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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측 8084  공감:10  비공감:-3 2015.04.24 08:58

http://www.economist.com/news/business/21567120-dull-duopoly-crushes-microbrewers-fiery-food-boring-b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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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 시작은 이 기사였을 것입니다.

2012년 가을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실린,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라는 짧은 기사 한편이었죠.

사실 한국 맥주들이 별로 맛이 없다라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니고, 외신에서도 다룬적이 없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기사가 반향을 일으킨 것은 아마도 비교한 대상이 다른 맥주가 아닌, 북한의 대동강 맥주였기 때문일런지도 모릅니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020349&ref=mobile&cloc=joongang%7Cmnews%7Cpcversion

그래서인지 이렇게 국내 언론들에도 보도가 많이 되었지요.

​발끈하고 맥주 시음회를 여는 회사도 있었고,

맞는 말이라며, 국산 맥주들은 말오줌같은 맛이라며 동조하는 독자들도 있었지요.


개인적으로는 말오줌을 먹어보질 못해서 비교는 못하겠습니다만,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비교를 하고 혹평을 하는지는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정말로 국산 맥주들은 맛이 없나요?

국산 카스와 OB와 하이트들은 맛이 없는 맥주들인가요?


그렇다면 왜 그토록 오랫동안, 2012년에 화제가 된 이후에도 지금까지, 국산맥주들은 잘 팔리고 있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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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래도 아직 잘 팔려



제가 내린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국산맥주가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라는 이야기는


한국맥주를 영국식으로 먹은 다음에 영국 기준에서 맛이 없다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우리의 식습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http://storyball.daum.net/episode/12407?rf1=sh&rf2=fb


제가 꽤 좋아하는 맛 컬럼니스트 황교익의 글입니다. 한식의 밥과 반찬에 대한 글인데, 꽤 좋은 글이니 시간 나실 때 한번씩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밥과 반찬의 관계입니다.

"서양은 메인이든 사이드이든 한 다쉬의 음식이면 그 단독으로 맛을 완결하여야 하지만 한국인의 밥상에서 밥과 찬과 국은 그 단독으로 맛을 완성시킬 수가 없다. 찬 또는 국은 늘 밥과 함께 먹는 것이니 그릇에서 단독으로 그 맛을 주장하지 못하고 ​입안에서 밥과 섞이어야 비로소 그 맛이 완성된다​."

"​밥과, 찬과 국의 관계는 주(主)와 종(從)의 관계이다."



우리는 흔히들 "밥을 먹는다"라고 하지만, 사실 밥만을 먹지는 않습니다. 늘 반찬을 같이 먹지요. 반찬 역시 마찬가지로, 반찬만 먹는 일은 없습니다. 밥을 같이 먹지요.

그럼 우리가 맥주 한잔 한다고 생각할 때는 어떤가요? 맥주만 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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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 

 



아닙니다. 우리는 늘 맥주와 함께 안주를 생각합니다.

맥주 뿐만이 아닙니다. 소주를 먹을 때도, 막걸리를 마실 때도, 우리는 늘 술과 안주를 함께 먹습니다.
조선시대 때에도 술을 먹기 위해서는 술 만이 아닌 술상을 내오는 것이 필요했고,
소주를 먹기 위해서 그것이 단순한 김치찌게 국물 한사발이 되더라도, 안주가 필요합니다.
물론 팩소주에 빨때 꽂아 드시는 분들도 계시기는 하지만,
그건 이미 일반인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분들이고,
저나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은 보통 안주를 필요로 하실겁니다.

누군가 술 한잔 하자고 하면, 우리는 그럼 안주를 뭘 먹을까를 생각합니다.
아주 자동으로요.

마치 밥먹자고 하면 어떤 반찬을 먹을까라고 생각하고 어떤 밥을 먹을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과 동일하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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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이제 맥주 맛을 따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밥의 맛도 따지기 시작해야합니다..

 

 

국산 맥주들은 술상에서 마치 쌀밥과 같은 역활을 합니다. 밥이 단독으로 먹을 만한 맛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찬과 국과 함께 하여 맛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국산 맥주들은 안주와 함께 하여 맛을 만들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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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r for everyone, Chicken to share  

 

 

 

위의 사진에서 맥주 대신에 쌀밥이 놓여있으면 그건 밥상이요, 맥주가 놓여있으면 술상이 됩니다.

그리고 국산맥주의 대부분은, 술상에서 쌀밥의 역활을 하기에 알맞는, European Pale Lager 입니다. Cass, Hite, OB 모두 다요.

맛이 엷고 부드럽고 잘 넘어갑니다.


아래는 위키피디아에서 Pale Lager에 대한 설명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Pale_lager

Pale lagers tend to be dry, lean, clean-tasting and crisp. Flavours may be subtle, with no traditional beer ingredient dominating the others. Hop character (bitterness, flavour, and aroma) ranges from negligible to a dry bitterness from noble hops. The main ingredients are water, Pilsner malt and noble hops, though some brewers use adjuncts such as rice or corn to lighten the body of the beer. There tends to be no butterscotch flavour from diacetyl, due to the slow, cold fermentation process.



​Pale Lager 자체가 큰 flavour를 지니지 않은 종류의 맥주인 것이지요.

물론 국산 맥주가 Pale Lager 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Stout 같은 종류의 맥주들도 있지만 그들의 판매량은 라거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입니다.


국내 맥주회사들이 Pale Lager들만 많이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맥아를 조금만 써도 되어서 수익성이 좋으니까? 글쎄요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어떤 생산회사가 무엇을 많이 만든다면 그게 시장에서 가장 선호되는 물건이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선호하는 맛, 바로 한식 안주들과 같이 먹을 때 가장 조화를 잘 이루는 맥주가, 술상에서 가장 쌀밥의 역활을 잘 해주는 맥주가 Pale Lager 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종류의 맥주들도 팔아봤는데, 오로지 Pale Lager들만 팔리더라 뭐 이런 이야기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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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에 비해 영국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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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해~

 



영국이나 미국같은 서구권에서 집 밖에서 주로 맥주를 소비하는 곳은 펍(Pub) 입니다. 바에 앉아서 혹은 서서, 맥주 한잔을 잡고 이야기하며 마시지요. 안주 없이, 맥주만 마실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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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 안주는 어디 있는가!! 

 



 

이렇게 맥주를 소비할 때에는 맥주가 홀로 가진 맛과 향이 중요합니다. 맥주 한 잔 단독으로 맛을 완결해야 하는 것이지요.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 사이드 디쉬를 곁들일 수는 있지만, 오로지 주(主)가 맥주요, 종(從)이 아닌, 부(副)가 있을 뿐입니다. 부가적인 사이드 디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볼 때, "안주와 함께 마시는 것을 생각하고 맛을 엷게 한 국산맥주"를 단독으로 마시면 당연히 맛이 없겠지요.


Boring beer는 Fiery Food 과 함께 했어야 하는데 이코노미스트 기자는 그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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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라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 맞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산뜻한 안주나 맥주만 놓고 마실 때의 이야기이지,

후라이드 치킨과 함께 먹을 때 파울라너를 마시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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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매운걸 못먹어서 양념치킨을 먹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후라이드나 양념치킨을 시켜놓고 파울라너와 하이트가 있다면 전 주저없이 하이트를 마실겁니다. 파울라너의 강한 향은 치킨을 먹을 때 큰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5/2013061500725.html?Dep0=twitter&d=2013061500725


그래도 전 이분께는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가 쓴 기사가 화제가 되고, 더 맛이 강한 맥주들에 대한 수요가 있음이 확인되자, 여러 크래프트 맥주집들이 생겨났고, 더 많은 종류의 맥주들이 수입되고, 또 보다 저렴하게 유통이 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선택의 폭이 훨씬 늘어나게 되었죠.


이젠 안주와 함께 먹기 위해서 맛이 엷은 맥주를 먹을 수도 있고, 혹은 저같이 술이면 다 좋고 술만 먹어도 좋은 사람들은, 단독으로 맛을 완결지을 수 있는 강한 맛과 향의 맥주를 찾아서 한잔 마실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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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블라인드 테스트 해봐야 펩시콜라 꼴 날 뿐입니다..

그리고 비교한답시고 가져다 놓은 맥주들 역시 모두 light beer들.. 에효.  

 




국산 Pale Lager 들은 그대로의 맛이 있고, 수입 맥주들은 또 그대로의 맛이, 그리고 소규모 크래프트 비어들은 또 그들만의 맛이 있습니다.


물론 Pale Lager라는 종류 안에서는 국산맥주가 맛은 어떤 편일지 알아보고 그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습니다.

http://www.beeradvocate.com/beer/style/37/


우선 같은 Pale Lager 안에 우리한테 친숙한 이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만, 굳이 꽂아보자면, Stella Artois, Harp, Singha, Amstel 정도가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웹사이트에 따르면 Hite는 같은 Pale Lager 안에서 맛이 떨어지는 맥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판이라면 온당하고, 또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종류가 전혀 다른 맥주들과 비교하고 맛이 없다는 평가는 그다지 올바른것 같지 않네요.

개인적으로는 Amstel 은 맛있는 맥주이지만, Singha나 Stella Artios 가 국산 맥주들보다 훨씬 맛있는 맥주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안주를 먹을 때도요.


저도 물론 국산 맥주들을 맛이 있어서 찾아먹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특정 안주들과 함께 할 때에는 분명 선호될 수 있는 것이 국산 맥주들이라고 봅니다.


안주와 함께 맛의 조화를 만들 수 있는 국산 Pale Lager 맥주들이 무조건 비난만 받지 말고,

더 맛있게 소비될 수 있는 조화를 찾아내는 일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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