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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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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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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탐험 1   :  쿼츠 혁명과 패러다임의 변화 
 
 
 
  
1. 프롤로그
 
방대한 시계 전체에 대한 지식들을 몇 편의 글들을 통해 최대한 간략하면서도 시계 전체를 볼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로
 
시계탐험준비 (기계식과 쿼츠의 차이점, 스위스의 에보슈에 대한 설명, 기계식 시계들의 기본 구성에 대한 설명)와
 
시계의 분류 3 부작을 통해 기계식 시계들의 다양한 종류들과 그런 시계들의 설명에 자주 사용되는 용어들에 대한
 
설명을 대충 마쳤습니다.
 
 
물론, 시계에 대한 나만의 썬그라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지식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미술을 예로 든다면 여러분은 이제 물감의 색체 이름 정도를 배운 것입니다.
 
음악을 예로 든다면 음계의 명칭 정도를 배운 것입니다.
 
이제는 초보적인 연주기법들을 가장 단순한 것 부터 한 단계, 한 단계 배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시계에 흥미를 느끼는 분들에게 시계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그 다음으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이는 가장 쉬우면서 그림 그리기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 중요한 그림은 무엇일까?
 
C 장조의 가장 단순한 음악에 해당하는 것은 시계에서는 무엇일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시계 탐험 준비와 시계의 분류 제 3 부까지는 링고가 예전에 쓴 미완성의 글들을 완성하고 보완하는 것으로
 
완성되었습니다만...
 
그 다음을 이어갈 이야기를 선택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몇 일간의 장고 끝에 선택한 것이 쿼츠 혁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해외에서도 많은 저명한 매니아들이 쿼츠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이에 대한 제대로된 의미부여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링고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TF 컬럼의 5번째 글이자, 시계 탐험의 첫번째 글로서 시계사에서 쿼츠혁명이 가져온 패러다임의 변화와
 
변화된 패러다임 속에서 재등장하고 있는 원자 시대의 기계식 시계의 의미에 대해 탐험해 보고자 합니다.
 
 
1. 기계식 시계 오차의 본질과 패러다임의 변화
 
(1) 쿼츠 혁명의 두가지 특징
 
           쿼츠 무브먼트                    오메가 30mm 칼리버
 
시계 탐험 준비에서 기계식 시계에서 일오차 5초 혹은 10 초는 매우 정확한 것이며,
 
쿼츠의 기본 오차가 월오차 15 초 즉, 일오차로는 0.5초 정도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오차를 표현하는 것에 오랫동안 "하루의 오차"가 사용되었지만,
 
쿼츠 시계의 오차를 표현하는 것에는 "한 달의 오차" 혹은 "일년의 오차"가 사용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계식 시계로는 쿼츠의 기본 오차인 일오차 0.5 초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인가?
 
답변은 가능하지만, 매우 제한된 조건에서만 가능하며, 대량생산을 통해 상품화하기 어려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1966년 뇌샤텔에서 열린 크로노미터 경연대회에서 오메가의 30mm 칼리버를 사용하여
 
45 일간의 각종 포지션 및 온도에서의 연속적인 측정을 통하여 하루 평균 오차 0.04 초의 기록이 수립되었습니다.
 
이는 평균 쿼츠 시계 보다 10 배나 정확한 것이며, 원자시계의 정확성을 보이는 GPS 시계를 제외하고
 
현재 판매되는 초고급 쿼츠 시계들과 비슷한 수준의 정확성입니다 (연초차 15 초 이내).
 
그렇다면, 이런 기술을 좀 더 발전시켰다면 쿼츠 혁명에서 버티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왜 쿼츠 혁명이라는 것이 발생한 것일까?
 
 
앞서 예로 든 오메가 30mm 칼리버는 크로노미터 경연에 오랫동안 참여한 무브먼트이지만,
 
시판되는 시계들에 사용된 30mm 칼리버와는 겉 모습은 같아도 실은 전혀 다른 무브먼트입니다.
 
시판되는 무브먼트에는 거의 채용된 적이 없는 길롬 밸런스와 강철제 브레게 오버코일을 사용하는 등 무브먼트의
 
실제적인 구성도 시판용의 30mm 칼리버와 여러모로 상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시판용의 30mm 칼리버는 오메가 내의 일반적인 조립 기술자들에 의해
 
오메가의 내부 기준(하루 오차 10 초 이내)만을 충족하도록 조정되면 케이싱이 완료되어 판매되게 됩니다.
 
한편, 크로노미터 경연에 참가한 30mm 칼리버들은 레귤레이터라고 불리던 당시 최고의 조정 기술을 가진
 
저명한 프리랜서형 기술자들에 의해 크로노미터 경연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몇 일, 몇 달에 걸쳐 튜닝되며
 
여러번의 크로노미터 경연에 참가하면서 최상의 성능을 발휘하도록 끊임없이 튜닝이 이루어지고 잘 관리되는
 
무브먼트인 것입니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크로노미터 경연 참가용 30mm 칼리버는 F1 대회에 참가하는 경주용 페라리인 것이며
 
시판용 30mm 칼리버는 시판용의 페라리 자동차와 같은 것입니다.
 
더구나, F1 대회에서는 마이클 슈마허 같은 세계 최고의 레이서가 F1 트랙에서 운전을 하는 것이고,
 
시판용이라면 평범한 일반인들이 일반도로에서 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F1 대회에서 마이클 슈마허가 세운 주행 기록을 일반인들이 시판용 페라리로 일반도로에서
 
그런 기록을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 기록도 비슷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들을 감안하여 시판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지고 튜닝된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은
 
1960년대말에 하루 오차 5 초 정도가 실질적인 한계였습니다. 그리고,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대규모의 투자를 하여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 지라도 하루 오차 1 초 이내로 만들 가능성은 0 에 가깝다고 할 것입니다.
 
자동차의 주행 속도로 따진다면 하루 오차 5초란 시속 250 킬로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하루 오차 1 초란
 
시속 1000 Km 이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동차 회사들에게 문의한다면 300km나 400km까지는 어찌 어찌 될 것이지만, 시속 1000 km의 승용차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쿼츠 혁명을 손목시계에 제한하여 설명한다면
 
기본적으로 2 가지의 요인에 의해 손목 시계 시장에 혁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째가 판매가능한 수준의 기계식 시계로는 접근할 수 없는 정확성,
 
둘째가 시계 업체들보다는 반도체 제조업체들에게 친숙한 구조와
 
         시계 제조에 반도체, 통신 등 다른 전자제품의 제조기술이나 관련 기술을 적용하거나 조합하기 쉽다는 점.
 
이라는 요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설명의 편의상 두번째 요인부터 간단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글의 실체적인 내용은 이 두번째 요인이 시계 전체에 미친 변화에 대한 링고 나름대로의 핵석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두번째 요인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를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2) 쿼츠 혁명의 이정표 : LCD 쿼츠 시계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Casio 의 G-Shock 입니다.
 
물론, 이 시계 대신에 LCD 창을 가진 디자탈 쿼츠 시계의 사진을 하나 올린다면 그 시계는 1969년 12월 25일 이후
 
변화된 패러다임에 따라 현대의 시계를 상징하는 시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G-Shock를 예로 든 것은 쿼츠 혁명의 본질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Casio의 시계들이며,
 
Casio 를 대표하는 모델이 바로 G-Shock 이기 때문입니다.
 
전자 계산기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Casio가 그 이전에 시계에 대한 제조 경험이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쿼츠혁명의 초창기에 해당하는 1974년 Casiotron 이라는 첫 쿼츠 시계를 생산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3년 최초의 G-Shock를 발매하게 되고, 1990년대에는 일본 국내에서도 LCD 시계의 최대 생산업체로
 
변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전자 계산기 사업을 포기해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만드는 G-Shock 등의 쿼츠 시계들은 그들이 계산기를 만드는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여
 
만들 수 있었으며, 실제로 전자 계산기의 구성에 시계를 위한 몇 가지 구성을 추가하는 것으로 시계의 모듈이
 
간단히 만들어졌습니다. 단지, Casio에서 경험이 없었던 것은 시계 케이스와 브라슬렛을 만드는 기술이었습니다.
 
1973년 Casio는 당시 경영란을 겪고 있던 Bulova로부터 대만의 케이스 및 브라슬렛 제조 공장을
 
구입하는 것으로 이 문제마저 간단히 해결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G-Shock가 등장할 무렵에는 기존의 시계 케이스와 브라슬렛의 개념을 파기하고
 
자신들이 전자 계산기의 제조에 다량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경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쿼츠 혁명의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쿼츠 혁명이 시작되었을 때 도리어 당황한 것은 시계 업체였습니다.
 
시계 업체 내에는 선반이나 밀링 머신을 돌려 부품을 가공하고, 조립하는 기술자들과 기능공들은
 
많았지만, 전자 기술을 이해하고 이를 생산하거나 조립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력은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반도체 회사, 전자 계산기 회사, 통신장비 회사들은 시계와는 전혀 무관햇던 전자나 전기 분야의 기술을 가진
 
인력으로 가득차 있었는 데, 1969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일어나 보니 갑자기 시계들이 자신들로서는 잘 모르는
 
다량의 톱니와 스프링들로 가득찬 기계 제품에서 트랜지스터와 캐피시터로 가득한 전자제품으로 변해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쿼츠 시계란 기계식 시계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인 것이지 기계식 시계의 진보가 아닌 것입니다.
 
LCD 쿼츠식 시계와 기계식 시계는 손목시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기계식 시계는 태엽과 각종 휠들 및 원형 스프링 진자로 구성되는 것이며, 이를 이용하여 다이얼의 바늘들을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키는 장치입니다.
 
LCD 쿼츠 시계는 배터리의 전지를 이용하여 IC회로가 쿼츠 진동자의 진동수를 계측하여 LCD 패널의 액정의
 
숫자들을 일정한 속도로 변경시키는 라디오나 테레비전 혹은 컴퓨터를 소형화한 전자 제품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둘 사이에는 그 구조상 아무런 공통점도 찾을 수 없으며 그 제조 방법에도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쿼츠 혁명이 시작된 후 채 5 년도 되지 않아 일본의 전자 계산기 제조업체에서 백년 가까운 전통을 가진
 
세이코와 경쟁할 수 있는 동일한 품질의 시계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 쿼츠 혁명이 가져온 변화된 시계 업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쿼츠 시계가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시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것은
 
그 탁월한 정확성과 새로이 개발되는 각종 전자 기술들과이 통합의 용이성 때문이었습니다.
 
 
(2) 시계의 정확성과 패러다임의 변화
 
 
그러나, 만일 쿼츠 시계들이 기계식 시계들보다 정확성이나 편리성에서 크게 뒤졌다면 쿼츠 혁명은
 
시작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13 세기 기계식 시계들이 거대한 교회의 탑 위에서 시작되었을 때 시계들은 하루 오차 1 시간도 넘을 정도로
 
매우 부정확한 것이었으며 엄청나게 큰 물건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해시계나 물시계 혹은 향이나 초 같은 불에 타서 길이가 거의 일정하게 짧아지는 물건들로
 
시간을 읽었습니다.
 
이 패러다임을 바꾸어 버린 것이 17세기부터 시작된 시계의 소형화와 동시에 시계의 정확도의 향상이었습니다.
 
당시 가장 정확한 시계란 물시계들이었으나 규모가 컸으며 이를 휴대하기 어려웠습니다.
 
 
해시계는 휴대가 가능한 정도로 소형화되었으나 낮이 아닌 밤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기계식 시계들이 휴대용 해시계의 사이즈로 작아지고 대형 물시계의 정확성에 접근하게 되자
 
기계식 시계들이 본격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해시계 등에 비하여 엄청난 고가인 기계식 시계들을 보다 저렴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선반 등 공작기계들의 발달에 영향을 받은 공장제 제조 기법의 등장과
 
그로 인한 제품 가격의 하락은 시계 등 기존의 모든 시계들을 박물관으로 보내고
 
시계는 기계식 시계와 동의어가 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종료된 것이었습니다.
 
 
즉, 기계식 시계가 물시계와 해시계를 물리치고 시계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물시계나 해시계를 능가하는 편리성과 정확성이었던 것입니다.
 
즉, 시계의 역사에서 첫번째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던 기계식 시계는
 
해시계를 사용할 수 없는 밤에도 시간을 볼 수 있었으며 래시계나 물시계 보다 휴대나 관리가 용이했습니다.
 
나아가, 이들 시계 보다 정확했던 것입니다.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시계 탐험 준비에서 개략적으로 설명드렸습니다만,
 
기계식 시계는 그 정확성을 얻기 위해 진자를 소형화한 밸런스와 밸런스 스프링의 진동에 의존합니다.
 
 
이러한 조합에 의하여 회중시계 사이즈에서 하루 오차 1분 내로 진입하게 되었으며 이는 그 이전의 시계들에
 
비한다면 엄청난 발전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전의 시계들에서 의미를 가지는 단위는 시간이었음에 비해
 
시계는 시간 단위에서 출발하여 분단위의 정확성을 성취했었던 것이며, 그 결과 생겨난 것이
 
분침인 것입니다. 기계식 시계들이 등장하여 발전하기 전 인류가 아는 모든 시계는 햇님의 그림자부터
 
오로지 하나의 바늘만을 가진 것이었었습니다.
 
 
즉, 기계식 시계의 등장으로 인류는 시간을 분 단위까지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어, 기계식 시계의 정확도 향상이 초단위로 진입하기도 전에 인류의 욕구는 시계 다이얼에
 
초침까지도 만들어 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계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은 이후에도 기술의 발달은 물론 금속 공학의 발달에 힘입어
 
200 년간 휴용 시계의 정확성이 하루 5 초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초침이 비로서 시침이나 분침과 같은
 
정도의 의미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5초의 벽은 무게를 가진 밸런스와 금속의 불완전한 탄성에 의존하는 시계식 시계에서는
 
뛰어넘기 어려운 거대한 벽이었습니다.
 
 
투루비용을 설명하면서 기계식 무브먼트의 자세차(Positional error)의 문제에 대해 간략히 설명드렸습니다만,
 
밸런스의 안정된 진동(일정한 주기성)은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을 얻는 절대절명의 과제입니다만,
 
밸런스에 작용하는 지구의 중력이라는 존재가 수직자세에서의 불균일한 주기성을 만드는 중대한 요인이었으며
 
이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은 수백년의 노력을 경주하여 양산 가능한 기계식 손목시계에서 하루 5초 정도의 오차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쿼츠 무브먼트는 수정에 전기를 가하여 발생하는 내부 진동에 의존한다는 것이 기계식 무브먼트와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기계식 시계에는 자세차, 온도차에 따른 오차가 생겨납니다만, 쿼츠 시계는 온도차에 따른 오차는 있어도
 
자세차에 따른 오차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쿼츠시계는 시계의 오차를 단 번에 하루 오차 0.5초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고...
 
기계식 시계의 제조 업체들은 쿼츠 시계가 등장하자마자 기계식 시계로 이와 경쟁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즉시 깨닳게 된 것입니다.
 
해시계 제조업자들이 기계식 시계와 경쟁할 수 없었던 상황과도 비슷한 것입니다.
 
해시계들에 비해 기계식 시계가 더욱 비참했던 것은 정밀한 기계식 시계들이 등장하고서도
 
해시계는 그 저렴한 가격 덕분에 300 년 이상은 더 버티어 낼 수 있었던 것이지만,
 
쿼츠 시계를 등장 후 10 년도 지나지 않아 기계식 시계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가격경쟁력까지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계식 시계와 쿼츠의 정확성은  사람과 페라리 자동차의 경주와도 같은 것입니다.
 
1 m 달리기 등으로 거리를 매우 작게 한다면 인간이 자동차를 이길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으며
 
그 기록의 차이도 매우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리를 1 Km 이상으로 벌려놓으면 결과는 정해진 것입니다.
 
즉, 기계식 손목시계에서 0.04 초의 기록은 45 일간이라는 측정기간에 큰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또한, 여러 가지 포지션에서의 오차를 구하여 평균을 내는 것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15일로 줄인다면 더 정확해 질 수 있으며, 하루로 줄이고 시계에서 가장 유리한 포지션에서 측정한다면
 
기계식 시계도 쿼츠 시계와 동등한 정확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간을 길게 가져갈 수록 기계식 시계가 쿼츠 시계를 이길 가능성은 인간 스프틴터가 페라리는 고사하고
 
티코를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결과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이 자동차와의 달리기 시합에서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인간이란 근력에 의해 달리는 존재일 뿐이고, 자동차는 근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엔진의 화학적 폭발력에
 
의해 달리기 때문입니다....
 
즉, 둘은 기본적인 구조 자체가 전혀 상이한 존재인 것입니다.
 
따라서, 쿼츠 시계로 기계식 시계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링고가 느끼는 것은 자동차 레이스 F1 이 존재하는 데 뭐하러 올림픽의 육상 경기 같은 시시한 경기를 하는 지
 
모르겠다고 투정하는 사람들을 보는 듯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계식 시계가 자주 인간과 비교되는 것은 아마도 이런 기본적인 차이점에 대한 매니아들의 인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시계가 시간을 보는 단순한 도구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하나의 매력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터넷 상에서 매니아들 사이에 가장 오래된 논쟁은 쿼츠 시대의 시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기계식 시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던져주는 것이며 시계의 매니아로
 
입문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자신의 명확한 인식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나만의 썬그라스의 기본 색체를 만드는
 
첫 작업이 될 것입니다.
 
 
 
(3) 기계식 시계 시대의 패러다임
 
   
 
비유를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인간중 가장 빠른 스프린터는 100m를 9.77 초에 주파하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모든 시합에서 항상 그 기록을 낼 수는 없습니다. 나아가, 육상 트랙에서 스프린터용 신발을 신고 달리는 것이 아닌
 
비오는 빗길에서 구두를 신고서 그 속도로 달릴 수가 없는 일입니다.
 
자동차도 주행 조건에 따라 기록이 변동되겠지만 인간 스프린터의 변동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시계도 마찮가지입니다.
 
 
쿼츠 무브먼트는 전기자극에 의한 쿼츠 내부의 진동에 의존하므로
 
자세차가 존재하지 않으며 일상생활에서의 충격에 의한 오차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시계가 놓인 자세나 외부의 충격에 의해 배터리로부터 쿼츠 진동자로의 전기 흐름이 변한다거나
 
초당 3만이 넘는 진동수가 최대 초당 1~10 회 정도에 불과할 외부로부터의 진동에 의해 공진과 같은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기계식 시계는 얇은 스프링에 의해 진동하는 밸런스라는 중량체를 사용하므로
 
다양한 자세에서 중력에 의해 그 진동에 큰 영향을 받으며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진동에 의해
 
심각한 수준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기계식 무브먼트의 고진동화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 의해 인류가 도달한 기계식 시계의 최고의 진동수는 초당 20~30 회 정도가 한계였던 것이며
 
일반 시판용의 무브먼트에서는 초당 10 회가 한계치였으며, 올해 세이코에서 발표한 Caliber ND 58 이
 
초당 12 회 진동하는 무브먼트로서 현재까지 세계 기록입니다.
 
즉, 기계식 무브먼트의 최대의 진동수인 초당 12 회는 초당 32,768 회 진동하는 쿼츠(2의 15승)와 비교할 수가 없는
 
엄청나게 느린 진동수인 것입니다.
 
인간과 자동차의 비유와 비슷해 보이지 않으실지요???
 
100m 달리기의 기록으로 비교하는 인간 최고의 속도와 시속 100 Km 단위로 비교하는 자동차의 최고 속도....
 
기계식 시계의 오차를 표현하는 "일차"(하루의 오차)와 쿼츠의 오차를 표현하는 "연차"(일년의 오차)라는
 
표현 정도로 둘 사이에는 다가서기엔 너무도 먼 간격이 가로 놓여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왜 기계식 시계 제조업체들은 쿼츠 정도의 정확성을 갖는 시계를 만들지 안느냐는 비난은
 
어째서 인간은 자동차에 비해 그렇게 느리냐?며 인간 스프린터의 게으름을 탓하는 것과 비슷한 투정인 것입니다.
 
쿼츠와 기계식 무브먼트는 애초부터 비슷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경쟁상대가 아닌 것입니다.
 
     
 
 
이를 요약하자면, 기계식 시계의 오차란 일정한 정지된 자세에서의 다양한 오차를 평균낸 평균오차인 것이므로
 
이를 실제로 착용하고 다닐 경우 그 사람의 행동방식에 따라 시계 브랜드에서 검사한 오차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남들 보다 시계를 오랜 시간 다이얼업 자세(시계를 풀러놓는 때의 시계의 포지션)를 유지하는 사람,
 
남들 보다 크라운 다운 자세(걸어다닐 때의 시계의 포지션)를 오랜 시간 유지하는 사람,
 
남들보다 자주 과격한 운동을 하는 사람(무브먼트에 가해지는 충격의 문제) 등
 
기계식 시계는 이를 제조한 브랜드에서 +- 10 초로 조정되었다고 할 지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차와 충격에 의한 영향을 받지 않는 쿼츠 시계는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습관을 가졌든 간에
 
상관 없이 한 달 15 초의 오차를 정확히 지켜내는 것입니다.
 
 
 
2. 쿼츠 혁명의 전개과정
 
 
         1964년 Seiko Quartz Clock                     1969년 Seiko Astron                             1973년 Seiko LCD Quartz
 
 
기계식 시계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쿼츠 혁명은 1969년 12월 25일 단 하루에 터져버린 것은 아닙니다.
 
실은 쿼츠혁명은 짧게는 1927년부터 시작되었고, 멀리는 19세기초 정전기를 시계의 작동에 도입하므로써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손목시계로 한정한다고 해도 1962년 스위스에서 CEH 를 설립하면서 예고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단지, 역사적으로 1969년 12월 25일 세이코의 Astron이 발매되므로써 본격적인 쿼츠손목시계 개발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또한, 쿼츠 혁명은 1969년 12월 25일 이후 시계 산업을 단 번에 바꾸어 놓은 것도 아닙니다.
 
Seiko의 Astron이 등장한 1969년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하여
 
최초의 전파시계 Junghans의 Mega 1 이 등장한 1990년까지 20 여년간 지속된
 
시계 산업에 대한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컷는 말인 것입니다.
 
  
        1969 Seiko Astron                1972 Hamilton Pulsar           1972 Gruen LCD        1990 Junghans Mega 1
 
요약하자면, 쿼츠 시계는 매우 오랫동안 준비되어 왔으며, 1969년 12월 25일 세이코에서 Astron을 발매하지 않았더라도
 
1970년 스위스와 미국에서 최초의 쿼츠 손목 시계가 등장하는 것은 예정되어 있던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쿼츠 시계의 첫 등장이후 지속적으로 변화된 LED와치, LCD와치, 광전지 시계, 전파수신보정시계의 출현,
 
발전식 시계 등 기계식 시계의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급속한 기술적 발전의 총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쿼츠 시계들의 발전으로 정확성이나 편리성 등에서 사람들의 시계에 대한 의식에 가져온 시계에 대한
 
거대한 인식의 변화, 즉, 시계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이코의 아스트론 발매에 의해 스위스의 시계산업이 도산했다는 등의 표현은
 
쿼츠 시계의 자세한 역사가 별로 소개되어 있지 않은 탓에 생겨나는 시계 역사의 연표적 상징성으로 야기된 오해들입니다.
 
또한, 스위스에서 쿼츠를 개발한 기술자가 스위스에서 개발을 거부당하여 일본에 이 기술을 팔았다는 등 일부 인터넷에서
 
떠도는 유언비어들도 역시 쿼츠 시계가  손목 시계로 처음 등장했을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기계식 시계가 13~14 세기에 교회의 탑시계에서 출발하여 19세기말에 손목시계가 처음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한 과정이 쿼츠 시계와 이를 포함하는 전기를 이용하는 시계의 역사에서도 반복되게 됩니다.
 
다만, 시계와는 무관하게 발달한 반도체 기술과 통신 기술이 기계식 시계에서 6 세기나 걸렸던 과정을
 
이번에는 50 년만에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쿼츠 손목 시계가 개발되기 까지의 전기 시계의 발전 과정을 간략히 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전기가 시계와 인연을 맺은 것이 결국은 전기 시계로 가는 시작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정전기가 기계식 시계에 사용되는 진자의 주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사용된 것은 1814년의 일입니다.
 
1841년에는 전기 시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Alexander Bain 이 전자기에 의해 작동되는 최초의 실용적인
 
전기 시계를 개발하는 데 성공합니다.
 
물론, 이 시계들이란 바닥에 세워놓는 대형의 스탠드형 시계나 벽시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전기는 진자의 진동을 유지하기 위한 보조 동력으로서 채용되었으며 기계식 진자시계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1921 년 전기식 진자 시계
 
Heny Ellis Waren은 1918년에 교류(AC) 전기를 사용하는 진자식 시계(clock)를 개발하였으며
 
1918년에는 유명한  William Hamilton Shortt 전자기로 구동되는 진자 시계를 개발하게 되며,
 
이 시계는 원자 시계가 개발되기 전까지 가장 정확한 시계로 남게 됩니다.
 
이어서, 전기 모터와 톱니바퀴를 사용하는 방식의 다양한 탁상용 시계들이 개발되게 됩니다.
 
               1934년 전기식 탁상 시계
 
1936년에는 프랑스의 Marius Lavet에 의해 스텝 모터가 개발되어 전기식 시계들에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단계까지만 해도 전기 기술들은 기계식 시계를 보완하는 기술을 제공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보완장치에 불과했던 전기식 시계가 극적인 변화를 맞는 것이 바로 쿼츠 진동자가
 
시계에 도입된 것이며, 1927년은 그런 의미에서 본격적인 쿼츠 시계를 세상에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쿼츠 진동자의 등장은 현대의 표준 시간을 규정하는 원자 시계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8 년후 세슘 원자의 자연진동수를 이용하는 원자 시계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1942 년  그리니치 천문대                        1955년 세계 최초의 원자 시계
    쿼츠  시계
 
1927년 캐나다출신의 통신기술자 Warren A. Marrison이 최초로 쿼츠의 진동을 이용한 쿼츠 시계를 발명합니다.
 
그리고, 1939년에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가 쿼츠 시계를 구입하여, 1942년부터 전기식 진자 시계 대신에
 
쿼츠 시계를 기준 시계로 사용하여 시각 통보를 시작하게 됩니다.
 
즉, 쿼츠 시계는 그리니치 천문대와 같은 세계의 시간을 관리하는 천문대에서 1940년대에 이미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계측장치로서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쿼츠 시계는 쿼츠 손목시계가 1969년 12월 25일 첫 등장하기 전에 이미 4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현대에 평균태양시를 대신하여 시간의 표준으로 채택된 원자시계가 처음 개발된 것이 1955년으로
 
쿼츠 손목 시계가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원자시계까지 등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이코 역시 1964년 동경 올림픽에서 각종 계측을 담당했으며, 정밀 계측을 위해 매우 정확한 쿼츠 클럭을 개발한
 
상태였습니다.
 
남은 문제는 스탠드형 시계의 규모에서 탁상용 시계 사이즈까지 축소된 쿼츠 시계를 손목시계 사이즈로
 
소형화하는 일이었으며, 세이코가 시판용 쿼츠 시계에 대해서 스위스에 간발의 차이로 앞서서
 
세계 최초의 기록을 얻었던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세이코가 세계 최초가 되고 1970년대말까지
 
쿼츠 시계 개발의 리더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은 여러가지면에서 연구되고 재평가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쿼츠를 포함하여 20세기 초엽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전기 기술을 응용하여 손목시계를
 
만드는 것은 1950년대말에 이미 미국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쿼츠 기술에 앞서 발달했던 전기식 시계들의 발전 덕분에 1957년에는 최초로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 시계 Hamilton Electric이 발매되었습니다. 해밀턴의 전기 시계들은 쿼츠 이전의 전기식 시계들 처럼
 
기계식 무브먼트의 구동을 태옆이 아닌 전기로 행하는 구조였으므로 시계의 정확성을 특별히 향상시키는 기술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태엽통을 아무리 크게 하고 여러개를 달아도 10 일 정도가 고작인 기계식 시계의 파워리저브를
 
전기식 시계에서는 1년 이상으로 증진시켜 기계식 시계의 밥을 주는 불편한 점들을 개선했다는 점이 이 시계의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쿼츠 시계와 기계식 시계의 구분에서 중대한 역활을 하는 배터리와 쿼츠 진동차중 배터리가
 
시계 역사에 먼저 등장했었던 것입니다. 이제 쿼츠 시대의 개막에 필요한 유일한 기술은 배터리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시계 바늘들을 정밀하게 구동할 새로운 타입의 진동체였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후인 1959년에는 당시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을 5 배나 능가하는 음차식 시계(Tuning Fork)
 
어큐트론(Accutron)이 미국의 Bulova에 의해 등장하게 됩니다.
 
전기코일에 의해 진동하는 튜닝포크는 기계식 시계의 진동수의 36 배~40 배에 해당하는
 
초당 360 Hz의 고진동수로 진동했습니다.
 
 
           Accutron Caliber 214                           Accutron caliber 218
 
어큐트론에 사용된 튜닝포크야 말로 쿼츠 손목 시계 시대의 개막에 필요한 마지막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어큐트론의 등장은 시계사 전체로 보아도 매우 의외의 것이었지만, 이를 통해 비로서 기계식 밸런스와 이스케이프먼트를
 
사용하지 않는 손목 시계 사이즈의 시계가 만들어졌으며, 그것도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을 5 배나 증가시켜
 
시판용 기계식 시계로는 거의 불가능한 하루 오차 2 초를 성취했다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예고하는
 
일이었습니다.
 
 
 어큐트론으로 부터 시계에 대한 오차의 표현에 "월 60 초"라는 표현이 등장하여 손목 시계의 오차는
 
드디어 일차에서 월차의 개념으로 변경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Tuning Fork                       Quartz resonator
 
또한, 어큐트론에서 채용한 튜닝포크을 금속판에 코일을 감는 대신에 수정을 튜닝포크 형태로
 
가공하여 전기를 가하는 방식으로 튜닝포크로는 만들 수 없는 안정된 고진동(초당 8천회 이상)을 얻는 기술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튜닝포크는 기계식 밸런스 및 이스케이프먼트 시스템에서 쿼츠 모듈로 이행하는
 
기술적인 징검다리의 역활을 해주었습니다.
 
 
즉, 1969년의 쿼츠 혁명으로 요약되는 1950년대말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의 약 15 년간
 
시계 역사의 전면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한 주역은 당시 시계 산업의 주역이었던 스위스나
 
쿼츠 혁명의 주인공으로 시계사 연표를 장식한 일본이 아닌 전자 공업이 발달했던 미국이었던 것입니다.
 
스위스는 스위스인 Max Hetzel에 의해 발명되었으나 미국에서 개발된 새로운 어큐트론 기술을 특허 라이센스를 통하여
 
스위스 내에서도 생산하게 됩니다.
 
                                        ESA 9162
 
한편, 미국에서 시작된 배터리 방식의 손목시계를 참조하여 세이코에서 배터리를 사용하는 손목시계 개발을
 
위한 "59A 프로젝트"가 출범한 것이 어큐트론이 발매된 1959년입니다.
 
그리고, 베터리 교체나 수리 등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던 전기 시계나
 
특허로 보호를 받고 있던 어큐트론 대신에 세이코는 전기 시계 기술중 남아 있는 유일한 분야인
 
쿼츠 기술을 손목 시계로서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이 세이코 쿼츠 손목시계 개발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로 손목시계 사이즈의 쿼츠 시계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1964년 동경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하여 쿼츠 탁상 시계 부터 개발하게 됩니다.
 
한편, 미국에서 발전된 손목시계용 전기 무브먼트와 튜닝포크 기술을 도입하여 자체적인 기술까지 개발했던
 
스위스는 쿼츠 시계 기술에서도 당시 가장 앞서 있었습니다.
 
        Omega 30mm             Omega Megasonic         Omega Beta 21 
 
 
스위스는 세이코가 탁상용 쿼츠 시계 개발에 열중이던 1962년 쿼츠 손목시계 개발을 위한 
 
CEH(Centre Electronique Horloger) 라는 연구소를 개설하고 연구에 들어가 1967년 세계 최초로 쿼츠 손목 시계의
 
프로토 타입의 제조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 프로토 타입으로 제네바에서 열린 크로노미터 경연에 참가하게 됩니다.
 
당시 뇌샤텔의 크로노미터 경연이 중단되자 제네바의 크로노미터 경연에 참여한 세이코는
 
기계식 시계 무브먼트로 스위스의 쿼츠 손목 시계 무브먼트 Beta 21과 경쟁하여 패하게 됩니다.
 
이 때 세이코는 스위스에서 완성된 쿼츠 무브먼트의 프로토타입(10 개가 참여)을 보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당시 세이코도 회사 내부에서 쿼츠 무브먼트의 프로토 타입이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이것이 세이코가 쿼츠 손목시계 발매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며, 1969년 12월 25일
 
IC칩이 아닌 하이브리드 회로를 사용한 최초의 쿼츠 시계가 일본에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쿼츠 손목시계를 개발했던 스위스는 16 개의 회사에서 제조를 분담하여
 
완성된 Beta 21 무브먼트를 사용한 쿼츠 손목시계들이 이듬해인 1970년 바젤페어에서 16 개의 브랜드들에 의해
 
동시에 발표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세이코에서 최초로 쿼츠 손목 시계를 개발했다는 것은 시판용의 쿼츠 손목 시계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의미이며, 쿼츠 손목 시계의 프로토타입은 스위스와 세이코가 동시에 개발한 것입니다.
 
또한, 스위스에서는 CEH 에서 쿼츠 무브먼트의 개발이 완료되어 크로노미터 경연에서 성능이 확인된 1967년 이후
 
16 개 브랜드에 의한 공동 생산과 동시 발표 등의 복잡한 협의 등의 절차를 이행하느라 단일 회사에서 개발한
 
세이코에 비해 발표가 늦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즉, 세이코에서 1969년에 쿼츠 손목 시계를 발매하지 않았더라도
 
1970년의 바젤페어에서 쿼츠 손목 시계는 이 세상에 등장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시계사적으로는 최초의 쿼츠 손목 시계는 스위스와 일본에서 거의 동시에 개발되고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은 시각인 것입니다..
 
한편, 세이코 최초의 쿼츠 손목시계 아스트론은 하이브리드 회로의 채용으로 배터리 수명이 1년도 되지 않았으며
 
대량 생산 시설도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작업에 의지하여 튜닝포크형 쿼츠 진동자를 제조하는
 
수준이었으므로 그 상태로는 대량 생산에 들어갈 수 없는 수준의 쿼츠 손목 시계였습니다.
 
 
1964년 탁상시계급 쿼츠 시계의 개발에 성공했던 세이코였지만, 쿼츠 시계를 구동할 IC회로를
 
구할 수 없었으므로, 76개의 트랜지스터, 29 개의 콘덴서와 86개의 저항을 좁은 기판 위에
 
128 포인트나 납땜을 해야하는 엄청난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1969년 12월 단지 200 개만이 발매되었으며, 판매가격이 450,000 엔이라는
 
당시의 최고급 자동차 한 대 값에 해당하는 고가의 시계였습니다.
 
스위스에서 개발한 Beta 21 도 비록 완성도에서는 세이코의 Astron을 앞서는 것이었지만
 
기계식 시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가에 판매되어야 했으므로 스위스로서는 쿼츠 시계가 보편화되는 데에는
 
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쿼츠 무브먼트의 개발에 전념하는 대신 자신들이
 
세계 시장에서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기계식 무브먼트의 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Swiss Beta 21                                미국의 IC chip
 
 
따라서, 당시 쿼츠 손목 시계에 대한 연구가 가장 대규모로 깊숙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은 도리어 스위스였습니다.
 
다만, 손목시계용 쿼츠 무브먼트가 완성되었을 때, 일본의 세이코에게는 쿼츠는 즉시 보완되어 시판용으로 개발되어야할
 
기술이었고, 스위스 브랜드들에게는 많은 문제점들이 해결되어야할 좀 더 미래의 기술로 보였던 것입니다.
 
1969년과 1970년의 쿼츠 손목 시계의 최대의 과제는 배터리의 소모를 줄이는 소형의 전기회로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이 기술은 일본이나 스위스가 아닌 미국이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1960년대에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페어차일드는 이 분야에서 세계 최초의 기술들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쿼츠 시계를 만들 최상의 기술을 다 가진 상태였으나 이 기술들을 조합하여 쿼츠 시계를 만들었어야할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시계 회사들인 해밀턴과 블로바가 대량생산에 성공한 전기시계와 어큐트론에 집중하느라
 
쿼츠 시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대량 생산설비를 만들어 전기 시계와 음차 시계를
 
생산하고 있던 해밀턴과 블로바가 미래가 불투명한 쿼츠 시계의 개발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후 쿼츠 시계가 일본과 스위스에 의해 시장에 등장한 이후 해밀턴과 블로바는 LED와 LCD를 통해
 
쿼츠 시계를 제조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1971 Seiko CMOS IC 
 
 
일본이 스위스에 비해 전체적인 기술적 완성도에 다소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초창기 쿼츠 시대를 선도했던 것은
 
미국의 반도체 전문회사 Fairchild에서 제조한 저에너지 IC 회로를 사용한 덕분입니다. 
 
또한, 1970년대 Seiko가 쿼츠 손목시계용 저에너지 CMOS 기술에서 가장 앞서가게 된 것은 미국과 스위스 시계 회사들로부터
 
저에너지 CMOS 칩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거절당했던 유니온카바이드의 IC개발 책임자였던 John H. Hall 이 
 
그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Seiko와 계약을 맺어 그가 개발한 저에너지 CMOS 기술을 1970년 일본의 Seiko에 전수하고
 
Seiko에서 세계 최초로 쿼츠 손목 시계용 CMOS IC칩 제조공장을 설립하도록 일정부분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Seiko에서는 John H. Hall이 1971년 미국에 자신의 회사인 Micro Power Systems를
 
설립하도록 경제적인 원조를 제공하게 된다는 또 다른 스토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 결과로 Seiko는 1971년에 쿼츠손목시계 전용의 CMOS IC칩의 개발에 성공하고, 1973년에는
 
제조 공장이 완성되어 대량생산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하여 스위스는 쿼츠 손목 시계에서 일본에
 
완전히 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스위스에서 자신들의 실책을 깨딿았을 때 ETA는 자동 무브먼트 ETA 2892를 개발한
 
기술자를 서둘러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의 전자공학과로 보내야 했던 것이고 도리어 일본의 세이코와 시티즌을 흉내내어
 
얇은 쿼츠 무브먼트 개발에 착수하게 되는 비극과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의 쿼츠 기술의 발달에 미국 반도체 회사들과 반도체 회사 출신의 연구자가 일정 부분 기여를 했습니다만,
 
스위스의 쿼츠 기술자가 스위스에서 개발된 쿼츠 손목시계 기술을 일본으로 가지고가 그 설계도에 따라 세이코에서
 
세계 최초의 쿼츠 손목시계를 만들었다는 것은 흥미진진한 소설을 될 수 있을 지언정 사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쿼츠 손목시계의 개발에 필수적이었던 반도체 기술은 시계 전문 회사였던 세이코나 스위스의 CEH 에게도
 
매우 낮선 전혀 다른 분야의 기술이었던 것입니다.
 
다만, 이 단계에서 Seiko는 쿼츠 혁명을 신뢰했으며, 스위스는 이를 믿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혁명을 받아들인 Seiko로서는 쿼츠 손목 시계 개발을 기점으로 반도체과를 신설하게 되고,
 
 이 반도체과가 성장하여 시계 전문 제조업체였던 수와 세이코를 반도체 전문 기업으로 변신시킨
 
Seiko Epson의 바탕이 되었던 것입니다.
 
 
1960년대말, 일본에서 세이코의 경쟁자였던 시티즌은 대량생산기술이 확립된 어큐트론 방식의 전자 시계를 개발중이었으나
 
세이코는 미국에서 발전된 전기시계와 어큐트론 방식을 건너띄어 쿼츠를 소형화 하는 데 집중하였다는 점이
 
세이코가 세계 최초의 쿼츠 손목시계의 발명자로 시계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고 1970년대 미국의 반도체 업체들과
 
경쟁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틀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쿼츠 시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반도체 기술에서 일본이나 스위스를 앞도하고 있었던 미국은
 
곧이어 쿼츠 손목시계에 적합한 저에너지 CMOS 칩의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이를 기점으로 하여 미국의 텍사스 인스투루먼츠 등의 반도체 회사들 및 전자 회사들이 쿼츠 시계의 생산에 참여하면서
 
쿼츠 시계의 가격하락을 가져오게 되었고, 이는 홍콩 등을 통해 보다 저렴한 쿼츠 시계들을 등장시켜
 
결국 시계 업체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도화선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쿼츠 혁명이라 불리우는 시계사 최대의 패러다임 혁명의 전개과정입니다.
 
일본의 전자계산기 전문업체였던 Casio가 LCD 쿼츠 시계 생산에 뛰어들게 된 것도
 
반도체 등 전자 기술을 가진 회사들이 오랜 역사를 가진 기계식 전문의 시계 회사들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1970년대중반부터인 것입니다.
 
 
 
 
 
3. 쿼츠 혁명과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링고의 사색
 
 (1) GPS 시스템과 쿼츠 혁명의 완성
 
 
 이상과 같이 간단히 쿼츠 혁명이라고 불리우는 것에는 19세기초엽부터 시작된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기를 사용하면서 준비되고 있었으며, 1927년 최초의 쿼츠 시계가 발명되면서
 
소형화를 향한 발전과정에 접어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에서 발전된 반도체 기술에 힘입어 저렴한 쿼츠손목시계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며,
 
그 대가로 시계 회사들은 미국의 대형 반도체 회사들과 경쟁해야하는 비극적인 상황과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쿼츠 혁명은 시계사에서 처음으로 일본이 스위스를 앞서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나,
 
세이코와 시티즌으로서는 미국은 물론 자국내의 반도체 회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과 마주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홍콩과 중국의 값싼 인건비와 경쟁하면서 자신들조차 몰락의 길로 접어들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세이코의 아스트론 발매로 촉발된 쿼츠 혁명의 종말은 결국 전통적인 시계 업체들 모두에게 악몽이 되어버린 사건입니다.
 
그러나, 쿼츠 혁명은 시계 역사적으로는 수천년간 인류에게 시간의 척도였던 태양의 그림자를 다이얼로 읽어낸
 
해시계(sun dial)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계식 진자를 사용하여 낮과 밤에 상관없이 시간을 알 수 있도록한
 
기계식 시계에 의한 최초의 혁명 이후 700 년간 지속된 기계식 시계의 패러다임을 쿼츠 진동자 등 원자들의 진동을 이용하여
 
시간을 계측하는 시대로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런 점에서 시계사의 두번째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쿼츠 시대의 패러다임이란 반도체로 만들어진 시계로 상징되는 한달 오차 15초의 정확한 시계인 것일까?
 
시계사적으로 본다면 쿼츠 진동자의 등장은 원자 시계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했습니다.
 
19세기의 발명인 전기가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되고 있었고
 
회중시계를 스트랩에 매달아 손목시계가 만들어지던 시기인 1895년 이태리인 마르코니는
 
스파크갭 송신기와 안테나를 사용하여 인류 최초의 통신에 성공하게 됩니다.
 
1899년에는 프랑스와 영국간의 무선통신에 성공했습니다. 이어, 1901년에는 대서양을 횡단한 무선 송수신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무선송수신 기술의 초창기였던 1898년 11월 영국의 광학기기 제조가이자 엔지니어였던 Howard Grubb은
 
무선으로 제어되는 시계(clock)를 Royal Dublin Society에 제안하게 됩니다.
 
물론, 그 이전에 유선 통신을 통한 시보의 송신은 이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03년 미국 해군에 의해 무선을 이용한 시보의 송수신 기술이 개발됩니다.
 
아직 쿼츠 시계나 원자 시계들이 등장하기도 전의 일입니다.
 
1910년 프랑스의 경도 위원회는 에펠타워의 꼭대기에 송신기를 설치하여 하루에 2번 방송용 타임시그널을
 
송신하게 됩니다.
 
 
에펠 타워의 타임시그널을 수신하는 기능을 가진 시계가 등장한 것은 불과 3년 후인 1913년 Synchronome Company에서
 
발매한 Horophone입니다. 다만, 이것은 전파를 수신하여 사람이 수동으로 시계를 수정하는 시스템이었지,
 
전파를 수신하여 시계가 스스로 시간 표시를 수정하는 기술은 아니었습니다.
 
한편, 1924년 영국의 BBC 방송은 그리니치 천문대로부터 뉴스 방송을 시작하기전 6  핍이라고 불리는
 
시보를 방송함과 동시에 뉴스 헤드라인을 시작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전파 시계로 향하는 송수신기술이나 방송을 통한 시보는 쿼츠나 원자 시계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타임시그널을 수신하여 자동으로 시계의 수정하는 기술들은 1920년대부터 탐구되어
 
기계식 클럭을 수정하는 형태로 쿼츠나 원자 시계들과 나란히 발전되어 왔던 것입니다.
 
1955년에 등장한 새슘 원자 시계 역시 여러 번의 발전과정을 거쳐 1964년에는 6000년에 1초의 오차를 보이는 수준으로
 
향상되었으며, 그 후로도 계속 발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67년에는 1초를 평균 태양일의 1/86400 으로 정의했던 천문일에 기초한 시간의 최소 단위가
 
새슘 원자가 9192631770 번 진동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1955년 Caesium atomic clock 
 
즉, 시계사 전체로 본다면, 20세기의 시간과 시계에서의 진정한 패러다임의 완성은 20세기 초에 등장한
 
타임시그널의 전파송수신 시스템과, 1955년에 등장한 원자 시계 및 1967년의 시간에 기초 단위인 "초"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통하여 다방면에 걸쳐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술들은 기계식 시계와는 조화되기 어려웠으나 IC 칩을 사용하는 쿼츠 시계와는
 
너무도 잘 조화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이 모든 기술들은 1986년과 1990년 독일의 시계 회사 Junghans에 의해
 
전파를 수신하여 스스로 시간을 보정하는 탁상용 전파시계와 전파 손목 시계(radio-controlled watch)로
 
통합되었던 것입니다.
 
        Junghans Mega 1
 
원자시계의 등장으로 천문대의 천문관측에 의존했던 정확한 현재의 시간이라는 개념이 원자 시계의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변화시켰으며, 1969년 12월 손목시계 사이즈로 소형화되었던 쿼츠 시계는 안테나를 달아 원자시계의 시간을
 
수신하여 자체 보정가능하도록 진보하므로써 현재까지는 새로운 패러다임 시대의 최종적인 상징물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쿼츠혁명으로 불리우는 진정한 혁명은 시계에 대한 패러다임을 넘어 시간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
 
버린 것이며, 원자 시계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에 대한 변경된 패러다임은 이제 회중시계를 거쳐 손목시계로
 
진화한 시계를 핸드폰 등 전혀 새로운 형태로 변화시켜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계식 시계가 등장하기 전의 인류의 휴대용 시계란 목걸이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휴대용 기계식 시계역시 목걸이 시계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기계식 시계는 그 후
 
회중시계(Pocket watch)와 손목시계(wrist watch)로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개척해 왔던 것입니다.
 
쿼츠 시계로 표현되는 새로운 시대의 시계들 역시 현재까지는 손목시계이 형태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쿼츠 시계로 상징되는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이제 원자 시계들은 자신만의 패션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그것이 손목시계로 스타일에서 오래 머물게 될지...
 
핸드폰 등 시계의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스타일을 등장시켜 기계식 시계의 최종적인 유산인
 
손목시계를 역사의 뒤안길로 돌려세우게 될 것인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할 시계의 미래입니다.
 
쿼츠 시계의 미래의 스트일이 어떤 모습이던 간에, 쿼츠 시계는 기계식 시계의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였으며, 
 
20 세기와 함께 시작된 전파 기술을 활용하기에 적합한 전자 회로에 의해 통제되는 시계였으며
 
밸런스와 밸런스 스프링 및 이스케이프먼트 메커니즘의 발전을 통해 하루 오차 5초에 도달했었던 기계식 시계들의 한계를
 
월차 15 초에서 출발하여 단기간에 200 만년 오차 1 초의 시대로 접어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1913년의 전파 수신 기능을 가진 전기 시계의 등장, 1927년 쿼츠 시계의 개발, 1955년 원자 시계의 등장 및
 
1967년 시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 1969년 쿼츠 손목시계의 등장과 1985년과 1990년의 전파 제어 방식의
 
쿼츠식 탁상시계 및 손목시계의 등장으로 이어진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기계식 시계란 영원히
 
되돌아올 가능성이 없는 과거가 되고말 것 처럼 보였습니다.
 
기계식 시계들이 해시계와 물시계를 과거의 유물로 만들며 시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던
 
사용의 편의성과 정확성에서 기계식 시계들이란 이제 영원히 쿼츠 시계와 경쟁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2)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각으로 보는 기계식 시계의 의미
 
 
 
그 결과로 찾아온 암흑기로부터 기계식 시계 산업을 되살린 것은 1980년대와 1990년대 홍콩과 중국 등에서 저급한 품질로
 
대량생산된 쿼츠 시계에 대한 매니아들의 염증과 어느 덧 빈티지 시계들이 되어버린 똑딱거리는 기계식 시계에 대한
 
향수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한 향수는 이태리에서 시작되어 매우 빠른 속도로 유럽과 미국 그리고 쿼츠 혁명의 발원지인 일본에 까지
 
번저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사 직전의 상태에 빠져있던 스위스의 전통 브랜드들은 소생의 기회를 얻었으며
 
블랑팡의 "우리의 과거에도 미래에도 쿼츠는 없다."는 문구로 상징되는 1980년대 후반의
 
기계식 시계 부흥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쿼츠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Astron을 발표했던 세이코는 기계식 시계의 부활을 가장 마지막까지도
 
믿지 못했습니다.
 
일본내 시계 매니아들의 원성 때문에 그랜드 세이코 등 과거 세이코를 상징하는 기계식 시계들이
 
재등장했지만...
 
 
 
세이코로서는  아직도 시계 개발에 있어서는 Kinetic과 Spring Drive 같은 보다 발전된 쿼츠 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1969년 12년 25일로 상징되는 쿼츠의 혁명기는 지났으며 현재는 쿼츠 등 원자 진동자를 사용하는 시대이며
 
우린 그 시대의 초창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기계식 시계의 부활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변경시킬 혁명은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즐기는 극히 일부 매니아들의 도락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쿼츠와 원자 시계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계식 시계를 즐기는 시계 매니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기계식 시계의 오차를 조정하기 위한
 
GPS 방식의 원자 쿼츠 시계 (GPS 손목시계, 핸드폰 등)이기 때문입니다.
 
기계식 손목 시계들은 1969년 12월 25일 이후 더 이상 시간을 표현하는 정밀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이고, 디지탈 세계에 대한 염증이 만들어낸 아날로그적 여행에 불과하며
 
고급한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부활에 불과한 것입니다...
 
 
2006년 현재 세계 시계 시장의 99 %는 쿼츠 시계들이며, 1 % 정도만이 기계식 시계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더 중요한 점은 쿼츠 시계 마저도 사용하지 않고 핸드폰 시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년 더 증가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19세기 초까지 귀족들의 전유물이나 다름 없던 고가의 휴대용 기계식 시계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아마도 그 당시 전세계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보다 정확하고 보다 저렴한 시계를 만들겠다는 로스코프의 발상으로 시작된 달러와치의 개념은
 
로스코프가 꿈꾸던 단순화된 기계식 시계로 성취되는 대신에 배터리와 쿼츠 라는 개념을 통하여
 
완벽한 형태로 완성된 것인 지도 모릅니다...
 
시계에 대한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했다고 하지만, 기계식 시계는 아직도 전세계 1 %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확한 시간 측정 장치로서가 아닌 매력적인 패션 아이템 혹은
 
해시계의 그림자를 바늘로 형상화하고 이를 태양의 운동과 일치하도록 다이얼의 뒤에 숨어서
 
바늘을 돌리던 그 무브먼트의 율동과 아름다움에 매료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쿼츠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1994년 2차대전에 의해 동독 지역에 위치하여 서방세계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던
 
A. Lange & Sohnne가 그 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시계들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계들은 쿼츠가 등장하던 1969년 이전의 기계식 시계들과 같으면 서도 다른 것이었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타고난 한계인 하루 오차 5초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과거의 기계식 시계들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계들은 이전과 달리 모두 디스플레이백으로 만들어져 누구든 이 시계의 무브먼트를
 
케이스백의 크리스탈을 통해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랑게의 무브먼트들은 매우 아름답게 피니싱되어 있었으며 이 시계를 구입한 사람들은
 
단순히 시계 다이얼을 통해 시간을 보는 것 이상으로 이 시계의 디스플레이백을 통해 보여지는
 
아름다운 기계의 세계에 매료되었던 것입니다.
 
기계식 시계는 자신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오차의 문제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디스플레이백을 통해 보여지는 기계식 시계만의 예술적 매력으로 재탄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700 년간 인류에게 밤에도 태양의 그림자를 보여주었던 다이얼 뒤에 숨어 있었던 기계식 무브먼트의
 
찬란하게 아름다운 모습이 완벽한 형태로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아름다움들이야 말로 1980년대 이후 쿼츠의 패러다임 속에서 기계식 시계를
 
소생시킨 진정한 힘일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기계식 시계들은 더 이상 시간을 알려주는 정확한 계측기로서의 기능은 상실했다 할 지라도
 
이제 새로운 예술로서 재등장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진술의 발달로 초상화들이 사라진 20 세기...
 
그럼에도 우린 사진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움을 물감으로 그려진 얼굴들에서 발견합니다.
 
쿼츠시계에 의해 표현되는 새로운 시간과 시계에 대한 패러다임으로 기계식 시계들은 사라지는 대신
 
자신에게 어울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Zenith Caliber 135
 
기계식 시계들의 미래가 어떤 것이던 간에...
 
통상적으로는 초당 5회의 진동, 최대로 초당 10 회의 진동의 진동체를 이용하여 하루 5 초, 가장 정확하게는
 
하루 0.04 초의 정확성을 성취했던 기계식 시계들의 성취를 전기기술을 사용하여 튜닝포크의 초당 360 회의 진동으로
 
만들어낸 하루 2초의 오차나, 쿼츠의 초당 32,768 회의 진동으로 만들어낸 하루 0.5초의 오차와 산술적으로 비교한다면
 
기계식 밸런스와 밸런스 스프링, 팰릿 포크와 이스케이프휠로 하루 오차 1 분에서 출발하여 하루 오차 5 초에 도달했던
 
시계 기술자들의 치열했던 도전 정신이야 말로 쿼츠 시대에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놀라운 성과인 것은 아니었던 것인지...
 
쿼츠가 만든 실감 오차 0 초를 수립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에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비행기로 수만 미터 높이로 날 수 있는 오늘날...
 
히말라야의 8000 m 높이의 산을 오른 인간들의 성취담에 감동하는 그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일 지도 모릅니다.
 
다만, 사람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과 비행기가 수만 미터 상공을 나르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도
 
케이스와 케이스백에 의해 감추어진 시계 속에서 무엇이 그런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한 이 시대에 기계식 시계들이 마주친 비극의 원천인 것입니다.
 
손목시계 기술을 크게 발전시킨 윌즈도프의 오이스터 케이스가 가져온 비극이며
 
랑게에 의해 크리스탈을 통해 극복해낼 가능성이 보여진 비극입니다.
 
 
기계식 시계에서 쿼츠(인공 수정)은 사파이어 크리스탈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쿼츠를 통해 시간을 볼 것인지...
 
쿼츠를 통해 인간이 창조해낸 작고 완벽한 기계식 메커니즘의 감동을 볼 것인지...
 
새로운 패러다임하에서 일반인들과 시계 매니아들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장벽은 결국 이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계 탐험 제 1 부  - 끝 -
 
다음 회에는 새로운 테마로 세계 탐험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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