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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제품으로 보는 새로운 소재

구교철 KOO KYO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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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H08 그래핀(Graphene) 컴포지트

디지털 에디션으로 개최한 워치스 & 원더스 2021에서는 베리에이션이 강세를 보였다. 다이얼의 컬러나 소재, 케이스 소재를 달리해 기존 모델의 생명력을 끌어올리거나 새로움을 환기하려는 접근이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불확실한 미래와 시장 상황을 두고 시계 브랜드들은 실패할 확률이 적은 안전함을 택한 셈이다. 과거에도 경기가 좋지 않거나 한 템포 쉬어 갈 때 종종 선택한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베리에이션의 패턴은 무브먼트, 기능의 변경처럼 난도 높은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쉽게 변경 가능한 컬러 혹은 소재를 바꾸는 게 일반적이다. 그 때문에 소재는 베리에이션을 이루는 재료 역할을 주로 해왔지만, 이번에는 친환경적 접근이나 신소재를 선보이며 지금까지 이어온 베리에이션과 같은 패턴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새로움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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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 H08 그래핀(Graphene) 컴포지트
스카치테이프로 연필심의 흑연을 뜯어내는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얻어낸 그래핀은 탄소동소체 중 평면구조를 띠는 물질이다. 이처럼 우연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는 박리법이 아직 균일한 품질을 구현하는 제조법으로 확립되지 않았음에도, 고유의 특성 덕에 그래핀은 꿈의 물질이라 여겨진다. 빼어난 탄성, 높은 투명도, 강철의 200배에 달하는 강도, 구리의 100배에 달하는 전기전도성, 실리콘보다 100배 빠른 전자 이동 같은 성질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반도체, 배터리 분야에서 확실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아직 상용화의 길을 찾지 못해 잠재력만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의외로 시계업계에서 그래핀을 활용해 가치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핀의 선두 주자는 리차드 밀이다. 2017년 선보인 RM 50-03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울트라라이트 맥라렌 F1이 케이스에 그래핀을 적용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다만 여러 겹의 레이어를 방향을 바꿔가며 쌓아 올리는 카본 TPTⓇ에서 일부 카본 레이어를 그래핀 레이어로 대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래핀의 실제적 성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에르메스는 2021년 새로운 모델인 H08을 선보이며 케이스 중 한 종류로 그래핀 컴포지트 소재를 택했다. 시계의 정형성에서 탈피한 디자인이 많은 에르메스답게 셰이프(shape) 안에 셰이프를 넣는 구성으로 명료하고 개성적이며 현대적인 느낌의 케이스를 내세웠다. 그래핀 컴포지트 소재의 모델은 그래핀으로 성형한 블록을 가공해 케이스로 사용하고 세라믹 베젤을 얹어 마무리했다. 다만 에르메스에서는 새로운 소재인 그래핀 컴포지트 케이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적어도 물성에서 가볍고 매우 단단한 소재라는 점을 예측할 수 있다.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라는 기능의 복잡성과 리차드 밀 브랜드의 포지션상 RM 50-03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울트라라이트 맥라렌 F1은 그래핀 소재를 체험하기에 너무도 고가였다. 그에 비해 H08 그래핀 컴포지트는 1만 달러에도 미치지 않는다. 아직 그래핀 컴포지트 케이스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부족한 시계지만, 케이스 소재로 티타늄이나 DLC 처리한 티타늄 H08에 비해 50% 정도 더 비싸다면 얼리어답터로서 도전해볼 만하다. 시계의 기본 완성도는 에르메스의 고급 라인에 장착하는 칼리버 H1837이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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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네라이
루미노르 마리나 e스틸 블루 프로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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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네라이 섭머저블 e랩-아이디™

파네라이 섭머저블 e랩-아이디™ PAM01225 & 루미노르 마리나 e스틸 PAM01157 블루 프로폰도
2019년 SIHH에서 발표한 섭머저블 마이크 혼 에디션 PAM00984와 PAM00985는 재활용한 에코 티타늄 케이스와 PET를 재활용해 만든 스트랩을 장착한 친환경적 모델이었다. 그중 19개 한정 생산한 PAM00985는 탐험가 마이크 혼과 함께 북극의 유빙을 직접 체험하고 특별한 트레이닝을 통해 환경보호의 메시지와 실천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도록 기획되었다. 환경보호에 적극적인 브랜드답게 파네라이는 워치스 & 원더스 2021에서 PAM00984와 PAM00985를 이을 모델을 발표했다. 섭머저블 e랩-아이디™ PAM01225는 전체 중량의 98.6%를 재활용한 소재로 구성했다. 파네라이에서 시계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의 재활용 소재로 만든 시계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시계 구성 요소의 대부분을 재활용 소재에서 가져왔다. 케이스는 먼저 소개한 에코 티타늄을 택했고, 다이얼과 무브먼트 플레이트도 같은 소재를 적용해 자동 무브먼트 칼리버 넘버를 900에서 900e로 변경했다. 또 칼리버 900e에 사용하는 실리콘 소재의 부품도 재활용한 것은 물론 야광 염료까지 재활용해 100% 재활용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조금 아이러니한 점은 PAM00984의 가격에서 확인된 것처럼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티타늄보다 비싸다고 여기는 소재인 카본에 비해서도 비싼 가격표를 달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30개를 한정 수량으로 제작할 섭머저블 e랩-아이디™ PAM01225의 가격은 미정이지만 소량 생산, 실험적 시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가격 설정은 어려울 듯하다. 루미노르 마리나 e스틸 PAM01157 블루 프로폰도는 섭머저블이 아닌 루미노르 라인으로 선보였으며 재활용 스틸 케이스를 사용했다. 재활용한 스틸 케이스는 시계 전체 중량의 58.4%에 달한다. 섭머저블 e랩-아이디™ PAM01225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상적인 수치는 아니나 동일한 데이트 기능의 자동 무브먼트 칼리버 9010을 탑재한 PAM01313과 큰 차이가 없는 가격표를 달 예정이라 가격적인 면에서 부담이 없다. PAM01157과 PAM01313은 44mm의 케이스 지름, 기능, 다이얼 컬러에서 크게 다를 바 없지만 PAM01157의 다이얼 6시 방향에 프린트한 e스틸이라는 단어와 재활용 스틸, 재활용 PET로 만든 스트랩으로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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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탱크 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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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C 팀버텍스 스트랩

까르띠에 탱크 머스트 & IWC 팀버텍스
올해 다시 탄생한 탱크 머스트는 스트랩 소재에서 파네라이와 같은 행보를 보였다. 산업용 사과에서 나온 폐기물로 처리한 스트랩을 일부 탱크 머스트 모델에 장착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보통의 동물성 소재 스트랩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표면을 만져보면 익숙한 느낌과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리 이질적이지 않다. 소재라는 주제에서는 벗어나지만 탱크 머스트는 스트랩과 마찬가지로 환경 친화적 움직임을 보였다. 다이얼을 이용해 광충전이 가능한 솔라비트(SolarBeat™) 무브먼트를 탑재해 일반적인 배터리를 사용하는 쿼츠나 세이코 키네틱 같은 앞서 선보인 광충전식 쿼츠 무브먼트의 충전지 수명인 10~15년에 비해 더 긴 16년을 내세운다. 16년이라는 기간이면 배터리를 사용하는 쿼츠 무브먼트라면 적어도 3회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고, 키네틱이라면 1회 교체는 필수다. 그러므로 환경오염을 야기하는 배터리와 관련 폐기물의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IWC는 파일럿 워치 라인의 리뉴얼과 함께 라인업 전반에 도입한 사용자 편의적 요소를 강화했다. 손쉽게 탈착할 수 있는 브레이슬릿과 스트랩을 선보이는 동시에 팀버텍스(TimberTex)로 명명한 천연 식물 섬유 추출물로 만든 스트랩이다. 이는 재활용 섬유로 만든 실로 마무리된다. 팀버텍스와 같은 식물성 소재로 완성한 스트랩을 더해 색다른 소재감과 친환경적 행보를 함께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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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드뷔 엑스칼리버 싱글 플라잉 투르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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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 씨마스터 300 브론즈 골드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싱글 플라잉 투르비용 &오메가 씨마스터 300 브론즈 골드
골드 케이스를 활용한 소재의 차별화는 레드 골드 계열을 레드(5N), 핑크 (4N), 로즈(3N) 혹은 독자적 컬러로 세분화하며 시작했다. 이처럼 컬러 차이에 따른 세분화뿐 아니라 요즘은 컬러의 지속성, 표면 경도의 향상 같은 기능성에 중점을 둔 골드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컬러 지속성에 있어서는 롤렉스의 에버로즈(Everose)가 대표적이다. 이름에 로즈가 들어가지만 레드 골드나 그 이상의 붉은빛을 띠며, 컬러 지속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레드 골드 계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독자적 합금비를 갖추고 등장했다. 에버로즈를 구성하는 금속의 비율은 비밀에 부쳐졌으나 플래티넘을 첨가하고 있다. 오메가의 세드나(Sedna), 문샤인(Moonshine), 카노푸스(Canopus) 골드는 각각 레드·옐로·화이트 골드 계열로 특유의 컬러와 지속성을 위해 독자적인 합금비를 지닌다. 공통적으로 플래티넘을 함유하며 플래티넘 같은 백금족 원소인 팔라듐을 더했다. 화이트 골드 계열인 카노푸스 골드는 더욱 다양한 백금족 원소(플래티넘, 로듐)를 추가했다. IWC는 2020년 레드 골드 계열의 아머 골드(Armor Gold)로 스크래치에 강한 표면을 지닌 골드를 선보였다. 이와 비슷한 접근으로 올해 로저드뷔는 엑스칼리버 싱글 플라잉 투르비용을 통해 이온(Eon) 골드를 발표했다. 미량의 팔라듐을 더해 스크래치 내성을 갖춘 골드 소재다. 오메가는 골드의 합금비를 조정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골드와 브론즈를 융합했다. 37.5% 골드에 브론즈, 팔라듐, 실버 등을 배합해 문샤인 골드와세드나 골드 중간 정도의 색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브론즈 골드로 명명한 소재는 빈티지 디자인의 오메가 씨마스터 300에 적용했다. 이 모델에서 브론즈는 특유의 녹청을 만들어내지 않고 소재의 컬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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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더 블랙 베이 피프티 에잇 925

튜더 블랙 베이 피프티 에잇 925
튜더가 옐로 골드 케이스를 사용해 튜더의 일반적인 가격대를 훌쩍 뛰어넘는 블랙 베이 피프티 에잇 18K를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블랙 베이 피프티 에잇 925도 선보였다. 스털링 실버를 케이스 소재로 사용한 모델로 손목시계 시대로 접어든 후, 스털링 실버로 만든 케이스는 보기 어려워졌다. 시계 케이스의 요건은 무브먼트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므로 본래의 형태를 잘 유지해야 하며, 어떤 물질에도 쉽게 반응하지 않는 화학적 안전성을 갖춰야 한다. 부차적으로 좋은 가공성도 고려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케이스는 완성 후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 요구되어왔다. 이 개념은 브론즈 케이스의 등장으로 조금 바뀌게 된다. 공기에 노출된 브론즈 케이스 표면에 발생하는 녹청을 오래 입은 청바지의 에이징처럼 여기는 소비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시계 브랜드가 불안 요소로 여기는 점을 소비자는 되레 에이징이나 재미라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녹청이 발생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고, 오래 방치하지 않는 이상 케이스 본연의 기능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한 시계 브랜드들은 브론즈 케이스를 유행처럼 도입하고 있다. 튜더 블랙 베이 피프티 에잇 925는 요즘 브론즈 케이스를 대하는 감각을 응용한 접근으로 보인다. 순은에 비해 물성이 보다 단단한 스털링 실버지만 시계 케이스 소재 중 가장 무른 편에 속하는 골드에 비해 더 무르고 브론즈처럼 사용하다 보면 파티나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파티나는 시계 케이스의 즐길 거리로 여겨지고 있어 큰 문제는 아니다. 무르다는 것은 케이스 소재로서 분명 약점이 되지만 92.5%의 은을 제외한 7.5%에 달하는 금속과 함량에 따라 개선의 가능성도 있다(튜더는 합금 비율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 점을 제외한다면 은빛을 띠는 소재인 스테인리스스틸, 화이트 골드, 플래티넘과 다른 색감과 광택을 매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귀금속이 아닌 그에 준하는 소재인 만큼 가격 부담이 적다는 점 또한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