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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brid

알라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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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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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냄새만 맡아도 가는 프리우스. 미드에서 보면 은근히 찌질이가 타는 차로 묘사 됩니닷? 

 

시계는 생각하면 할수록 재미난 물건 같습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면 그 이전의 패러다임은 소멸되기 마련이죠. 예를 들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한 물건이 최근에는 도드라져 보입니다. 레코드, 카세트 테이프는 CD가 나오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 요즘 필름 카메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죠. 얼마 전 코닥에 관한 기사는 변화를 읽지 못한 기업이 어떻게 되는가를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15년 전만해도 코닥이 이렇게 될 거라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물론 취미로 레코드나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곤 하지만 이미 대세는 아니까요. 시계는 기계식->쿼츠->기계식&쿼츠라는 독특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시계를 다른 물건에 비유하자면 레코드가 CD에 의해 사라졌다가 잡음은 좀 나고, 앞면 재생이 끝나면 일일이 뒷면으로 돌려야 하고, 바늘도 교환해줘야 하지만 따뜻한 음색의 아날로그의 매력을 잊을 수 없어서라는 이유로 다시 레코드를 찍어내고 턴 테이블을 만드는 회사가 다시 생겨나는 일이 일어났다는 건데요. 비약이 지나친 걸지도 모르지만 이런 예는 분명 드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계가 재미있죠.

 

자동차 업계는 저탄소 배출, 연비가 화두입니다. 화석연료의 종말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보다 효율적인 연료소비를 요구합니다. 100년을 지배했던 내연기관이라는 패러다임이 변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대체하는데 가장 유력해 보이는 것은 전기모터입니다. 전기자동차의 본격적인 상용화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이는데 패러다임과 패러다임을 연결하는 고리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라고 하겠네요. 엔진과 모터 둘 다 장착하고 유기적인 역할 분담으로 높은 연비를 만들어 냅니다. 대표적인 게 토요타의 프리우스인데 이번에 꽤 가격을 낮춰서 들어온다고 해서 조금 솔깃합니다. 지붕에 솔라패널을 올린 모델도 있던데요. 태양발전으로 동력계통까지 에너지를 전달하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나름 쓸모 있어 보입니다. (패널의 무게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는 말도 있습니다만…) 시계에도 하이브리드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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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틱 메커니즘을 간략히 보면 이렇습니다. 로터와 기어 몇개를 제외하면 쿼츠나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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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로 축전지 교환을 하고 조립을 완료한 키네틱. 배터리 교환에 비하면 좀 까다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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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을 하는 중간과정입니다. 축전지는 빠져있는 사진이네요

 

하이브리드는 프리우스처럼 일본이 가장 발달해 있습니다. 가장 진화한 형태는 세이코가 보유 중입니다. 키네틱과 스프링드라이브라는 기술을 가지고 있고 전자는 1987년 공개됩니다. 일종의 자가발전 시스템을 갖춘 쿼츠랄까요. 배터리를 사용하는 쿼츠와 달리 전력 공급은 자동 무브먼트의 로터가 담당합니다. 로터의 회전으로 전기를 만들어 축전지에 담습니다. 이 후 나머지 과정은 쿼츠와 같습니다. 동력 발생의 부분에서만 기계식의 로터를 사용하는 셈으로 쿼츠의 비중이 높죠. 옛날 자전거를 보면 자가발전방식의 라이트가 달려 있곤 했습니다. 그 라이트에서 축전지만 없다고 보면 비슷하겠군요. 키네틱은 어찌 보면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를 쏟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개발이 진행되던 때에는 환경오염이 지금에 비하면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때였을 텐데요. 간단히 배터리만 넣으면 될 일을 힘들게 한 게 아닌가도 싶습니다. 물론 기술적으로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금 보면 나름 선견지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세이코가 EU권에 쿼츠 시계를 수출 하면서 강하게 압박을 받는 부분이 (수은)전지 쪽이라고 합니다. 친환경적인 전지 개발을 해야했다는데 키네틱이라면 좀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다만 (리튬이온)축전지도 배터리처럼 수명이 정해져 있는 부분은 간과할 수 없습니다. 환경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의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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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하나 만큼은 역시 최고. 케이스 중간에 위치한 셀렉터로 기능을 선택하는 심플함도 최고


사실 하이브리드로 테마를 잡게 만든 것은 이 메이커입니다. 벤츄라라고 잘 알려지지 않은 메이커죠. 국내에는 작년에 응봉동 사는 스위스인 프레데릭 웨버씨를 통해 런칭을 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만)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이 강점입니다. 벤츄라는 한동안 기계식 시계에 집중하는 것 같더니 본업(?)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기계식을 만들 때에는 ETA 칼리버 6497베이스로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는 독특한 업적을 세우기도 했죠. 6497이 굉장히 흔하지만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벤츄라 빼면 파네라이 정도랄까요. 벤츄라가 기계식 라인업만 갖추기 전에는 키네틱 같은 방식의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로터를 이용한 자가 발전으로 쿼츠를 구동하는 방식으로 일본이 아닌 스위스 쪽에서는 아마 처음 한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모던한 유선형 디자인과 디지털 디스플레이 방식을 사용하는데, 한쪽에서는 로터가 보이도록 디자인되어 묘한 인상을 받습니다. 디자인만 봐서는 비슷한 방식의 키네틱보다 확실히 더 있어 보인다고 할까요. 이런 하이브리드 형태가 벤츄라의 대표적인 라인으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이를 포기 한 듯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기계식을 다 내리고 다시 선보이고 있습니다. 꽤 흥미로운데 거의 6천 달러에서 시작하는 가격이 좀 무시무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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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LED방식 쿼츠로 알려진 펄사. 제발 보도자료 내보낼 때 필요한 수식어는 빼먹지 말고 '최초'를 붙여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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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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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취향이 들어가겠지만 이런 디자인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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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소매틱의 케이스 백을 보면 일단 기계식을 차고 있는 느낌일 겁니다. 밸런스 휠이 안보이는것만 빼고요


해밀턴은 펄소매틱이란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위의 것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2010년 바젤월드에서 공개되었죠. 당시 프리젠테이션에서 자기들이 이런 방식의 최초라고 했던 것도 같습니다. 제 기억의 오류일 확률이 높지만, 그럼 벤츄라는 뭐냐라고 물었던 것 같네요. 그에 대한 대답이 뭐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썩 납득이 가지 않는 거였던 건 기억납니다. 해밀턴의 주장에 따르면 벤츄라는 방전이 매우 빨라서 문제를 보였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실제로 써보질 못해서 이 부분은 알 수가 없습니다. (진짜라면 벤츄라가 제품을 철수하게 된 이유였을 수도 있겠군요) 아무튼 해밀턴이 자랑하는 펄소매틱의 파워리저브는 풀 차지시 120일이라고 합니다. 키네틱처럼 파워세이빙 기능이 있는 모양입니다. 세이코의 키네틱은 사용을 하지 않으면 초침이 움직임이지 않습니다. 다시 착용을 하면 오토릴레이라고 짜잔하고 현재 시각을 다시 표시하는 기능으로 일종의 파워세이빙이죠. 내부적으로는 카운트를 하고 있지만 바늘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동력을 아낄 수 있습니다. 펄소매틱도 꽤 매력적인 시계이긴 합니다. 최초의 LED 쿼츠인 펄사 디자인을 재해석했으니까요. 펄사처럼 LED였으면 좋겠지만 그냥 LCD입니다. 펄사가 시간을 보고 싶을 때만 버튼을 눌러서 시간이 표시되도록 한 방식(항시 표시되도록 하면 배터리를 너무 빨리 잡아 먹어서)까지 답습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10석짜리 무브먼트가 탑재되었는데 로터 모양이랑 지름이 25.60mm인걸 봐서는 ETA 2824에서 로터 등을 가져다가 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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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맛은 없지만 이런 문페이즈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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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드라이브는 시스루 백으로면 기계식 같습니다. 피니싱 보세요. 어지간한 기계식보다 훨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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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이브리드 형태에서 가장 앞서 있는 건 스프링드라이브입니다. 기계식과 쿼츠의 비율이 3 7정도로 되는데, 동력원이 축전지가 아니라 태엽입니다. 앞의 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태엽이 풀리는 힘으로 전기를 생산합니다. 개발하는데 27년이 걸린 프로젝트로, 초전력 설계의 회로와 코일이 큰 벽이었다고 합니다. 태엽이 풀리는 힘이 얼마나 된다고 거기서 나오는 힘으로 전기를 만들어 쿼츠를 구동해야 하니까요. 1999년 첫 모델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수동 모델이었습니다. 현재는 로터가 달려있는데, 쵸핑 브레이크라고 로터 회전에 전자 브레이크를 걸어서 최대의 전기를 뽑아 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파워리저브가 72시간에 도달했고, 컬럼휠로 제어되는 크로노그래프까지 파생형을 낳았습니다. 세이코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기계식 감각으로 사용하는 쿼츠랄까요. 스프링드라이브의 바늘 흐르는 것을 보면 기계식에 비하면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같은 스윕 세컨드 방식입니다. 쿼츠로도 스윕 세컨드가 구현이 가능하지만 이것과는 분명 느낌입니다. 장점은 말할 것도 없이 정확함이죠. 기계식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쿼츠를 따라 갈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키네틱과 달리 축전지를 사용하지 않아 환경오염에서 더 자유롭기도 하고요. 그랜드 세이코에 탑재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시계의 하이브리드는 자동차와 달리 과도기적 형태는 아닐 겁니다. 기계식, 쿼츠처럼 공존하는 형태가 되겠죠. 시계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시계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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