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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게시글은 조회수1000 or 추천수10 or 댓글25 이상 게시물을 최근순으로 최대4개까지 출력됩니다. (타 게시판 동일)아버지의 마음 잡담
대학생 아들과 대화를 하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아버지는 나라가 자랑스러우세요?
-응
구체적으로 어떤점이요?
-강대국은 아니었지만 긴 역사도 있고, 약한 나라였지만 단기간에 이렇게 잘 살게 된 점, 근면함 등등
죄송하지만, 미국이나 캐나다같은 신흥국 외에는 긴 역사가 없는 나라가 없고,
미국과 일본 등의 원조가 없었다면 과연 잘 살 수 있었을까요?
근면함을 강조한 결과 일하는 기계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매우 당황하며)그래도 삼성, 현대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생겼잖아. 월드컵, 올림픽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삼성, 현대를 욕하잖아요. 기업이 성장하면 무조건 자랑스러운 일인가요?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한 것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고요.
-윤리적인 부분이 부족하다면 반성이 필요한데, 자랑스러운 것과 연관시켜서는 미처 생각을 못 해봤다.
아버지 친구분들과 중국사람들을 비하하면서 무시하듯 말씀하시잖아요. 불과 100년 전까지 조공을 바쳤고, 지금도 중국의 눈치를 보는데 왜 그러세요?
-중국 자체는 강한 나라지만 사람들의 민도가 너무 떨어져서 피해를 입히니까 그래.
민도가 떨어지면, 못사는 나라라면 비하하듯 말해도 되나요? 우리나라의 민도가 중국에 비해 월등하다고 생각하세요?
-중국에 비해 민도가 낫다고는 생각한다만 어떤 경우에도 비하는 안되지. 아빠가 잘못했다.
제 생각에는 짱깨, 쪽발이, 검둥이, 까만애, 테러범들 등등의 표현이 제일 민도가 떨어지는 일 같아요.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거 들으면 솔직히 부끄러워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그냥 입에 붙어서 별 생각없이 말했는데, 네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아빠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생각이 많이 있었던 것 같구나.
종종 한국인이 다른나라 사람들보다 우월한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그런 생각이 히틀러를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해요.
아버지가 우리나라가 우월한 것처럼 말씀하실때 솔직히 열등감이 있어 그러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70~80년대에 비해서 너무 발전한 것을 보면 너무 기뻐서 자랑하듯 말한 것도 있는데, 남과 비교하는 것은 일단 나쁜 일이지.
열등감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대국과 비교하면서 마음속으로 질투심을 가졌던 것은 부인하진 못하겠구나.
아버지 기분을 상하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그렇지만 언젠가 한번쯤 이런 대화를 해보고 싶었어요.
"조국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는가? 우리가 다른나라보다 우월해야만 하는가?" 라는 주제로 토론이 있었는데 아버지 세대와 저희 세대의 의식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떤 친구는 "우리나라를 부끄럽다고 느낀다면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다." 라는 말까지 했는데, 그 말에 동조하는 학생들도 많았어요.
아버지와 어른들을 보면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시지만, 실제 일상에서 볼 때는 나라에 대한 사랑이나 자랑보다는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사랑하니까 화를 내신 것이겠지만, 그래도 맹목적으로 자랑스럽고 사랑한다는 말씀은 아버지의 진심같이 느껴지진 않았거든요.
좋은 부분은 좋다, 나쁜 부분은 나쁘다 받아들이고 살아야 스트레스가 덜할 것 같아요.
아버지와 제가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라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저처럼 장성한 자녀를 두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런 대화가 부모로서 절대 편하지 않습니다.
한시간 넘게 대화를 했는데, 그래도 아들덕에 오랜만에 나라에 대해, 그리고 제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들이, 아들이 말한 그 세대 친구들이 저보다 진화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같아 뿌듯하면서도,
헬조선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맹목적인 분노와 자괴감만 가지게 될까봐 우려되는 것이 아비된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도 아들의 마지막 말에 그나마 위안을 얻었습니다.
"젊은 놈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감사할줄 모른다며 혼내지 않고 끝까지 듣고 대답해 주셔서 감사해요.
힘든걸 모르고 배가 불러서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하실줄 알았거든요.
그리고 아버지 말씀에 반박하긴 했지만, 저도 100% 그렇게 생각하는건 아니고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냥 말만 그렇게 심하게 한거라고 생각하셔도 돼요."
그냥 허허 웃으며 가끔 이런 대화를 하자고 마무리를 했지만, 자식과 이런 대화를 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하고, 제 품을 떠난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글로 쓰다보니 알수없는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창피하게도 눈물이 막 나오네요ㅠㅠ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는데..죄송합니다..저도 별수 없는 팔불출 아버지네요...
자랑할 의도로 쓰기 시작한건 아닌데, 쓰다보니 아들이 자랑스러워졌습니다.
p.s. 아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 느끼셨거나, 혹여 불쾌하셨더라도 나쁜 아이는 아니니 너그러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저 아빠에게 어른인 척 하고 싶어하는 철없는 아이라 넘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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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찬TOWSOME
2016.11.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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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taad318
2016.11.07 15:1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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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아빠
2016.11.07 15:11
저는 아들이 초등학생이라 아직 품 안에 자식인데.. 아드님과 저런 대화를 나누셨다니 부럽기도 보기 좋습니다..
무엇보다 아들 사랑하시는 마음이 글에서 물씬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울컥했네요.. 멋진 아버지신것 같습니다!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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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taad318
2016.11.07 15:20
어릴때는 그때 나름대로 좋고, 크면 그 나름대로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맘때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 후회가 됩니다ㅠㅠ
지금부터라도 좋은 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쉽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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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맨
2016.11.07 15:13
아들과의 대화를 이렇게까지 하는 父子가 과연 얼마나있을까 생각합니다. 훌륭하신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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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taad318
2016.11.07 15:21
사실 이런 대화는 처음입니다.
아들이 저런 생각을 하는줄 전혀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앞으로 이런 대화를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들의 생각도 저와 같은지는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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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1
2016.11.07 16:14
역시 아버지는 위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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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taad318
2016.11.07 22:59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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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칼국수
2016.11.07 20:19
아드님 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성품이 너르신것 같아요. 생산적인 토론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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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taad318
2016.11.07 23:00
원래 아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처음 저런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간중간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고 윽박지르고 싶었던 것을 애써 참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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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2016.11.07 20:24
가진 생각이 누군가에게 옳다는 소리를 듣던지, 누구에게 반박을 듣던간에 아드님처럼 자기 주관을 뚜렷하게 갖고 사는건 참 좋은 일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무지해서 정치쪽은 완전 까막눈이지만...
최소한 문화상대주의에 입각해서 그 어느 나라 사람이든 색안경 안끼고 개인대 개인으로 상대방을 대하려는 아드님의 자세는 너무도 훌륭한 마음가짐이라 생각되네요 ^^
아드님 참 잘 키우셨습니다 ㅎㅎ 문득 저는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일까 생각하게 되는 글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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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taad318
2016.11.07 23:03
무조건적인 반일, 반공, 대한민국 만세를 주입받으며 살아온 제 세대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는듯 합니다.
우리나라를 부정적으로만 보는게 아닌가 우려도 되지만, 솔직히 아들의 말이 틀린 것도 없어서...
그런데 이번 대화를 통해 뿌듯함을 느끼긴 했지만 늘 자랑스러운 아들까진 아닙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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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오리
2016.11.07 22:11
부자지간의 좋은 대화입니다. 저도 아드님덕에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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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taad318
2016.11.07 23:04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대화를 잘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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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함께
2016.11.08 09:01
대화내용 정말 좋네요. 제가 여기서 지식을 얻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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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가쿨쿨
2016.11.08 10:43
전 사실 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못 나누는데...
어릴적부터 너무 무서운 아버지라 30이 넘은 지금도 대화를 잘 안하게 됩니다..^^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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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렉로
2016.11.08 22:53
사랑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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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논데
2016.11.09 07:29
아들을 키우는 맛이 아닐까요?? 저는 아들을 키우는데 이놈이랑 저 대화를 하려면 제법 남았고... 지금 제 아버님과 저 대화를 하면 제가 아들 역할을 하네요. 꼭 몰아부치게 되는거 같아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모든게 한쪽은 정답이 아니라고 봅니다. 보수도 절대 나쁜것이 아닌데... 어느샌가.. 다른 한쪽은 완전히 배제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이 사회에 넘쳐흐르는듯 해서 아쉽습니다.. 하긴 저 역시 그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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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2016.11.09 14:54
저는 언제쯤 제아들녀석과 저런 대화가 가능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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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zzy
2016.11.09 19:30
대화가 많다는게 너무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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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a
2016.11.10 15:57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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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myjk
2016.11.12 12:29
이런 대화를 시도 한다는 것 자체가 참 대단한 아들을 두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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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트퍼피
2016.11.13 00:49
80넘으신 아버지께서 많이 누그러지셨습니다 시국문제이기도 하겠지요...박통때를 그리워하는 것은 사실 그때의 당신들의 그 젊은 날을 그리워하는 것이지 박통시대 자체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진데 어찌하다보니 아버지 세대들은 다 한통속으로 평가되어 온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 영국의 monty phyton이 비슷한 말을 했었습니다...
'비틀즈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건 그 구닥다리 노인네들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때의 청춘을 그리워 하는 것이다'.............어쨋든 시국이 저뿐만 아니라 아버지들의 어깨에서까지 힘을 쫙 빼버렸습니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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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25
2016.11.15 17:15
진솔한 대화를 통해 마음을 서로 열은거로 의미 부여를 하고 싶네요.
저도 아직 어리지만 진솔한 대화를 아들과 하고 픈 마음은 있는데.. ㅠㅠ 사춘기 중딩이라 답이 짧네요.. 응, 네.. 어.. ㅋㅋ
암튼 좋은대화 내용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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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고래
2016.11.15 22:45
착각들을 하는것이 우리나라가 역사가 반만년이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민족은 모르지만 대한민국은 역사가 백년도 안돼는 신생(?)국가 입니다. 그런 국가가 이만한 수준을 올렸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지요
그 짧은 기간에 부작용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네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대별로 너무 문화의 격차가 크다고 생각 합니다. 너무 빠른 발전때문에요
우리만 인정안하고 세계 어느나라사람도 다 인정하는 사실은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라는 것입니다. 여러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좋지않은 나라가 아님은 확실합니다. 그 부분만 아들에게 주지시키고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게 좋을 것같습니다.
대학생 때는 비판적인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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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WILLTELL
2016.11.16 14:02
인정할건 인정하고 잘못한건 잘못했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모습이 참 인상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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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ng2
2016.11.18 23:03
부자지간의 대화. 의견이 같건 다르건 부자끼리 이야기를 나눈다는 의미는 큰거같아요. 계속 그렇게 잘지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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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을
2016.11.19 21:57
배울게 너무도 많은 세상입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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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처럼
2016.11.21 19:09
부럽네요 ㅠㅠ 대화가 많은게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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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시게
2016.11.22 21:33
아드님의 현실인식이나 생각이 대단히 훌륭한 거 같네요.
아버지와 이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훌륭하고요.
부럽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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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단풍나무
2016.11.22 21:58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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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군님
2016.11.28 14:04
부럽네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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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도리
2016.12.01 20:16
이런 아버지가 되길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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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s
2016.12.16 11:44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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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남자
2017.01.27 15:50
이런 대화도 하다니 대단합니다;;; 정말 보기좋네요
대단하신 부자지간입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