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이미미입니다. ^^
pam911을 사고 케이스백에 새겨진 'last one for paneristi'와 'A.B.'라는 각인을 보면서,
4월 1일 은퇴하는 안젤로 보나티 전 사장을 위한 포스팅을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어제 보나티 씨가 파네라이 초창기를 회고하는 인터뷰를 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그 인터뷰를 우리 파네동에 올려두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래 인터뷰는 hodinkee.com에서 퍼왔음을 밝혀둡니다.
더불어, 전문번역가가 아닌 제가 번역기도 돌리고 사전도 찾아보면서 나름대로 번역해본 것이라 오역이 있을 수 있음도 밝혀둡니다.
이에 원문도 실어둡니다.
오역이 있다면, 또는 전문용어인 부분에 대한 번역이 올바르지 않다면, 이 분야에 정통하신 고수님들께서 댓글로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겸손하게 배우겠습니다.
Good bye, Mr. Bonati!
파네라이 초창기를 회고하다.
-안젤로 보나티 Angelo Bonati 씨와의 인터뷰-
글쓴이 조 톰슨 Joe Thompson
April 11, 2018
Last week, Angelo Bonati said arrivederci to Panerai after 21 years with the firm, 18 of them as the CEO.
Bonati was head of sales of Cartier in Italy in 1997 when Richemont Chairman Johann Rupert selected him as Panerai's first sales director. Rupert's Vendôme Luxury Group (now called the Richemont Group) had just acquired the watch and instruments division of Officine Panerai, the small, obscure Florence-based watchmaker and former supplier of timing instruments to the Italian Navy.
지난주 안젤로 보나티 씨는 21년간 일했고 그중 18년은 CEO로 근무하였던 파네라이사에 작별을 고했다.
Bonati는 1997년 Richemont 회장인 Johann Rupert가 Panerai의 첫번째 영업 이사로 그를 임명하였을 때에는 원래 이탈리아의 Cartier의 판매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루퍼트의 방돔 럭셔리 그룹(현 리치몬트 그룹)은 작고 잘 알려지지 않은 피렌체에 근거를 둔 시계제조업체이자 전 이탈리아 해군 군납업체인 오피치네 파네라이의 시계⋅장비 부문을 막 인수한 상태이었다.
Bonati was the first Panerai employee of the Vendôme/Richemont era. He became CEO of the brand in 2000. On April 1 of this year, he retired, handing over the Panerai reins to Jean-Marc Pontroué, formerly CEO of Roger Dubuis.
At the SIHH in Geneva in January, I met with Bonati and asked him about the early days of Panerai under Richemont.
Bonati는 방돔/리치몬트 시대의 첫 파네라이 직원이었으며, 2000년 이 브랜드의 CEO가 되었다. 올해 4월 1일, 그는 은퇴하고 파네라이의 경영을 로저 드뷔의 전 최고 경영자였던 장 마르크 퐁트루에 Jean-Marc Pontroué 씨에게 넘겨주었다.
올 1월 제네바 SIHH에서, 나는 보나티를 만나서 리치몬트 산하 파네라이의 초기 시절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다.
Love It Or Hate It
"At the beginning, we had nothing. We had a watch, Luminor Marina," Bonati recalled. Franco Cologni, head of Cartier in Italy, was a close advisor to Panerai and Bonati and served as chairman of the new company. "So, with this watch, we started to think what we [should] do."
They had two options, Bonati says. One was to go for a quick hit: invest a lot in advertising, pump up production, "make money and then say ciao," Bonati said. The other option was "to follow one dream: The dream was to establish a brand starting from Luminor Marina Panerai. That's what we did."
Bonati wrote a three-page strategic plan to reach sales of 25,000 watches in three years by marketing the Panerai name and history with its links to the Italian military. "But it was a dream, because we had nothing yet," he says.
"I started in February 1997. At that time, I was alone, in one office, one chair, one computer, a benjamin ficus tree, one window, one door. No assistant. Nothing. Sometimes I was thinking, 'What am I doing here?' I started to work on everything: the guarantee, the assortment, everything.“
좋든 싫든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우리는 루미노르 마리나라는 시계를 가지고 있었어요,"라고 보나티는 회상했다. 이탈리아 카르티에의 책임자 프랑코 콜로니 Franco Cologni 씨는 파네라이와 보나티의 최측근으로 이 회사의 회장을 역임했다. 그래서 이 시계를 가지고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고 보나티는 말한다. 하나는 빠른 성공을 위해 가는 거였죠. 광고에 많이 투자하고, 제작에 박차를 가하는 거였죠. "돈을 벌고, ‘안녕’하는 거죠." 다른 선택은 "하나의 ‘꿈’을 좇는 것이죠. 그 꿈은 루미노르 마리나 파네라이로부터 시작하는 하나의 브랜드를 설립하는 것이었어요. 그게 우리가 했던 일이죠.“
보나티는 이탈리아 군대와 연계된 파네라이 이름과 역사를 마케팅함으로써 3년 내 25,000개의 시계 판매를 달성하기 위한 3페이지짜리 전략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건 꿈이었죠. 우리 당시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그는 말한다.
"저는 1997년 2월에 시작했어요. 그때 저는 사무실 한 개, 의자 한 개, 컴퓨터 한 개, 벤자민 피커스 나무 한 그루, 창문 한 개, 문 한 개만 가진 저 혼자였습니다. 비서도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었죠. 종종 생각했죠.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여하튼 저는 모든 것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보증서, 구색갖추기 등등 모든 것에 말이죠."
He kept a Panerai Luminor watch on the desk of his small office and occasionally he would gaze at it. The watch was huge, with a case diameter of 44 mm. "The movement was the 6497 from ETA, not well finished. Don't forget, at that time, ETA used this movement for training purposes, not for sales, because it was an old 16 ligne movement for pocket watches."
"There was something that called me every time from this watch," Bonati says. "I said to myself, 'People will either love or hate this watch.'" He knew there would be no middle ground; that when he showed people this wristwatch, the reaction would be, as he put it, "'That's fantastic!' or 'That's bullshit!' That was the scenario I had in front of me."
그는 파네라이 루미노르 시계를 작은 사무실 책상 위에 두었고 때때로 그것을 응시하기도 했다. 그 시계는 케이스 지름이 44mm로 거대했다. "무브먼트가 ETA 6497이었어요. 피니시가 좋지 않았죠. 혹시 잊은 건 아니죠? 당시, 그 무브먼트는 판매용이 아니라 훈련용으로 사용되던 것이었어요. 그건 포켓용 시계의 오래된 16줄 무브먼트에 불과했죠."
"이 시계를 볼 때마다 저에게 어떤 생각이 떠올랐죠." “저는 혼잣말로 '사람들은 이 시계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거야'라고 되뇌었어요.” 보나티는 당시 중립적인 입장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그 손목시계를 보여줄 때 반응은 “‘환상적이야!’ 또는 ‘정말 별로야!’였을 것이다라는 게, 제가 직면한 현실이었죠.”
An Instant Hit
He and Cologni decided to do a test in the Italian market. "We produced 1,000 watches. And I went on the streets with my suitcase to visit the dealers I knew." Many were clients from his Cartier years. "I told them, 'This [watch] represents a train. If you want to jump on the train, maybe you can have success; you can make money. Or maybe you make nothing; you lose money.' But the money to buy 30 watches, at that time, was nothing," he says. "Two Cartier watches with diamonds was enough to cover this.
"Certain people followed me, certain others not. They said, 'But, Angelo, you are crazy. No, no, I don't want this. It's too big, too heavy.'"
"OK, you don't jump on the train. You stay in town."
즉각적인 히트
그와 콜로니는 이탈리아 시장에서 테스트를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1,000대의 시계를 만들었죠. 그리고서는 제가 아는 딜러들을 찾아가기 위해 가방을 들고 거리로 나섰어요." 대부분 그의 카르티에 근무 시절 클라이언트들이었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죠. ‘이 시계는 기차를 상징해요. 만일 당신이 기차에 뛰어 오르기를 원한다면, 아마 당신은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돈을 벌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만들지 못할 거고 돈을 잃을 거예요.’라고요. 그런데요. 당시에는 시계 30개를 살 수 있는 금액도 별로 나가질 않았어요. 다이아몬드 박힌 카르티에 시계 2개면 그 값어치를 했죠.“
“일부는 저에게 동참했어요. 근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저에게 '안젤로, 너 미쳤구나. 아니, 이건 필요 없어. 너무 크고 무거워.'라고까지 말했어요. 그래서 저는 ‘좋아, 넌 기차에 타지 마. 넌 그냥 시내에나 있어.’라고 대답해줬죠.”
"Finally, in November 1997, we started to ship the 1,000 watches. In 10 days, the phone turned from gray to red. Because the people who ordered this watch, who believed in the train, started to sell it. They sold out the 30 pieces in one week, two weeks. The people continued to call me, 'Angelo, I need 200, 300 pieces.'"
"No, no, no, come on," Bonati says, conveying the shock he felt at the time, and bursting into a fit of laughter.
He told them he could not supply them with watches until July of the next year. They were incredulous.
"Why July next year?"
"Honestly, because I have to produce the watches!" Bonati told them. And he burst out laughing again, recalling it.
“마침내, 1997년 11월, 우리는 1,000개의 시계 선적을 시작했습니다. 10일 만에, 전화통에 불이 붙기 시작했죠. 이 시계를 주문한 딜러들은 기차에 탔다고 믿었기에 그걸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1~2주에 30피스를 다 팔았어요. 딜러들은 저에게 전화를 했죠. ‘안젤로, 200개, 300개'.”
“안돼, 안돼, 안돼, 돼!”
보나티는 당시 느꼈던 흥분을 재현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그들에게 내년 7월까지 시계를 공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왜 내년 7월인데요?”
“솔직히, 시계를 만들 시간이 없어!”
보나티는 또다시 웃음을 터트리고는 당시를 회상했다.
I asked him if the reaction to the first watches surprised him or if he expected it.
"In my dream, I expected this. But in the rational part of my mind, I was surprised." He paused. "But you know, if you don't dream, you don't realize. To realize something, you need to dream at the beginning. Otherwise, how can you fix the final act? You need to have a vision, to dream."
나는 그에게 첫 번째 시계에 대한 반응이 그를 놀라게 했는지 아니면 그가 그것을 예상했는지 물었다.
"꿈에서는 예상했죠. 그런데 솔직히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놀랐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여러분이 꿈을 꾸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깨닫지 못 합니다. 어떤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격적 행동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꿈을 꿀 수 있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Soon he started selling to markets outside Italy. "I took my magic suitcase, I start touring around the world, to open points of sale."
In the spring of 1998, Panerai made its first appearance at SIHH. "We reproduced the tower of a submarine in the middle of the salon here. The people went crazy. Journalists and dealers were lining up to visit me." He had a little sales room in the Cartier booth. "I was the guru, Ali Baba. Because everybody came and said 'Ah, can we touch, can we see, can we have?' I kept saying to myself, 'This is crazy. Not possible.'"
곧 그는 해외 시장에 판매를 시작했다. "저는 저의 마술 가방을 가지고, 판매처를 오픈하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했어요."
1998년 봄, 파네라이는 SIHH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우리는 여기 살롱의 가운데에 잠수함의 탑을 재현해놓았어요. 사람들이 미쳤죠. 기자들과 딜러들이 저를 방문하려고 줄을 서 있었어요." "나는 구루, 알리바바였어요. 사람들이 와서 ‘아! 만져볼 수 있어요? 살 수 있나요?’라고 말했으니까요. 나는 계속 중얼거렸죠. ‘이건 미친 일이야. 불가능한 일이야’."
Panerai fever was on. In 1998, Panerai produced about 6,000 watches, Bonati says. To promote his baby brand, Bonati had urged his retailers to put watches in their store windows. "The problem was, as soon as we shipped the watch [to a dealer], the watch was sold. For two years, we never had watches in the windows."
파네라이의 인기가 치솟았다. 1998년 파네라이는 약 6천 개의 시계를 만들어냈다고 보나티는 말한다. 그의 신생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보나티는 소매상들에게 가게 창 진열대에 시계를 두라고 촉구했다. "문제는 그 시계를 판매자에게 보내자마자 그 시계가 팔렸다는 겁니다. 2년 동안 진열대에 시계가 놓여 있지 않았죠.“
The Super-Bonus
In 1998, Bonati decided to reward the dealers who took a chance on the now runaway Panerai train.
"At the beginning, when we took the stock from Officine Panerai, we found 60 movements from Rolex, 16 lignes. But they were not in good shape, because they were dusty, etc. And people asked me 'We have to throw these away? What do you want us to do with them?'"
He told them, "No. It's Rolex. Give them to me."
슈퍼 보너스
1998년, 보나티는 쾌속질주 중인 파네라이 열차에 탄 기회를 잡았던 딜러들에게 보상을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오피시네 파네라이사의 지분을 인수했을 때 로렉스에서 나온 16라인 무브먼트 60개를 발견했죠. 하지만 그것들은 먼지투성이에 상태가 좋지 않았죠. 왜냐하면 그들은 먼지 등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저에게 묻는 거예요. '버릴까요? 이걸 가지고 뭘 하시려구요?'”
보나티는 그들에게 말했다. "아니. 로렉스야. 나한테 줘."
These were new old stock Rolex 618 movements from World War II. Bonati had them cleaned and put into platinum cases and created Panerai's first special collection : PAM 21, a replica of the 3646 watch made by Rolex for Panerai between 1940 and 1944.
The watches were ready for the Christmas 1998 selling season.
"I called my clients," Bonati says. "'This time I have not a train, I have a super-bonus for you. I have one watch in platinum to sell you, not more, because it is part of 60 watches that we are producing in platinum." The price of the watch was about 38 million Italian lira, equivalent to about 23,000 euros today.
"Some people said, 'No, no, I don't want this.'
"Some others said, 'OK, if you send it, you also have to send 10 Luminor Marinas.' I told them, 'No, I won't give you 10 Luminor Marinas! I'll give you just this watch! This is a bonus!'"
그것들은 2차 세계대전에서 나온 NOS 로렉스 618 무브먼트들이었다. 보나티는 그것들을 세척하고 백금 케이스에 넣어 파네라이의 첫 번째 스페셜 컬렉션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PAM21이다. pam21은 1940년부터 1944년 사이에 로렉스가 파네라이에 납품한 3646의 복각판이었던 것이다.
시계는 1998년 크리스마스 세일 시즌을 위해 준비되었다.
보나티가 말했다.
“저는 제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이번에는 기차는 아니예요. 대신 당신을 위한 슈퍼보너스를 준비했어요. 우리가 백금으로 제작한 60개 시계 중 한 개를 가지고 있고, 더도 말고 이 1개의 시계를 당신에게 팔 겁니다.”
당시 pam21의 가격은 약 3천 8백만 리라였고, 이는 오늘날 23,000 유로에 맞먹는 돈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니, 난 원하지 않아'라고 말했죠."
"다른 이들은 '좋아요, 보내주시면, 루미노르 마리나 10개도 같이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아니, 루미노르 마리나 10개는 안 되요! 이 시계만 보냅니다. 이건 보너스예요!’"
"So, again, when this watch landed in the shops, it sold out. And the amount of money we made was more than the amount we paid for the acquisition of Panerai. In one shot, we paid for the acquisition of Panerai with one watch, 60 pieces." (In 2012, Rupert told financial analysts "Our single most profitable venture is probably Panerai, where we paid less than $1 million.")
"그래서, pam21이 샵에 도착했을 때, 매진되었죠. 당시 우리가 번 돈은 파네라이 인수를 위해 지불해야 할 금액보다 더 많았죠. 그 한 번에, 그 한 종의 시계 60피스로 우리는 파네라이 인수대금을 치렀죠." (2012년 루퍼트는 금융 분석가들에게 "우리의 가장 수익성 있는 유일한 벤처는 아마도 우리가 백만달러 미만을 지불한 파네라이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We started to grow," Bonati says. Panerai became the hottest brand in the watch world. The independent website Paneristi.com started in 2000. By 2002, global demand far exceeded Panerai's annual production of 30,000 pieces. Orders placed at the 2002 SIHH exhibition took two years to fill. Panerai, crowed Cologni at the time, was "hot, hot, hot!"
By then, nobody was calling Bonati crazy anymore.
"우리는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보나티가 말했다.
파네라이는 시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브랜드가 되었다. 독립 웹사이트인 Paneristi.com은 2000년에 개설되었다. 2002년까지 전 세계 수요는 파네라이의 연간 생산량인 30,000개를 훨씬 넘어섰다. 2002 SIHH 전시회에 놓여있던 주문서의 주문에 응하는 데 2년이 걸렸다. 그 당시 콜로니 씨는 인파에 둘러싸였고, 파네라이는 "덥고 덥고 더웠다!"
그때쯤에는 아무도 보나티를 미쳤다고 하지 않았다. (끝)
댓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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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GoesOn
2018.04.12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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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2 19:41
LGO님이 추천을 주시다니 더없이 기쁩니다. ^^
저는 댓글은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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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25
2018.04.12 20:21
안녕하세요.
짧은 글이지만 파네라이 역사가 함축된듯 한 글입니다.
파네라이 사랑이 정말 남 다르십니다 ^^
무한 애정, 정성어린 포스팅에 감사. 강추 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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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2 21:45
친구님. ^^
파네라이의 역사 자체는 짧지만 드라마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틱의 고객 응대도 타브랜드에 비해서는 각별한 편이죠.
파네라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통하는 부분이 조금 더 있는 것 같구요.
안젤로 보나티에게 제 나름의 작별인사를 해봤습니다.
댓글과 추천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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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mcui
2018.04.12 20:27
와~파네라이 시계에 대한 조이미미님의 정성을 느꼈습니다~추천드립니다,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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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2 21:47
stormcui님.
파네라이에 대한 애정은 저도 좀 있지만 스톤님도 많이 가지고 계신 것 압니다. 댓글과 추천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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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대왕
2018.04.12 20:59
좋은 글 옮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하는 일에 있어서도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어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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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2 21:49
오즈대왕님.
제가 약간 시간이 나서 서툰 번역이지만 억지로 해봤습니다.
성공한 사업의 초창기의 모습은 다 영화 같습니다.
대왕님도 저런 시절이 생각나셨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드네요.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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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
2018.04.12 23:23
번역하시느냐 수고하셨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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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2 23:35
로시님.
저도 재미있게 해본 번역입니다.
좋게 봐주시니 더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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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ard7
2018.04.13 08:44
엄청난 포스팅에 추천이 절로..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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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3 09:06
Howard7님. 추천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불금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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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9
2018.04.13 09:40
이런 소소한 재미가 스피릿을 더욱 올려주는거 같습니다.
감사의 표시는 추천이죠.
잘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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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3 09:48
No9님.
1997-1998년의 방돔/파네라이는 너무 흥미롭네요.
잘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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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암
2018.04.13 09:52
이런 좋은 글을 올려주시다니 추천 100개라도 드리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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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3 09:55
냐암님. 안녕하세요. ^^
안젤로 보나티에 대한 나름의 작별인사 같은 의미로 포스팅 해봤습니다.
잘 읽어주시고 추천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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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빈
2018.04.13 11:03
이야~~~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런글은 무조건 추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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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3 11:31
천태빈님. ^^
저도 원문 보고 재미있어서 번역해본 겁니다.
잘 읽어주시고 추천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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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ioKim
2018.04.13 13:20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재미있네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다는게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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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3 14:56
클라우디오님.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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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jun86
2018.04.13 13:24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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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3 15:01
잘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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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이형친구
2018.04.13 18:3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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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4 00:32
아롱이형친구님.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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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lair
2018.04.13 21:06
이전에 포스팅들을 읽으면서 자주 언급되는 CEO 분이셔서 큰 비중이 있는분이란건 짐작했지만 이분이 있어서 지금의 파네라이가 있는것이군요~
조이미미님의 정성들인 번역 감사드려요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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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4 00:34
Sinclair님. 안녕하세요. ^^
저도 안젤로 보나티 씨에 대하여 의미있는 포스팅을 하나 남겨보고 싶어서 서툰 번역이지만 해보았습니다.
제 부족한 번역글을 잘 읽어주셨다니,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즐거운 주말 되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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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boy
2018.04.14 05:23
감사합니다. 조이미미님.
요며칠 바빠서 진작봤지만 지금에야 반응합니다.
엄청 빠르죠.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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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4 06:42
럭스보이 엘비님.
잘 읽어주셨다니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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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곰순이
2018.04.14 10:40
조이미미님 정성어린 포스팅에 또 한번 감동이네요^^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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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4 12:49
내사랑곰순이님. 안녕하세요.
그냥 저도 좋아서 해본 포스팅입니다.
잘 읽어주셔서 저도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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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연
2018.04.14 13:09
이런 훌륭한 글이... 덕분이 너무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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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4 13:27
저도 번역해본 것에 불과합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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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쿨
2018.04.14 18:43
혹시 잡지 같은 곳에 기고하시는 분이신가요?
번역이라지만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신데요.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편안한 번역이어서 가능한 일 같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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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4 21:07
아.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책을 쓰고 개정하는 일도 하긴 합니다.
잡지에는 예전에 전공 관련 글을 종종 써 냈었구요.
그런데, 이런 종류의 글은 아주 생소해서 완전 초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튼 편안하게 읽어주셨다면 저로서도 너무 기쁜 일이죠.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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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CT
2018.04.15 19:32
파네라이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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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5 21:03
어떤 점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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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buff
2018.04.17 13:13
부라보~~~ 멋진 포스팅을 선물해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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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7 13:15
버프님. 잘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시니 너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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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북꼬북
2018.04.18 09:34
가끔 논문 번역을 해봐서 이 작업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 압니다.... ㅜㅜ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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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18 10:47
꼬북꼬북님. 안녕하세요. ^^
번역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죠. 하지만 즐겁게 해봤습니다. ^^
잘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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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나인
2018.04.20 20:18
역시 대단한 열정이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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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미
2018.04.20 20:35
타슈나인님.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성어린 번역에 추천드립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각색이 되긴 하지만 방돔시절 파네라이 인수 얘기는 참 흥미롭습니다. ^^ 호딩키 기사의 댓글들도 재밌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