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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매력 4 : 하이엔드 브랜드의 2가지 요건 - 인하우스 무브먼트와 프레스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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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이번 글은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함정'이라는 글의 도입부이자, 이미 설명한 톱클래스의 하이엔드 브랜드에 연속되는 '톱클래스가 되지 못한 하이엔드 브랜드'에 대한 글입니다. 이 글을 통해 톱클래스의 하이엔드가 되기 위한 2가지 요건인 '인하우스 무브먼트'라는 내재적인 요건과 '프레스티지'라는 역사적 요건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하우스 무브먼트에 프레스티지라는 개념을 도입하므로써 우리는 '하이엔드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빛과 그늘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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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하우스 무브먼트'란 그 의미로부터 '브랜드 내부에서 제조되는 무브먼트'라는 의미입니다. '브랜드 내부에서 제조'라는 조건의 해석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는 것입니다. 에보슈(ETA 등)를 구입해다가 내부에서 이런 저런 수정을 했다면 이는 '인하우스 무브먼트'인가? 타임온리의 수동 에보슈나 무브먼트를 구입하여 자동 무브먼트, 크로노그래프, 캘린더 등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를 만들었다면 이는 '인하우스 무브먼트'로 불러도 좋은 것인가? 혹은, 무브먼트 전문 업체에 의뢰하여 만든 브랜드 전용 무브먼트는 '인하우스 무브먼트'인가? 등의 여러 가지 논란들이 '인하우스 무브먼트 논쟁'의 핵심을 이루는 문제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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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처럼 인하우스 무브먼트는 엄밀하게 정의하기가 어려우며 논란이 많은 용어입니다만, 하이엔드 브랜드가 톱클래스로 인정받기 위해 요구되는 가장 엄격한 도덕적 요건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도덕적 요건을 충족한다고 전부 하이엔드 브랜드의 톱클래스(빅 3 등)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JLC일 것입니다. 즉, 하이엔드 브랜드들에서 '인하우스'에는 그냥 '브랜드 내부에서 제조되는'이라는 의미 이상으로 그 인하우스의 '품격' 혹은 '프레스티지'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톱클래스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란 '최상의 프레스티지를 지닌 브랜드의 자체 제조시설(공방)에서 최고급 인력에 의해 설계되고 제조된 무브먼트'를 의미하는 셈입니다. 이를 충족하는 무브먼트들이 바로 앞서 설명한 파텍 필립 등 빅3나 랑게의 무브먼트들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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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LC의 무브먼트는 역사적으로 회중시계 시절의 파텍 필립, 손목시계 시절의 바쉐론 콘스탄틴의 거의 대부분의 무브먼트였습니다. 따라서, JLC에서 시계 케이스와 다이얼만 파텍 필립 혹은 바쉐론 콘스탄틴급 품질을 사용한다면, JLC의 시계는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과 함께 빅 3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JLC의 역사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역사인 셈입니다. JLC에는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의 '품격'(프레스티지)을 가져다줄 완성품 시계 업체로서의 화려한 역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JLC는 오랫동안 파텍 필립 등 스위스 최정상급 브랜드들에 최고급 에보슈와 완성 무브먼트를 제공하는 스위스 최고의 무브먼트 제조업체였습니다. 그러나, 1920년대의 미국발 경제공황에 따라 에보슈나 무브먼트 제조판매가 여의치 않아진 1930년대부터 완성품 시계를 만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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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파텍 필립의 주인이 바뀌고, 바쉐론 콘스탄틴이나 오데마 피게 같은 정상급 브랜드들조차 고급시계를 팔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경제적인 환경 때문에 JLC는 빅 3급의 고가의 하이엔드 시계가 아닌 중급 혹은 중상급의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JLC가 193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만들었던 시계들은 중급에서 중상급의 시계였을 뿐 결코 하이엔드 시계라고 부를 수 없는 시계들이었습니다. IWC와는 근본이 달랐을  JLC가 영국의 파일럿 시계인 Mark 11을 만든 브랜드로서 IWC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조금은 굴욕스러운(?) 역사는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더구나, 불과 몇 년전까지 그런 중급 시계들을을 주로 만들었던 브랜드에서 고급시계를 만든다고 해서, 소비자들에게 톱클래스의 하이엔드 시계로 대접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즉, 현재에 여러분들이 느끼는 브랜드의 '프레스티지'에는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 브랜드가 만들어온 시계들에 대한 이미지가 녹아 있는 것입니다. 즉, 시계에 있어서 최상의 프레스티지란 '적어도 수십년간 최고의 제품으로 그 제품에 친숙한 소비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아온 역사' 그 자체인 것이지, 잠시의 유행으로 얻을 수 있는 트랜디한 무엇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의 프레스티지를 가진 브랜드가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도입하면 전부 파텍 필립과 같은 톱클래스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20세기 후반에 재런칭된 브레게의 역사로부터 일정한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 1 부 브레게와 블랑팡 : 인하우스 무브먼트와 프레스티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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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치 그룹의 브레게와 블랑팡은 하이엔드 브랜드이면서도 Top Class로 부르기에는 2%쯤 아쉬운 브랜드들입니다. 보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브레게는 파텍 필립이나 랑게급의 Top Class로 부르기에는 5%쯤 부족하고, 블랑팡은 20%쯤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링고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시계에 오랜 관심을 가진 매니아들이라면 다들 비슷한 느낌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들에 대한 해외 매니아 사이트의 브랜드 게시판에서 자주 그런 아쉬움이 토로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브랜드들이 처음 런칭되었을 때의 글을 찾아본다면 이런 반응은 지난 20년간 상당히 완화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고착회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부족함은 과연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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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역사에서 브레게가 가진 명성과 프레스티지는 파텍 필립조차 따라가기 어려운 소위 시계 브랜드에서 인간계의 빅 3의 상위에 위치하는 '신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브랜드'입니다. 아브라함 브레게야 말로 그의 살아생전에 유럽 황실과 부유한 귀족들이 차례를 기다려서 시계를 구입해야 하는 최초이자 최고의 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스위스의 제네바란 그저 브레게에게 시계 부품이나 납품하거나 혹은 브레게의 지시에 따라 시계를 만드는 노동비가 저렴한 시계 공장에 지나지 않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브레게보다 역사가 오래된 바쉐론 콘스탄틴은 물론이고, 후배인 파텍 필립의 꿈이란 제 2의 브레게가 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남긴 시계업보다는 통신이나 비행기 등 새롭게 등장하는 신기술에 흥미를 느꼈던 손자들을 두었기 때문에 시계업을 계속할 수 없었던 브레게 가문은 1870년에 브레게의 손자인 루이와 자크 브레게 밑에서 수석기술자로 일하던 영국인 에드워드 브라운(Edward Brown)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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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70년 프랑스의 보석상인 쇼메(Chaumet)에게 넘어가기 까지 브레게는 1950년대에 프랑스 공군에 군용크로노그래프 Type 20을 납품한 업체의 하나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게 됩니다. 쇼메는 잊혀진 브레게를 재런칭하기 위해 브라운 가문으로부터 브레게를 인수하고, Francois Bodet를 매니저로 영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Bodet의 노력에 의해 현재 Breguet Classic 모델이 등장하게 됩니다. 당시 쇼메는 전문적인 시계제조업체가 아니었으므로 시계의 무브먼트를 만들 정도의 기반시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Bodet는 아브라함 브레게의 엔틱 회중시계들에서 추출한 아브라함 브레게의 디자인에 ETA, JLC, F. Piguet 등으로부터 무브먼트를 구입하여 브레게 클래식의 심플수동, 자동 모델들을 발매하게 됩니다. 당시의 시계들은 워낙 소규모로 제조되었으므로 빈티지 시장에서 그 당시의 브레게를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유명한 Peseux 260을 사용한 브레게는 Bodet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사용할 수 없었던 역사 때문에 그런 걸작이 남게 된 셈입니다.  이 시계로부터 추측하건데 Bodet가 재런칭하고자 했던 브레게란 아브라함 브레게의 진정한 재탄생이었던 것이지, 겉만 브레게로 보이는 그런 시계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Bodet가 만들었던 브레게의 손목시계들의 특징은 현재의 파란색 바늘이 아닌 금색 바늘입니다. 현대의 브레게와 달리 Bodet가 아브라함 브레게의 회중시계들로부터 추출한 브레게 시계의 바늘은 금색 바늘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금색 바늘을 가진 빈티지 브레게 손목시계들이 바로 쇼메 시대의 브레게의 특징이며, 그 제조 수량이 매우 적었기 때문에 빈티지 시계 수집에 흥미를 가진 매니아라면 꼭 기억해 두어야할 미래의 '대박 아이템'의 하나인 것입니다. 그 시계들 속에서 Peseux 260에 필적하는 엄청난 무브먼트들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닌 것입니다. 되돌아 보건데(후학들이 선배들에게 명백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가장 자신감 넘치는 표현),  이 Bodet 라는 사람은 100년간 사장되었던 브레게를 재런칭하기에 정말 최적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브레게의 아름다운 케이스에 가장 적절한 무브먼트의 하나가 Peseux 260이라는 것을 그 당시에 생각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던 것만해도 이 정도의 찬사조차 많이 부족한 것입니다. 이 시대의 브레게에 대한 이야기는 링고 역시 오랫동안 자료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므로, 그 자료가 충분해 지면 한 번 자세히 다루어 보고 싶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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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det의 Breguet Classic (무브먼트 Peseux 260)

 

그러나, Bodet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기업인 쇼메는 1987년 파산하게 되고, 쇼메의 자산중 브레게는 사우디아라비아의 Invest Corp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Bodet라는 탁월한 인물은 그 후에도 5~8년 정도 쇼메로부터 브레게를 인수한 Invest Corp에 근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Invest Corp는 Bodet의 설득때문이었는 지 브레게를 본격적인 하이엔드 브랜드로 성장시키기 위해 1992년에 Nouvelle Lemania를 매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5년 아마도 Bodet가 어떤 이유로 사직하자 전문경영자 출신의 Jacober가 신임 사장이 되어 브레게의 Marine모델과 Type 20의 현대판인 Type XX를 발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Bodet가 박물관들의 브레게의 회중시계들을 찾아다니며 재창조한 브레게 클래식과 Marine, Type XX는 엄밀하게 따지면 그 컨셉이 전혀 다른 시계들인 것입니다. 프랑스 시계의 전성기를 그리워 한 쇼메의 자본으로 프랑스인 Bodet에 의해 브레게는 아브라함 브레게의 DNA를 가진 Classic모델로 재탄생되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본을 통해 Bodet가 구상한 매력적인 손목시계 브레게라는 컨셉은 조금 엉망이 되었지만 향후 빅 브랜드로 성장할 규모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 덕분에 1999년 파텍 필립에 대항할 수 있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구상하던 스와치 그룹에게 매각되어 현재의 브레게에 이른 것입니다. 인생이 그렇듯이 개인과 시대의 선택이 일치하는 일은 시계의 역사에도 찾기 어렵습니다. 개인의 옳바른 선택과 시대의 운명적인 선택은 자주 어긋나는 법입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시대가 마주쳤을 때 생기는 화학작용같은 것입니다. 공기 속에 무작위로 섞여 있는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될 것을 인간이 어찌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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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70년대 소규모로 재런칭된 브레게는 Bodet의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아브라함 브레게가 제조했던 회중시계 디자인들로부터 아름다운 시계 케이스며 길로쉬 다이얼 등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7명 정도의 인원으로 시계를 만들어야 했던 상황이었으므로 무브먼트는 시계의 디자인에 따라 그에 가장 적합한 무브먼트인 ETA, JLC, F. Piguet 등을 다소 혼란스럽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 그 당시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브레게를 톱클래스의 하이엔드 브랜드로 재런칭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지라도 꼭 인하우스 무브먼트가 필요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 당시는 아직 인하우스 무브먼트와 에보슈 무브먼트의 논쟁같은 것이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저 좋은 시계가 좋은 시계인 그런 '담담한 시대'였습니다. 1980년대말 Inverst Corp로 넘어가 브레게는 직원 300 명 규모로 성장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타임온리 수동 시계는 JLC 무브먼트를, 울트라슬림 타임온리는 F. Piguet, 크로노그래프는 Lemania, 투루비용, 퍼페츄얼 캘린더 등 복잡시계는 Nouvelle Lemania에 새롭게 신설된 복잡시계 공방에서 제조하는 방식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Bodet가 사퇴하자 새로운 책임자로 등장한 Jacober는 1995년에 신제품으로 브라운 시대에 프랑스 공군에 납품했었던 파일럿 시계 Type 20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하여 Type XX를 발매하면서 Lemania의 자동 크로노그래프 Cal. 1340패밀리인 Cal. 1350(오메가와 티솟에서 사용하던 자동 크로노그래프)를 사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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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ania의 자동 크로노그래프는 ETA 7750보다는 고급한 무브먼트였지만, 어디까지나 오메가 등의 중급 브랜드에 사용되는 무브먼트였지, 파텍 필립 등 빅 3급의 무브먼트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물론, 빅3조차 수동크로노그래프로 사용하던 밸쥬의 에보슈의 생산이 중단되자 1980년대에 레마니아의 수동 크로노그래프를 사용하게 되지만, 이는 수동크로노그래프 에보슈에 한정된 것이었을 뿐, 레마니아의 수동이나 자동 무브먼트 혹은 자동 크로노그래프가 고급 브랜드에 사용된 적은 없었던 셈입니다. 따라서, 레마니아의 역사에 익숙한 소비자들이나 시계 매니아들에게 'Lemania'는 JLC나 F. Piguet의 소위 '하이엔드급 무브먼트'가 아닌 오메가나 론진의 자사 무브먼트 혹은 밸쥬나 비너스 급의 중고급 크로노그래프에 해당하는 '중급' 무브먼트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Type XX는 브레게의 브랜드로 발매되었지만 브레게 클래식 같은 하이엔드 시계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 결과,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급의 소비자 가격으로 발매되었던 '브레게'의 시계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30년간 소비자들에게는 파텍 필립에 비해 가격대비 품질이 낮은 브랜드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시계는 매력적일 지라도 가격은 조금 의아스러운 시계였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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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게에서 1995년에 첫 발매된 Type XX는 태생이 군용시계이며, 군용시계는 하이엔드 브랜드에게는 부적합한 중급이나 그 이하의 브랜드들에게나 적합한 모델입니다. 더욱이 Type XX는 Bodet가 되살리려고 했던 아브라함 브레게의 유산이 아닌 격이 떨어지는 브라운 시대의 유산이었으므로, 이를 클래식 라인과 함께 브레게의 정규모델로 발매하는 것은 브레게라는 브랜드의 프레스티지를 스스로 낮추는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Bodet가 Invest Corp를 그만둔 것도 어쩌면 이런 견해상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Type XX의 존재로 인해 브레게는 클래식 모델로 파텍 필립과 경쟁하면서 한편으로는 Type XX로 IWC의 플리거모델과 경쟁하는 듯한 브랜드로 보여질 수도 있는 셈입니다. 톱클래스의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군용시계를 만든 역사가 있음에도 이를 한정판으로조차 발매하지 않는 이유나 스포츠모델을 발매할 때 느끼는 두려움은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오데마 피게의 로얄 오크가 성공을 거두자 파텍 필립과 바쉐론 콘스탄틴이 그 뒤를 따라간 것에는 아마도 이런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브레게의 역사에서 1995년의 Type XX의 발매는 톱클래스를 지향하는 브레게라는 브랜드에게는 결코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링고는 개인적으로 브레게가 Bodet에 의해 클래식 모델만 발매된 상태에서 Invest Corp를 거치지 않고 리치몬트나 스와치에게 인수되었더라면 브레게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파텍 필립, 랑게와 함께 '21세기의 뉴 빅 3'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역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파텍 필립과 바쉐론 콘스탄틴 및 오데마 피게를 '빅 3'로 부르는 것이 해당 브랜드들의 현재의 프레스티지나 제품들을 고려할 때 상당히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21세기에 빅 3라고 부를 3개의 브랜드를 찾는다면 파텍 필립, 랑게 그리고 브레게를 선택하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재까지의 브레게는 적어도 링고에게는 파텍 필립이나 랑게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여전히 5%는 부족한 브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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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브레게는 스와치 그룹에 편입되기 30년 전에 보석상인 쇼메에 의해 체계적인 준비없이 소규모로 재런칭되었던 것이며, 그 후 브레게를 대규모로 성장시키려고 했던 Invest Corp시절에 인하우스 무브먼트로 사용하기에 부적절한 프레스티지를 가진 Lemania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1999년 Invest Corp로부터 브레게를 구입한 스와치는 이미 30여년간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있던 브레게를 파텍 필립이나 랑게급의 톱클래스 하이엔드로 성장시키기 위해 브레게를 재정비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스와치의 회장과 브레게의 사장을 함께 맡으면서 자신의 마지막 사업으로 브레게를 파텍 필립급의 하이엔드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데 전념하기로 결심한 니콜라스 G. 하이에크는 Bodet의 길을 따라 아브라함 브레게에 집중하게 됩니다. 하이에크의 스타일이 큰 노력을 통해 2005 발표된 La Traditon은 브라운 시대의 유산인 Type XX와 현대의 디자인트렌드를 쫒던 Marine 모델로부터 아브라함 브레게로의 회귀이자, 1970년대에 재런칭된 브레게에게 '인하우스 무브먼트'라는 톱클래스 하이엔드의 내재적인 조건을 처음으로 만족시킨 모델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의 35년간의 다소 혼란스러운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브레게는 적어도 2012년 현재까지는 파텍 필립이나 랑게에 비해 5% 쯤 부족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La Tradition이 등장한 2005년 이후에도 쇼메시절의 클래식 모델과 Invest Corp시절의 Type XX 모델이 주력 제품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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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La Tradition  등 최고의 프레스티지를 간직한 아브라함 브레게에 기반한 새로운 모델들이 기존의 클래식과 Type XX를 완전히 대체할 무렵, 우리는 파텍 필립, 랑게와 나란히 선 빅 3로서의 브레게를 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모델들은 La Tradition에 못지 않은 새로운 인하우스무브먼트를 통해 파텍 필립과 랑게 등에 의해 이미 확립된 '최상급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라는 톱클래스 브랜드로서의 도덕적 혹은 품질적 요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쇼메에 의해 브레게가 재런칭될 때 역시 소규모 공방이었던 F. Piguet와 인연이 이어졌고 F. Piguet가 브레게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로 자리를 잡았다면, 브레게는 랑게 보다 먼저 현재의 랑게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당시, F. Piguet는 울트라슬림 수동 무브먼트인 Cal. 21과 막 개발한 울트라슬림 자동 무브먼트인 Cal. 70을 생산하는 소규모 공방이었습니다. 이 울트라슬림 무브먼트들을 바탕으로 컴플리케이션을 개발하여 다른 브랜드들에는 수동과 자동의 기본 에보슈조차 공급하지 않고 브레게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로만 사용했다면, 브레게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는 JLC에 기반한 바쉐론 콘스탄틴과 오데마 피게을 넘어 그 당시의 유일한 하이엔드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가졌던 파텍 필립과 경쟁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2005년에 발표한 La Tradition 같은 오리지날 아브라함 브레게에 기반한 모델들을 추가해 나갔다면 파텍 필립이나 랑게에 비교하여 무브먼트를 포함한 제품의 종합적인 오리지날리티나 품질에서 그다지 밀릴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Bodet가 발굴해 낸 브레게 클래식의 매력적인 디자인이 조합되었다면 브레게는 이미 바쉐론 콘스탄틴과 오데마 피게를 쉽게 뛰어 넘어 파텍 필립, 랑게와 함께 2000년대의 '뉴 빅3'로 자리매김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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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스와치의 하이엔드 브랜드를 대표하는 브레게와 블랑팡의 현재와 같은 모습의 원인은 링고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역사와 운명의 소용돌이에 의해 잘못된 매치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진 프레스티지를 고려한다면 브레게는 F. Piguet와 블랑팡은 Lemania와 매치하여 브레게는 톱클레스의 하이엔드 브랜드로, 블랑팡은 고급 스포츠 브랜드로 재런칭했다면 이상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스와치에서 Invest Corp로부터 브레게를 인수했을 때 Invest Corp는 과거 오메가에 무브먼트를 납품하던 레마니아를 인수하여 함께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스와치는 브레게와 레마니아를 인수한 후 누벨 레마니아를 브레게와 합병하여 레마니아를 브레게의 제조시설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메가의 세일즈 매니저에서 물러나 창업을 생각하던  Biver가 젊은 시절의 친구였던 F. Piguet의 사장 Jaques Piguet와 의기투합하여 1983년에 블랑팡을 런칭했고, 스와치는 브레게에 앞서 1992년에 이미 블랑팡을 인수하여 스와치 그룹 내의 톱브랜드로 키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Invest Corp로부터 브레게를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브레게를 하이엔드 브랜드로 성장시키려고 한 스와치의 하이에크 회장은 브레게와 함께 인수한 누벨 레마니아를 브레게의 제조공장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레마니아는 오메가 등 중급 브랜드에 크로노그래프를 납품하는 중급 제조 시설을 가진 중급 업체였지, F. Piguet나 JLC같은 하이엔드 시계의 에보슈나 무브먼트를 만드는 공장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중급의 레마니아 공장에서 만든 시계에 대해 소비자들로부터 파텍 필립과 동급의 평가를 받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일정한 규모로 판매되기 시작한 1990년대의 Invest Corp 시절의 '레마니아 브레게'의 이미지 때문에 1999년 이후 스와치에 의해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받고도 브레게는 아직도 파텍 필립이나 랑게와 비교하면 한 단계 아랫급의 브랜드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환상처럼 느껴지는 '브랜드의 프레스티지'라는 것이 적어도 시계분야(콜렉터나 매니아들이 중심이 되는 전문가급의 소비자들을 가진 독특한 분야)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품질에 대해 확신을 부여하는 지속적인 역사에 의해 유지되지 않으면 결코 '톱클래스'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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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블랑팡은 브레게와는 전혀 다른 문제를 가지게 됩니다. 블랑팡의 무브먼트는 첫 출범때부터 전적으로 F. Piguet에 의해 제조되었습니다. 따라서, 출범초기 F. Piguet는 '블랑팡의 인하우스 무브먼트'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블랑팡이 톱클래스의 하이엔드가 되는 것에 성공했다면 F. Piguet의 무브먼트는 지금처럼 이런 저런 브랜드에 납품되지 않고 오로지 블랑팡만이 사용하는 전용 무브먼트로서 '블랑팡의 인하우스 무브먼트'가 되었을 것입니다. 더우기, F. Piguet의 무브먼트는 파텍 필립의 무브먼트에 비견될만한 품질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JLC처럼 자체 브랜드로 시계를 제조판매한 역사조차 없는 고급 무브먼트 전문 공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톱클래스에 등극하지 못한 가장 큰 문제는 F. Piguet를 인하우스 무브먼트로 사용하는 블랑팡에게 브레게나 파텍 필립에 비견될만한 역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블랑팡은 역사만 오래되었을 뿐, 결코 고급시계를 만들던 브랜드는 아니었던 것이며, 가장 가까운 역사에서는 ETA(당시는 ETA에 통합되기 전의 AS 무브먼트)를 사용하여 다이버시계(Fifty Fathoms)를 만들던 롤렉스나 오메가에 비해서도 몇 단계 아래의 시계를 만들던 중저급 시계브랜드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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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시계의 내재적 품질은 파텍 필립에 비견될만 한데.... 그 브랜드에서 느껴지는 품격은 JLC에도 한 참 밀리는 그런 수준이라고 할 지.... JLC와 F. Piguet는 에보슈 업체로서 비슷한 프레스티지를 가진 업체였습니다.  스위스 최상급의 에보슈 혹은 무브먼트를 만드는 업체중 1980년대초까지 살아남은 2개의 업체(비록 규모는 JLC가 대형 공장 수준이었음에 비해 F. Piguet는 작은 공방 수준)였기 때문입니다. 파텍 필립과 바쉐론 콘스탄틴에게 에보슈 혹은 조립된 무브먼트를 납품하던 JLC가 완성품 시계를 만들어도 그 가치는 찬란한 역사를 가진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급이 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결국 JLC가 스틸 케이스에 최상급 무브먼트를 넣어서 파텍 필립과 롤렉스 사이의 가격으로 시계를 판매하는 전략을 취할 수밖에 다른 선택이 없었듯이, JLC보다도 프레스티지에서 한 참 더 밀리는 블랑팡이 처한 입장은 JLC보다 더욱 불리한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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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팡은 랑게처럼 처음부터 '톱클래스의 하이엔드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브랜드가 아닙니다.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나 스위스로 이주한 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Jean-Claude Biver(현재 Hublot의 CEO)는 대학졸업후 백수가 되어 노닥거리던 젊은 시절 발레 드 쥬에서  알게 된 스위스 에보슈 공방의 전통 가문 출신인 Jacques Piguet(F. Piguet의 미래의 사장)의 도움으로 오데마 피게에 취직하여 시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후, 오메가로 회사를 옮겨 매니저로 근무하게 된 Biver는 쿼츠혁명을 견뎌내지 못하고 망해버린  '블랑팡'이라는 브랜드를 아마도 그 저렴한 가격 때문에 재미삼아 구입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쿼츠시대에 오메가를 그만두게 되자, 다시금 백수가 되어 발레 드 쥬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시계분야에서는 오랫동안 대기업이었던 오메가에서 배운 것이 '배포'였던 것인지, Biver는 발레 드 쥬에서 다시 만나게 된 예전의 친구인 Jaques Figuet에게 망할지도 모르지만 스위스의 전통적인 시계를 다시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이 시절은 저 유명한 F. Piguet조차 쿼츠무브먼트를 개발하여 연명하던 시절입니다.  Biver 정도의 배포도 없었고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릴 정도의 깡(?)도 없었던 내성적인 Jacques Figuet는 Biver의 그 제안에는 운명적으로 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Jacques Figuet와 명문 무브먼트 공방인 F. Piguet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의 독립적인 글을 통해 저절한 시기에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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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을 가진 두 젊은이의 객기로 쿼츠의 전성시대였던 1983년에 블랑팡이 재런칭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1950년대~1970년대에 다이버 시계 전문 업체로유명했던 브랜드가 단 10년만에 하이엔드 스위스 시계 브랜드로 재등장하게 됩니다. 물론, 이 10년이라는 시간적으로 작은 갭이 도리어 나중에 블랑팡을 인수한 스와치그룹에게는 하에엔드로서의 프레스티지를 만드는 데는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중의 이야기이며, 어쩄든 그 당시 대기업 매니저(한국의 과장급)에서 백수로 전락한 Biver가 되살리고 싶었던 것은 톱클래스의 전통 스위스 시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 그를 도운 사람이 아는 것이라곤 하이엔드 무브먼트밖에 없던 Jacques Piguet였으므로, 블랑팡이 재런칭되었을 때 발매한 시계들은 실상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의 품질에 필적하는 수준의 마스터피스 시리즈였던 것입니다. 즉, 그 당시 블랑팡이 만든 시계들은 분명 파텍 필립급의 품질을 가진 시계들이었습니다. 이 때 등장하여 수 많은 매니아들에게 오늘날까지도 명품으로 불리는 시계가 ETA의 Peseux 7001을 수정한 Bpanpain Ref. 7002입니다. 이 시계는 바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문대 크로노미터의 하나였던 Peseux 260에 대한 헌사였던 것입니다. 물론, 이 시계는 당시로서는 하이엔드 브랜드인 블랑팡의 제품이지만 ETA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었습니다. Biver와 Jacques Piguet는 용감했을 뿐 결코 사기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브랜드의 프레스티지'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던 순진한 젊은이들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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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시대에 역행하는 도전을 한 두 젊은이의 시도는 시대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기대이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1991년에는 손목시계 최초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1735을 발표하는 수준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Biver와 Piguet의 예상과는 달리 쿼츠시대임에도 고급 기계식 시계에 목말라 하던 수요자들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와 비슷한 일들을 크로노스위스와 IWC 등 새로이 브랜드를 시작하거나 아직 망하지 않은 스위스 시계 업체들이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들은 이런 기현상이 쿼츠시계로서는 뭔가 부족한(?) 크로노그래프와 회중시계에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쿼츠 무브먼트가 기계식 무브먼트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저렴해지면서(럭셔리의 반대 방향)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던 기계식 시계에 '럭셔리'라는 새로운 미래가 준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블랑팡은 하늘의 계시가 아닌 실업자가 된 30대의 갑갑한 처지에 놓인 두 젊은이들의 객기에 의해 새로운 시대에 초창기 멤버로 진입하는 우연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하지만, 행운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잠시의 성공뿐일 뿐 품격(프레스티지)까지는 아닌 것입니다.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을 구입하던 고급 시계 구매자들에게 낮은 인지도를 가진 신생 브랜드 '블랑팡'이라는 브랜드는 과거의 인지도나 이미지(프레스티지)로는 아무리 잘 만들었더라도 자신들이 익숙한 파렉 필립과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현대 자동차에서 내재적인 품질로 따진다면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에 뒤질 것이 없는 스포츠카를 개발하였으니 이를 같은 가격으로 판매하겠다는 전략을 선택한다면 한 대도 팔기 어려운 것과 비슷한 상황인 셈입니다.  그 결과 블랑팡의 중고시계 가격은 파텍 필립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락하게 되고, 결국 고급 시계 소비자들이 외면하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운 좋겠도 이런 끔찍한 사건은 이들이 블랑팡으로 최고의 성공을 거둔 1991년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1992년에 저렴하게(?) 만들어낸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인 블랑팡을 최고의 가격으로 스위스 시계 업계 최고의 큰 손인 스와치 그룹에 매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불어, Biver와 Jacques Figuet는 블랑팡의 매각과 함께 아예 스와치 그룹의 브랜드 CEO로 취직하여 꿩먹고 알먹는 행복한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젊음의 용기가 시대의 행운을 만나며 생기는 전형적인 석세스 스토리인 셈입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이야기는 현대에는 독보적으로 보일지라도 역사적으로는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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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손해를 본 것은 전적으로 블랑팡의 의외의 성공을 보고 블랑팡을 하이엔드급 브랜드로 구매한 스와치그룹이었습니다. 물론, 쿼츠시대에 쿼츠 스와치로 스위스 시계 전체를 구한 스와치로서는 그 정도의 손실이야 하이엔드 브랜드로의 진입에 대한 좋은 경험 정도로 치부해도 될 정도의 손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때 스와치 그룹의 회장 니콜라스 하이에크는 블랑팡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톱글래스의 하이엔드 시계소비자들이 내재적인 품질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 브랜드의 역사로부터 기원하는 '프레스티지'라는 것입니다. 프레스티지가 부족한 고가의 제품들은 그 시계에 대해 낮은 평가를 하는 2차 구매자들(대부분 전문컬렉터)에 의해 낮은 평가를 받게 되므로 중고가격이라는 제품의 재평가에서 쓴 맛을 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쓴 맛은 그 제품을 처음 구입했던 소비자에게는 악몽으로 남게 되는 것이며, 다른 소비자들에게는 경종을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즉, 브랜드의 '프레스티지'라는 말은 적어도 시계분야에서는 오랜 역사를 통해 전문소비자들(컬렉터나 매니아들)에게 오랜 기간 품질에 대한 신뢰성을 얻고, 그 신뢰성에서 비롯되는 높은 중고가격으로 그 제품을 처음 구입하는 '초보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줄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프레스티지란 브랜드의 역사에 대한 '전문소비자'들의 종합적인 평가인 '높은 빈티지 가격' 등을 통해 '일반소비자'들에게 ' 그 제품의 가격에 대한 신뢰성'을 부여하는 수십년 혹은 수백년간의 역사를 통해 탄생한 것이라는 점이었을 것입니다. 쿼츠시대에 스위스 시계 업계를 살려낸 영웅 니콜라스 하이에크는 스위스를 위기에서 구해낸 후에야 비로서 '시계매니아'의 입장을 통해 시계의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매커니즘인 '프레스티지'에 대해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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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이는 블랑팡을 Biver에게 비싼 값을 지불하고 인수하여 하이엔드 브랜드로 키우려고 했던 스와치의 하이에크 회장은 블랑팡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는 문제가 품질도 무엇도 아닌 바로 블랑팡이라는 브랜드의 프레스티지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블랑팡에 부족한 프레스티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7년 후에 다시금 브레게를 애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는 이미 성공적으로 재런칭된 랑게를 바라보며 시계의 품질면에서는 다소 엉망진창인 상황이지만, 프레스티지만으로는 파텍 필립이나 랑게보다 몇 단계 위에 있는 브레게를 파텍 필립이나 랑게가 가진 프레스티지의 근본에 놓인 '인하우스 무브먼트'로 뒷받침함으로써 시간은 걸리더라도 파텍 필립이나 랑게와 경쟁할 톱클래스의 하이엔드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1980년대에 스위스 시계의 명성을 쿼츠 세이코에 대항하는 쿼츠 스와치로 구해낸 거물 경영자인 하이에크의 눈으로 1990년대에 바라본 2000년대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성장가능성이 패션브랜드 스와치나 중급 브랜드 오메가보다 더 커보이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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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치에서 1999년 브레게를 애입하므로써, 블랑팡은 1999년 스와치 그룹 내에서 브레게 다음의 위치로 밀려나게 됩니다. 그 후, 스와치는 블랑팡이 혼자 사용하기에는 아까운 F. Piguet의 무브먼트를 브레게급의 프레스티지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Jaquet Droz을 출시하면서 전용 무브먼트로 공급함으로써 F. Piguet는 더 이상 블랑팡의 '인하우스 무브먼트'가 아닌, 브레게, 블랑팡, Jaquet Droz의 공용 무브먼트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 결과, F. Piguet는 더 이상 블랑팡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로 남을 수 없었던 것이며, 브레게, 블랑팡, 자케 드로는 모두 톱클래스가 될 수 없는 입장에 처한 것입니다. 2005년 스와치 그룹은 브레게를 위해 La Tradition 무브먼트를 개발함으로써 브레게를 위한 프레스티지를 준비하게 됩니다. 물론, 블랑팡을 위해서 몇 가지 무브먼트를 개발하고, 독립제작자로 유명한 칼라브라제를 블랑팡의 기술감독으로 영입하는 것으로 블랑팡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하지만, 스와치 그룹에 편입된 블랑팡은 스와치 그룹에서 브레게를 인수한 1999년 이후 1992년 이전의 블랑팡의 프레스티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결과 블랑팡은 이제 자신의 갈 길이 파텍 필립니아 랑게의 길이 아닌 JLC의 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현재 리치몬트의 JLC와 경쟁하는 스와치의 JLC가 되어 있는 셈입니다. 즉, 블랑팡의 경우에서 보듯이 최고의 하이엔드 브랜드인 파텍 필립이나 바쉐론 콘스탄틴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이들과 같은 화려한 역사에서 오는 프레스티지와 그 프레스티지를 지탱해줄 내재적인 품질의 2가지 요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 어느 하나만으로는 톱클래스의 품격과 가격을 결코 유지할 수 없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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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블랑팡과 브레게의 경우에서 보듯이 인하우스 무브먼트와 브랜드의 프레스티지의 가치를 비교한다면 프레스티지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2000년대초까지 스와치 그룹 내에서 최고의 품질을 가졌던 브랜드는 블랑팡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블랑팡이 결코 도달하지 못했던 톱클래스의 하이엔드의 길을 가고 있는 브랜드가 현재까지는 브레게인 것입니다. 브레게에는 블랑팡으로서는 품질만으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프레스티지를 100년 전의 역사인 아브라함 브레게의 회중시계를 통해 현재까지도 각종 경매를 통해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브레게와 블랑팡을 파텍 필립이나 랑게와 비교했을 때 브레게는 5%(인하우스 무브먼트의 문제) 부족하지만, 블랑팡은 20%(프레스티지의 문제)나 부족해 보이는 이유인 것입니다. 투자와 노력으로 톱클래스의 품질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 품질에 합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 소비자들이 마음 속에 각인된 '프레스티지'이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것이 노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현실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 모든 것일 결정되는 운명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랑게를 재런칭한 Blumlein은 그런 점에서 DNA는 운명적으로 내려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후손들이 현재를 통하여 과거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멋지게 증명한 후천개벽론을 입증한 인물이기도 한 셈입니다. 링고가 랑게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시계도 마음에 들지만, 그 시계를 만든 사람들이 더 마음에 드는 시계.... 이런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것이야 말로 링고와 같은 키보드 분석가들만이 느낄 수 있는 늦은 밤과 새벽의 색다른 기쁨인지도 모르겠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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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살펴보겠지만,  1994년에 재등장하게 되는 랑게는 톱클래스 하이엔드가 되기 위한 2가지 요건을 기묘하게 조합하여 역사의 순리로서의 하이엔드가 아닌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보게 만드는 하이엔드의 마법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그 결과, 20세기말에 재런칭된 랑게(독일식 발음으로는 '랑에')는 19세기 말에 등장한 파텍 필립이 100년간의 역사를 통해 만들어낸 프레스티지를 단 10년만에 만드는 데 성공한 거의 유일한 브랜드입니다. 그리고, 랑게의 믿어지지 않는 성공을 지켜본 수 많은 브랜드들이 랑게의 성공이 디스플레이백을 통해 드러난 '인하우스 무브먼트'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 현재의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전성시대'를 가져오게 만든 중요한 사건이기도 했었던 것입니다. 이미 고인이 된 랑게의 실질적인 창업자였던 Gunter Blumlein(당시 JLC,  IWC가 소속되어 있었던 LMH의 사장)의 상식을 거스르는 그러나 성실한 '럭셔리 시계의 초고급화 런칭전략'이 멋지게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Blumlein에게 큰 공부가 되었을 것이 바로 브레게와 블랑팡의 케이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통해 링고로서는 '시계의 프레스티지'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반면, 글라슈테 오리지널은 브레게와 블랑팡을 운영하던 '당장의 이익도 유지하면서 프레스티지를 향상시킨다"라는 스와치의 신규 브랜드 런칭방식에 따라 런칭되었고 그 결과 스와치의 랑게가 되지 못하고, 스와치의 JLC나 블랑팡급의 브랜드가 되고만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 2 부에서 랑게와 글라슈테 오리지널의 창업과정을 통해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2012년 11월 4일 새벽 04:10

 

링고 씀.

 

 

* 이제 비로서 링고가 애초 하고 싶었던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함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랑게와 GO...

비슷해 보이지만 정말 다른 역사를 가진 브랜드.

역사를 거슬러 10년만에 완벽한 프레스티지를 만들어낸 랑게와 그 랑게의 성공을 이용하여 '가장된 프레스티지'를 만들어낸 GO.

이들의 재런칭 이야기는 타고난 프레스티지를 가진 브레게와 품질은 톱클래스였으나 프레스티지는 없었던 불운한 브랜드 블랑팡과는 전혀 다른

그러나 더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었던 토양은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분단되어 서방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었던 글라슈테의 시계들이 오로지 독일의 급작스런 통일의 부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음의 이야기는 하이엔드 무브먼트와 프레스티지에 대한 2번째 이야기이자 역사를 거슬러 톱클래스의 하이엔드가 된 랑게의 초기역사와 어디서 나왔는 지 알 수 없는 안개 속의 브랜드 GO에 대한 기괴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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