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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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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바에 가면, Cité du temps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씨테 뒤 땅"이라고 읽는데, 이게 제가 기록한데로 읽으면 사람들이 못알아 듣습니다. 현지인들끼린 "씨트렠-뒤-탐ㅁ" 같이 막 발음하는데, 저도 몇 번 연습해봤는데 목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어 얼른 포기했습니다. (역시 불어는 어려워요.) 불어 할 줄 아는 남자가 가장 섹시하다는데, 저는 섹시는 글렀나봅니다. 흠흠. 어쨌든 씨테 뒤 땅은 제네바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에게는 하나의 문화를, 제네바 연인들에게는 만남의 장소를, 마지막으로 제네바 학생들에게는 수행평가 장소 중 하나로 애용(?)되는 공간입니다. 씨테 뒤 땅은 제가 따로 표시 안해도 될만큼 좋은 자리에 있습니다. 위치나 접근성은 강남 테헤란로 같은 건물들에 비할 바가 아니에요. 한국으로 치면 한강 한가운데 건물이 있으니까요. 아, 한국에도 플로팅 아일랜드가 있군요. 그런데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 어쨌든 여러분이 제네바를 여행하시다보면, 반드시 한 번쯤은 론 강을 건너실텐데, 이 건물은 제네바에 있는 어떤 다리를 건너더라도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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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건물입니다. 사진은 Cité du temps 공식 홈페이지


지금으로 부터 약 170년 전. 원래 이 건물은 도시의 분수에 물을 공급하는 용도로 지어졌습니다. 70년 후에는 제네바 거리의 전등을 밝히는 수력발전소로 30년 동안 사용되지요. 그런데 이후에는 이마저도 문을 닫게 됩니다. 효용성이 떨어진 것이겠지요. 올해 GTE가 열렸던 수력 발전소 역시 비슷한 사이클을 겪으며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멋지게도' 스위스 사람들은 이러한 건물을 그냥 방치하거나 철거하지 않았습니다. 1995년, 스와치 그룹은 이 건물을 사들이고 '씨테 뒤 땅'이라는 이름의 전시장을 개관합니다. 일종의 문화센터라고 홍보하면서 말이죠. 이 모든 일의 진두에는 스와치 그룹의 회장이었던 故 하이에크(Nicolas George Hayek)가 있었습니다.


 제네바를 여행하시다보면, 생각보다 관광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음에 적잖이 놀라실지도 모릅니다. 종교혁명 기념비, 제네바 대학, 노틀담 성당, 그리고 제트 분수(Jet d'Eau)가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것들은 도보로 4-5 시간이면 여유있게 볼 수 있습니다. 모조리요. SIHH의 선발대(?)로 의도치 않게 제네바에서만 10일을 있어 본 소고가 검증합니다. 제네바는 여느 유럽 도시와는 다르게 관광지와 휴양지 사이에 있습니다. 게다가 주말엔 개관하지 않는 곳이 더 많죠. 제네바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가 이러하니, 스위스 사람들이 가내 수공업에 도가 틀만도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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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제가... 아이폰4로 찍은 올해의 씨테 뒤 땅입니다. 왼쪽 아래로 보이는 주황색 차는 제설차입니다. 군인들은 보이지 않는군요 ㅎㅎㅎ


 어쨌든 기대하고 가면 생각보다 볼 것 없는(?) 제네바에, 씨테 뒤 땅은 지속적으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시계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바(Bar)도 있고, 식당도 있으며, 전시장 대관 업무도 보고 있으니까요. 건물은 파사드(정면)를 기준으로 좌측, 가운데 그리고 우측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좌측에는 레스토랑이 있고, 가운데는 스와치 그룹의 기획 전시실이, 마지막으로 우측에는 대관으로 진행되는 특별 전시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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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입구로 들어가면 이런 바가 떡 하니 손님들을 맞이합니다. 1층에 바라니. 재즈바 같은 느낌인데 천장에는 미러볼이?!?


 제가 씨테 뒤 땅을 방문했을때가 토요일에 한 번, 그리고 평일 개관 시간에 한 번 뿐이었기 때문에 바나 레스토랑을 이용해보진 못했습니다만, 평소에 비스트로를 즐기는 스위스 사람들이 크고 작은 모임을 갖기에는 충분한 공간인 것 같았습니다. 사진처럼 한국의 내노라하는 클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작은 규모입니다만, 상대적인 인구가 적은 스위스이기에 정도면 모든 파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비즈니스(=작업)를 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또한 씨테 뒤 땅에서는 '음식물 반입금지, 사진촬영 금지, 소란스럽게 떠드는 것 금지'같은 키워드는 없습니다. 씨테 뒤 땅은 어른의 에티튜드면 부담 없이 있다 나올 수 있는 제네바의 몇 안되는 공간입니다. 부담이 없는 만큼 기대도 하지 않으시는게 좋습니다. 원래 감동은 기대 이상일 때 밀려오는 법.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해드릴 공간은 씨테 뒤 땅 정면에 위치한 스와치 상설 전시관입니다. 육중한 문을 비집고 들어가면 가운데 공간이 뻥 뚫려있는 3층짜리 건물과 마주하게 되는데요. 스와치 그룹에서 '시계'를 테마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여는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입장료는?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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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 들어가면, 이렇게 센스 넘치는 의자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바퀴 색깔까지 고려한 것 보세요.


 1층엔 바가 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하게 배치된 가구들을 볼 수 있고, 바텐더가 눈인사를 하며 와인 잔을 닦습니다. 바텐더는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있었는데, 제가 1층에 들어서자마자 동양인이라 뭔가 말을 막 걸고싶은데 영어 단어가 안떠올라서 흔들리는 눈빛이 재밌었습니다. 근데 흔들리는게 남자. 바를 이용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저는 패스했습니다만, 이곳에는 약 20종의 스위스 와인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메뉴라도 찍어올 걸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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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 바라본 1층의 분위기입니다.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가구와 장미 모양의 소파가 재밌습니다.

사진의 품질에 대해서는 애플의 감성이니.. 너그러운 양해를 구해봅니다. ^^;;


 이렇게 바텐더 정수리를 바라보며 2층으로 올라가자면, 자그마한 카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앞뒤로 두 개의 전시관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블랑팡(Blancpain)과 브레게(Breguet)가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박물관이나 전시실과 달리 전시 내용이나 브랜드가 수시로 바뀌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전시관을 운동장만하게 잡아놓고 '상설 전시관'이라고 해서 10년 내내 똑같은 것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좁은 공간에 매 분기 테마를 바꿔가며 프로그램을 바꾸는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시계는 매년 신모델이 나오고, 스와치 그룹 산하의 브랜드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유럽의 내노라하는 박물관이나 갤러리도 이러한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이렇게 프로그램을 바꿀 때마다 대중들은 '내가 가고싶은 전시'라는 것에대해 더욱 강한 열망을 느낍니다. 한 마디로, 올해 제가 다녀온 전시 자체가 리미티드 에디션인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기억들은 중학교 첫사랑의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처럼 특별히 미화되어 머릿속에 남곤 합니다. 아, 첫사랑 생각나네요. (정신줄 부여잡고) 다시 씨테 뒤 땅 얘기를 시작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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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랑팡 전시의 컨셉은 "JE T'AIME"(쥬뗌므: 사랑해요)였습니다. 발렌타인 데이를 맞은 여인이 애인에게 "올해는 제게 어울리는 시계를 사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도록 블랑팡이 특별히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 그러나 전시장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워서, 여성들이 블랑팡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먼 훗날 백년가약을 블랑팡으로 맺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죠. 나머지 시계들(?)이라고 하기 뭐하지만, 빌레레 신형과 컴플리케이션은 이 발렌타인 에디션을 중심으로 한쪽에 몰려 있었습니다. 폰카라서 차마 올릴 수 없는 발렌타인 에디션의 사진은 인터넷의 프레스 이미지로 대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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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팡 발렌타인데이 에디션 입니다. 다이얼과 케이스의 하트는 세라믹입니다. 99점 한정 제작


  블랑팡의 남성 모델에 대해서 더 많은 사진을 보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이쪽을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발렌타인 에디션을 제외한 시계들은 여기서 보여드린 모델과 동일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블랑팡 부스를 다 보고 입구쪽으로 걸어나오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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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문워치 코액시얼 크로노그라프, 플래닛오션 크로노, 플래닛 오션 세라골드(여성용), 스피드마스터 오토매틱 크로노미터(여성용)


오메가의 2012년과 그 이전 모델들이 옮겨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디스플레이를 옮기는 것이냐고 물어보니, 그건 아니고, 복도에 이렇게 간이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놓고, 시계들을 주기적으로 바꿔주면서도 스와치 그룹의 시계를 소개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플레닛 오션은 작년부터 리퀴드 메탈(Liquid metal)이라고 하는 소재와 세라믹 베젤로 시계를 리뉴얼 했지요. 옛날 플레닛 오션이 현행 모델에 비해 뒤처진다는 느낌은 없습니다만, 익숙한 베젤과 광택이 아닌 플레닛 오션을 만난다는 건 나름대로 신선한 기분을 주었습니다. 얘기 나온김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플레닛 오션 광고를..



 앞에서 2층 앞 뒤로 카페가 있다고 말씀드린 적 있었는데, 전경 사진을 첨부합니다. 가구가 한 층에서도 여러가지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컨셉대로 모여있어서 그런지 나름대로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해냅니다. 스와치 그룹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가구를 통해서도 표출해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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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이렇게 플로리시한 패턴의 의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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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쪽에는 이런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습니다. 앤틱하면서도 색깔로 환기를 준 암체어(Armchair)의 모습. 책상 위 책자는 오메가와 브레게.


 이렇게 양쪽으로 펼쳐진 복도를 지나가면, 반대편 전시관 입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반대편에선 브레게(Breguet)의 전시가 한창이었습니다. 이번 브레게 전시의 컨셉은 "발명가이자 혁명가였던 브레게와 뚜르비용" 입니다. 그러나 제가 참석했던 두 날 모두 브레게 부스를 정비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전시를 직접 볼 순 없었습니다. 처음 들렀던 날, 정비중이라고 월요일에 다시 오라고 해서 발길을 돌렸었는데, 월요일에도 정비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월요일에 오라고 했던 담당자는 끝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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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풍성해보이는 브레게의 디스플레이입니다. 

전시실의 앞, 뒤로 소용돌이치듯 작품들을 전시해놓아서 '소용돌이(Tourbillon)'의 컨셉을 표현한 듯 보입니다. 직접 보지 못한게 너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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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 보이는 뚜르비용의 분해도를 직접 보지 못한게 너무 아쉽습니다.2222 

뒤쪽 벽면에는 회중시계와 스트라이킹 클락이 보이는것으로 보아 브레게의 역사가 씌여있는 것 같습니다.


 브레게 전시를 미처 보지 못하고, 2층을 돌았으니 왠지 모르게 전시를 다 보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뭔가 좋아보이는 포장지의 선물을 받았는데 그 내용물이 찜찜함 그 자체인것 같은 기분 말이죠. 뚜르비용이 테마였으니 브레게 뚜르비용이란 뚜르비용은 다 보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3층으로 가는 계단 앞에서, 저는 못다한 2층의 열정을 불태우리라 다짐을 하고 카메라를 챙겼습니다. 덕분에 3층에선 거의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분노의 관람 ㅎㅎㅎㅎ 못다한 3층의 이야기와 못다한 씨테 뒤 땅의 이야기는 스크롤 압박으로 다음 포스팅에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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