다시 한번 재차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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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다른 섹터 한쪽에는 힌지 디테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사보네트 회중 시계 케이스 내지 헌터형 케이스를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수요는 적지만 파텍 필립의 일부 익셉셔널 피스 중에는 이같은 고풍스러운 케이스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제작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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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에서는 방수 테스트를 위한 기기들이 마련돼 있습니다. 


가열한 케이스의 글라스 위에 스포이드로 물방울을 떨구었을 때 글라스 내부에 습기가 차면 방수 성능에 문제가 있는 건데요. 

방수 사양이 비교적 높은 노틸러스나 아쿠아넛 컬렉션을 위해서는 실제 수압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장비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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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메 시설을 벗어나 이젠 폴리싱 전문 부서인 폴리-아트(Poli-Art)로 이동합니다. 


위 사진 속의 그것은 어브레시브 페이퍼(Abrasive Paper)로, 질감상 사포를 연상시키는 연마제로 코팅된 페이퍼입니다. 

각 페이퍼 컬러별로 마찰의 세기나 연마시 케이스 결에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데요. 


제가 이 사진을 먼저 보여드린 이유는 이 어브레시브 페이퍼가 폴리싱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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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아트 시설 내부는 타 워크샵에 비해 현저히 조명이 어두운데요. 이 또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공적인 빛(각 스탠드별로 마련된 형광등 빛) 아래서 봤을 때 폴리싱 상태가 훨씬 더 잘 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케이스 본체는 물론 케이스백, 브레이슬릿 등 광범위한 폴리싱이 이뤄집니다. 

펠트로 불리는 일종의 받침대에 앞서 보여드린 어브레시브 페이퍼를 면적에 맞게 부착한 뒤 밀링 머신을 돌려가며 폴리싱 작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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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대로 펠트에 부품(주로 케이스백처럼 납작한 부품)을 부착하고 머신을 돌린 다음 

다른 종류의 페이퍼를 활용해 서큘러 새틴 브러시드 피니시 효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작업은 역시나 테크니션의 힘의 강약과 기술 노하우가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한편, 스틸 소재와 골드 소재 케이스의 폴리싱 부서가 따로 분리돼 있는 점도 특기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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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아트를 끝으로 파텍 필립의 라쇼드퐁 매뉴팩처 투어 일정도 어느덧 마무리 되었습니다. 



하루라는 짧은 일정에 걸쳐 이같은 시설들을 제대로 둘러 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고로 이 후기 포스팅을 통해 해당 시설들의 공정 전반을 헤아리는데도 애초 한계가 따릅니다. 


그럼에도 이 후기가 파텍 필립을 조금이나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소정의 성과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음 이어질 포스팅에서는 파텍 필립의 제네바 플랑레와트 본사와 매뉴팩처 시설을 다루고자 합니다. Stay Tu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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