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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형 모델에서 장대한 컴플리케이션까지, 예거 르쿨트르처럼 많은 혁신과 독창적 구조를 보여준 매뉴팩처는 없었다. 이는 브랜드가 ‘르쿨트르(LeCoultre)’라는 이름으로 무브먼트를 생산했던 1937년 이전에도 그랬다(르쿨트르는 1937년 에드몽 예거와 손을 잡고 ‘예거 르쿨트르’가 된다).
그 혁신과 창조의 역사적 모델들을 살펴본다.

기스베르트 L. 브루너(Gisbert L. Brunner) 에디터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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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DUOPLAN 듀오플랜

무브먼트의 정밀함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구성 부품을 설치하면서도 어떻게 칼리버 자체의 크기는 늘리지 않을 수 있을까? 르쿨트르의 기술자들은 이런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이미 1925년에 알고 있었다. 이들은 시계의 구성 부품을 두 개 층에 차례로 배열했으며, 와인딩 크라운을 뒷면으로 옮겼다. 이렇게 하여 시계 역사에 큰 이름을 남긴 듀오 플랜 칼리버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칼리버의 길이는 16mm였으며, 폭은 5.8mm 그리고 두께는 3.4mm였다. 물론 2층 구조의 무브먼트에는 구성 부품의 지능적인 배열이 요구되었다. 비교적 커다란 스크루 밸런스와 측면 앵커가 있는 이스케이프먼트는 아래쪽에 배치했다. 바게트 형태의 이 핸드와인딩 무브먼트는 사진에서 볼 수 있는 1937년 모델 같은 사각형 모양의 여성용 시계를 위해서 생산한 것이다. 고객은 봉인된 글라스 앰풀 안에 든 듀오플랜 칼리버를 받았다. 이를 통해 15개의 스톤에 뿌린 윤활유는 보다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며, 또한 먼지가 내부에 들어가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서비스는 아주 쉬웠다. 기존의 시계 무브먼트를 빼내고 새것을 장착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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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CALIBER 101 칼리버 101


메커니컬 방식을 이용한 시간 측정의 초기 단계였던 13세기부터 시계 제조 전문가들은 시계의 크기를 작게 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물론 이런 노력은 스위스 발레 드 주(Vallée de Joux)에 있는 에보슈 제조 업체인 르쿨트르의 생산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03년 르쿨트르는 회중시계를 위해 높이가 단지 1.38mm에 불과한 핸드와인딩 방식의 무브먼트를 개발했으며,1908년에는 높이가 1.5mm인 손목시계용 칼리버 6EB를 선보인다. 오늘날까지도 적용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무브먼트 기록은 1929년에 소개된 칼리버 101이 구현한다. 크라운을 뒷면에 설치한 2층 구조 핸드와인딩 방식의 이 무브먼트는 4.8×14×3.4mm의 초미니 사이즈로 혁신을 입증했다. 용량은 불과 0.23㎤ 밖에 되지 않았다. 예술적 수작업으로 완성된 이 작은 제품은 구성 부품의 수가 74개임에도 불구하고 다이얼과 핸드를 포함하여 단지 1g이 채 안 나가는 무게를 지녔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백금 소재의 시계는 1930년에 나온 것이며, 칼리버 101를 장착한 첫 번째 모델 중 하나였다. 오늘날 예거 르쿨트르는 이 무브먼트에 98개의 부품을 조립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 여왕 대관식에서 칼리버 101이 장착된 보석 손목시계를 착용하고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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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REVERSO 리베르소

1931년 3월 4일, 프랑스 상공부에 특허 등록된 첫 리베르소의 디자인은 ‘베이스 프레임에서 케이스를 밀어 전체를 회전시킬 수 있는 시계’였기에 사각형 모양이 되어야만 했었을 것이다. 등록 서류의 내용에 따르면 스틸 소재 케이스는 ‘기본 플레이트에 있는 가이드 홈과 4개의 가이드 핀 그리고 멈춤 홈을 이용하여 밀어서 완전히 돌릴 수 있었다.’ 설계를 한 르네 알프레드 쇼보(René-Alfred Chauvot)는 그의 첫 번째 작품에서 기술적으로 많은 것을 이룩했다. 하지만 무브먼트는 원형의 르쿨트르 칼리버를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었다. 1931년 당시 르쿨트르는 얇은 사각형 무브먼트를 아직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층 구조의 듀오플랜 칼리버는 그 두께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시대를 대표하던 아르 데코 사조에 맞추기 위해서는 ‘사각형’의 특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결국 자체 원형 무브먼트를 포기하고 디자인을 변경하여 특허를 다시 받아야 했다. 1933년 8월 3일 특허 절차가 끝난 후에 ‘리베르소’로 명명된 손목시계의 출발 신호가 울렸다. 무브먼트는 경쟁자인 타반(Tavannes)이 담당하게 되었다. 타반은 여성용 시계 버전을 위해서 칼리버 050을, 남성을 위한 보다 큰 버전에서는 칼리버 064를 공급했다. 이 두 칼리버 모두 세컨드 핸드는 없었다. 위 사진은 출시 첫해에 나온 골드 소재의 남성용 손목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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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UNIPLAN 유니플랜

르쿨트르(1937년부터는 예거 르쿨트르)에서 ‘듀오플랜’이라는 용어는 2층 구조를 가진 시계 무브먼트를 칭하는 것이다. 여기서 유추해보면 ‘유니플랜(Uniplan)’이라는 단어는 모든 조립 부품을 평면에 배열하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니플랜 무브먼트는 1939년에 소개된 사각형 캘린더 손목시계에 장착되었다. 또한 이 시계는 원형 케이스 버전도 있었다. 매뉴팩처는 이 두 모델 모두에 세련된 형태의 핸드와인딩 방식 칼리버 412를 사용했다. 이 무브먼트는 멋지게 다듬은 모서리 덕분에 적당한 무브먼트 지지대를 이용하면 여러가지 케이스에 사용할 수 있었다. 시간과 분 그리고 초를 위한 핸즈 외에도 칼리버 412에는 날짜를 가리키는 핸드가 있었다. 이에 필요한 날짜 스케일은 다이얼 위에 붉은색으로 또렷이 표시되었다. 12시 방향 아래 있는 비교적 넓은 윈도 안에서는 마찬가지로 짙은 붉은색으로 표시된 요일을 읽을 수 있었다. 시대에 맞게 스크루 밸런스는 여유로운 2.5헤르츠로 진동했다. 충격 방지 장치는 그 당시엔 아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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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FIRST AUTOMATIC 첫 번째 오토매틱

예거 르쿨트르는 1946년 오토매틱 인하우스 무브먼트 시대를 연다. 당시는 로터 방식의 칼리버가 없었다. 매뉴팩처는 특허권 때문에 대부분의 다른 경쟁 업체처럼 범퍼 로터를 사용했다. 이 범퍼 로터가 골드 도금한 칼리버 476의 메인 스프링(태엽)을 한쪽 방향으로 감았고, 풀 와인딩한 후에는 약 46시간의 파워리저브를 가졌다. 시계 제조 기술자들은 폴 베어링 요크(pawl bearing yoke)가 있는 오토매틱 구성 부품을 일반적인 핸드와인딩 방식의 무브먼트 위에 조립했다. 지름은 13리뉴, 다시 말하자면 29.3mm였으며, 두께는 6.15mm로 상당히 큰 사이즈였다. 중앙에 자리한 세컨드 핸드는 파워부에 직결되도록 배열했고, 두 개의 암이 있는 글루시듀어 스크루 밸런스와 니바록스 헤어스프링은 시간당 18,000번 진동했다. 또한, 인하우스 충격 보호 장치가 외부 충격으로부터 무브먼트를 보호했는데, 이 장치는 그 콘셉트가 이미 알려졌던 파라쇼크 장치를 연상시켰다. 케이스와 다이얼 디자인은 전형적인 1940년대 후반부를 대변해준다. 오토매틱 세계로의 진입을 알린 이 모델은 스테인리스스틸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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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POWERMATIC 파워매틱

1940년대 말에는 예거 르쿨트르와 같이 명성 있는 시계 매뉴팩처조차도 고객들이 오토매틱 방식의 시계를 못 미더워한다는 사실과 싸워야만 했다. 고객들이 시계가 언젠가는 멈춰버릴지 모른다고 매우 염려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조치로 나온 것이 메인 스프링의 와인딩 상태를 다이얼 위에서 언제나 알려줄 수 있는 일종의 파워 게이지(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였다. 1948년, 예거 르쿨트르는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가 있는, 아마도 세계 최초의 대량생산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남아 있는 메인 스프링의 와인딩 상태를 12시 방향 아래의 작은 창에 나타내기 위해서 설계자는 범퍼 로터가 있는 칼리버 476에 작은 차동 기어 장치를 설치했다. 이런 추가 장치 때문에 사이즈가 변하지는 않았지만, 파워리저브의 길이는 46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어들었다. 훗날 파워매틱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이 손목시계는 다양한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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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HOMMAGE A JACQUES DAVID LECOULTRE 자크 다비드 르쿨트르 헌정

예거 르쿨트르의 직사각형 시계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리베르소 라인을 떠올린다. 그러나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매뉴팩처는 이미 1949년에, 특히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한 손목시계에서 보여준다. 신대륙을 위한 시계라는 점은 다이얼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즉 거기에는 ‘예거 르쿨트르’ 대신에 ‘르쿨트르’라는 문자만 있었다. 그 이유는 완제품 시계에 대한 미국의 엄격한 수입 규정 때문이었다. 이런 규정을 피하기 위해 시계 제조사들은 시계 무브먼트만 공급했으며, 이를 미국에서 생산된 케이스에 장착했던 것이다. 사진의 모델은 1949년, 바로 1년 전에 죽은 설립자 앙트완 르쿨트르의 3대손인 자크 다비드 르쿨트르(Jacques-David LeCoultre)를 기리기 위해서 생산된 시계다. 핸드형 날짜 표시, 디지털 방식의 요일과 월 인디케이터 그리고 당시 매우 인기 있던 6시 방향의 문페이즈 인디케이터가 있는 이 시계는 다이얼이 둥근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안에는 팔각형의 수동 칼리버 486이 장착되었다. 풀 캘린더 메커니즘은 일반적으로 그렇듯 다이얼 아래 놓였다(1983년,예거 르쿨트르는 회사 창립 150주년을 맞아 위의 핸드와인딩 칼리버를 장착한 직사각형 손목시계를 특별 시리즈로 출시했었다. 이 에디션은 600점으로 한정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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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MEMOVOX 메모복스

1951년 바젤 시계 박람회를 방문한 사람들은 예거 르쿨트르에서 특별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매뉴팩처의 디자인 엔지니어들이 당시 새로운 테마가 아니었던 알람 손목시계를 뚜렷하게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이다. 알람시계는 아침에 일어날 때는 충분한 음량이 필요하지만, 낮 시간에 약속을 상기시켜줄 때는 좀 조용하게 울려야 한다. 이런 이상적인 기능을 모델 메모복스 즉, ‘기억의 소리’가 실현한 것이다. 손목에서 시계는 조심스럽게 울린다. 그러나 이브닝 테이블에서는 공명체가 더 강하게 울렸다. 케이스 뒷면이 공명체 역할을 했으며, 여기를 작은 해머가 타격하여 소리를 냈다. 1949년부터 개발된 핸드와인딩 칼리버 489는 두 개의 배럴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시계 작동을 위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알람 메커니즘을 위한 것이었다. 자동으로 보정되는 헤어스프링이 있는 글루시듀어 밸런스는 2.5헤르츠로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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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FUTUREMATIC 퓨처매틱

슬로건은 소박하고 간단한 ‘오토매틱 와인딩 시계의 완벽화’였다. 예거 르쿨트르는 1953년 최신 오토매틱 SR 497 모델을 출시하며 이런 자신감 넘치는 전면 광고를 게재했다. 퓨처매틱 모델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역시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메인 스프링을 양방향으로 와인딩하는 범퍼 로터는 비교적 작은 진폭으로 작동하지만, 비교적 높은 작동 각도 덕분에 손을 이용하여 메인 스프링을 추가적으로 와인딩할 필요는 없었다. 핸드와인딩을 포기함으로써 예거 르쿨트르는 보다 큰 부품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작동 안정성이 뚜렷하게 향상되었다. 자동으로 완전히 와인딩된 후에는 일종의 브레이크 메커니즘이 범퍼 로터를 멈추게 했다. 매뉴팩처는 당시 의심이 많던 사람들에게 오토매틱 와인딩 시스템이 아무 문제 없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를 설치했다. 마지막으로 설계자는 시계를 초단위로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밸런스 스톱 장치를 고안했다. 퓨처매틱 모델은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와 세컨드를 위한 작은 핸즈가 있는 칼리버 497/1 버전과 회전 디스크가 있는 칼리버 817/1의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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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GEOPHYSIC CHRONOMETER 지오피직 크로노미터

국제 학술연합회의(International Council for Science)는 1957년 7월 1일부터 1958년 12월 31일까지를 ‘국제 지구물리 관측의 해(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로 선포했다. 이 기간 동안 여러지구 물리학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지구의 전리층(이온층),지구 자기학, 빙하, 해양학, 기상학, 우주 광선, 지진 그리고 태양에 관한 것들이었다. 예거 르쿨트르는 1958년에 공식적으로 검증된 지구 물리학 크로노미터를 소개한다. 이 시계는 항자기성의 이중 케이스를 갖고 있었으며, 안에는 4.55mm 두께의 핸드와인딩 칼리버 478BWS가 장착되었다. 시계의 박스는 구 소련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제네바 시는 1958년 8월 3일 북극점 종단 항해를 달성한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호의 함장 윌리엄 R.앤더슨(William R. Anderson)에게 옐로골드 소재의 이 시계 한 점을 선물했다.




크로노스 No. 53
출간일 | 2017년 11월 01일
판매가 | 15,000원
책정보 | 페이퍼백 | 204쪽 | 230*275mm | ISBN_13 2005-6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