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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드 주 전경_1.jpg




저는 지난 SIHH 기간 내 하루 짬을 내어 스위스 발레드주(Vallée de Joux) 르 상티에(Le Sentier)에 위치한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의 매뉴팩처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18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예거 르쿨트르의 매뉴팩처를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은 저로서는 큰 영광이었는데요. 

말로만 듣고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했던 매뉴팩처 내외부를 실제 눈앞에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뭐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었습니다. 


매뉴팩처로 향하기 위해 SIHH 취재차 묵었던 제네바 시내의 숙소에서 아침 일찍 나와 타 매체 기자들과 합류해

예거 르쿨트르서 보내온 차량을 타고 약 1시간 반 가량 이동하니 스위스 파인 워치메이킹의 요람인 발레드주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 2013년 창립 18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예거 르쿨트르 브랜드 필름. 
영화배우 클라이브 오웬이 나레이션을 맡아 화제를 모았는데요.
매뉴팩처를 조금이나마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도록 첨부합니다.


발레드주는 스위스 쥐라(Jura) 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외딴 골짜기 지대를 일컫습니다(그 이름부터 '주 계곡'이란 뜻임). 

이렇듯 지대 자체가 외진 편이기 때문에(흡사 우리나라 강원도 두메산골 같은 느낌) 일반 대중교통편으로는 이동이 쉽지 않은 곳입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발레드주 인근에 들어서니 주변 자연 경관부터 눈에 띄게 바뀌었고 그야말로 영화 속 한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천혜의 자연환경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예거 르쿨트르 홍보 필름 속에 나오는 수려한 자연 경관이 실제로 눈앞에 활짝 펼쳐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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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발레드주에 얽힌 역사적인 배경 이야기를 하면 이렇습니다. 


‘태양왕’으로 불렸던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자신의 재위 말년 돌연 낭트 칙령(16세기 말 위그노 교도에게 조건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 칙령)을 폐지하고, 

가톨릭 이외의 교파를 무차별 탄압했는데요. 이로 인해 프로테스탄트(신교도)들은 종교 박해를 피해 가족들을 이끌고 스위스 북서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쥐라 산맥 자락의 뇌샤텔, 발레드주 인근에 주로 정착했습니다. 왜냐면 당시만해도 이 지역은 외래의 적이 쉽게 침입할 수 없는 천연 요새와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농번기가 끝난 후 기나긴 겨울 동안 소일거리가 필요했던 사람들은 집이나 허름한 막사를 개조해 시계 수리 및 제조를 

제2의 업으로 삼기 시작합니다. 18~19세기 스위스 시계산업의 융성은 어찌보면 종교 박해가 낳은 뜻밖의 산물이었던 셈입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설립자 앙투안 르쿨트르(Antoine LeCoultre, 1803-1881) 역시 신교도의 후손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16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스위스 발레드주로 이주해 르 상티에 마을의 개척을 이끈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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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3년 앙투안 르쿨트르가 설립한 첫 공방 자료 사진. ⓒ 예거 르쿨트르 아카이브



선대로부터 자연스레 워치메이킹을 익힌 앙투안 르쿨트르는 일찍이 시계 제작에 큰 흥미를 느꼈고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데요. 

그의 나이 서른살인 1833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공방을 세우게 되었고 바로 이 곳이 예거 르쿨트르의 효시가 되고 있습니다. 


앙투안 르쿨트르는 지금 용어로 말하면 마이크로 엔지니어링에 특히 천재적인 감각과 비전을 갖고 있었고, 

무브먼트의 핵심 파츠인 피니언, 휠 등 소형 부품들을 정확하게 계측하고 내구성이 뛰어나게 제작하는 것에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1844년 마침내 최초로 마이크론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는 정밀기구인 밀리오노미터(Millionomètre)를 발명하는데 성공하지요. 

이 밀리오노미터 덕분에 각 부품들을 훨씬 정확하고 빠르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고, 향후 무브먼트 대량생산의 활로까지 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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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자 앙투안 르쿨트르(사진 좌측 인물)와 1866년 증축 설립한 르쿨트르의 첫 매뉴팩처 시설 내부(사진 우측 참조). 



그리고 말년에는 현대화된 기계들을 구비하고 체계적인 생산 라인을 갖춘 본격적인 매뉴팩처를 설립하게 되는데요.  

앞서 합류한 그의 아들 엘리 르쿨트르(Elie LeCoultre, 1842-1917)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회사명도 르쿨트르 앤 씨(LeCoultre & Cie)로 사용하기 시작했지요. 


르쿨트르 앤 씨는 현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의 전신이자, 발레드주 지방에 처음으로 들어선 현대화된 시계 매뉴팩처였습니다. 

흔히 예거 르쿨트르를 가리켜 '발레드주의 터줏대감' '르 상티에의 원조 매뉴팩처'라는 식의 표현을 쓰곤 하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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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서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드디어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 앞에 섰습니다. 

감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리베르소를 착용한 손목으로 방문 인증샷을 남겨봅니다. 


위 촬영된 사진상으로는 매뉴팩처 외관이 그리 커보이지 않지요?! 하지만 이는 건물 한 동에 불과합니다. 

주로 본사 사무직(디자이너나 리테일 관련 직원들)이 이 건물 안에서 근무하고 있고, 실제 시계가 제작되는 매뉴팩처 시설은 그 뒤로 펼쳐져 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쳐_1.jpg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 전체 건물을 담은 사진을 보시지요. 

그 규모만 봤을 때는 제가 지금껏 가본 스위스 매뉴팩처들 중 가장 컸습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매뉴팩처는 역사적으로도 발레드주에 들어선 첫 매뉴팩처이면서, 

이 지역 매뉴팩처들 중에서도 단연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매뉴팩처 직원수만도 1,400여 명에 달한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예거 르쿨트르를 가리켜 직원들은 매뉴팩처 외에 '그랑 메종(The Grande Maison, 거대한 집이란 뜻)'이라는 표현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배경으로 그림과도 같은 자연 환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건물에 큼직큼직한 유리창이 많은 것도 자연광 아래서 시계 작업을 해오던(당시엔 전기가 없어서)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함입니다. 


참고로 르 상티에 마을 인근에는 블랑팡, 불가리, 오데마 피게 등의 매뉴팩처 건물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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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상으로는 그저 여느 건물들처럼 평범해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얘기는 확 달라집니다. 


매뉴팩처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구획돼 있고, 한 생산 라인에서 다른 라인, 혹은 한 층에서 다른 층과 동을 이동할 때도 

매번 출입 패스를 가져다대야만(심지어 출입할 수 있는 패스 종류가 다르기도) 문이 열릴 만큼 매우 철저하게 보안 관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쓰게 된 배경은 수년 전 매뉴팩처에 큰 도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라네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의 매뉴팩처임에도, 그 건물 내부는 여러번의 리뉴얼 공사를 거쳐 완전히 현대화된 시설로 거듭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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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부로 들어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일종의 접견실에서 본사 관계자로부터 간단한 매뉴팩처 소개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방 한쪽에 외투를 벗고 매뉴팩처 방문시 으레 챙겨 입는 하얀 가운 같은 것을 걸치고 본격적인 시설 투어에 들어갔습니다. 


단, 매뉴팩처 시설 내부 사진 촬영은 철저히 금지되었습니다(아예 사진기 자체를 안으로 들고 가지 못했습니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촬영이 허락되는 분위기였는데 도난 사건도 있었고 기술 누출의 위험 등 보안 관리가 살벌해지면서 정책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고로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보실 사진들은 브랜드 측으로부터 제공 받은 공식 이미지들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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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축 투르비용을 갖춘 최초의 그랑 컴플리케이션 모델인 자이로 투르비용 1을 조립하는 모습.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최근 새롭게 리뉴얼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이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제품들, 듀오미터 라인을 비롯해 퀀템 퍼페추얼(퍼페추얼 캘린더), 투르비용, 미닛 리피터, 그랑 소네리, 자이로투르비용 등 

말 그대로 브랜드의 최상위 하이 컴플리케이션(대표적인 예로 히브리스 메카니카 시리즈와 같은) 시계들이 최종 조립, 검수되는 공간입니다.  


예전에는 매뉴팩처 투어를 온 사람들이 워치메이커의 곁에 다가가서 시계의 조립 과정도 볼 수 있었다고 하지만, 

최근 리뉴얼 공사를 거치면서 워치메이커들의 작업 테이블이 있는 공간으로는 아예 외부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유리벽이 세워졌습니다. 

이는 단지 보안상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고, 하이 컴플리케이션 시계들이 보다 청결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조립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변화는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 입구쪽에 방문객들에게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입니다. 

프로젝터 장비까지 갖춰져 있고 현미경으로 확대된 제품, 무브먼트의 이미지를 보면서 해당 컴플리케이션 시계의 작동 원리를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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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을 총괄 관리하는 마스터 워치메이커, 크리스찬 로랑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에 관해서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서 44년 근무한 마스터 워치메이커이자 

하이 컴플리케이션 부서를 총괄하는 크리스찬 로랑(Christian Laurent) 씨가 친히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은 매뉴팩처 내에서 경력이 오래되고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마스터 워치메이커들로만 구성돼 있으며, 

여느 일반 워크샵과 달리, 모든 제조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1인 체제로 담당한다고 합니다.



8 무브먼트 피니싱(베벨링).jpg


- 무브먼트 브릿지의 측면을 정성스레 다듬는 일명 '베벨링(앵글라주)' 작업 모습. 




10 무브먼트 피니싱_스켈레톤.jpg


- 저먼 실버 플레이트를 특수한 끌로 스켈레톤 가공하는 모습. 



다시 말해 피니싱, 조립, 검수까지 최종 제작 과정을 한 사람이 하나의 시계를 책임지고 완성하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심지어 해당 시계의 에프터 서비스(수리, 오버홀)까지도 그 제품을 완성한 담당 워치메이커가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심플한 기능의 일반 시계는 조립하는데 보통 2시간 정도가 걸린다면, 컴플리케이션은 조립하는데 기본 2일이 소요되며(일례로 듀오미터), 

가장 복잡한 그랑 컴플리케이션 계열의 시계는 한 명의 워치메이커가 조립하는데 2달에서 길게는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Grande Complications at Jaeger-LeCoultre ® Johann Sauty - 2_low.jpg


- 그랑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혼자 전담해 조립하는 여성 마스터 워치메이커의 모습.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에는 총 100여명의 직원들이 배치돼 있습니다. 

르 상티에 매뉴팩처에 전문 워치메이커의 수가 300명 정도라면, 그중 1/3 정도가 하이 컴플리케이션 공방에서 근무하는 마스터 워치메이커들인 셈입니다. 


예거 르쿨트르는 창립 이래 지금까지 400개 이상의 시계 제조 관련 특허권과 1,250여 개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이중에서 현대에 생산되는 기계적으로 가장 복잡하고 브랜드의 위상을 보여주는 시계들이 바로 이 공간 안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은 브랜드에 관해 잘 모르는 이라도 한번 현장에 있게 되면 단숨에 브랜드에 매혹되게 만드는 마법의 공간입니다. 

그만큼 이곳에서는 스위스 파인 워치메이킹의 정수를 볼 수 있으며, 드러내놓고 과시하지 않아도 그 가치를 대변하는 마스터피스들이 진정한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Watchmaking_2_low.jpg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 투어는 이렇듯 첫 걸음부터 임팩트가 강한 워크샵으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보게될 공간이 더욱 기대가 되었는데요. 

이제 건물 2층에 위치한 메티에 다르 공방인 '아뜰리에 메티에 라르(Atelier Métiers Rares)'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아뜰리에 메티에 라르는 원래 별도의 건물에 분리돼 있었는데, 몇 달 전 하이 컴플리케이션 공방이 있는 건물 안으로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술적인 작업들이 파인 워치메이킹과 동떨어져서 진행되는 것이 아닌, 디자이너와 워치메이커, 젬세터, 에나멜러, 인그레이버 등이 

다함께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면 더욱 창조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라고 하네요. 


일례로 히브리스 아티스티카 컬렉션이나 최근에 발표하는 일련의 메티에 라르 버전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신작들을 보면,

예전의 기술적인 면만 강조하던 시절에 작별을 고하고 예술성과 심미성에 예거 르쿨트르가 기울이는 공을 새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Enamelling at Manufacture Jaeger-LeCoultre -® Johann Sauty_low.jpg



메티에 라르 워크샵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수공 에나멜링 작업이었습니다. 


순백의 점토 가루를 곱게 빻은 후 착색을 돕는 리퀴드와 컬러 안료를 섞어 배합하고 이를 얇은 붓으로 그야말로 한 올 한 올 한 점 한 점 섬세하게 그려 완성합니다. 


메티에 라르 워크샵 입구 중앙에는 각 작업 과정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원형의 테이블이 있었는데요. 

몇몇 작업자들의 테이블 한쪽에 카메라를 설치해 해당 작업을 유리벽 바깥에서도 방문객들이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Enamelling_2_low.jpgEnamelling at Manufacture Jaeger-LeCoultre -® Johann Sauty 2_low.jpg



여담이지만, 마침 저희가 방문했을 때 젊은 미남 에나멜러가 한창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요. 

올해 SIHH 신모델 중 마스터 그랑 트래디션 미닛 리피터(Master Grande Tradition Minute Repeater, Ref. 50924E1)의 다이얼을 채색 중이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명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형상화한 다이얼을 너무나 차분하고 기민한 붓놀림으로 밑그림도 없이 색을 입히고 있더군요. 


이렇게 미니어처 페인팅 작업이 완료되면, 다시 850도의 오븐에서 최소 8번을 구워내는 과정을 통해서야(대략 70~90시간 소요) 비로소 하나의 다이얼이 완성됩니다.  

그런데 각각의 색이 열이 가해지는 정도에 따라 색상도 변하기 때문에 에나멜 페인터는 색채 변화를 정확히 계산해 의도했던 색상이 나오도록 작업을 조율해야 합니다. 


고로 에나멜 페인팅은 섬세한 채색은 기본이고 수학적인 정확성까지 계산해야 하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이렇기에 전문 에나멜러가 스위스 내에서도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Gem-setting at Manufacture Jaeger-LeCoultre -® Johann Sauty_low.jpg

24 고난이도의 수작업 (보석세팅).JPG


그 다음으로는 젬세팅(보석세팅)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골드 케이스에 다이아몬드를 이음새가 안 보일 정도로 정교하고 매끈하게 스노우 세팅하는 과정을 지켜봤는데요. 

골드 바탕에 끌로 길을 내고 이를 다시 조각용 나이프로 파낸 다음 보석이 위치할 홀을 중앙에 뚫고 다듬어 보석의 위치를 설정하고 
남은 여분의 골드 프롱으로 고정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도 의식하지 않고 침착하고 정확하게 이뤄졌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최고급 다이아몬드와 골드 케이스로 이같은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자칫 사소한 실수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Engraving_11_low.jpg


다음은 리베르소 케이스 뒷면에 핸드 인그레이빙을 하는 작업과 기요셰 다이얼을 만드는 작업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두 작업 모두 수공으로 진행되었으며, 특히 오래 전부터 사용되온 로즈 엔진턴을 돌려 다이얼에 기요셰 패턴을 새기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메티에 다르 테크닉은 타 매뉴팩처에서도 대체로 조금씩 본 작업들이었지만, 
미니어처 페인팅으로 복잡하고 정교한 에나멜 다이얼을 완성하는 모습과 리베르소용 커스텀 케이스백을 작업하는 모습은 
타 메이커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었던 장면이어서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메티에 다르 공방 자체를 이렇게 자사 매뉴팩처 안에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도 사실 손에 꼽을 정도인데요.
전문 에나멜러, 페인터 인력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마진을 위해서라도 대다수 업체들은 그냥 외주 제작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Cutting at Manufacture Jaeger-LeCoultre® Johann Sauty 2_low.jpg


이제 다른 건물로 발걸음을 옮겨 소형 정밀 부품들이 만들어지는 워크샵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밸런스, 스크류(밸런스 웨이트 포함), 톱니(휠), 피니언 등이 제조되는 곳으로 
한쪽에서는 주요 휠과 피니언 끝 부분을 폴리싱하는 작업까지도 이뤄졌습니다. 

제조 섹션은 컬렉션별로 분리되기도 하는데요. 한쪽 섹션에서는 듀오미터용 부품들만 만들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지오피직 관련 특허 부품들(ex. 자이로랩 밸런스, 스타휠 등)을 만들고 있는 식입니다. 

보통 부품 가공 시설은 소음도 크고 시설 환경 자체도 다른 워크샵에 비해 좀 지저분한 편이 대부분인데, 
예거 르쿨트르의 부품 가공 공장 내부는 예상보다 훨씬 쾌적한 분위기였습니다. 


Cutting at Manufacture Jaeger-LeCoultre ® Johann Sauty_low.jpg


한 라인별로 수십 대의 스탬핑 툴(stamping tool) 머신이 늘어서 있고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정교하게 부품의 틀을 찍어내면, 
다른 라인에서 이러한 부품들을 CNC 머신으로 다듬고 정확하게 계측해 모양을 만드는 식으로 공정은 체계적이고 순리적으로 흘러갑니다. 

보다 정교한 부품들, 가령 지오피직의 트루 세컨드(점핑 세컨드) 메커니즘을 가능케 하는 이스케이프 휠 끝에 위치한 스타휠 같은 특수한 부품들은 
기계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틀이 완성되면 일일이 손으로 가공하고 피니언 끝에 결합하는 과정도 수작업으로 이뤄집니다. 


11 초소형 공정.jpg


기계가 많은 방에서 나와 옆방으로 이동하면 팔렛 포크(앵커)에 인조루비를 끼우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팔렛 포크에 루비를 세팅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복잡한데요. 

결정화된 스페셜 글루 조각을 150도 정도의 열에 데운 다음, 팔렛 루비 끝에 곤충 부리를 연상시키는 특수한 집게를 활용해 기민하게 글루를 묻혀 현미경을 보면서 
팔렛 포크 끝에 루비를 핸드 세팅합니다. 글루의 양 조절도 잘 해야하고 인조 루비를 공간에 맞게 한번에 탁 끼워 맞춰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제법 섬세한 작업이기 때문에 대체로 젊은 여성이 선호됩니다. 루비 세팅하는 노하우만 숙련하는데도 6개월 정도가 소요될 정도라고... 


Gyrolab for Geophysic caliber 770 © JohannSauty-Jaeger-LeCoultre.jpg

- 지오피직 라인에 사용되는 새 인하우스 밸런스인 자이로랩 


다른 방 한쪽에서는 밸런스 스크류(웨이트)를 끼우는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Decoration of the bridge for Geophysic mouvement © JohannSauty-Jaeger-LeCoultre.jpg


이제 다시 층을 옮겨(4층에서 2층으로), 데코레이션 워크샵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말 그대로, 페를라주, 코트 드 제네바, 앵글라주, 블루잉(스크류) 등 일반 모델에 사용되는 무브먼트 피니싱 작업이 이뤄지는 곳입니다. 
그 바로 옆방에는 프리 어셈블리 룸이 위치해 이미 제작이 끝난 부품들의 조립이 이뤄짐으로써 작업의 효율성을 높입니다. 

각 공정 자체를 세세하게 보진 않고, 지나쳐 가는 식으로 투어가 이뤄졌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또한 해당 공정들은 여러분들에게도 많이 익숙한 작업인지라 제가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잘 아실 듯 합니다. 


Atmos at Manufacture Jaeger-LeCoultre -® Johann Sauty_low.jpg


이제 건물 1층에 위치한 애트모스(Atmos) 클락 워크샵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애트모스는 기온 변화로 동력을 만들어내는 퍼페추얼 무브먼트를 탑재한 탁상시계로 예거 르쿨트르가 관련해 다양한 특허권까지 갖고 있는 브랜드의 자랑입니다. 
1928년 공개된 첫 프로토타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애트모스 클락이 만들어졌으며, 유명 산업 디자이너 마크 뉴슨과 협업하는 등 다채로운 시도도 이어졌습니다. 
애트모스 클락은 수십 년 전부터 스위스 정부가 구입해 국빈이나 유명 인사들에게 선물로 제공하고 있으며, 찰리 채플린도 생전 애트모스의 열혈 팬으로 알려져 있지요. 

애트모스 클락 워크샵에서는 애트모스의 대략적인 작동 원리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벽장을 연상케 하는 수십 개의 큰 장식장 안에 전시된 다양한 형태의 애트모스 클락을 볼 수 있어서 눈이 호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한해 대략 3,000개 정도의(생각보다 많은 숫자!) 애트모스 클락이 제작되고 있으며, 
완성된 수십 개의 애트모스를 같은 책장 안에 올려놓고 같은 시간을 맞춰놓은 다음 약 5주동안 오차 체크를 합니다. 
매일 하루에 3~5번씩 체크를 하고 기록 카드에 기록을 하며 이 일만을 자그마치 30년 동안 해온 기술자도 있다고 합니다. 

애트모스는 그 특성상 외부 진동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애트모스 워크샵은 그 어느 곳보다도 방문객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 헤리티지 갤러리의 칼리버 월_1.jpg


이제 건물을 빠져 나와 다른 동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새로 이동한 건물은 매뉴팩처 내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몇 차례 현대적으로 리뉴얼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내부에는 특유의 고즈넉함이 남아있었습니다. 

협소한 나선형 계단을 따라 4층으로 이동하니, 박물관이 펼쳐졌습니다. 

이곳에서는 창립자 앙투안 르쿨트르에 의해 1850년대 제작돼 유럽 왕가에 공급된 헌터 타입 포켓 워치를 비롯해, 
1870년 완성한 브랜드 첫 그랑 컴플리케이션 포켓 워치, 1890년 제작된 아름다운 미닛 리피터 헌터 포켓 워치, 
1903년 파리의 워치메이커 에드몽 예거(Edmond Jaeger, 1858-1922)와 당시 최고경영자인 자크 다비드 르쿨트르(Jacques-David LeCoultre, 1875-1948)가 
협업한 첫 울트라씬 칼리버와 1907년 발표 당시 1.38mm 두께의 무브먼트로 역사상 가장 얇은 포켓 워치로 명성이 자자했던 나이프 포켓 워치, 
1928년 제작된 첫 애트모스 클락 프로토타입, 1929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계식 무브먼트 기록을 세운 101 칼리버와 이를 탑재한 시계, 
1931년 인도 주둔 영국 장교들의 폴로 경기를 위해 주문 제작된 첫 리베르소 시계, 1950년 출시된 알람시계 메모복스, 1958년 히트한 지오피직 크로노미터, 
1959년 제작된 알람 기능이 있는 최초의 다이버 시계 메모복스 딥 씨,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 매년 세상을 놀라게 한 히브리스 메카니카 시리즈 등등.... 

예거 르쿨트르 역사에 길이 남을 히스토릭 피스들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평소 사진으로만 접했던 역사적인 시계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되니 감회가 정말 새로웠습니다. 


예거 르쿨트르 헤리티지 갤러리의 칼리버 월_2.jpg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박물관 중심에 계단과 함께 이어진 독특한 유리 설치물이었습니다. 
긴 와이어가 늘어서 있는데 그 옆에는 지난 180년의 세월 동안 예거 르쿨트르가 제작한 총 1,250여 개의 칼리버들이 진열돼 있었습니다. 

자사 무브먼트만으로 이러한 거대한 설치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예거 르쿨트르의 남다른 클래스를 보여주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박물관 맨 위층 흡사 다락방과도 같은 협소한 공간에는 생전 설립자 앙트완 르쿨트르가 실제 작업했던 방의 풍경(작업 테이블 등)을 재현해 전시해 놓았습니다. 


Jaeger-LeCoultre Making the Reverso Tribute Calendar 1©JohannSauty.jpg


예거 르쿨트르의 르 상티에 매뉴팩처 투어는 이렇게 박물관을 끝으로 갈무리 되었습니다. 
매뉴팩처 규모가 워낙 커서 단 몇 시간이 아닌 며칠을 둘러봐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매뉴팩처의 정수를 보여주는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샵과 메티에 라르 아뜰리에, 
그리고 역사적인 시계와 무브먼트들이 즐비한 박물관을 둘러본 것에 어느 정도 위안을 삼고자 합니다. 

모쪼록 이 방문기가 예거 르쿨트르 시계를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회원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 지난해 말 새롭게 제작된 매뉴팩처 소개 필름 "Beyond the Gest"도 함께 감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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