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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제 맘대로 정한것이고.....

어쨌든 기사를 보니 참.....안타깝네요

 

 

각그랜저도 아마 미쓰비시에서 받은걸로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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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전 현대차 가르치던 청년의 씁쓸한 방한
[Weekly Vehicle]마쓰코 미쓰비시 사장 만감교차 사연
박영국 기자 (2012.03.17 09: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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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인 1975년 한 일본 청년이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미쓰비시 상사 자동차 사업부문 소속이었던 그가 한국 담당으로 발령받은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자동차 기업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자동차에 핵심 기술을 의존하는 처지였습니다.

현대차는 1973년 미쓰비시와 기술지원계약을 맺었고, 2년 뒤인 1975년 그 결과물로 탄생한 게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 ´포니´였습니다. 고유모델이라고는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외국 기업에 대한 기술 의존도가 높았던 거죠.

이후로도 오랜 기간 현대차는 미쓰비시와 기술적 협력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1990년대 초 당시 현대정공에서 경영수업을 받을 당시 성공적인 개발과 시장 안착으로 고(故)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인정받는 계기를 만들어준 갤로퍼 역시 미쓰비시의 SUV ´파제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차였습니다.

1975년 당시 일본에서 건너온 청년은 이후 한국에서 3년을 더 머물렀다고 하는데, 당시만 해도 미쓰비시에 대한 현대차의 기술 의존도가 높았을 때니, 그는 현대차의 스승 역할을 한 셈이죠.

그 청년이 30여년이 흐른 2012년 3월 16일 한국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청년의 이름은 마쓰코 오사무.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로 변해 있었고, 미쓰비시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그의 직위는 미쓰비시자동차 총괄 사장까지 올라 있었습니다.

방문 이유는 미쓰비시자동차의 한국 재진출을 계기로 국내 공식 수입사인 CXC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신차 출시를 발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미쓰비시는 2008년부터 대우자동차판매와의 합작회사 MMSK를 통해 국내에 자동차를 판매해 왔는데, 대우자동차판매 쪽에서 사업을 접으면서 본의 아니게 쫓겨나게 됐다는 게 당시 MMSK에서 일하다 CXC로 자리를 옮긴 한 인사의 설명입니다.

어차피 엔고 때문에 사업실적도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어쨌건, 다시 한국에 돌아온 미쓰비시가 새로운 파트너인 CXC와 함께 내놓은 연간 판매목표는 900대였습니다. ´0´ 하나 빼먹은거 아닙니다. 한글로 ´구.백.대.´ 맞습니다.

한때 현대차의 스승이었던 미쓰비시가 현대차 텃밭에 와서 한없이 작아진 느낌입니다.

이날 행사에서 마쓰코 오사무 사장은 "한국 자동차기업들은 미국을 비롯한 다양한 지역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췄고 우리에게도 강력한 경쟁자"라는 발언도 했습니다.

한국지엠은 미국회사고, 르노삼성프랑스 회사고, 쌍용차는 인도 회사니, 현대·기아차를 지칭하는 말이겠죠.

그런데, 이 대목에서 그의 얼굴에 살짝 착잡한 표정이 드리운 듯 했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현대·기아차는 이미 미쓰비시의 경쟁 상대가 아닙니다. 지난해 현대차의 자동차 판매량은 405만9천대였습니다. 형제 회사인 기아차는 253만8천대를 팔았고, 두 회사의 판매량을 합하면 660만대에 달합니다.

하지만, 미쓰비시의 연간 판매량은 110만대 수준입니다. 현대·기아차의 6분의 1에 불과하죠.

이 회사가 연간 100만대를 넘어선 것은 현대차가 코흘리개 시절이었던 1979년입니다. 그 사이 오르내림이 있었겠지만, 한때 제자였던 현대차가 무섭게 성장해온 30여년간 미쓰비시는 제자리걸음을 한 셈입니다.

일본 내에서도 미쓰비시의 위상이 초라해졌더군요. 한때 토요타, 혼다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회사인데, 지금은 이들 외에도 닛산, 마츠다, 스즈키, 스바루 등 4개사가 미쓰비시보다 위에 있습니다. 일본 8개 완성차업체 중 7위입니다.

1975년 한국으로 건너 왔던 일본 청년은 열심히 노력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사장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이 평생을 바쳐 온 회사는 경쟁자들에게 수없이 자리를 내주고 뒤로 밀려났습니다. 심지어는 한때 제자였던 녀석조차 괘씸하게도 한참 앞에 있습니다.

사장이 된 청년, 아니 노신사의 표정에 드리운 착잡함의 의미는 이게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데일리아 = 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