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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계사정

알라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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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時計事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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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에게 샘플 하나 받은적 없습니다. 저 영업사원 아뉨다


이 사진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 눈에는 양주(洋酒)에 한문이 써있는 게 너무도 이국적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대충 양주라고 부르는 술에는 아주 다양한 술이 들어있습니다. 그 하나가 위스키죠. 위스키는 아일랜드가 원조인 아이리시 위스키, 그것이 바다 건너 위스키의 꽃을 피운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가 큰 줄기가 됩니다. 옥수수를 재료로 만든 버번 위스키는 미국, 같은 대륙에 있는 캐나다도 위스키 생산국입니다. 아직 스카치 위스키의 명성에는 부족하지만 꽤 선전을 하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위의 야마자키는 대표적인 재패니스 위스키의 하나죠. 동양의 섬나라에서도 위스키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시계로 생각이 옮겨갑니다. 스위스와 그 주변을 제외하고 시계를 만드는 나라가 어디어디일까요? 오지랖 넓은 미국이 있고 러시아도 있습니다. 여기에 일본이 또 포함됩니다. 아직 품질로 승부하기가 어려운 중국을 제외하면 유일한 동양권 나라입니다. 우리는 세이코 같은 메이커가 아주 익숙하지만, 왜 동양의 섬나라에서 시계를 만들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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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에서 가장 좋은 시계식 시계 되겠습니다. 60주년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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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에서 하이엔드급에 속하는 Cal.88시리즈. 지름 26mm대로 ETA 2892와 비슷하지만 두께가 4mm가 훨씬 넘습니다


일본의 시계 (제조)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과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는 일본의 시계 메이커. 세이코, 시티즌, 오리엔트(카시오는 원래 계산기 회사라 여기서 다루기에는 성격이 좀 달라서 논외)가 대표적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시계 메이커 세이코는 1881년 핫토리 시계점으로 시작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벰페(Wempe)나 아워글라스 같은 대형 편집매장 정도 되려나요? 시계점으로 시작하여 시계 공방(정공사:精工)을 내고 점차 규모를 확장하죠. 옛 세이코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제2정공사나 스와정공사는 세이코 시계 생산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회사의 옛 이름들이죠. 세이코와 매우 유사한 성장 형태를 보이는 오리엔트도 1901년 요시다 시계점으로 시작됩니다. 수입시계를 파는 것으로 시작하여 성장 형태는 세이코와 유사합니다.

 

6.25전쟁의 휴전 이후 우리나라가 국가 재건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고, 그 때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시계라는 취미를 가질 수도 있지 않았나 싶죠.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 역시 국가 재건에 나섭니다. 우리나라처럼 일본 역시 별 다른 자원이 없는 나라라 제조업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그 중 하나가 시계였습니다. 하필 하고 많은 물건 중에 시계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일본 시계 산업을 경험한 코마키 쇼이치로(전 세이코 개발팀 엔지니어, 전 히코&미즈노 쥬얼리 칼리지 시계코스 강사)옹에 따르면 부가가치가 높은 것이 이유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시계는 크기가 작은 물건이라 거대한 생산 시설이 필요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계산도 있었고요. 그래서 국가 주도아래 기업, 학교가 한데 어우러져 시계 산업을 일으키기 시작하게 됩니다. 오리엔트의 경우 전시 상황에는 군수 산업으로 업종을 변경했다가 1950년 다시 본업으로 돌아옵니다. 오사카와 나고야에는 소규모 시계 메이커나 부품 메이커가 꽤 많았다고 합니다. 종전 후 국가 주도로 시계 산업이 이뤄지면서 이런 큰 회사로 하나 둘씩 흡수되면서 지금과 우리가 알고 있는 메이커만 남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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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TIZEN

 

사실 세이코의 경우는 시계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시계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시계로 시작을 한 것은 맞지만,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하여 다각화했고 회사의 핵심분야를 시계에서 다른 것으로 바꿨죠. 앞서 말한 제2정공사는 현재 세이코 인스트루먼트이고, 스와정공사는 세이코 엡손입니다. 세이코 엡손은 나가노시 스와라는 크고 맑은 호수가 있는 곳에 있는데, 시계에서는 스프링 드라이브와 크레도르 소너리가 여기서 생산됩니다. 지주회사인 세이코 홀딩스로 잠깐 빠지면 자회사의 숫자도 숫자고, 손을 안대는 게 뭔가 싶을 만큼 다양합니다. 유통, 음식점에 돋보기, 부채 같은 잡화까지 그들의 생산 품목에 포함됩니다. 다시 돌아와서 세이코의 라인업을 자세히 보면 세이코 워치라는 회사 아래에 그랜드 세이코를 정점으로 크레도르 같은 하이엔드에서 프로스펙스, 브라이츠 같은 미들 레인지와 쿼츠를 중심으로 하는 저가나 패션시계, 기념품샵에서나 할 법한 기념이나 주문 생산 시계 같은 부분까지 생산하고, 거기에 벽시계, 탁상시계까지 시계란 시계는 전부 생산합니다. 이런 구조는 본가 스위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입니다. 브랜드 하나하나가 라인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방대하고, 단순히 서브 브랜드라고 하기에도 모호하죠. 이런 특수하고 거대한 형태로 성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성장 배경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전후 피폐해진 나라에서의 기업의 사명감이랄까. 고용창출도 해야 하고 시계도 국민들이 싸게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을 겁니다. 시티즌의 사명이 시티즌이 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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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스프론(Spron)

 

분업화가 자리잡은 스위스 달리 일본의 시계 메이커는 철저하게 자급자족 형태를 취해야 했습니다. 스위스와 지리적으로 상당히 멀어서 스스로 모든 부분을 생산해야 했고, 기업간의 경쟁체제이다가 보니 일본의 시계는 자립도가 매우 높습니다. 세이코, 시티즌은 헤어스프링을 인하우스에서 생산합니다. 세이코의 등록상표 스프론은 정확하게는 세이코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공업용 스프링의 상표명으로 헤어스프링과 메인스프링이 포함됩니다. 스프론이 토호쿠(東北)대학과 산학협력에 의한 개발형태를 띠는 이유가 국가 주도와 산학협력 체제로 발달해서 일겁니다. 토호쿠 대학은 일본 대학 랭킹에서 1위를 다투는데 공학분야가 유명합니다. (1위가 도쿄대가 아닌 이유는 종종 대학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자존심 덕분에 랭킹에 아예 없기도 합니다) 분업화에서 독립생산 형태로 전환중인 스위스의 경우 여전히 헤어스프링을 인 하우스로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인 것을 보면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성장 배경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 꽂힌 싱글 몰트(위스키) 책을 뒤적거리다 보니 일본의 증류소 이름난 증류소도 일본의 시계 산업과 유사한 구석이 많더군요. 타 회사의 증류소끼리 교류가 없고 자체에서 필요한 술을 종류별로 증류하는데, 싱글 몰트의 원조인 스코틀랜드의 증류소끼리의 관계는 스위스와도 조금 비슷한 듯합니다.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블랜드해서 발렌타인 같은 위스키를 만들기 때문에 결국에는 병 하나에 여러 증류소가 섞이게 되거든요. 싱글 몰트의 경우 그렇지 않고 고유한 맛을 즐길 수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블랜디드 위스키를 위해 거의 소비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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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왔습니다. 넹

 

일본 시계는 기계식 시계를 제조한 역사에 비해 성과를 거둡니다. 스위스 등의 천문대 콩쿨에 참가해서 쟁쟁한 오메가, 파텍 필립, 론진, 제니스, 지라르 페리고 같은 상대를 물리치고 상위권을 차지하게 되는 게 가시적 성과의 하나였습니다. (그러자 존심에 상처입고 천문대 콩쿨이 폐지되죠) 1969년 즐거운 성탄절, 세이코가 전세계적으로 일을 칩니다. 최초의 쿼츠 손목시계 애스트론을 발표합니다. 35SQ IC회로를 탑재한 일본산 쿼츠가 시계 업계의 패러다임을 뒤집을 신호탄이 됩니다. 최초 백개의 모델이 생산된 이 모델은 스위스 시계 업계가 가장 싫어하는 시계의 하나일겁니다. 잠깐! 여기서 왜 쿼츠가 등장하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답은 정확한 시계를 추구한 결과물이었을 겁니다. 다른 하나는 산업으로서의 효율화가 요구되어서였을 겁니다. 극히 사람의 손, 노동집약적인 기계식 시계와 달리 쿼츠는 대량 생산에 적합한 형태입니다. 쿼츠의 진화형인 스마트폰을 떠올려보세요. 아이폰을 만드는 중국의 폭스콘 공장에서는 하루에도 엄청난 물량이 쏟아집니다. 미국은 쿼츠에 자본력을 더했고, 처음 엄청나게 비쌌던 쿼츠가 점점 저렴해 집니다. 지금이야 말로 할 것도 없이 싸고 흔해진 물건이 되었고요.. 다시 본론으로여러 도움말을 주신 코마키 옹에 따르면 세이코 출신은 스위스 시계 메이커의 공장에 한동안 견학을 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자존심이 상한 데다가 산업이 사라질 뻔한 것에 대한 감정이 제법 오래가서 1990년대가 되어서 비로소 처음으로 예거 르쿨트르의 공장을 견학할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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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계의 최고봉은 역시나 그랜드 세이코. 국내에도 런칭이 되었습니다(그렇게 안들여 올려고 하더니...ㅎㅎㅎ)

 

1980년대 중반 이후가 아닐까 싶은데, 스위스 시계 업계가 살살 되살아납니다. 시계 업계의 중심이 다시 기울게 되면서 일본도 흐름을 따라야 할 입장이 되어갑니다. 일본은 쿼츠 상용화의 원조라는 입장이었고, 대량화를 이끌다가 손을 떼다시피 한 미국과 달리 쿼츠를 이용한 레시피를 개발합니다. 쿼츠의 장점을 살린 기능성 쿼츠가 등장했고, 쿼츠를 이용한 최고의 히트 상품인 카시오 지샥(G-Shock)도 후에 만들어 집니다. 쿼츠와 기계식의 교배종인 세이코의 키네틱이나 스프링 드라이브 기능 역시 일본에서 등장합니다. (여담인데 스프링 드라이브와 유사한 기술을 스위스에서도 개발을 했던 모양입니다. 일본에서 먼저 발표를 하면서 없었던 일 비슷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의 기계식은 기계식 시계의 부가가치를 재차 인식하면서 신경을 쓰긴 쓰게 됩니다. 세이코는 그랜드 세이코등으로 역사를 유지했지만, 시티즌이나 오리엔트는 현재에도 고급 기계식 무브먼트는 없습니다. 대량 생산에 적합한 형태들을 생산하고 있죠. . 앞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오리엔트는 세이코 엡손에 지분 절반 이상을 넘기면서 흡수되었다가 완전히 자회사가 됩니다. 우리나라 시계라고 종종 오해 받을 만큼 친숙한 메이커죠. 예전에는 해외 시장에서 꽤 날렸던 지라 그런 착각을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위스키로 시작되었다가 생각보다 썰이 길어졌습니다. 기둥은 이 정도로 세워 놓고 다음을 기약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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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엔 Picus-K님이 유럽 유랑갔다가 하사하신 이 녀석의 목을 비틀어야겠습니다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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