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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us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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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1837년 설립된 에르메스의 175년 되는 해이면서, 에르메스가 최초의 시계를 선보인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에르메스의 시계가 100년이나 되었나... 며 적잖게 놀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에르메스의 시계 역사는 바로 이 사진 한장에서 그 역사적 증거를 삼고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2년에 찍은 이 사진은 휴가를 떠난 에르메스 가족들을 담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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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2년. 왼쪽부터 이본느, 자클린, 시몬느 그리고 알린느 에르메스 >



에르메스를 창립한 티에리 에르메스(Tierry Hermes)의 증손녀들인데 두 번째에 선 자클린은 손목에 시계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포르트-오이뇽(porte-oignon : porte는 문, oignon은 양파라는 의미이다)' 이란 이름의 이 시계는 회중 시계에 가죽을 감싸 손목시계처럼 착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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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트-어니용" 스트랩, 1912년작 >



하지만 에르메스의 본격적인 시계 역사는 1928년 프랑스 파리 포브르 생또노레 24번가에 위치한 에르메스 부티크에서 최초로 에르메스 시계를 공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물론 이 시기의 에르메스는 시계를 직접 제작했다기 보다는 스위스의 시계 제조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미 그 당시부터 대중적인 명성과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던 에르메스는 스위스의 전통적인 시계제조사들에게 컨셉이나 디자인 등에 대한 제안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계를 에르메스 매장에서 판매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의 에르메스 시계 제작에 함께한 파트너로는 예거 르쿨트르, 유니버셜 제네바,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율리스 나르덴 등으로 시계에 에르메스와 시계 브랜드의 로고를 같이 기재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런 협업관계는 1978년 에르메스가 직접 스위스 비엘에 "아틀리에 드 라 몽트르 에르메스(Ateliers de La Montre Hermes)"를 설립하고 직접 시계를 제조하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라 몽트르 에르메스가 스위스에 설립된 것은 에르메스가 프랑스 태생의 브랜드이지만 시계 제조 만큼은 스위스의 고급 인력을 이용하면서 시계의 무브먼트를 비롯한 각종 부품들을 조달하기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03년부터 보셰 매뉴팩쳐 플러리에(Vaucher Manufacture Fleurier)라는 기계식 무브먼트의 안정적인 공급원을 확보합니다. 현재 산도즈 재단(파르미지아니를 소유한)이 75%, 에르메스 인터내셔널이 2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곳으로 부터 에르메스를 위한 신형 무브먼트 H1837 과 H1912 를 공급받습니다. 


아직 정통 시계 매뉴펙쳐의 위치까지 도달하지 못한 에르메스로서는 인하우스 무브먼트에 준하는 고급 무브먼트를 안정적으로 제공받음으로써 시계 분야에서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첫걸음을 뗀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무브먼트의 이름 역시 에르메스의 창립연도인 1837년과 에르메스 시계의 시작점인 1912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에르메스가 이 두 무브먼트에 부여하는 의미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해(2012년) 바젤월드를 통해 H1837 무브먼트를 장착한 신형 드레사지(Dressage) 컬렉션을 런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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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형 드레사지 3종 세트 >



드레사지(Dressage)는 우리가 흔히 '마장마술'이라 불리는 승마 스포츠에서 그 이름을 따 왔습니다. 1837년에 설립된 에르메스가 말 안장을 비롯해 탁월한 품질의 마구 제작으로 부터 그 명성을 쌓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브랜드의 정체성에 꽤나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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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바로 드레사지(Dressage) >



한없이 귀족들의 유희로만 느껴지는 이 스포츠에서 우리는 에르메스 드레사지 컬렉션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나 피아제의 폴로 컬렉션과 비슷한 지향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드레사지는 2003년 앙리 도리니(Henri d'Origny)가 처음으로 소개한 모델로 아이코닉한 요소는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적이고 가벼운 느낌으로 진화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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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형 드레사지 모델. 오래된 전화 다이얼 같은 인덱스가 참... 그렇다. ^^; >



새로운 드레사지 컬렉션은 모두 10개 모델로 선보였습니다.  케이스 소재(스테인리스 스틸/로즈 골드)와 다이얼 색상(오팔린 실버/맷 블랙) 및 브레이슬릿/가죽 스트랩 모델로 세분화됩니다. 그리고 로즈 골드 케이스에 맷 그래피트 색상의 다이얼을 한 모델은 에르메스 브랜드 탄생 175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리미티드 에디션입니다. 175주년인 만큼 175개만 생산되었습니다.


케이스 사이즈는 40.5X38.4mm 이며, 두께는 10.2mm 입니다. 드레스 워치로서 적당한 사이즈로 보이며, 스포티함이 살짝 가미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느낌을 주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독특한 케이스 때문일 것입니다. 토노 형태의 완만한 곡선을 그린 측면 라인과 동물의 뿔 모양을 한 러그는 일체화되어 있는 케이스는 어느 시계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드레사지만의 디자인입니다. 에르메스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마구(馬具)에서 가져온 디자인이라는데 정확히 마구의 어느 부분을 가져 온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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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는 전체적으로 폴리싱 처리와 새틴 브러쉬드 처리가 잘 조화되어 있는데, 특히 러그를 보면 러그의 안쪽 모서리 부분을 날카롭게 처리하면서 케이스 안면은 폴리싱 되어 있습니다. 피부에 접촉할 일이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는 없어 보이며, 시각적인 유려함을 주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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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베젤과 함께 완만한 곡선을 그린 돔 글래스도 깔끔하고, 에르메스의 H자 로고가 박힌 심플한 크라운도 흠잡을 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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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블랙의 다이얼은 실버 색상의 인덱스, 핸즈와 대비되어 좋은 시인성을 만들어 냅니다. 오목한 원형 안에 볼록한 3, 9, 12 인덱스는 기존의 드레사지 컬렉션으로 부터 이어 받은 디자인인데, 이 셋만 남기고 나머지 인덱스를 심플하게 처리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스켈레톤 타입의 시침, 분침도 매력적이며 중심의 스트라이프 무늬는 밋밋했을 뻔한 다이얼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밸런스가 참 잘 잡힌 느낌이 드는 다이얼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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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뒷면은 사각 형태의 케이스백으로 씨스루 타입입니다. 씨스루백을 통해 에르메스의 신형 무브먼트인 H1837 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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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셰 매뉴팩쳐 플러리에가 제작한 H1837 무브먼트는 자신만의 기계식 무브먼트를 갖겠다는 에르메스의 염원이 담긴 무브먼트로 직경 26mm, 두께 3.7mm 의 오토매틱 무브먼트입니다. 같은 보셰에서 만들어 파르미지아니에 제공하는 PF331 무브먼트와는 거의 형제같은 무브먼트입니다. PF331보다 두께가 0.2mm 더 두꺼운데 좀 더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28석, 진동수 28,800 vph (4 Hz), 더불 배럴의 50시간 파워리저브 성능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파리미지아니의 PF331 무브먼트가 더 고급 버전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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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르미지아니 PF331 무브먼트 >



독특한 것은 드레사지 컬렉션은 센터 세컨드에 데이트 모델과 스몰 세컨드 모델이 있는데 둘 다 무브먼트는 H1837 이 장착됩니다. 이 정도의 기능 차이면 다른 무브먼트로 장착 또는 명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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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르메스 H1837 무브먼트(좌), H1912 무브먼트(우) >



보셰에서 만든 무브먼트는 상당히 만족스런 조작감을 줍니다. 태엽 감는 촉감이나 시간 조정시 탄탄한 느낌을 주는데, 0단에서 태엽감기 기능을, 1단에서 핵기능 있는 시간조정 기능을 합니다. 이렇게 에르메스는 자신들만의 기본형 무므먼트를 갖게 되었으니, 이후 H1837 무브먼트를 베이스로 문페이즈 같은 다양한 베리에이션 버전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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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것이 한가지 있다면 로터와 플레이트에는 에르메스의 H자 패턴 문양입니다. 지나쳐서 이미지의 과잉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뒷모습의 첫인상을 너무 회색톤의 칙칙한 느낌이 들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플레이트는 코트 드 제네바 문양으로 처리하고 로터에만 H자 패턴을 넣었으면 더 깔금한 인상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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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시계라면 역시 시계 못지 않게 관심가는 부분이 스트랩일 것입니다. 가죽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브랜드인 만큼 어떻게 보면 자존심이 걸린 부분일 것입니다. 에르메스 시계를 제조하는 라 몽트르 에르메스는 2006년부터 시계 가죽 스트랩만을 제작하는 공방을 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르메스는 스트랩 만큼은 제작에서 마무리까지 인하우스로 생산하는 유일한 시계 브랜드입니다. 이 공방에서는 에르메스의 전통적인 새들러 스티칭 기법을 통한 에르메스 시계의 고품질 스트랩을 생산하고 있는데, 에르메스 시계 라인업에서 유독 가죽을 이용한 제품이 많은 것도 이해가 됩니다.


이 모델에 장착된 스트랩은 블랙 색상의 엘리게이터 악어 가죽입니다. 스트랩 사이즈는 21/18mm 입니다. 명성에 걸맞는 뛰어난 촉감과 질감을 보여주며 안면 가죽 역시 에르메스 특유의 오랜지 빛이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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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은 단방향 디플로이언트 버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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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 버클 부분의 잠금 방식이 독특하게 되어 있습니다. 갈고리 처럼 생긴 버클 고리는 "똑!" 소리를 내며 완전히 잠기는 방식입니다. 시계를 착용할 때나 그 반대의 경우에 디플로이언트 버클을 조작시 스트랩이 움직이지 못하게 완전히 밀착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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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역시나 착용샷입니다.


드레스 워치로서의 우아함에 독특한 스타일이 만들어내는 세련된 경쾌함이 있습니다. 완성도 만으로는 좋은 점수를 받을 만 한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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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에르메스를 비롯해 많은 토탈 패션 브랜드들이 시계 제조 분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소규모의 시계 공방을 인수하기도 하고, 고급 인력을 스카웃해서 대담한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내 놓기도 합니다. 결과물로만 봐서는 상당히 훌륭한 시계들도 눈에 띄는데, 시계 마니아들에게는 아직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시계에 대한 열정을 보여 주고 있는 몇몇 브랜드에 대해서는 "그래, 너도 시계 매뉴팩쳐야!" 라며 인정을 해 주는 분위기입니다.


에르메스 역시 신형 무브먼트를 장착한 드레사지의 출시를 계기로 시계 분야에 지속적인 열정을 보여 준다면 여자들에게 에르메스 가방이 '머스트 해브 아이템'인 것 처럼, 에르메스 시계 역시 노력에 대한 합당한 대접을 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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