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Parmigiani Fleurier, 이하 파르미지아니)가 한국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몇 년간의 공백을 딛고 올해부터는 새로운 파트너 ‘컬렉터스 하우스’와 함께 국내 시장을 노크합니다. 지난 3월 13일에는 새 출발을 알리는 론칭 이벤트가 컬렉터스 하우스 청담 부티크에서 열렸습니다.   

파르미지아니는 잘 알려진 대로 천재 워치메이커이자 복원가로 유명한 미쉘 파르미지아니가 1996년 글로벌 의약 기업 산도스 재단(Sandoz Family Foundation)의 후원을 받아 설립한 브랜드입니다. 다만, 지금은 미쉘 파르미지아니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습니다. 불가리 출신의 귀도 테레니(Guido Terreni)가 2021년 1월 26일부로 CEO로 부임해 브랜드를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파르미지아니는 그의 합류 이후 확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과감한 라인업 정리와 함께 톤다 PF가 새로운 코어 컬렉션으로 떠올랐습니다. 기존 톤다를 재해석한 톤다 PF는 요즘 트렌드에 따라 일체형 브레이슬릿을 장착한 럭셔리 스포츠 워치 컬렉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르미지아니는 2021년 이후 다른 라인은 제쳐두고 해당 컬렉션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선택과 집중은 보기 좋게 성공했습니다. 매출이 무려 3배가량 늘어났다고 합니다. 파르미지아니는 그를 바탕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고, 가파른 상승세는 결국 한국 시장 재진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톤다 PF 스켈레톤

-톤다 PF 그레고리안 애뉴얼 캘린더

파르미지아니는 한국 재입성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론칭 이벤트만 봐도 그렇습니다. 톤다 PF 컬렉션 수십 점이 이번 행사를 위해 물 건너왔습니다. 대표작 마이크로-로터 모델을 중심으로 36mm 오토매틱, 스켈레톤, 크로노그래프, 애뉴얼 캘린더, 독창적인 라트라팡테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체감상으로는 플라잉 투르비용 같은 최상위 컴플리케이션을 제외한 전 라인이 총출동한 듯한 느낌입니다. 브랜드 CEO 귀도 테레니 역시 행사에 참여하는 건 물론 프레젠테이션까지 직접 진행했습니다. 공식 프레젠테이션 이후에는 귀도 테레니와 타임포럼의 1:1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귀도 테레니 약력: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이탈리아 루이지 보코니(Luigi Bocconi)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 1995년 프랑스 식품기업 다농(Dannone)에 입사했고, 2000년 불가리로 이직하며 본격적으로 시계 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불가리 시계 제조 부문에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은 귀도 테레니는 2009년 불가리 오를로제리(Bulgari Horlorgerie)를 총괄하는 대표직까지 맡게 된다. 불가리는 이후 그의 주도하에 옥토 피니씨모를 바탕으로 울트라-씬 영역을 제패하는 등 워치메이킹에서도 확실한 두각을 나타냈고, 귀도 테레니는 2021년 화려한 성과를 뒤로 하고 20년 넘게 몸담은 브랜드에서 나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박수 칠 때 불가리를 떠난 셈. 이후는 잘 알려진 대로다. 귀도 테레니는 2021년 1월 26일부로 파르미지아니 CEO로 부임해 지금까지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오고 있다.  

파르미지아니가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환영한다. 소감이 어떤가?

다시 돌아오게 되어 매우 기쁘다. 한국은 시계 업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장이다. 스위스 시계 수출액 기준으로 전 세계 11위에 올라 있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건 물론이다. 2002년에 한국에 처음 왔던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한국은 기계식 시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시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고학력자들이 기계식 시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관련 시장이 매우 성숙해졌다. 어제(3월 12일) 컬렉터스 하우스의 주선으로 10명의 시계 컬렉터와 저녁 식사를 했는데, 그들은 파르미지아니가 추구하는 미니멀한 스타일을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었다. 

미니멀한 스타일의 연장선으로 톤다 PF 출시와 함께 로고도 바뀌었다. 이니셜로 구성된 새로운 로고가 심심하다는 반응도 분명 있었다. 

파르미지아니는 시계를 과시하지 않는 애호가를 위해 제품을 만든다. 우리 고객은 시계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브랜드 이름이나 로고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대부분이 우리의 미니멀한 로고와 디자인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한국의 고객들도 그 가치를 분명 알아봐 줄 거라 믿는다. 

당신이 CEO로 취임한 이후, 파르미지아니는 어떻게 바뀌었나?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내가 처음 브랜드에 합류했을 때, 파르미지아니는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걸 떠나서도 고객을 점점 잃어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가 CEO로 합류하고 3년이 지난 지금은 브랜드 규모가 5배 더 커졌고 판매량도 3배 가량 늘어났다.  

성장 속도가 놀랍다. 비결은 무엇인가?

2021년 출시한 톤다 PF 덕분이라 생각한다. 톤다 PF는 그동안 다양한 시리즈를 바탕으로 라인업을 성공적으로 확장했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파르미지아니의 정체성도 그 기간동안 구체화됐던 것 같다. 

-톤다 PF 스포츠 오토매틱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불가리에 오랫동안 있었다. 파르미지아니와 불가리는 어떻게 다른가? 

파르미지아니는 불가리보다 작은 브랜드다. 카테고리도 굉장히 단순하다. 모노 카테고리라 할 수 있다. 큰 브랜드들은 불가리처럼 멀티 카테고리인 경우가 많은데, 파르미지아니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크레이티브 부분부터 커뮤니케이션,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내가 직접 관장할 수 있다. 파르미지아니를 통해 불가리와는 또 다른 럭셔리를 시계로 표현할 수 있어 기쁘다.   

현재 미셸 파르미지아니와 브랜드는 어떤 관계인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하다. 

미셸 파르미지아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게다가 사무실 바로 옆에 산다. (웃음) 마치 옆집에 할아버지가 사는 것 같은 느낌이다. 현재 그의 위치는 명예 회장직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지난 30년동안 추구해온 가치를 이해하고 잘 계승해 나가는 게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 시대에 맞춰 재해석하는 것 역시 물론 중요하다. 톤다 PF가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톤다 PF는 일본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고 들었다.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일본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절제된 디자인과 세밀한 마감을 중시하는데, 그들의 성향과 톤다 PF의 가치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톤다 PF가 일본 시장에서 먼저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과시하지 않는 파르미지아니의 정제된 미학을 알아주는 고객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톤다 PF 외 톤다 GT도 있다. 두 컬렉션은 중복되는 느낌이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톤다 GT는 단종된 컬렉션이다. 톤다 GT를 좀더 깔끔하고 세련되게 다듬은 컬렉션이 지금의 톤다 PF라 할 수 있다. 기존 로고는 간결한 PF 로고로 교체됐고, 큼지막한 빅 데이트는 사라졌다. 인하우스 무브먼트도 그때보다 업그레이드되는 등 여러 측면에서 변화를 거쳤다.  

그런데 파르미지아니 홈페이지에는 (인터뷰일 기준) 여전히 톤다 GT가 남아있다. 

홈페이지에서도 곧 사라질 예정이다. 톤다 GT가 그동안 홈페이지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우리 파트너 매장에 일부 재고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톤다 PF 스켈레톤

-톤다 PF 미니트 라트라팡테

톤다 PF 라트라팡테 시리즈는 새로운 기능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각 제품에 어떻게 라트라팡테의 스플릿 메커니즘을 활용할 생각을 했나?  

어떤 사람들은 기계식 시계에서 더 이상 발명할 게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아직 빛을 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 라트라팡테 시리즈는 톤다 PF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에서 비롯했다. 평상시에는 톤다 PF 마이크로 로터처럼 두 개의 바늘이 있는 타임 온리 워치 같지만, 각 푸시 버튼을 누르면 시침 및 분침 아래 숨어 있던 또 다른 바늘이 나타난다. 가령, 톤다 PF GMT 라트라팡테는 평소에는 시침과 로즈 골드 GMT 핸드가 포개져 있는데, 8시 방향 푸시 버튼을 누르면 시침이 한 시간 단위로 점핑한다. 사용자는 이를 통해 로컬 타임을 빠르게 설정할 수 있다. 로즈 골드 바늘은 이때 홈 타임을 가리킨다. 이후 3시 방향 푸시 버튼을 누르면, 시침이 다시 로즈 골드 바늘 쪽으로 재빠르게 플라이백하며 다시 포개진다. 즉, 시간대가 다른 나라로 이동하면 8시 방향 푸시 버튼을 눌러 로컬 타임을 맞추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3시 방향 푸시 버튼을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일종의 ‘주문형’ 기능이라 할 수 있겠다. 

톤다 PF 미니트 라트라팡테도 굉장히 독특하다.

톤다 PF 미니트 라트라팡테는 평상시 분침 아래 로즈 골드 바늘이 숨어 있다. 이번에는 푸시 버튼을 누르면 로즈 골드 바늘이 움직인다. 10시 방향 푸시 버튼을 누르면 1분 단위, 8시 방향 푸시 버튼을 누르면 5분 단위로 해당 바늘이 점핑한다. 사용자는 이 기능을 타이머로 활용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분 단위 시간을 먼저 세팅한 다음, 분침이 로즈 골드 바늘로 점점 다가가는 걸 보면서 남은 시간을 확인하면 된다. 파스타 요리를 하거나 공항 라운지에서 게이트로 이동한다 던지, 다양한 일상에서 이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물론, 3시 방향 푸시 버튼을 누르면 로즈 골드 바늘이 분침 아래로 다시 플라이백한다. 심플한 투 핸즈 워치로 다시 변신하는 거다.  

현재 톤다 PF에 신제품이 치중돼 있는 것 같다. 토릭과 같은 다른 컬렉션은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

파르미지아니는 하나의 컬렉션만 있는 브랜드는 아니다. 우리는 하이엔드를 추구하고 또 복잡하고 정교한 컴플리케이션도 만든다. 온전한 드레스 워치 컬렉션도 있다. 토릭 컬렉션에서도 언젠가는 신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다방면으로 리뉴얼을 진행할 계획인데, 알다시피 워치메이킹이라는 작업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리뉴얼에는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톤다 PF는 이제 2년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컬렉션이다. 베이비라 생각하면 된다. (웃음) 지금은 톤다 PF가 한창 성장하는 시기라 생각한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조만간 제네바에서 또 다른 새로운 컬렉션이 공개될지도 모르겠다. (웃음)   

기대가 된다. 파르미지아니는 과거 부가티 타입 370 & 390처럼 놀라운 시계를 선보이기도 했다. 팬토그래프 역시 마찬가지다. 파르미지아니를 통해 그와 같은 창의적인 시계를 보고 싶어하는 시계 컬렉터들이 여전히 많다.   

하이엔드 워치메이킹에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당시에는 부가티와의 파트너십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명분이 없다. 하지만 무브먼트에 관해서는 계속해서 혁신을 이어나갈 것이다.    

몇 해전 조르지오 아르마니와의 협업을 통해 관련 시계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 다른 콜라보레이션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으로선 계획이 없다. 당시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우리에게 직접 시계 제작을 의뢰했었다. 또 비슷한 콜라보레이션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웃음) 지금 우리의 집중 과제는 브랜드를 더욱 키우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프로젝트는 내가 파르미지아니에 오기 전부터 시작됐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파르미지아니 시계를 제작할 때 가장 까다로운 작업은 무엇인가? 

최근 파르미지아니의 스타일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지만, 무브먼트는 반대로 복잡하고 마감도 굉장히 화려한 편이다. 정제된 디자인과 정교한 무브먼트를 조화롭게 결합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절한 균형을 잡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여성시계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파르미지아니에는 톤다 PF 오토매틱 36mm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여성이 착용할만한 시계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여성시계가 굉장히 중요하진 건 사실이다. 10년 전 파르미지아니가 한창 잘 될 때 여성시계 파트가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10% 미만이다. 당장 새로운 여성시계 컬렉션을 언제 선보일지에 대해 말하긴 힘들지만, 장기적으로 여성시계를 꾸준히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끝으로, 파르미지아니를 기다린 한국 시계애호가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컬렉터스 하우스를 통해 한국 고객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매우 기쁘다. 한국 고객을 만나보니 생각보다 독립 시계제조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이번 비즈니스에 좀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우리는 2년 전부터 한국 시장 재진출을 타진했지만, 당시만 해도 제품이 충분하지 못했다. 지금은 라인업이 한층 다양해져 이렇게 다시 비즈니스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다시 돌아온 만큼 파르미지아니에 더 많은 관심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