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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타임포럼 스페셜 컬럼에서는 특별히 화제가 되는 신제품은 아니지만, 꾸준히 사랑 받는 스테디셀러 중 가히 최고봉이라 할 만한 라인업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스위스 발레드주의 유서 깊은 하이엔드 시계제조사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의 스포츠 워치 명작, 로열 오크 오프쇼어(Royal Oak Offshore) 컬렉션의 크로노그래프 제품군이 그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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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 Ref. 26470OR

그간 필자는 여러 컬럼 혹은 리뷰를 통해 로열 오크 혹은 로열 오크 오프쇼어 컬렉션에 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왔습니다. 솔직히 밝히자면 이제는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요. 그럼에도 이번 컬럼을 위해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 라인업을 다시 소환했습니다. 특히 케이스는 물론 브레이슬릿까지 전체 핑크 골드 소재로 제작된 현행 모델들(Ref. 26470OR 시리즈)이 지닌 고급스러운 매력에 주목했습니다. 관련해 2가지 버전의 제품을 살펴보기에 앞서, 어김없이 로열 오크 오프쇼어 컬렉션에 관한 몇 가지 반복되는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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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 Ref. 25721ST 
직경 42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블랙 실리콘을 오버-몰딩한 두툼한 크라운과 푸셔를 적용하고, 수영 및 요트 등 다양한 레저 활동에도 안심할 수 있는 100m 방수 사양을 보장한다. 그리고 현재는 로열 오크 컬렉션에서만 볼 수 있는 쁘띠 타피스리 패턴 다이얼을 확인할 수 있다. 

1993년 탄생한 최초의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Ref. 25721ST)는 시대를 앞선 볼드한 사이즈와 디자인 때문에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야수를 뜻하는 ‘비스트(The Beast)’로 불렸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메종의 천덕꾸러기와도 같던 '비스트'가 오데마 피게를 어쩌면 평생 먹여 살릴 수 있는 효자 컬렉션으로 자리매김하리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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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시계 디자이너 故 제랄드 젠타(Gérald Genta, 1931~2011)의 스케치에서 탄생한 로열 오크가 1972년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의 새 지평을 열었다면, 약 20년 후 발표한 로열 오크 오프쇼어는 급변하는 세대의 과감한 트렌드를 수용하면서 기존 클래식 로열 오크의 아이코닉 디자인을 한층 스포티하게 변주함으로써 시계 애호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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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출시한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 리-에디션 Ref. 26237ST
로열 오크 오프쇼어 25주년 기념 모델로, 단 250피스 한정 제작되었다. 쁘띠 타피스리 패턴 다이얼 등 오리지널 모델의 디테일을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한편으로 로열 오크 오프쇼어의 탄생 배경에는 1980년대 특유의 낙천주의와 디스코 및 헤비메탈 음악의 유행, 팝아트 및 아방가르드 사조의 난립과 같은 사회문화적인 요소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대담한 디자인의 오버사이즈 주얼리와 시계를 착용하는 것이 더 이상 눈치 보이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1980~9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 스위스 시계 산업이 다시금 활기를 얻기 시작한 것도 오데마 피게의 새로운 도전을 자극했습니다. 다시 메종의 기술 개발팀에서 근무한 20대의 젊은 시계 디자이너 엠마누엘 귀트(Emmanuel Gueit)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명석하게 간파했고, 젠타의 아이코닉 디자인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면서 트렌디한 감각을 발동시켜 로열 오크 오프쇼어의 첫 프로토타입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열거한 여러 가지 이유로 자칫 사장될 수도 있었던 프로젝트를 최종적으로 승인한 당시 메종의 경영진과 오너 가문의 결단 또한 새삼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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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출시한 로열 오크 36mm 옐로우 골드 모델 Ref. 14790BA

아시다시피 로열 오크와 로열 오크 오프쇼어, 양대 컬렉션의 전설의 시작을 알린 소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이었습니다. 업계 통념상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스틸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라는 식의 표현도 그 주체가 다른 제조사가 아닌 오데마 피게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는데요. 하지만 전통적으로 하이엔드 제조사 이미지가 강한 오데마 피게가 두 금쪽같은 컬렉션에 귀금속(골드) 소재를 포기할 리도 만무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오데마 피게는 두 컬렉션을 통해 잊을 만하면 솔리드 골드 케이스/브레이슬릿 제품을 출시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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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출시한 로열 오크 오프쇼어 파운더 Ref. 26170OR
무게 단위인 파운드에서 닉네임을 착안, 395그램에 달하는 중량의 핑크 골드가 사용됨.

스틸 케이스 로열 오크와 로열 오크 오프쇼어도 물론 일반 대중들의 관점에서는 매우 고가의 제품임에 틀림없지만(그럼에도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골드 케이스 로열 오크와 로열 오크 오프쇼어는 더욱 범접하기 어려운, 최상위 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시계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풍깁니다. 한화로 수천만 원대에서 억대를 바라보는 이러한 시계들을 구매하는 이는 사실 극소수에 불과하고, 애초 제한적인 타겟층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오데마 피게가 두 상징적인 라인에 골드 시리즈를 포기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컬렉션의 프로파일을 다각화하고 단계적으로 고급화하기 위한 전략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이러한 골드 제품들이 매우 잘 판매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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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신제품, 로열 오크 오프쇼어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37mm Ref. 26236OR


혹자는 최근 사회 분위기뿐만 아니라 시계 업계의 전반적인 흐름 역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들 얘기합니다. 쉽게 말해 잘 되는 브랜드들은 계속 잘 되고, 그렇지 않은 브랜드들(특히 신진 브랜드들)은 사정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뜻인데요. 이러한 맥락에서 하이엔드 시계 제조사들의 분위기는 호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맑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여러 브랜드들이 골드 브레이슬릿 워치 및 하이 주얼리 워치를 경쟁적으로 출시하는 것도 더 비쌀 수록 잘 팔리는 소비 심리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들과는 차별화된 더 고급스럽고 더 화려한 시계를 찾는 소비층이 그만큼 눈에 띄게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전세계 럭셔리 시장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큰손’인 중국 부호들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사회기득권층의 소비 패턴 속에 고급 시계가 과거보다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예로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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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로열 오크 광고 프린트  

여담이지만 필자는 옛 시계 광고 이미지를 찾아보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왜냐면 해당 시계가 출시된 시대적 분위기나 당대의 트렌드, 나아가 국가별 선호 취향이나 인기 모델 등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초반 로열 오크 지면 광고 중에는 위와 같은 것을 볼 수 있는데, 메인 카피의 '로열 오크를 착용하기 위해서는 돈보다 더한 것이 요구된다(It takes more than money to wear the Royal Oak)'는 문구가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과연 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요? 우선 다른 무수한 시계들을 제치고(상대적으로 노멀한 디자인의 시계들을 포기하고) 로열 오크로 결심하기까지 그 사람의 특별한 취향이나 안목이 요구될 것이고, 평상시 로열 오크를 착용했을 때 주변인들에게 비춰지는 이미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직업 등도 경제력과는 별개로 생각해볼 만한 요소들입니다. 어쨌든 이를 매우 포괄적이면서도 울림 있게 표현한 광고 카피와 함께 스틸이 아닌 골드 로열 오크를 배치한 것도 다분히 의도된 연출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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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이 길었습니다.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현행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 42mm 라인업에서 가장 고급스러움을 자랑하는 핑크 골드 모델 두 점을 꼽아봤습니다. 두 모델 모두 26470OR 레퍼런스를 공유하는데, 하나는 블랙 악어가죽 스트랩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 핑크 골드 브레이슬릿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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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악어 가죽 스트랩 버전(Ref. 26470OR.OO.A002CR.01)은 핑크 골드 케이스에 핑크 골드톤 다이얼을 매칭했는데요. 앞서 이러한 형태로 핑크 골드 브레이슬릿 버전(Ref. 26470OR.OO.1000OR.01)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12시(스몰 세컨드)-6시(아워 카운터)-9시(미닛 카운터) 방향에 위치한 각 크로노그래프 카운터와 타키미터 눈금을 새긴 이너 베젤(플란지)은 블랙 컬러 처리하고, 핑크 골드 소재의 양각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와 핸즈에도 블랙 컬러 야광 도료를 채웠습니다. 오리지널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와 마찬가지로 42mm 사이즈로 제작한 핑크 골드 케이스에 스크류-다운 크라운과 푸셔는 또 블랙 세라믹 소재를 사용해 전체적으로 핑크 골드와 블랙의 바이-컬러 조합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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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핑크 골드 브레이슬릿 버전(Ref. 26470OR.OO.1000OR.03) 역시 핑크 골드와 블랙의 바이-컬러 조합을 선보이는데, 앞서 보신 악어가죽 스트랩 버전과는 음과 양처럼 다이얼 컬러 배합에서 정반대의 느낌을 연출합니다. 메가 타피스리(Méga Tapisserie) 패턴 가공한 블랙 다이얼 위에 각 크로노그래프 카운터는 핑크 골드톤으로 처리하고, 핑크 골드 소재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와 핸즈에는 연한 베이지 컬러 야광도료를 코팅했습니다. 한편 3시 방향에는 별도의 어퍼처(창)로 날짜를 표시하고 이를 확대해서 보여주는 원형의 사이클롭스 렌즈가 함께 위치해 있습니다. 이 또한 1993년 출시한 최초의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 모델부터 이어진 오리지널 디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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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리버 3126/3840

두 모델 공통적으로 직경 42mm, 두께 14.18mm 크기의 핑크 골드 케이스에 무브먼트는 인하우스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3126/3840를 탑재했습니다. 기존의 매뉴팩처 자동 베이스(AP 3120)에 뒤부아 데프라(Dubois-Depraz)의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얹은 형태로, 카운터 배열이 12-6-9인 오데마 피게의 현행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 모델에는 예외 없이 이 무브먼트가 사용됩니다. 42mm 버전뿐만 아니라 44mm 버전에도 말이지요(참고로 19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예거 르쿨트르 자동 에보슈에 뒤부아 데프라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추가한 2126/2840 혹은 2226/2840 칼리버가 사용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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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2mm(13¼ 라인) 직경 안에 총 365개의 부품과 59개의 주얼로 구성된 3126/3840 칼리버는 시간당 21,600회 진동하며(3헤르츠), 파워리저브는 약 50시간을 보장합니다. 투명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 오데마와 피게 가문의 문장을 새긴 22K 골드 소재의 양방향 회전 로터, 모바일 스터드가 달린 프리 스프렁 밸런스, 정성스럽게 앵글라주 마감한 브릿지 등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시계 외관에서 풍기는 남성적이고 강인한 인상과 시스루 케이스백을 통해 보이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무브먼트는 극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시계를 소장하는 이에게 은밀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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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위에 소개한 두 핑크 골드 케이스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 42mm 모델들은 얼마 전 국내에도 입고되어 현대백화점 압구정점(02-3449-5917)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02-3479-1809)에 위치한 오데마 피게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스틸 모델과는 럭셔리함의 결이 다른 로열 오크 오프쇼어 크로노그래프 핑크 골드 모델의 매력에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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