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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Dress Watch
2021년의 새로운 드레스 워치

구교철 KOO KYO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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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텍필립 칼라트라바 Ref. 6119G-001

드레스 워치는 스포츠 워치와 함께 시계의 장르를 구분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지만, 특정 기능에 따라 완성된 스포츠 워치와 달리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스포츠 워치의 대칭에 선 장르라고 규정한다면 상대적 개념을 통해 정의할 수 있겠지만, 시계의 역사에 비춰보면 이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다. 스포츠 워치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던 1950년대 이전 시계를 무엇이라고 부를 것이며, 어떻게 정의할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의 의미를 더듬어 드레스 워치를 살펴보면 복장과 연관이 있다. 남자의 드레시한 복장인 정장, 슈트에 착용하는 시계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시점이 과거였다면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이제는 슈트에 브레이슬릿이 달린 시계를 차도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턱시도 차림에 나토 밴드를 단 다이버 워치를 찼다고 해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복식에 맞춘 시계를 일률적으로 드레스 워치라고 규정할 수 없다면 다른 접근법은 무엇일까? 기능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역시 예전에 통용되던 이야기다. 컴플리케이션은 하이엔드 브랜드의 드레스 워치에서 나 볼 수 있다고 여겼으나, 투르비용 다이버 워치, 퍼페추얼 캘린더 파일럿 워치가 흔하다. 최근에는 울트라-신마저 드레스 워치를 탈피해 스포츠 룩을 입기 시작했으므로 기능으로 드레스 워치를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과거에 비해 여러 요소에서 경계가 모호해진 점도 드레스 워치를 정의하기 어렵게 만든다. 300m 방수, 강력한 내충격성, 내자성, 뚜렷한 가독성 등을 스포츠 워치의 특징으로 꼽는다. 하지만 이런 요소를 적당히, 또 두루 갖춘 스포츠 성향의 시계도 적지 않다. 과거 스포츠 워치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 방수 성능과 내충격성의 향상을 이유로 과도기적 형태를 띠던 시계들과 유사하다. 다이버 워치처럼 기능성이 디자인을 결정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견고한 성능을 갖춘 시계를 꼽자면 1950년대 초반 오메가 씨마스터나 1960년대 생산했던 IWC의 빈티지 요트클럽이 대표적인 형태다. 비교적 최근이라면 단종된 블랑팡의 르망(Leman) 라인을 들 수 있고, 현역으로는 그랜드 세이코의 브레이슬릿을 장착한 모델이 유사한 성격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애초부터 ‘드레스 워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결론을 내기 어렵다고 전제하고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레스 워치로 분류하는 시계의 공통적인 특징은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기능이 디자인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이버 워치나 파일럿 워치처럼 대부분의 스포츠 워치는 기능이 특유의 디자인을 결정했던 것과 달리 시간 표시를 위한 최소한의 형태로 드러난다. 간결한 케이스 라인과 매끄러운 베젤, 기호나 단순한 표식으로 다이얼을 구성한다. 그 다음은 그리 크지 않은 케이스일 듯하다. 무브먼트를 강한 충격에서 보호하거나 수압을 견뎌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 일상적인 수준에서 무브먼트를 보호하는 케이스의 기본적 역할을 수행하면 되므로 40mm 내외의 지름과 데이트 기능의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했다면 10mm 내외의 두께면 충분할 것이다. 방수는 30m면 넉넉할 듯하지만 50m라면 마음 편히 착용할 수 있다. 가죽 스트랩 장착을 기본으로 볼 수 있지만 브레이슬릿도 용인하는 추세다. 전통적 개념의 드레스 워치와 스포츠 워치의 중간쯤 되는 스포티 워치에 가까운 모양새로도 보이지만, 두께가 얇고 심플한 디자인의 링크를 더했다면 괜찮지 싶다. 착용한 후 소매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브레이슬릿이라면 좋을 것이다. 물론 전통적 개념의 드레스 워치라면 소매 속에 완전히 감춰졌을 터다. 이와 같은 공통점을 지닌 시계를 요즘의 드레스 워치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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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텍필립 칼라트라바 Ref. 6119
레퍼런스 넘버로 볼 때 Ref. 96 계열의 직계는 아닌 듯하지만 기능상 현행 Ref. 5196 후계 모델인 칼라트라바 Ref. 6119. 케이스 지름 39mm로 현행 칼라트라바 수동 타임온리에서는 가장 큰 지름에 등극했다. 두께도 약 8mm로 조금 더 두꺼워졌다. 시, 분, 초, 3개의 바늘로 시간을 표시하는 Ref. 5196과 비교해 다이얼 밸런스가 크게 향상되었다. 다이얼 외곽보다 중앙에 가깝게 위치한 스몰 세컨드는 널찍이 떨어졌고 보다 나은 균형을 드러낸다. 다이얼은 칼라트라바 디테일의 특징인 패시티드(faceted) 인덱스, 가장 바깥쪽으로는 레일웨이 인덱스를 두르고 5분 단위로 돌출된 도트 인덱스를 두었다. 베젤은 클루 드 파리 디테일로 마무리했고 과거의 레퍼런스인 5119나 3919 등을 계승했다. Ref. 6119의 의의는 무엇보다 신형 수동 무브먼트의 탑재다. 자동 무브먼트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수동 무브먼트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편이지만 파텍필립이 1970년대 이후로 내놓은 완전히 새로운 수동 무브먼트를 살펴보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주인공인 칼리버 30-255 PS는 지름이 30mm가 넘는 31mm의 대형 사이즈가 특징이다. 대형 사이즈를 택한 이유는 파워 리저브를 늘리기 위해서다. 칼리버 30-255 PS는 2개의 배럴을 탑재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보다 넓은 면적을 요구했다. 이것은 2장의 넓은 브리지로 덮였다. 다른 2장의 작은 브리지는 기어트레인을 고정하며 전부 곡선미를 살려 우아하게 마무리했다. 밸런스 휠이 다소 작아 보이지만 무브먼트의 지름을 고려한다면 그리 작은 사이즈는 아닌 듯하다. 기존 칼리버 215 PS를 대체할 칼리버 30-255 PS는 20시간 이상 증가한 파워 리저브와 케이스 지름 대비 작은 무브먼트 지름에서 비롯된 다이얼 언밸런스의 조정이라는 효과를 가져왔다. 칼리버 30-255 PS의 구성과 스펙은 앞으로도 40mm에 가까운 드레스 워치가 주류를 이루리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파텍필립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워크호스(workhorse)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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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에 운트 죄네 삭소니아 씬 Ref. 211.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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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에 운트 죄네 삭소니아 씬 Ref. 201.027

랑에 운트 죄네 삭소니아 씬 Ref. 211.088
시·분침의 타임온리 삭소니아 씬 Ref. 201.027은 클래시컬한 드레스 워치 혹은 드레스 워치 순혈주의자의 기준을 흡족하게 충족한다. 37mm의 적절한 케이스 지름과 5.9mm의 케이스 두께로 신 워치의 요건에도 부합한다. 랑에 운트 죄네 특유의 절제된 케이스 라인은 화이트 골드 소재를 만나 한 차례 더 정제를 거쳤다. 백색 톤의 다이얼은 입체적인 바 인덱스를 정갈하게 늘어놓고 기능을 위한 최소한의 디자인만 갖췄다. 이 같은 케이스와 다이얼의 조합은 창백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케이스 백을 통해 보이는 칼리버 L093.1의 은은한 저먼 실버 플레이트와 표면을 꽃처럼 수놓은 골드 샤톤, 루비, 블루 스크루의 은근하면서도 화려한 디테일이 반전을 이룬다. 칼리버 L093.1은 2.9mm의 얇은 두께가 특징이지만, 72시간에 달하는 파워 리저브를 제공한다. 무브먼트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콤팩트한 설계 덕분이다. 올해 새로 선보인 모델 삭소니아 씬 Ref. 211.088은 동일한 무브먼트를 탑재하지만 케이스 지름은 40mm, 두께는 6.2mm로 조금 더 큰 모델이다. 시·분침 타임 온리의 기능도 같지만 케이스와 다이얼 면적이 늘어나면서 더욱 얇아 보인다. 2018년 화이트 골드 케이스를 시작으로 다이얼 색상이 다른 베리에이션을 2020년에 선보였고, 이번에는 핑크 골드 케이스로 내놓았다. 이 시리즈는 다이얼이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역할이 크다. 다이얼 소재는 라피스 라줄리(청금석)처럼 보이지만, 실버 다이얼을 베이스로 표면에 산화동 결정을 머금은 푸른색 유리질 용액을 바르고 식히는 과정을 반복해 얻어냈다. 빛을 받은 다이얼은 산화동 결정이 금가루처럼 반짝거리며 어둑어둑한 밤하늘을 연출한다. 37mm 모델만큼은 아니더라도 소매 속에 숨어 있다가 손목을 움직일 때 아주 잠깐 나타났다 반짝이며 사라지는 묘미가 있다. 다이얼 덕분에 반짝였다 소매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의 묘미는 드레스 워치 애호가만이 누릴 수 있는 숨겨진 즐거움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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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 드 빌 트레져 코-액시얼 마스터 크로노미터 파워 리저브 40mm
스피드마스터, 씨마스터로 대표되는 오메가의 라인업에는 크로노미터의 상징인 천문대를 케이스 백에 품은 컨스텔레이션과 드 빌도 있다. 과거 천문대에서는 크로노미터 경연을 개최해 정확한 시계를 확보했고, 여기 참가해 좋은 성적을 낸 브랜드는 명성을 얻었다. 컨스텔레이션의 심벌이 천문대인 이유다. 드빌은 드레스 워치의 임무를 맡았다. 드 빌을 좀 더 세분화해서 보면 드 빌 트레져가 클래식 개념의 드레스 워치에 가깝다. 오메가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시험대였던 드 빌 아워비전은 상대적으로 스포티하며, 프리스티지는 트레져보다 클래식하지만 주력 제품군은 아니다. 드 빌 트레져의 신제품 드 빌 트레져 코-액시얼 마스터 크로노미터 파워 리저브는 케이스 지름 40mm, 케이스 두께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으나 수동인 칼리버 8935를 탑재해 준수한 드레스 워치의 프로포션을 드러낸다. 돌출된 돔 글라스가 두께를 증가시키나 이는 의도적인 디테일이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케이스와 심플한 구성의 다이얼은 클래식 드레스 워치를 조금 크게 만든 듯한 인상이다. 다이얼에 드러난 기능 구성은 요즘 보기 드문 배치다. 6시 방향 스몰 세컨드와 대칭을 이루는 12시 방향에 크로노그래프 카운터처럼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가 자리한다. 자세히 보면 마린 크로노미터의 C자형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에 가깝다. 칼리버 8935가 제공하는 와인딩의 감촉이나 72시간 파워 리저브는 요즘 시계다운 요소지만, 전반적인 생김새와 느낌은 클래식 드레스 워치의 화법에 충실하다. 디자인과 디테일에서는 클래식함, 무브먼트와 케이스 지름에서는 모던함을 추구했고 둘을 적절하게 매칭했다. 전반적으로는 스포츠 워치에 익숙하더라도 드 빌 트레져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부여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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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세이코 스프링 드라이브 오미와타리 Ref. SBGY007
스프링 드라이브는 세이코의 독자적 방식의 무브먼트로 기계식과 쿼츠의 하이브리드로 볼 수 있지만, 기계식에 더 가깝다. 하이브리드 개념의 무브먼트는 또 있는데, 역시 세이코와 일본 브랜드가 강세다. 세이코에 한정한다면 키네틱이 이에 해당하며 쿼츠에 더 가깝다. 스프링 드라이브는 기계식처럼 태엽을 동력으로 삼지만 밸런스 대신 수정 진동자를 진동시킨다. 즉 태엽으로 전기를 발전해 쿼츠 구동부를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스프링 드라이브에 적용한 기술덕분에 초침은 기계식의 스윕 세컨드를 닮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움직임으로 기계식과 구분할 수 있다. 그랜드 세이코 스프링 드라이브 오미와타리(御神渡り) Ref. SBGY007에 장착한 새로운 스프링 드라이브 칼리버 9R31은 수동이다. 손으로 크라운을 돌려 태엽을 감으면 배럴 속 메인 스프링에 축적해놓은 힘으로 작동하므로 기계식처럼 파워 리저브가 (상대적으로 쿼츠에 비해) 길지않다. 72시간의 작동 시간을 표시하는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는 무브먼트 브리지 면에 위치하며, 배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하나의 플레이트로 덮는 독특한 양식을 드러낸다. 그랜드 세이코의 기계식 무브먼트 못지않은 피니시를 즐길 수 있으며, 다이얼에서 한번 더 즐길 거리와 만난다. 모델명 중 오미와타리는 그랜드 세이코의 공방이 있는 신슈 스튜디오 부근 스와호가 겨울철 10cm이상의 두께로 얼었을 때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만들어낸 표면의 자연현상이 산맥처럼 보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다이얼은 오미와타리를 묘사한 패턴에 연한 하늘색을 입혀 계절감을 발하는 아름다운 색채를 냈다. 스프링 드라이브의 독자성과 동양적 감성을 자랑하는 드레스 워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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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탱크 머스트 워치
1970년대 스위스 시계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1969년 연말 세이코가 발표한 쿼츠 손목시계는 게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압도적인 성능, 즉 기계식이 따라갈 수 없는 정확성을 앞세운 쿼츠 손목시계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며 지워버리고 싶은 1970년대를 보내야 했다. 세계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두 번에 걸친 오일쇼크의 여파는 굉장했다. 까르띠에는 1970년대를 견디기 위한 재정비가 필요했다. 레 머스트(Les Must) 컬렉션이 등장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고, 시계 역시 머스트 컬렉션의 방향성을 공유했다. 탱크 머스트 워치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주로 골드 케이스로 만들던 탱크 워치는 1970년대의 경제 상황과 새로운 고객인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버메일 케이스(실버 케이스를 금도금 처리한 것)를 택해 가격을 낮췄다. 단순히 가격만 낮춘 게 아니라 버건디, 네이비 같은 과감한 다이얼 컬러와 탱크 워치의 전통적인 다이얼 디테일을 생략하며 새로움을 어필했다. 올해 부활한 탱크 머스트는 버메일 케이스를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로 대체했지만, 과감함은 되살려냈다. 옛 탱크 머스크 디테일 일부는 탱크 루이 까르띠에로 이식하는 한편, 탱크 솔로를 받아들였다. 탱크 솔로에서 이식받은 요소 중 가장 도드라진 부분은 브레이슬릿이다. 납작하고 평면적인 탱크 솔로의 브레이슬릿은 입체적인 케이스 라인을 지닌 탱크 머스트에 맞춰 재해석되었다. 브레이슬릿은 탱크 프랑세즈의 캐터필러처럼 보이며 곡선미를 머금었다. 이 디테일은 드레스 워치에서 브레이슬릿을 수용할 수 있다는 좋은 예시다. 심플하고 두께가 얇은 브레이슬릿을 더했다면 드레스 워치로 통용된다. 가죽 스트랩과 비교해 형태나 소재가 다를 뿐 드레시라는 요건을 훼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