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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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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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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매력 5 :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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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톱클래스 하이엔드 브랜드의 프레스티지에서 차지하는 인하우스무브먼트의 비중

 

앞 글인 '인하우스 무브먼트와 프레스티지'에서 톱클래스 하이엔드 브랜드의 프레스티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프레스티지'는 역사에 의해 얻어지는 것인데,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사용이 그렇게 중대한 요소인가?라는 의문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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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클래스의 하이엔드 브랜드란 결국 '높은 품질의 고가의 시계를 만들어 고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온 역사'에서 생겨난 프레스티지(파텍 필립, 브레게의 경우)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즉,  우리가 톱클래스의 시계들에서 느끼는 '프레스티지'란 최고가의 시계를 구매해온 소비자들에게 그 가격에 합당한 퀄리티를 인정받아온 경험들의 집합으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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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퀄리티'라는 말을 분석적으로 표현한다면 '귀금속의 케이스', '고급 다이얼', 그리고 '고급 무브먼트'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급 재료의 조합에 의해 비싼 이유가 그 브랜드의 소비자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  '구매경험'들이 축적되고 이 경험들이 다른 소비자들과의 소통에 의해 명성을 이루었을 때 비로서 톱클래스 하이엔드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으로 '톱클래스의 하이엔드 브랜드'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가격은 필수요건입니다. 물론, 그 일정수준이란 중고급시계(롤렉스와 오메가)와 차별화되는 엄청난 가격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가격은 엔트리 모델에서도 유지되어야 합니다. 진입장벽이 낮은 브랜드는 결코 최고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톱클래스의 하이엔드라면 엔트리모델도 귀금속시계여야 하는 셈입니다. 엔트리모델에서 스렌레스 스틸제 모델이 떠오른다면 그 브랜드는 결코 톱오브톱을 지향하는 브랜드는 아닌 것입니다. 가장 싼 모델조차 '아무나 쉽게 구매할 수 없는 가격'이야말로 톱클래스 하이엔드 브랜드 엔트리모델의 필수요건입니다. 물론, 그런 가격에 합당한 품질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멀지 않아 소비자들로부터 거품브랜드로 인식되어 외면받거나 오랜기간 유지해온 '프레스티지'도 서서히 '거품'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거품에 대한 평가는 세일폭, 중고가격에 거의 즉각적으로 반영됩니다. 이런 점이 1970년대초까지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등의 톱클래스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스포츠 시계를 발매하는 데 느낀 어려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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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텐레스 제품의 비중이 높아지면 결국 그 브랜드는 더 이상 파텍 필립과 경쟁하는 톱클래스가 될 수 없고, 롤렉스, 카르티에, 오메가와 경쟁하는 중고급 브랜드로 자리를 옮겨야하기 때문입니다. 실상, 카르티에는 역사적으로는 1960년대 이전까지는 파텍 필립 등 빅 3와 대응한 브랜드였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롤렉스급으로 내려온 대표적인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계 매니아들은 스틸케이스에 ETA를 사용한 롤렉스 가격의 카르티에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카르티에의 시계역사는 의외로 매우 오래되었으며, 1960년대 이전까지는 엔트리모델이 LeCoultre의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스텐레스 스틸제의 시계를 찾아보기 어려운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와 거의 대등한 브랜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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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쳐 프랭크 뮬러, 카르티에, 오메가, TAG Heuer  등에게 쏟아졌던 매니아들의 비난이 ETA의 사용 때문이었다는 것은 중고참급 시계 매니아들이라면 익숙한 이야기들일 것입니다. 즉, 톱클래스 하이엔드 브랜드는 물론 중고급시계(오메가 혹은 그 이상의 가격을 요구하는 브랜드)의 '무브먼트에 대한 품질적 요건'이란 '인하우스 무브먼트' 혹은 다른 브랜드에서 발견할 수 없는 전용 무브먼트의 사용입니다. Tissot이나 Hamilton에서 사용하는 무브먼트를 사용하면서 파텍 필립이나 롤렉스급의 가격을 받는다면 소비자들로부터 거품가격이라고 비난받을 것이며 중고의 가격은 폭락하게 되고, 결국 시계의 세일폭을 늘려야 비로서 팔리게 될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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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빈티지 컬렉터들이 파텍 필립과 바쉐론 콘스탄틴의 격차가 생겨난 시기를 파텍 필립이 인하우스 무브먼트 전략을 채택한 반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바쉐론 콘스탄틴이 LeCoultre의 에보슈를 채택한 1930년을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파텍 필립의 인하우스 무브먼트가 LeCoultre의 에보슈보다 더 좋다는 것을 실상 입증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LeCoultre가 바쉐론 콘스탄틴과 오데마 피게에 공급했던 전용무브먼트들인 LeCoultre Cal. 903이나 920의 무브먼트는 파텍 필립으로서는 개발하기 어려운 울트라슬림 무브먼트였습니다. 파텍 필립이 LeCoultre cal. 903의 개발에는 투자하지 않았지만  LeCoultre의 울트라슬림 자동 무브먼트인 Cal. 920 개발에는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와 공동으로 투자하여 함께 사용했다는 역사로 보더라도 LeCoultre의 무브먼트 개발 능력은 파텍 필립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판매제품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울트라슬림계열의 시계들에서 파텍 필립은 Cal. 215, 315 등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사용했지만, 바쉐론 콘스탄틴과 오데마 피게는 LeCoultre의 범용 무브먼트(LeCoultre 자체 브랜드 제품에 사용하며 다른 여러 브래드에도 제공되는 무브먼트)인 Cal. 818(섭세컨드 수동), 889(센터세컨드, 데이트 자동) 등을 사용하게 됩니다. LeCoultre Cal. 818이나 889를 사용하는 모델들과 파텍 필립의 Cal. 215나 Cal. 315를 사용하는 모델을 같은 가격으로 판매한다면 이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선택은 분명해 질 것입니다. 판매량의 높은 모델들이 주로 심플 수동이나 데이트형 자동 모델들의 엔트리 모델들이므로, 여기서 차이가 생겨나면 다수 소비자의 의견이 중요한 브랜드의 전반적인 프레스티에 곧바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링고가 우수한 심플수동 무브먼트가 없이는 톱오브톱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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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무브먼트 전문업체에서 만든 LeCoultre Cal. 818과 889가 과연 파텍 필립의 Cal. 215나 315보다 구조적으로 열등하다거나 오차가 크다는 등의 기계적인 하자를 입증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프레스티지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훨씬 급이 낮은 브랜드에서도 사용하는 무브먼트이기 때문에 톱클래스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이런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하는 것은 소비자의 기대치에 대한 배반이라고 하여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만일 파텍 필립이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와 함께 LeCoultre의 에보슈를 사용했다면, 파텍 필립과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는 오로지 케이스와 다이얼 디자인을 제외한다면 품질상으로 별다른 차이도 없는 시계가 되었을 것입니니다. 그래서 파텍 필립은 울트라 슬림과 크로노그래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계를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사용하였으며, 인하우스 무브먼트와 에보슈 무브먼트에 모두 프리스프렁 밸런스를 적용하고 제네바씰을 받는 고급화 전략을 택하므로써 손목시계 시대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바쉐론 콘스탄틴과 격차를 벌리며 톱오브톱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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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하우스 무브먼트는 동급 클래스의 시계 브랜드들에서 우열을 결정하는 중대한 인자의 하나인 것입니다. 즉, 초보 구매자로서 시판되는 시계들의 디자인에 집중한다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인하우스 무브먼트'가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의문을 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번에 걸쳐 시계를 구매하게 되는 소비자들의 입장이나 시계 컬렉터들의 시각으로 시계들을 비교한다면, 같은 클래스에서 프레스티지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가장 큰 요인의 하나가 '인하우스 무브먼트'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앞선 글들에서 링고가 설명해왔던 2000년대의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전성시대'를 열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하이엔드 내에서 우열을 가리는 가장 중요한 인자의 하나가 인하우스 무브먼트이기 때문에 톱클래스의 하이엔드를 지향하는 많은 브랜드들이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개발에 전념하는 역사가 2000년 이후의 시계 브랜드들의 역사인 것입니다.

 

톱클래스 하이엔드 브랜드 사이의 이런 우열이 생겨나는 과정을 충분히 지켜보고서 출범한 것이 바로 '랑에 운트 죄네'와 '글라슈테 오리지날'입니다.

 

 

2. 랑게와 GO의 런칭 이야기

 

글라슈테를 대표하는 2개의 하이엔드 브랜드인 랑게와 GO는 태생부터가 다른 브랜드들입니다. 1945년 2차대전으로 동서독으로 분리되고 동독에 속하게 된 글라슈테의 대표적인 하이엔드 브랜드였던 랑게는 1994년 재런칭때까지 실상 역사에서 사라진 브랜드였습니다. 한편, GO의 모 회사인 GUB(Glashuetter Uhren-Betrieb)는 동독에 속하게 된 글라슈테의 모든 시계 회사들을 통합하여 설립된 동독의 국영시계회사로 1948년에 탄생하여 현재까지 계속해서 시계를 만들어 오고 있는 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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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게는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던 Lange 가문의 장자인 Walter Lange가 통독의 소식을 듣고 동독의 GUB로 달려가 GUB로부터 랑게의 브랜드를 구입하고 이어 동독에 남아 있던 랑게의 옛 장비 등을 구입하여 랑게를 부활시키려던 소망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자신이 독일 출신으로 글라슈테 지역의 톱클래스 브랜드였던 랑게를 하이엔드 브랜드로 부활시켜보고자 LMH의 사장이었던 Gunter Blumlein의 LMH(당시는 IWC와 JLC로 구성된 서독 만네스만의 자본으로 설립된 회사)의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1990년부터 4년간의 준비를 거쳐 처음부터 하이엔드의 톱클레스의 진입을 노리고 준비되어온 브랜드였습니다. 그러나, GO는 GUB를 인수한 서독의 사업가 Heinz Pfeiffer에 의해 기존의 GUB 제품을 바탕으로 투루비용 등 초고가 제품을 추가하고 일부 구조를 개선하고 피니싱을 개선하는 스타일로 동독 시절의 제조시설과 기술자들을 기반으로 하여 고급화 전략을 통해 발전해 온 브랜드였던 것입니다. 즉, 랑게는 처음부터 스위스의 빅 3급의 브랜드로 탄생한 브랜드임에 반하여  GO는 현대의 러시아 시계(실제로는 글라슈테 지역의 시계기술자들을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켜 개발한 시계들)와 큰 차이가 없었던 동독의 시계(일본의 시티즌급 시계?)를 바탕으로 고급화 전략을 통해 등장한 브랜드인 것입니다. 즉, 이들 두 브랜드는 태생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랑게는 태생부터가 하이엔드 시계였지만, GO의 태생은 러시아제 시계 혹은 시티즌급 시계였던 것입니다. 다만, 서방세계에는 스와치로 넘어간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GUB 대신에 'Glashutte Original'이라는 브랜드로 소개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랑게의 후광효과가 더해져서 '글라슈테의 형제 브랜드인 랑게에 비해 가격이 조금 저렴한 하이엔드 시계'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 실증적인 증거를 몇 가지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GUB의 마지막 자동무브먼트와 Glashutte Original의 초창기 자동무브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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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Grashutte Original은 신형 자동무브먼트인 Cal. 100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 GO의 자동무브먼트로는 Cal. 39가 사용되었습니다. GO의 Cal. 39는 GO의 섭브랜드인 Union의 Cal. 26으로도 사용되었던 그야말로 GO의 2005년 이전의 모든 무브먼트들의 베이스 무브먼트였습니다.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1990년의 통독후 2000년 스와치로 넘어가기 전의 GUB 혹은 Glashutte라는 브랜드로 판매되던 GUB의 시계들을 찾아보면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생산된 Cal. 10-30이라는 무브먼트를 발견하게 됩니다.  만일1992년 이전으로 가면, 1990년 이전에는 소위 1970년대 스타일의 시계들 속에서 GUB Cal. 11-25 패밀리를 만나게 되고, 1990년에서 1992년 사이에는 ETA 2824를 사용한 시계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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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전에 만나게 되는 GUB의 시계들에는 이미 GUB라는 마크 대신에 필기체의 Glashutte라는 로고를 만나게 되며, 비슷한 시기의 세이코나 시티즌과 시계 케이스,  다이얼은 물론 무브먼트의 분위기까지 흡시한 시계들을 만나게 됩니다. 일본 빈티지 시계에 익숙한 분들에게 다이얼의 로고를 지우고 보여주거나 무브먼트만 보여준다면 "세이코? 시티즌?"하고 되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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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통독이 되고, 얼마 후 GUB는 앞서 언급한 France Ebauche로 넘어가게 되고, 동독의 저렴한 인건비를 이용하여 저렴하면서도 품질 좋은 무브먼트를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던 France Ebauche는 GUB의 생산시설을 현대화하며 한 동안 ETA 2824를 사용하게 됩니다. 물론, 통독이 된 후 입맛이 고급이 된 동독 사람들에게 판매할 '시시한 인민시계 GUB'가 아닌 '고급스러운 Glashutte 시계'가 필요한 점도 ETA 2824를 채용한 이유의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1990~1992년의 공백기를 거쳐 GUB는 기존의 자동 무브먼트였던 시티즌틱한 Cal. 11-25 패밀리 대신에 ETA 2824의 분위기를 가진 고급 무브먼트 GUB Cal. 10-30을 개발하게 된 것입니다. 아래 대비 사진에서 보듯이 싸구려틱한 니켈 도금의 Cal. 11-25와 달리 GUB의 신형 무브먼트 Cal. 10-30은 금색 도금과 은색도금이 조합되어 고급스럽게 보이는 것은 물론 ETA 2824의 에타크론 레귤레이터 디자인도 도입하게 됩니다. GUB에서 만든 최초의 ETA급 자동무브먼트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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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브먼트를 사용한 대표적인 모델의 하나가 1993년도의 제품으로 발견되는 SPEZIMAT라는 시계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별로 유명한 시계가 아니었으므로 동독 GUB 시절의 보통 시계 가격으로 판매된 시계들입니다. Seiko 5보다는 조금 비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ETA 2824를 사용한 FORTIS보다는 저렴한 시계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GO의 명성에 힘입어 독일 옥션 등지에서 300~500 EURO 정도에 팔리는 고가의 빈티지 모델입니다. 당시에 돈이 조금 부족해서 이 시계를 샀던 사람이라면, 20년 동안 이 시계를 지겹게 사용하다거 올 겨울 이 시계를 중고로 팔고  FORTIS의 신품 자동 시계를 구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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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France Ebauche가 파산하면서 GUB가 서독의 사업가 Heinz Pfeiffer에게로 넘어간 후에 발매된 시계들에는 Glashutte 대신에 Glashutte Original이라는 명칭이 붙으면서 무브먼트도 금색기조에서 은색기조로 변하게 됩니다. 위의 시계와 비슷한 모델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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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Glashutte Original의 Navigator 시계이며, 무브먼트는 로터 아랫 부분의 베이스 무브먼트의 색조만 금색기조에서 은색기조로 변경된 GO Cal. 10-30입니다. 1994년에서 1997년 사이에 제조된 GO의 시계를 잘못 구입하면 매력적인(?) Cal. 100이나 Cal. 39가 아닌 싸구려 무브먼트인 Cal. 10-30이 장착된 GO를 구매하시게 될 지도 모르니 주의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기본 구조는 동일한 무브먼트지만 품질은 아주 많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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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경 GO Cal. 10-30(GUB Cal. 10-30)은 Union Cal. 26과 GO Cal. 39으로 칼리버명이 변경되게 됩니다. 피니싱은 1998년 이전의 GO보다는 Union이 더 좋아 보이네요.

 

빈티지나 중고를 구입하실 때는 브랜드의 프레스티지(?) 보다는 무브먼트를 직접 보시는 것이 가성비(가격대비성능비)가 높은 제품 고르는데 도움이 될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느끼는 브랜드의 프레스티지만으로 빈티지를 고르다가는 바가지 쓰기 쉽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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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on의 Cal. 26과 GO Cal. 39의 차이점은 로터의 모양과 레귤레이터 그리고 피니싱입니다. Union Cal. 26이 ETA 스타일의 레귤레이터를 채용하고 있음에 비해, GO Cal. 39는 스완넥 레귤레이터를 채용한 점과 은색의 로터에 금색의 G마크와 로터의 22K 아웃터링이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구조는 동일한 무브먼트입니다. 물론, 이 둘은 모두 1992년 France Ebauche 휘하의 GUB에서 개발한 GUB Cal. 10-30과 동일한 구조를 가진 것입니다. 물론, GO Cal. 39의 품질은 여러 가지 점에서 Union Cal. 26이나 GO Cal. 10-30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2) GO의 대표적인 수동 무브먼트 Cal. 49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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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바젤페어에 등장한 GO의 제품중에서 매니아들의 환호를 가장 많이 받은 제품은 클래식 1845의 수동 모델과 GO의 섭브랜드인 Union의 Bergter모델들이었습니다. 자동 무브먼트  GO Cal. 39와 Union Cal. 26과 달리 수동무브먼트였던  GO Cal. 49와 Union Cal. 30은 스완넥 레귤레이터까지 공유하여 피니싱에서만 조금 차이가 나는 무브먼트였기 때문입니다. Lange 1815의 가격이 톱클래스 하이엔드급의 가격이었고, ETA 7001의 수정무브먼트인 Nomos 등에서는 글라슈테만의 저 아름다운 3/4 플레이트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매니아들에게 Union의 Bergter 스몰 세컨드 모델은 고급 무브먼트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환상적인 시계로 여겨졌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Union이 이 모델을 극소량만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물건을 좀체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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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GO는 유니온에 비해 조금 비싸더라도 유일한 다른 대안이었던 GO의 Klassic 1845의 생산도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아서, Union Bergter는 물론 GO의 클래식 1845도 구하기 어려운 시계에 속했습니다.  링고와 GO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초 Union Bergter는 링고에게도 저렴한 드림와치의 하나였습니다. 하이엔드 브랜드의 수동 엔트리 모델에 집중하던 링고에게조차 GO와 Union의 섭세컨드 모델은 정말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섭세컨드 모델이 엔트리 모델이며 가장 흔한 모델인데 GO에서는 이 엔트리모델이 가장 귀한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섭세컨드 수동의 엔트리 모델 제조는 회피하면서 퍼페츄얼 캘린더 같은 고급 모델조차 Union이라는 섭브랜드 모델에서 만드는 것일까? GO는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도무지 그 정체성을 이해하기 어려운 브랜드였습니다. 심플 수동 모델보다는 복잡시계에 치중하면서, 그 복잡시계는 스텐레스 스틸 모델은 물론 섭브랜드까지 만들어서 더욱 저렴하게 판매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결코 하이엔드 브랜드의 전략은 아니었으며, 아무리 좋게 보아도 롤렉스형 중고급시계의 전략이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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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기간 GO의 이 기괴한 판매정책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전에 1995년 GO의 150 주년 모델인 수동 12-50 모델을 발견하게 됩니다.  위의 사진의 무브먼트입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GO의 '괴기스러운 엔트리모델'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GO Cal. 49는 겉보기와는 달리 정말 시시한 무브먼트였던 것입니다. 사진에서 무브먼트 외곽의 홈이 보여주듯이 명복상 수동 무브먼트이지 실상은 자동 무브먼트에서 로터를 제거한 수동 무브먼트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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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GO Cal. 49라는 수동무브먼트는 Cal. 39의 자동 무브먼트에서 로터를 제거한 자동무브먼트의 수동 버전이었던 것입니다.  1970년대 이후 2000년대 이전까지 대부분의 하이엔드 브랜드들에서 수동 무브먼트를 개발한 역사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랑게가 1994년에 정말 몇 십년만에 수동 무브먼트, 그것도 매우 매력적인 수동 무브먼트를 개발한 회사였기 때문에 수 많은 매니아들에 의해 파텍 필립과 경쟁할만한 유일한 브랜드로 여겨졌었던 것입니다. 그 외의 브랜드들에서는 1970년대 이후 자동무브먼트에서 로터를 제거하는 형태의 '억지 수동무브먼트'들이 만들어졌었던 것입니다. 자동무브먼트에서 로터를 제거하고 메인스프링배럴을 수정하면 수동무브먼트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는 먼저 자동 무브먼트를 개발하고 여기서 로터를 제거하고 메인스프링 배럴의 구조를 변경하여 적당히 톱플레이트를 디자인함으로써 수동 무브먼트를 제조하는 방식이 유행했습니다. 이는 스위스의 하이엔드 브랜드들의 수동무브먼트 제조방식의 새로운 트렌드의 하나기이도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재런칭되어 매니아들의 시선을 끌던 랑게와 비견되던 GO가 이런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링고조차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이엔드로 자리잡은 브랜드들과 경쟁하려는 초보 브랜드의 입장에서 톱클래스 하이엔드의 흉내를 내면서 하이엔드에 진입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정말 황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GO는 그런 일을 했고 본인도 기대하지 않았을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쩝...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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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당한 역사적인 사건은 1995년에 시작되었습니다. 1994년 GUB를 인수했던 Heinz Pfeiffer는 그 당시의 하이엔드 진입공식에 대해 매우 익숙했던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1990년대의 하이엔드의 진입공식이란 '투루비용으로부터 시작하라'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 프랭크 뮬러, 폴 쥬른, 지라드 페레고 등 수 많은 하이엔드 진입을 노리던 브랜드들이 그렇게 시작했었습니다. 이 공식에 익숙던 Heinz Pfeiffer는 동독의 GUB를 인수한 후 GO의 브랜드 이미지로는 도달할 수 없는 하이엔드 GO를 위해 Julius Assman이라는 모델을 준비합니다. GO라는 브랜드의 한계를 절감한 Pfeiffer는 바로 전년도에 출시된 A. Lange & Johne의 영향을 받아 글라슈테 지역에서 Adolf Lange 이후의 유명 시계제작자의 한 명이었던 Julius Assman에 주목하여 Julius Assman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명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 결과 1995년에 발표한  GO의 최고급 모델들은 Julius Assman이란 모델명의 투루비용 퍼페츄얼캘린더 모델로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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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당시 GUB가 생산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무브먼트였던 GUB Cal. 10-30으로부터 투루비용과 퍼페츄얼캘린더를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퍼페츄얼 캘린더 모듈을 어디서 개발했는 지는 분명치 않지만, 투루비용은 AHCI의 멤버이자 투루비용의 대가인 Paul Gerber였습니다. 이렇게 스위스의 퍼페츄얼 캘린더와 투루비용 전문의 장인들에게 GUB Cal. 10-30의 퍼페츄얼 캘린더와 투루비용을 주문하여, 1995년에 GUB의 첫번째 복잡시계인 'Julius Assman 투루비용 퍼페츄얼 캘린더'를 한정판으로 발매하게 됩니다. 이것이 GUB의 하이엔드화 과정의 첫번째 발걸음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다소 동키호테적인 시도가 성공을 거두리란 것은 사장인 Heinz Pfeiffer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세상은 조금 엉뚱하게 진행되기도 합니다. GO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링고의 추측으로는 GO를 Julius Assman의 하이엔드와 Union의 중급시계 브랜드로 재편하려던 계획이 의외의 성공 때문에 하이엔드 GO와 중급 Union으로 재편되었고, Union의 GO 무브먼트 모델 생산중지, ETA 모델로의 변경 전략을 가져온 것입니다. 즉, 랑게와 GO를 대등한 품질로 착각한 소비자들 때문에 GO는 Nomos의 길 대신에 랑게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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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의 사진은 1995년 GO가 만들었던 Cal. 49의 선배인 Cal. 50의 사진이며, 우측은 1994년 10월에 처음 발표되었던 Lange의 무브먼트 사진입니다. 물론, 1994년 당시 랑게는 투루비용 모델인 Pour le Merite, Lange 1, Arcade, Saxonia 등을 발표하였고 Lange 1815는 1995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우측의 무브먼트는 비교의 편의상 Lange 1815의 무브먼트였던 Lange L941.1의 사진을 예로 든 것입니다. 랑게는 1994년 처음 발표되었을 때부터 이미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시계였고, 1995년에는 이미 여러 곳으로부터 그 해의 시계로 선정된 유명한 시계이므로, 시계 업계에서는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던 시계였다는 것입니다. 즉, 1994년에 GUB를 인수하여 1995년에 150 주년 기념 시계를 만들던 당시 GO는 이미 Lange의 무브먼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O의 Cal. 50은 랑게의 무브먼트의 특징들인 '채톤링과 파란나사', '제네바 스트라입을 가공한 로륨도금의 3/4플레이트, 스완넥 레귤레이터, 밸런스콕의 조각 등에서 랑게의 무브먼트를 모델로 삼은 것이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자동 무브먼트의 수동 버전인 12-50의 디자인을 변경하고, 마침 그 수동 버전의 칼리버의 넘버였던 Cal. 50으로 명명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무브먼트에 기재된 글자들을 잘 살펴보면, 랑게에서 "Glashutte in Sachsen"이리고 기재한 내용까지 거의 복사하여 단지 필기체로 "J. Assman Glashutte in Sachsen"이라고 표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GO가 아무리 우연이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믿어지지 않을 '랑게의 의도적인 복각'(Fake)이었던 것입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랑게 짝퉁'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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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의 사진이 1995년 한정판으로 몇 개 생산되고는 생산이 중지된 GO Cal. 50의 사진이고, 우측이 그후 오랫동안 사용된 GO Cal. 49의 사진입니다. 밸런스콕의 조각이 사라졌고, 앞서 랑게를 모방한 것이 너무도 분해 보이는 각인의 내용이 변경되면서, 'Glashutte Original'이라는 표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링고의 추론은 이렇습니다. 1994년 GUB를 인수하고, 1995년 150 주년 기념판을 만들려던 시기에 1994년말에 발표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랑게의 무브먼트들을 구경하게 됩니다. 랑게의 시계는 첫 런칭이후 줄곧 디스플레이백이었습니다. 더구나, 랑게의 3/4플레이트는 랑게가 새로 발명한 무엇이 아니라 글라슈테 지역에서 생산되던 회중시계 무브먼트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3/4플레이트의 무브먼트 디자인에 대해 특허권 같은 것이 있을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GO의 뿌리도 글라슈테이고, 엄밀히 따지면 Lange역시 GUB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다만, 너무 베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밸런스콕의 조각을 제거하고,  "Glashutte in Sachsen"라는 문구도 제거해 버립니다. 그리고, 무브먼트의 넘버도 50에서 49로 변경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자동 무브먼트의 넘버는 Cal. 39로 되었던 것이지요. 당시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면 이 무브먼트의 칼리버가 50번이었기 때문에 이를 투루비용으로 수정한 Julius Assman 1(혹은 Julius Assman Tourbillon)의 무브먼트는 Cal. 51이었습니다. 해외 시계 매니아의 주장에 따르면 1995년 Julius Assman 1모델은 원래 Cal. 50을 채용한 모델이었고, 투루비용 모델의 정식 명칭은 "Julius Assman Drehganguhr"이었다고 합니다. Drehganguhr은 독일어로 투루비용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1995년에 발표한 최초의 Julius Assman 1이었던 모델은 Cal. 50을 사용한 심플 수동 시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료는 그 이후 GO의 모든 카탈로그에서 사라지고, Julius Assman 1 모델은 투루비용 모델로 알려져 있고, 그 이후 Julius Assman 모델들은 Meissen다이얼을 채용한 타임온리 모델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루비용 모델들입니다. 최근에 발표되었던 Julius Assman 4 모델도 스켈레턴 스타일의 투루비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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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그 이후로 GO의 Lange 모방하기는 매우 노골적이었습니다.  GO가 2002년에 발표한 Panoreserve는 1994년 센세이션을 일으킨 랑게 1의 다이얼을 조잡스럽게 모방한 시계였고,  Cal. 49와 Cal. 39를 대체하기 위해 2002년과 2003년에 각각 발표된 Cal. 65와 Cal. 90은 랑게 무브먼트의 보다 본격적인 모방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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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레귤레이터라는 다소 뜬금없는 기술로 시선을 흐리면서 Cal. 65가 시도한 것은 결국 Cal. 49 당시 조금 찝찝해서 제거했던 밸런스콕에 랑게의 밸런스 조각을 도입(대신 금색으로)하는 것이었고, 자동 무브먼트 버전인 Cal. 90에서 멋진 더블 레귤레이터를 보여주기 위해 도입한 3/4 플레이트형 로터 디자인은 결국 랑게마틱을 모방하기 위한 명분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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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쯤 GO에 대해 링고가 느낀 것이 '브랜드와 디자인을 베낀 중국산 제품이 불법적인 짝퉁이라면 GO와 같은 독자 브랜드를 가진 제품들은 합법적인 짝퉁인 것일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당사자인 랑게도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조용히 지내는데... 링고 같은 키보드 분석가가 이런걸 시비거는 자체가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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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연으로 1995년 GO의 초창기부터 GO에 다이얼을 제공해온 Meissen의 시계 다이얼이 아깝게 보이는 브랜드 GO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막을 내려야 할 듯합니다. GO가 그들의 하이엔드화 과정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Meissen 다이얼일 것입니다. Meissen 다이얼과 조합된 Cal. 49 시계들은 GO의 초창기 하이엔드 역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모델들이니 말입니다. 조금 더 욕심을 버리고, Cal. 49는 Union의 전용 무브먼트로 사용하고, 랑게의 L941.1 못지 않은 수동 무브먼트를 개발하여, 여기에 Meissen의 다이얼을 사용한 섭세컨드 모델을 엔트리모델로 삼았다면 비록 랑게보다 늦게 출발했더라도 랑게 1815보다 더 매력적인 고급엔트리 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 점 때문에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 GO의 초창기 역사입니다. 랑게의 실버 다이얼보다는 GO의 Meissen 다이얼이 링고에게는 언제나 더 매력적입니다... 또한, 랑게에는 너무 드문 화이트 다이얼을 GO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랑게와 차별되는 GO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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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GO의 시계에 매력을 느끼시는 분들이라면, Meissen다이얼에 GO Cal. 100을 사용하는 시계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Meissen의 다이얼에는 파란색의 X자 표기가 있어서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한편, GO Cal. 100은 GO가 Swatch로 넘어간 후 생산된 향후 GO의 주력 자동 무브먼트이며, 적어도 Cal. 39같은 찝찝한 역사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GO에 대한 링고의 비난은 그들의 초기 역사인 1995년에서 2005년까지의 10년간에 해당한다는 것을 고려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이 GO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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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 Cal. 39와 49 이후의 무브먼트들인 Cal. 100은 물론 Cal. 65(수동), 90(자동), 61(파노그래프)는 실상 Cal. 61을 개발한 후 크로노그래프를 제거한 수동 무브먼트(Cal. 65)와 이를 자동화한 자동무브먼트(Cal. 90)를 만든 것을 보입니다만 이 무브먼트들이 GO 내부에서 성장한 기술자들에 의해 새롭게 개발된 것인지  Swatch의 ETA, Lemania 혹은 F. Piguet에서 개발한 것인지, GUB의 Cal. 39(Cal. 10-30)으로부터 개량된 것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보아 이 무브먼트들은 동독 GUB의 무브먼트 베이스는 아닌 Swatch 그룹의 고급 무브먼트 개발팀(Lemania나 F. Piguet가 아닐까요?)의 작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결과, 랑게의 모든 무브먼트들이 1990년 Walter Lange와 Gunter Blumlein에 지도하에 랑게의 역사에 정통한 Reinhard Meis의 자문을 거쳐 IWC 등 스위스 고급 시계 기술을 접목하여 싸구려 시계를 만들던 글라슈테의 시계기술자들에게 최상급의 스위스 시계기술을 가르쳐가면서 새롭게 창조된 하이엔드 무브먼트들었음에 비해, GO의 초창기 10년간의 무브먼트들은 GUB의 무브먼트들을 베이스로 하여 고급화과정을 거친 무브먼트들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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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와 비슷한 케이스를 우리는 일본의 Seiko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염가의 시계를 만들던 Seiko는 King Seiko과 Grand Seiko를 만들면서 스위스의 오메가와 론진이 점유하고 있던 일본 내의 고급시계시장에 진입했던 것입니다. 염가의 시계를 만들던 Seiko는 King Seiko과 Grand Seiko를 만들면서 스위스의 오메가와 론진을 겨냥한 중고급제품으로 고급시계시장(물론 일본 국내용)에 진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GO는 세이코의 방식을 뛰어넘어 염가의 시계(Seiko 5급 시계)로부터 곧장 JLC 나 블랑팡급의 하이엔드 시장으로 진입했던 셈입니다. 그것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둔 것은 서방세계에서 염가의 시계로 알려진 Seiko와 같은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 철의 장막 저쪽의 시계였다는 익명의 혜택을 보았던 것입니다. Seiko의 Grand Seiko는 Seiko의 브랜드 이미지(프레스티지가 전혀 없는?) 덕분에 아무리 잘 만들어도 오메가나 롤렉스와 경쟁하기 어려운 시계에 불과한데.... GO는 서방시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였고, 마침 재런칭된 글라슈테의 랑게의 톱클래스 진입 전략이 가져온 '고급시계의 클라슈테'라는 지역 이미지를 등에 업고 재런칭된 랑게의 고급무브먼트 전략인 3/4 플레이트와 채톤링 등을 따라하면서 Seiko 5급의 무브먼트를 랑게급의 무브먼트로 레벨업하는 데 극적으로 성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랑게와 GO를 비교해 보시면, 랑게의 대부분의 시계가 귀금속 시계임에 비해, GO의 시계들은 귀금속 시계와 스텐레스 시계가 공존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랑게가 스위스 빅 3급으로 런칭되었기 때문이고, GO는 원래 스텐레스 시계를 위주로 제조하던 GUB의 모델들로부터 출발하여 랑게급의 고급시계들을 추가해 나갔기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즉, GO의 귀금속시계들은 GO의 고급화된 시계들인 것이지, GO의 스텐레스 스틸 시계들이 GO의 귀금속시계의 보급판으로 만들어진 저렴한 고급 시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3.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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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링고 역시 이 무브먼트를 가성비 최고의 무브먼트로 동경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랑게 L941.1보다 밸런스도 더 크고, Union 브랜드를 통해 랑게 1815 보다 엄청나게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던 이 아름다운 무브먼트가 그 과거를 알게 되자, 링고의 마음 속에서 한 없이 비천해 보이는 무브먼트로 돌변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무브먼트가 GO의 무브먼트가 아닌 노모스 가격의 Union으로 생산되었다면 독일의 미네르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도 갖게 됩니다. 속았다는 감정만큼 인간에게 미움을 만드는 감정도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톱클래스 하이엔드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그들이 만드는 시계의 부품 하나 하나가 '비천한 집안' 출신이 아니 '귀한 가문' 출신이기를 바라는 것. 우리가 톱클래스 하이엔드에게 바라는 프레스티지란 품질의 문제라기 보다는 태생의 문제에 가까운 것이 아닐지... 1990년대 ETA논쟁의 핵심은 결국 태생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아무리 잘 수정되었더라도 태생이 ETA의 공장인 한 그 무브먼트는 한 없이 천박하게만 보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 천박한 이미지에는 ETA와 이를 수정한 무브먼트의 품질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속았다는 감정'이 도리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직함. 진정한 프레스티지란 단순히 긴 역사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켜온 정직함과 자존심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일 것입니다. 프레스티지에 대한 의미부여에서 시작한 이 글의 마지막을 프레스티지를 다시 정의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겠습니다.

 

'브랜드의 프레스티지'는 '브랜드의 정직함과 자존심의  역사' 라고 말입니다.

 

Union Cal. 30보다 근본은 더 시시할 지도 모르는 새로운 수동 무브먼트가 바젤페어를 통해 발표될 때마다 링고의 마음은 두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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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아릅답다!!"고 외치면서....

 

하지만, 곧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근데, 저건 정말로 새로 만든 무브먼트일까? 아니면 ETA 혹은 내가 모르는 어떤 빈티지 무브먼트를 수정한 것일까???"

 

새롭게 발표되는 아름다운 무브먼트들이 정직한 무브먼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섭니다만,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하게 되는 진실들의 대부분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식이 늘수록 사랑은 어려워집니다....ㅠ.ㅠ

 

최근에는 베이스 플레이트와 톱플레이트를 새로 제조하면서 ETA 7001이나 6497의 기어트레인(무브먼트의 실제적인 설계)만을 채용하는 수정(?)도 빈번해져서 베이스 무브먼트를 추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자동 무브먼트의 베어링 모습만 기억하고도 하이엔드급 브랜드의 무브먼트들을  ETA 2824, ETA 2892라며 '재야의 고수 노릇하던 낭만적인 시절'도 이젠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시계 브랜드와 소비자들의 숨박꼭질은 점점 난이도가 높아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랑게를 동경한 이후 그 보다 저렴하면서 품질은 비슷비슷해 보인다고 오랜동안 관심을 가졌었지만,  과거를 몰랐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브랜드 GO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마칩니다. 그들이 창업초기에 조금 더 정직한 길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GO의 초창기 역사에 대한 실망은 한편으로는 1990년부터 4년간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결정하고 타협대신에 정직함을 선택한 랑게에 대한 감탄이기도 한 셈이라는 것에서 독설에 대한 위안을 느껴봅니다.

 

 

2012년 12월 11일 새벽 06:30

 

이 세상의 다른 어떤 물건보다 시계를 좋아하면서 그 누구보다 시계를 의심하는

 

링고

 

 

P.S. 이 글의 처음에 올린 아름다운(?) 스켈레톤 무브먼트는 '동독의 인민 무브먼트' Cal. 10-30의 수동 버전인 12-50을 투루비용으로 수정한 Cal. 51의 스켈리톤 버전인 Julius Assman 3의 무브먼트입니다.  이 무브먼트는 1995년 동독의 이름모를 브랜드 GO가 하이엔드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GO의 인수자 Heinz Pfeiffer가 자신들이

'과연 하이엔드급의 시계를 만들 수 있을까?"하고 의아해 하던 GUB의 인민 시계기술자들 앞에서 10년 후  "나는 여러분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며 사장직을 은퇴하고 스와치그룹의 이사회멤버로 영전하면서 인사말을 남길 수 있도록 만든 무브먼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Heinz Pfeiffer의 후임으로 GO의 CEO가 된 사람이 그 직전에 A. Lange & Sohne에서 근무하던 Franck Muller입니다... 

 

실증주의자들을 위해 링고가 이 글을 쓸 때 참조한 가장 중요한 2 개의 글을 참고문헌으로 남깁니다....

 

상당히 오래된 글이지만,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링고가 느꼈던 구토감은 여전합니다....ㅜ.ㅡ

 

(1) 인용 1 - 한 사업가의 석세스 스토리가 반대급부로 병신쪼다 같은 소비자들을 만든 케이스

 

“When I talked to some of my employees much later, I discovered that they had thought I was totally crazy,” 

- 완전히 미친넘은 그가 아니라 그 시계를 구입한 매니아겠지요...

 

In November 1995, after only one year of valiant efforts the brand and its employees proved that the old skills of fine watchmaking still existed: Glashütte Original presented the Julius Assmann Tourbillon with a perpetual Calendar at a price of 290,000 marks (148,274 euros).

- GO가 탄생한 지 단 일년만에 이 구매자는 로토형 바가지를 쓴 셈입니다...쩝...

 

http://www.europastar.com/magazine/highlights/1004083814-letter-from-germany-a-hero-leaves.html

 

 

 (2) 인용2 - Heinz Pfeiffer에 이어  GO의 사장이 된 랑게 출신의 CEO Franck Muller의 타임존 인터뷰

 

http://people.timezone.com/library/tzints/tzints632089419069843750

 

2002년에 랑게에서 GO로 옮겼다고 하니, GO가 보다 본격적으로 Lange를 모방하기 시작한 것은 이 사람 때문일까요???

 

시계 매니아가 된 이후, Franck Muller라는 이름의 두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둘 다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PS2 :  링고의 이 글에 대한 반론이 올라왔었고 향후 이 글을 읽는 매니아분들에게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링크로 남겨둡니다.

 

         모든 주장에는 반론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사람들의 기호에 해당하는 '시계의 가치'란 옳고 그른 것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이므로

         굳이 재반론을 올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역사적인 사실들에 대해서만 조금 언급하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넘깁니다.

 

         링고로서는 링고의 글에 대해 '이 사이트 분위기 보니, 이 사람이 대단한 시계고수인가 보다, 뭐 그런 사람의 말이니....'하면서 그냥 넘어가기 보다는

         기분 나빠하고, 화도 내면서 자신의 시계에 대한 가치관(물론 필요한 분들만....)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타임포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랍입니다....

         링고의 모든 글들은 시계에 대해 무엇인가 배우라는 글이기 보다는  '시계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썬글라스)을 만들어 보라는 계몽적인 글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로 'Seiko 5'에 대한 글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시계에 대한 글은 결국 '파텍 필립과 랑게', '롤렉스와 오메가', '세이코' 의 3가지의 기준과 그 사이에 대한 설명에서
        거의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은 시계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 조금 도 변하지 않더군요.... 쩝...

 

 https://www.timeforum.co.kr/index.php?mid=FreeBoard&document_srl=6227569&page=1

 

2012년 12월 18일 추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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