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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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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진 헤리티지 레트로그레이드

Longines Heritage Retrog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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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며칠 전 친구 한명과 함께 압구정 가로수길을 걸었습니다. 딱히 이렇다 할 행선지는 없고, 괜찮은 아웃렛 매장을 한 군데 둘러보다가 여유가 생겨 눈요기 겸 기분전환 겸 마실을 나갔던거죠. 저와 친구는 사람 구경 할 수 있고, 야외 테라스에서 간단한 커피 정도를 해결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꾸물꾸물한 그 날의 날씨를 즐기며 길을 걸었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저와 친구는 테라스가 있는 카페를 발견했고,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며 저는 테라스에서, 친구는 커피가 나오는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커피 나오기를 기다리는 잠깐 그 새를 못참고 저는 끓어오르는 시덕(?)의 피를 버리지 못하고 어느새 고개를 돌려가며 주변 사람들 시계를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아~ 쟤는 불가리 차고 나왔네.’, ‘이야~ 까르띠에 또 저렇게 보니까 예쁘네.’, ‘알마니네. 디자인은 참 예쁘단 말이야.’, ‘잉? 브라이트링 뚜르비용? 아, 뚫어비용(저가형 짝퉁)이구나.’등등.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안면도 없는 사람들의 손목을 조심스레 스캔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죠. 그렇게 고만고만(?)한 손목 위 시계들을 감상하는 도중. 제 시선은 한 테이블 반 건너 거리에 재킷에 세미 마린룩으로 한껏 멋을 낸 한 남성의 손목에 고정됩니다. 저건……. 론진이다!

 

 우선 리뷰를 위해서 이야기를 각색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카페를 간 것도 맞고, 사람 구경도 했으며, 론진의 시계도 봤으니까요.(아, 물론 친구 역시 실존합니다.) 어찌됐건 저는 그 남자의 손목 위에 올라가 있는 푸른 빛깔 블루핸즈와 카페 조명을 받아 스테인레스 케이스 위로 반짝이는 론진의 시계를 꽤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기억은 아직도 꽤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후에 찾아보니 시계는 마스터콜렉션 데이트 모델인 것 같았습니다.(L2.648.4.78.6) 과거에는 무조건 하이엔드 아니면 사지 않겠다. 또는 남자라면 1000만원 이상의 시계를 위해 꾸준히 적금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저였지만, 최근에 그 이름모를 네이비룩 남성을 보고 난 뒤부터, 만원짜리 길거리표 시계든, 컴플리케이션이든 미닛리피터든 시계는 역시 사람과 잘 어울려야 시계답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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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2.648.4.78.6

Longines Master Grande Date

 

 이런 감정을 느낀 시계가 왜 론진인지까지는 콕 찝어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든 부담스럽지 않게 럭셔리한 시계생활을 즐기기에는 론진이라는 브랜드가 제일 담백하게 느껴지시지는 않는지요, 아니면, 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건가요?

 

 

레트로그레이드

 

 론진의 시계 중 대한민국 마니아들에게 톡톡히 편애받고 있는 모델을 세 가지 꼽으라면(한정판을 제외하고), 마스터 컬렉션 문페이즈(L2.673.4.78.3)와 하이드로 콘퀘스트(L3.642.4.56.6), 그리고 레전드 다이버(L3.674.4.56.3)일 것입니다. 특히 마스터 컬렉션과 레전드 다이버는 모두 생산된지 얼마 되지 않은 플래그십 모델들이기에, 많은 시계 마니아들이 론진의 시계에 호기심을 갖고 앞으로의 귀추를 기대하기에 충분했던 모델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었던 걸까요? 새로운 모델이 등장 했을 때, 유저들의 반응은 기대만큼 뜨겁지는 않았습니다. 자유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가장 큰 아름다움인 ‘기회비용’이 론진의 도약에 발목을 붙잡았기 때문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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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마스터 컬렉션 문페이즈(L2.673.4.78.3)

 하이드로 콘퀘스트(L3.642.4.56.6)

 레전드 다이버(L3.674.4.56.3)

 

 그 모델이 ‘마스터 레트로그레이드 파워리저브’ (L2.714.4.78.6) 였습니다. 레트로그레이드라는 흔하지 않은 컴플리케이션의 사용과 가뜩이나 바늘도 많은데 스윕 세컨드로 시선을 분산시키는 디자인, ETA의 Valgranges A07(발그랑쥬) 신형 무브먼트의 사용, 마지막으로 클래식을 지향하는 라인에 무식하게 도전하는 듯한 44mm의 거대한 케이스는 이 시계의 가격을 안드로메다로 올려버렸고. 동양의 멸치손목 유저들에게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리게 만들어버리게 만들어버립니다. 시계 자체는 세컨드 타임존에, 데이 & 데이트, GMT조작을 위한 시침조작, 파워리저브까지 표시되는 엄청난 기능(게다가 저렴한 가격)의 시계였지만, 대한민국의 반응은 역시 마스터 문페이즈와 레전드 다이버, 하이드로 콘퀘스트만이 진리라는 말만 남았습니다. 일반인들의 반응은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이렇게까지 복잡한 디자인은 필요없다는 말과 함께 예물로는 역시 심플한 시계라는 끝말을 남기며 다른 시계를 사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점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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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진의 비운의 신작

마스터 레트로그레이드 파워리저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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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트로 문페이즈, 레트로 점핑세컨즈는 레트로 파워리저브와 함께 나란히 귀향의 압박을 받게 됩니다. 해외 시장의 반응 역시 반반, 그나마 반응이 있었던 모델은 점핑세컨즈 모델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4중 레트로그레이드가 들어가 있는 시계는 스와치그룹의 모든 시계 중에서 이 시계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레트로그레이드 하면 생각나는 브랜드가 하나 있지 않으신가요? 어쩌면 이 시계는 바로 모리스 라끄로와의 레트로그레이드와 한판 붙기 위해 만든 시계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모리스 때문인지는 론진 산하의 워치디렉터와의 술자리에서 밖에 알 수 없겠지만 말이죠. 모리스 얘기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 하지만 4중 레트로그레이드 모델이 스와치 시계 중 유일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레트로그레이드를 이렇게 많이 사용한 모델은 비단 론진, 모리스 뿐만이 아니라 전 시계 브랜드를 통틀어도 흔하지 않다라는 것이죠.

 

 아래는 그나마 해외에서 반응이 괜찮았던 마스터 점핑세컨즈 모델의 구동 동영상입니다. 사진기자가 안티인 것 같은 느낌의 포스터 때문에, 또는 시장 반응에 현혹되어 관심조차 가지지 않으셨던 유저분들께서는 한번쯤 보시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만한 매력적인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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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동영상의 시계가 오늘 여러분께 소개시켜드릴 시계는 아닙니다. 오늘 저와 함께 이야기해 볼 시계는 ‘마스터컬렉션 레트로그레이드’의 헤리티지(Heritage) 버전인 마스터 헤리티지 레트로그레이드(Master Heritage Retrograde)라는 시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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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있는 녀석이 마스터 컬렉션 레트로그레이드,

 오른쪽에 있는 녀석이 이번에 소개해드릴 마스터 헤리티지 레트로그레이드 입니다.

 

 

헤리티지? 뭐가 다른거지?

 

 론진의 시계들은 크게 네 가지 분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클래식함을 강조한 Elegance, 기술력을 집중한 Watchmaking Tradition(마스터콜렉션이 이쪽 계통입니다.), 하이드로 콘퀘스트 라인을 가지고 있는 Sport 계열, 마지막으로 각 시계의 라인들 중에서 대표격인 모델들을 따로 모아 리메이크하는 Heritage 라인입니다. 각 계열마다 각자의 개성이 강한 시계들이 다양하게 포진해있지만 마지막에 설명한 Heritage 계열은 론진 각 계열의 플래그십모델(가장 상징적인 시계들)을 한데 모아 특별판으로 모아놓는 라인입니다. 한마디로 ‘론진 박물관 라인’이라고도 표현 할 수 있겠습니다.
 헤리티지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해보자면, 1867년 Ernsest Francillon이 스위스에 론진을 설립하고, 시간을 측정하는 가장 최초의 인공기구였던 모래시계와 공장이 있던 지역의 심볼인 날개모양을 이용하여 론진의 로고를 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려 175년이 넘는 기간동안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는 브랜드가 되지요. 헤리티지는 이 시기 중 1920년대와 30년대 Art Deco양식으로 최신유행을 선도하던 론진의 엘레강스한 맛을 잃지 않겠다―는 일종의 기념의 의미로 만든 라인입니다. 이 라인의 시계들의 장점을 하나 꼽으라 한다면 다른 브랜드처럼 디자인 조금 바꾸고, 한정판으로 뽑아낸 다음 가격을 마구 올리는 상술을 부리지 않고, 그 가격 그대로, 원래 디자인과는 조금 더 색다른 맛의 시계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친구들에게 시계에 대해 할 말도 조금 더 많아지는 건 ‘덤’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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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기존 버전의 레트로그레이드에서 론진의 로고가 통일감을 해치는 감이 있었다면, 헤리티지 버전의 이 시계는 론진의 초창기 로고를 사용하여 시선의 부담을 줄였습니다. 곡선의 필기체와 핸즈, 레트로그레이드 다이얼의 배치가 중심부로부터 가장자리까지 물 흐르듯 분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시계의 다이얼 일부에만 시선이 집중되는 현상을 최소화하고 시계 전체를 보게하는 효과를 가져다주어 분산된 시선이 핸즈들의 배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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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기존의 레트로그레이드가 Arabic index(아라비아 숫자)를 쓴 것과는 달리 헤리티지는 로마자를 사용하였습니다. 아라비아 숫자와 로마자의 차이는 호불호가 분명한 편인데, 로마자의 시원하게 뻗은 직선이 시계를 보는 시선에 균형감을 주기 때문에 조금 담백한 디자인을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다이얼은 cold enamel 로 일반적인 fired enamel과 같은 전통적인 공법이 아닌 분말을 이용한 에나멜 다이얼 공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물론 전통적인 방식을 사용하여 레이어를 여러겹 바르는 fired enamel 공법을 사용하였다면 좋았겠지만, 높은 단가와 노고로 인한 가격상승을 막으면서 에나멜 특유의 투명한 맛을 살리기에는 cold enamel 공법이 최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cold enamel 다이얼이 fired enamel 보다 낮은 수준의 다이얼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cold enamel은 에나멜 특유의 색감을 살릴 수 있으면서 fired enamel 공법보다 불량률이 현저히 낮고, 제작 방식에서 독성 물질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AHCI 맴버인 PSM이 자신의 시계를 제작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Fired work와 Cold work에 대한 차이는 나중에 Technical에서 한번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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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스의 크기는 41mm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전 모델의 경우 Watchmaking Tradition이라는 말을 지켜내기 위해 44mm라는 케이스에 레트로그레이드 기술을 구겨넣은 것 같은 부담스러운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 모델은 그 크기가 표준 사이즈 안쪽으로 들어와 클래식함과 최근 시계 시장의 추세를 둘 다 충족시키는 디자인을 완성시켰습니다. 또한 복잡한 컨셉의 시계일수록 사이즈가 크면 되려 지저분해보일 수 있는데, 헤리티지 레트로그레이드의 다이얼은 실제로 손목 위에 올려놓고 보면 한 눈에 쏙 들어올 정도의 심플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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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스백은 시스루백을 선택하였고, 방수능력은 3ATM, 글라스는 사파이어글라스로 기존의 마스터 레트로그레이드와 같은 재원입니다.

 

 마스터 레트로그레이드 컨셉 자체가 디자인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면, 이번 헤리티지 레트로그레이드는 그런 이야기들을 잠식시킬만한 그런 부드러운 힘이 느껴집니다. 기존 레트로그레이드가 이미지컷 부터 시각적으로 불안한 느낌과 부담스러운 느낌이었다면, 이번 레트로그레이드는 다이얼의 가운데로 몰리는 시선을 적절히 분산하고, 무채색의 로고와 흰색, 검은색, 파란색이라는 3색의 사용으로 단순하면서도 시각적으로 자극을 주지 않는 것에 성공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무브먼트

 

 무브먼트는 기존 마스터 레트로그레이드의 무브먼트 사용과 같이 ETA사의 신형 무브먼트인  발그랑쥬 A07계열의 무브먼트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무브먼트는 2004년에 개발 된 무브먼트이고, 그 크기는 36.60mm로 크로노그라프 베이스 무브먼트의 크기가 보통 30mm 이상임을(ETA 7750의 경우 29.32mm) 감안할 때, 기존에 7750 무브먼트를 사용하던 시계들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시계를 겨냥하고 제작한 무브먼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발그랑쥬 무브먼트가 사용된 초창기 시계들(론진의 린드버그, 글리신, 융커스 등)의 경우 사이즈가 45mm가 넘어가는 사이즈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케이스 사이즈는 점점 커지는데, 2824, 7750 등의 무브먼트의 크기가 형편없이 작아 시각적, 물리적으로 미흡했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보여집니다. 베이스 무브먼트를 사용한 헤리티지 레트로그레이드의 구동 방식은 역시나 모듈형으로, 자사 무브먼트를 제작하지 않고 단가를 절약하면서 자신들의 기술을 시계에 접목시킬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을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크기가 커지면서 함께 커진 시원시원한 밸런스의 크기와 로터의 움직임 역시 새로운 무브먼트에 대한 만족감을 높여주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8xx 계열과는 차원이 다른 시원한 느낌은 스펙 그 이상으로 만족을 주는 무언의 매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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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감

 

 칼럼 휠 크로노그라프의 푸셔를 눌러보신 분이시라면 7750의 푸셔와는 차원이 다른 부드러움에 깜짝 놀라셨던 경험이 한번쯤 있으실 겁니다. 헤리티지 레트로그레이드의 조작감은 칼럼휠의 그것 만큼이나 부드러우며, 버튼을 누를 때마다 느껴지는 적당한 텐션에서 쫄깃쫄깃한 맛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듈을 얹은 무브먼트는 ‘저급하다’는 선입견을 단번에 벗겨버릴 만큼 조작감이 주는 만족감은 큽니다. 조작방법에 대한 설명을 추가로 드리자면 왼쪽 상단 버튼은 다이얼 왼쪽 윙 부분의 GMT를 조작하기 위한 버튼이며, 스크류를 열고 누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상단의 버튼은 다이얼 상단에 있는 Day를 조작하며, 오른쪽 하단 버튼은 Date를, 중앙에 있는 용두를 1단으로 뽑게 되면, 시침의 GMT가, 2단으로 뽑게 되면 레트로그레이드 핸즈들이 모두 정렬하면서 시간을 맞출 수 있게 조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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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조작을 위해 용두를 빼기 전(왼쪽)과 용두를 완전히 빼고 난 후(오른쪽)

시간 조정과 관여되지 않는 모든 핸즈(GMT, 데이, 데이트)들이 빠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초침 레트로그레이드를 제외한 모든 핸즈들은 모두 ‘점핑’하면서 체인지 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용두를 2단으로 뽑아 조작을 할 때 분침이 약간씩 밀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는 GMT 조작과 시간 조정을 위한 기어트레인 전환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유격 조정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 시간을 맞추는 데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점핑하는 핸즈들의 경우, 어떤 브랜드처럼 ‘뻑뻑’하지도, 또 어느 브랜드처럼 ‘경박’하지도 않았습니다. 특히 60초 레트로그레이드의 경우, 짧은 간격으로 점핑이 이루어지기기 때문에 시계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망쳐버릴 수도 있을만한 위력이 있는데, 론진은 이러한 사실을 잘 캐치하고는 ‘적절한’ 무게감이 있는 점핑을 완성하여, 중도의 미덕을 잘 지켜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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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감

 

 Valgranges 무브먼트의 두께와 모듈의 두께로 인해 시계는 제법 두툼한 편입니다. 과장하자면 일반적인 드레스 워치의 두 배 정도 되는 크기인데, 그 크기에도 불구하고 무게는 가벼운 편이어서, 시계를 착용하다가 밀리거나 뒤집히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무뚝뚝(?)하게 생긴 케이스가 디자인적으로 보나, 착용감으로 보나 상당히 껄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막상 착용을 하고, 손으로 만져보니 케이스 모서리는 밀링머신을 통해 날카롭지 않게 2차 가공을 해 놓은 상태였고, 뚝뚝 떨어지는 러그의 각도는 손목에서 시계가 회전하지 않도록 꼭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멸치 손목을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길이의 스트랩과 디버클의 조합은 16cm~16.8cm 정도 되는 손목에는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손목이 17cm 이상 되시는 분들께서는 앉은자리에서 바로 레트로그레이드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디버클의 퀄리티는 훌륭한 편이며, 3단 디버클의 탈부착의 유용함은 굳이 침을 튀겨가며 설명드리지 않아도 다들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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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위의 모델이 헤리티지로 나오면서 새로운 강점으로 들 수 있을만한 것들을 꼽아보자면, 업그레이드 된 디자인과 무난한  사이즈, 시계를 제작함에 있어 론진이 선택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상의 선택들(cold enamel dial과 발그랑쥬 무브먼트, 지루하지 않은 레트로그레이드 기술과, 하나같이 유용한 다이얼의 기능, 마지막으로 론진 특유의 합리적인 가격까지)이 만들어 낸 최상의 시계라는 것 이었습니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 다시한번 부상하고 있는 론진의 위용과 론진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계라고나 할까요?


 중고로 시계를 구매해서 브랜드의 레벨을 올릴것이냐, 아니면 신품으로 조금 더 복잡한 기능의 시계를 구해 볼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는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의 폭이 뱁새 가랑이만한 우리 마니아들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론진의 이번 시계만큼은 ‘중고로 상위 그레이드의 시계를 구매하느냐’와 ‘새 것으로 살 수 있는 복잡기능의 시계를 구매하느냐’의 사이에서 자신 있게 후자를 추천드릴 수 있을 만한 매력적인 시계였습니다.


 시계의 매력은 상위 그레이드의 시계와, 럭셔리한 스마트키, 그리고 이것들을 한데 모아 찍어 놓은 맛깔나는 사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눈코뜰새 없이 바쁘기도 하면서, 간간히 여유가 되면 즐거이 휴식을 취할 줄도 알고, 나의 모든 생활과 손목 위의 시계가 하나 되어 ‘이 시대의 마지막 감성 아이템’이라는 문장에 가슴으로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직접 들고, 씹고, 보고, 맛보고, 즐기고 하는 것이 참된 시계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서 역시 시계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시계는 바로 후자의 멋쟁이들을 위해 탄생한 시계입니다.

 1일, GMT, 매 시간, 60초마다 점핑하는 헤리티지 레트로그레이드는 비록 가지고 있는 시계가 이것 하나뿐일지라도 절대로 심심하진 않을 시계입니다. 마치 우리가 몸뚱이 하나를 가지고 인생의 생사고락,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삶에 대해 하루하루를 탐닉하는 것처럼 말이죠.

 

 Longines Heritage Retrograde.


워치 리뷰어로서 좌절감과 행복감을 가장 분명하게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미운오리 새끼를 억지로 떠맡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좌절). 그리고 그 미운오리 새끼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백조가 되어있었다 사실을 깨달았을 때 (행복). 뭐 그런 것 같습니다. 휴지조각인줄 알았는데 제법 쏠쏠한 수익을 남겨주었던……. 추억의 초록x 주식처럼요. 타임포럼의 워치 리뷰어로서 이 진실한 마음을 속이지 않고 언제까지 솔직한 심정의 리뷰를 할 수 있을지 호언할 순 없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어떤 시계이든지 매장에서 생각하고 계시는 시계를 보실 수 있다면 단박에 알아채실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제가 리뷰하는 시계를 오리를 백조라고 속이고 있는지, 백조를 백조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지를 말이죠. 물론……. 저는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 배울만큼 배운 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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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ines Korea

Tel: 02-3149-9532

 

사진촬영

김두엽 (2ndRound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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