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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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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I-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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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츠 시계의 출현으로 기계식 시계는 궁지로 내몰렸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세주로 등판한 니콜라스 G. 하이에크(Nicolas G. Hayek)는 예상치 못한 승부수를 띄웁니다. 놀랍게도 쿼츠 시계의 대항마로 쿼츠 시계를 내세운 겁니다. 패션과 팝 아트를 접목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플라스틱 시계는 전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정식 출시한 1983년 3월1일부터 다음해 말까지 무려 350만3000개가 생산됐습니다. 기계식 시계는 역설적이게도 쿼츠 시계의 성공에 힘입어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세컨드(second)의 앞 글자와 시계(watch)를 이어 붙인 이름은 오늘날 세계 최대의 시계 제국을 지칭하는 동시에 스위스 시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바로 스와치(Swatch)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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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치는 지난 2 14일 스위스 시계의 고장 비엘(Biel)에서 신제품 플라이매직(Flymagic)의 론칭 행사를 가졌습니다. 스와치와 더불어 그룹 전체를 통솔하는 닉 하이에크(Nick Hayek) 회장이 직접 행사를 주관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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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51


플라이매직은 시스템51(SISTEM51)의 속편에 해당하는 기계식 시계입니다. 2013년, 스와치 출시 30주년을 자축하는 의미로 선보인 시스템51은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무브먼트는 100% 자동화된 조립 공정에 의해 완성됐고, 부품 수는 51개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20~30만원에 불과한 저렴한 가격은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과거 스와치의 패션 시계가 시계 산업 전반을 뒤흔들었다면, 시스템51은 기계식 시계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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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투 무브


사실 스와치는 시스템51에 앞서 기계식 시계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스와치를 통해 재건의 기틀을 마련한 선대 회장의 마음속에는 기계식 시계를 향한 열정이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계식 시계의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 확고한 신념은 1992년 타임 투 무브(Time to Move, Ref. SAK102)로 실체화됩니다. 플라스틱 케이스에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를 집어 넣은 이 시계는 에타(ETA)와 니바록스-FAR(Nivarox-FAR)의 기술력에 스와치의 혁신이 어우러진 크로스오버였습니다. 타임 투 무브는 시스템51 개발에 단초를 제공했고, 그 정신은 플라이매직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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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매직의 외관은 시각적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스와치의 성격을 잘 나타냅니다. 시스템51이 전통적인 시계처럼 무브먼트를 뒤로 감췄다면, 플라이매직은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보다 과감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뚜껑을 제거해 메인스프링을 노출시킨 배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각양각색의 톱니바퀴, 밸런스의 힘찬 박동은 기계식 시계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다이얼 12시 방향에 있는 바람개비처럼 생긴 초침은 특이하게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합니다. 중앙에는 스켈레톤 처리한 시침과 분침이 있습니다. 인덱스와 바늘 끝에는 슈퍼루미노바를 도포했습니다(레드 버전은 바늘에만 칠했습니다). 바늘 위에는 투명한 로터가 자리합니다. 시스템51과 마찬가지로 가장자리의 구조에 변화를 주어 와인딩 효율을 높였습니다. 로터 축에는 오토매틱이라는 문구와 함께 시계에 배정된 고유 번호가 적혀있습니다. 무반사 코팅 처리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에는 브랜드 명을 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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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로터 아래에 늘어선 톱니바퀴는 모션 워크에 해당합니다. 크라운을 두 번 뽑아서 돌리면 톱니바퀴가 맞물려 바늘이 꽂힌 피니언을 회전시킵니다. 오른 편에서 수줍은 듯 반쯤 얼굴을 내민 두 톱니바퀴는 로터의 운동에너지를 배럴로 전달합니다. 크라운을 뽑지 않은 상태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수동으로 와인딩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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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는 마감을 병행해 입체감을 살렸습니다. 비스듬하게 홈을 판 베젤은 빙글빙글 도는 로터 및 초침과 묘하게 어울립니다두 개의 기둥을 러그 사이에 끼워 넣은 스와치 특유의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뒷면은 8개의 나사로 고정한 솔리드백으로 막혀 있습니다. 방수는 30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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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먼트의 부품 수는 시스템51보다 15개가 많습니다. 일례로 나사가 하나뿐인 시스템51과 달리 몇몇 나사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외 다른 건 시스템51과 대동소이합니다. 무브먼트 플레이트와 브리지는 구리, 니켈, 아연 합금인 ARCAP으로 만들었습니다. 기계식 시계에서 가장 많은 피로가 누적되는 이스케이프 휠과 팰릿 포크의 소재는 압축 강화 플라스틱입니다. 레귤레이터가 따로 없는 대신 밸런스 휠을 레이저 커팅해 무게중심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오차를 조정했습니다. 플라이매직의 하루 평균 오차는 ±7초로 시스템51과 동일합니다. 시간당 진동수는 21,600vph(3Hz)이며, 파워리저브는 90시간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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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매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밸런스 스프링입니다. 플라이매직은 스와치그룹이 최초로 니바크론(Nivachron) 밸런스 스프링을 투입해 양산하는 시계입니다. 지난해 8월 스와치그룹은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와 손을 잡고 니바크론 밸런스 스프링을 개발한 사실을 공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독과점에 가깝게 밸런스 및 이스케이프먼트 부품을 공급하는 니바록스-FAR가 있습니다. 니바크론으로 명명한 합금은 철과 니켈이 주원료인 니바록스와 다르게 티타늄을 기반으로 합니다. 스와치그룹은 무브먼트에 따라 상이하지만 니바록스와 비교해 자성의 영향을 최대 1/20 수준으로 감소시킨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온도 변화에도 민감하지 않거니와 충격에도 강해 기존 밸런스 스프링의 성능을 뛰어넘는다고 밝혔습니다. 추가로 오버코일 밸런스 스프링으로 성형하는 것도 가능해 고급 시계에도 쓰일 수 있습니다. 실리콘보다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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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스와치그룹은 산하 브랜드에서 생산하는 모든 시계에 니바크론이나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 둘 중 하나를 사용할 계획입니다.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을 사용중인 브레게, 오메가 등 고가 브랜드의 주요 모델은 그대로 둔 채 중저가 브랜드에 니바크론 밸런스 스프링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바꿔 말하면 모든 제품이 자성에 대한 면역력을 갖춘다는 겁니다. 닉 하이에크 회장은 자성으로 인해 수리를 의뢰하는 경우가 전체의 30%나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성은 시계의 정확성을 해치는 골치 아픈 적입니다만 탈자기를 통해 간단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시계 때문에 탈자기를 구입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결국 고객들은 어쩔 수 없이 시계를 서비스 센터에 맡겨야 합니다. 이때 지출되는 비용과 낭비되는 시간은 모두에게 비효율적입니다. 이에 스와치그룹은 자사 제품의 완전한 항자성화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 소비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차별화된 성능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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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스와치그룹은 왜 많은 브랜드 가운데 하필 스와치를 선택했을까요? 닉 하이에크 회장은 스와치가 지금까지 보여준 혁신을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스와치는 이제까지 줄곧 유행을 선도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스와치가 걸어온 길이 곧 혁신의 역사였습니다. 자성을 극복할 수 있는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 혁신이며, 그런 혁신이야말로 스와치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가치임을 이번 플라이매직을 통해 다시 한 번 보여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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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스위스 메이드를 표방하는 플라이매직은 세 가지 버전(레드, 블루, 골드 PVD 코팅)으로 선보입니다.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의 지름과 두께는 각각 45mm 14.8mm입니다. 스트랩 소재는 러버 또는 소가죽이며, 핀 버클과 함께 제공합니다. 각 500개 한정 생산되며, 가격은 1500스위스프랑( 170만원)입니다. 플라이매직은 시스템51 아이러니(IRONY)처럼 분해 및 수리가 가능합니다(본드로 접착하는 오리지널(ORIGINAL) 라인은 불가합니다). 시스템51은 수리보다 폐기가 합리적이지만 플라이매직은 그냥 버리기엔 가격이 높습니다. 스와치는 오는 4 30일부터 플라이매직 판매를 개시합니다. 이날은 독일의 수학자 칼 프레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 가우스는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에게서 영감을 얻어 시스템51을 구상한 스와치는 플라이매직에도 위트를 더하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한편, 스와치는 9월에 니바크론 밸런스 스프링을 적용한 새로운 시스템51의 출시를 예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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