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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ES & WONDERS ::

2013 Roger Dubuis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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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SIHH(Salon de la Haute Horology)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은 브랜드는 무엇일까요? 기술력으로 매년 약진하는 예거 르쿨트르(Jaeger LeCoultre)? 파격적인 부스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IWC(International Watch Co.)? 아니면, 여성들의 영원한 로망 까르띠에(Cartier)? 정답은 이미 제목에 나와있습니다만, 이 브랜드가 어떻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선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로저 드뷔(Roger Dubuis)의 부스는 많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서 기계식 시계에 대한 매뉴팩처(manufacture:제조사)들의 변화된 관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미래이자 현재의 한 단면을 대변하는 로저 드뷔의 부스와 신모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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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다 못해 영화의 한 트레일러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로저 드뷔의 액스칼리버 라인 소개 포스터입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홍보에서 과감히 벗어났다는데 일단 박수를 쳐 봅니다.


 로저 드뷔는 과감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생 시계 브랜드들이 결함처럼 가지고 가야하는 '역사성'이 그들이 가진 가장 큰 결함이라는 사실을 로저 드뷔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작년에 이어 이번 살롱에서도 그들의 시계에 대한 관점을 명명백백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과감해졌고, 시장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어떤 것이었을지에 대해선, 그들도 어느 정도 가늠은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만. 과연 그들이 어떤 대답을 원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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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드뷔의 범상치 않은 매뉴팩쳐 전경.


 로저 드뷔는 작년에 이어 100% 제네바 홀 마크(Geneva hall mark, Geneva seal: 제네바가 인정하는 고급시계의 표준을 준수한다는 보증. 자세히 보시려면 클릭) 획득과 100% 스위스 생산을 강조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swiss made' 표기 문제(관련기사 클릭)와 관련하여 '청렴'을 내세우고 싶었나봅니다. 로저 드뷔의 공식 홈페이지를 들어가도 그렇고, 프레스 ppt에서도 100%라는 글자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청렴함과 정확함을 마케팅 일선에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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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드뷔 부스를 가득 채우는 독수리의 위엄


 로저 드뷔 부스 정면에는 한눈 가득 황금색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 독수리의 한 쪽 다리에는 열쇠가 쥐어져 있고, 황금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독수리와 열쇠. 드디어 제네바 홀 마크를 전면에 내세우는 브랜드가 탄생한 것이지요. 올해 로저 드뷔는 자신들이 생산하는 모든 시계가 100% 제네바 홀 마크를 받는다는 사실을 강점 일선으로 내세웠습니다. 물론 제네바 홀 마크가 기관에서 시계의 정확성을 보증하는 것이기도 하고, 표준을 준수한다는 시계임을 검증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좋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급 브랜드의 수준이 로저 드뷔 정도 올라가면, 정확성은 어느 정도 검증이 된다는 것이 첫 번째. 100% 제네바 홀 마크를 받는 브랜드가 로저 드뷔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두 번째(대표적으로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과 파텍필립(Patek Philippe)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위스에서 생산하는 최고 수준의 시계가 모두 제네바 홀 마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로, 바람직한 마케팅 수단인가에 대해서는 재고가 필요한 듯 보입니다. 참고로 저 독수리의 무게만 5톤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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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장에는 실제 독수리 한 마리와 조련사를 배치했습니다. 독수리와 함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를 열었더니 금새 사람들로 북적북적. 사진의 이 분 뿐만 아니라 로저 드뷔 부스에 있는 스태프들은 모두 이렇게 중세풍의 옷을 입었습니다. 나중에 귀뜸으로 알게 된 것인데, 작년보다 한층 더 과감해지고, 생동감있는 로저 드뷔의 부스가 탄생한데에는 보메 메르시에를 거쳐 IWC, 로저 드뷔의 수장이 된 조지 케른(Georges Kern)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그는 스트라스 브루크에서 정치과학을 전공한 이력으로 일찌감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외교적(?) 수완이 유감없이 발휘 된 것일까요? 로저 드뷔와 조지 케른. 왠지 임자 제대로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신모델 소개는 '엑스칼리버'라인의 보강과 개선이 중점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이제 로저 드뷔의 신 모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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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드뷔 크로노그라프(ref. 390)입니다. 큼지막한 인덱스와 서브다이얼이 가장 먼저 들어옵니다.

다이얼은 42mm이지만, 베젤의 크기가 다소 작아 훨씬 더 광활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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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 크로노그라프 42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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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용 엑스칼리버 36mm 다이아몬드 버전입니다. 신모델은 아니지만 다이얼의 색깔과 베젤 다이아몬드 세팅이 아름답습니다.

부스 배경의 디테일까지 신경 쓴 모습이 로저 드뷔가 생각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잘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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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칼리버 더블 스켈레톤 뚜르비용입니다. 레조넌스(resonance, 공진) 현상을 이용한 시계입니다. 브릿지에도 페를라주가 되어있기 때문에 걷기만 해도 반짝인다는 사실이 이 시계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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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 42mm 뚜르비용 모델을 손에 얹어봤습니다.


 이번 로저 드뷔의 하이 컴플리케이션은 두 가지로, 엑스칼리버 테이블 론드와 콰터가 있습니다. 론드는 원탁의 기사에서 영감을 받은 모델로 시계의 인덱스 대신 기사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기사들은 모두 장인의 수공으로 만들어졌으며, 입체감이 살아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콰터는 밸런스 휠을 대각선으로 4개를 배치함으로서 고효율로 정밀함을 조정하던 기존의 형식과는 달리, 다수의 밸런스 휠을 이용하여 등시성을 확보한 모델입니다. 다시 한 번 엑스칼리버 테이블 론드에 대하여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이번 시계의 모토가 된 원탁의 기사 무용담은 영국 신화가 원작입니다. 로저 드뷔는 원탁의 기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스위스 시계이지요. 로저 드뷔는 현재를 살고 있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를 재해석한다거나 개선할 수 없습니다. 즉, 이번 테이블 론드를 통해 이들은 역사성이 없다는 제약을 그들 특유의 자유스러움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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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 테이블 론드의 다이얼 정면입니다. 소드 핸즈를 중심으로 각 인덱스마다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기사들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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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기사들은 각각 다르게 생겼을 뿐 아니라 상당히 디테일합니다. 당연히 만드는데도 오래 걸리죠. 88점 한정 생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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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론드야말로 사진으로 보여드려야 하는 시계겠지만, 프리젠테이션 시간에 공개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쇼윈도에서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지로나마 이런 모델이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드리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케이스백은 솔리드백입니다. 다음은 하이-컴플리케이션인 엑스칼리버 콰터(quarter: 4중주)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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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도 정도로 양쪽으로 기울어져있는 4개의 밸런스와 왼쪽 서브다이얼에 있는 파워리저브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엑스칼리버 콰터는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ref. 408과 골드 케이스로 만들어진 ref. 367 모델이 있습니다. 둘 다 한정판으로 실리콘 모델은 3점, 골드 케이스는 88점으로 한정 생산되었습니다. 실제로 본 바로는 화려함이 극대화 된 무브먼트와 그 화려함을 가득 담고있는 커다란 케이스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밸런스휠(Balance wheel)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뿐만 아니라, 12시 방향과 6시 방향에 있는 휠이 모두 4번 휠로, 빠른 속도로 반짝거리면서 회전한다는 것 입니다.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한데, 잘 깎아낸 소드 핸즈와 다이얼 밑으로 보이는 페를라주가 점정을 장식합니다. 케이스백 또한 화려함의 극치를 과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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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라는 이름답게 날카롭게 짜여진 톱니바퀴 아래로 듀얼 배럴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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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도로 밸런스를 꺾었기 때문에 케이스가 두꺼워지는 것 만큼은 피할 순 없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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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덱스가 대각선으로 깊게 들어가 있는 구조기 때문에 사파이어 글라스 아래로 공간감이 살아있습니다.


 로저 드뷔의 부띠끄는 홍콩, 두바이, 아부다비, 싱가폴, 마키오, 텐진에 있습니다. 모두 카.지.노와 관련된 도시들로, 화려함의 극한을 추구하는 로저 드뷔의 모토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곳 입니다. 믿을만한 정보에 의하면 로저 드뷔는 하이 컴플리케이션의 매출로 운영이 되는 구조라고 합니다. 이는 엔트리와 플래그십 모델의 매출로 브랜드를 관리하는 기존의 브랜드들과 다른 수익구조로, 로저 드뷔가 추구하는 바와 소비 계층이 어떠한지에 대하여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다수의 시계 브랜드들은 쿼츠 쇼크로 끊어졌던 역사를 이어받아 그것을 복각하는 형식으로 모델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잘 나가는 최첨단 기술을 시계와 접목시키는 방식으로도 새로운 모델을 발표하기도 하죠. 로저 드뷔처럼 자신의 시계와 관련 없는 설화를 끌어 모아 헤리티지 모델로 만드는 것은 시계 역사상 전례없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저 드뷔의 이러한 행보는 오늘날 기계식 시계의 현재에 대하여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과도하게 확대시켜놓은 시계 시장은 그들이 새로운 모델을 발표하고 복각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기까지의 주기를 현격히 단축시켜 놓았습니다. 브랜드들은 3-5년에 한 번 하던 모델 체인지를 매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매 해 개발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죠. 2013년 바젤월드(BASELWORLD)와 올 9월에 있을 와치&원더스(Watch & Wonders)에서 어떤 이변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시계 브랜드들이 서서히 내부적으로 자신들이 쏟아낼 수 있는 아이디어에 슬슬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결탁한 오늘날의 시계 시장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전처럼 많은 것들을 기대하는 것 만큼, 브랜드에서 우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사례가 점점 더 많아질 것 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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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드뷔


 이미 위블로와 같이 디자인과 파격으로 승부를 보는 시계들이 시장의 판도를 한 번 뒤집었다면, 이번 로저 드뷔의 행보는 그보다 조금 더 빠르게 그 시장의 현재가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해석될지, 부정적으로 해석될지 그리고 이것이 시장 승리로 끝이 날지, 패배로 끝이 날지는 전적으로 경제 전망과 소비자의 몫이 되겠지요.


고급 시계 시장의 확대와 자본의 유입은 파이를 크게 만들었고, 커진 파이를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주주들은 새로운 아이를 만들어서라도 파이를 먹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아이가 이유식부터 먹지 않고 파이를 먹기 시작한 현상과 그 말로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꾸준한 운동과 관리로 다른 아이들보다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 할 수 있을지, 그렇지 못할지. 우리는 조금 더 지켜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날 살아남는 브랜드가 내일의 역사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브랜드들은 한 때 추억거리로 서서히 흐릿해져 갈 것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