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차가 대세인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대형차의 판매 급증 뉴스를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과시욕이 참 문제야’ 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도 저러지 말아야겠다’ 라는 자기 성찰적인 생각은 저랑 상관 없습니다. ‘난 천박한 저들과 다르지’ 라는 안도의 한숨(물론 능력도 없지만)과 착각을 하며 마음 한구석에 억지로 눌러 넣은 과시욕과 허영심이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곤 합니다. 뭐가 좋은지도 모르고 남들 따라 한 달치 월급을 다 써버리며 명품 가방을 사는 건 좀 아니라고 하면서도. 어디 가서 기죽지 않으려면 남들이 알아주는 ‘롤렉스’ 시계 하나는 있어야겠다는 라는 게 솔직하겠고,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롤렉스를 차고 있으면 지갑이 두둑한 것처럼 마음 든든하기도 합니다.
누군가 ‘시계를 살 때 어디에 비중을 두시나요?’ 라는 질문에 저는 ‘무브먼트 30, 디자인 30, 리세일 밸루 30, 브랜드 10’ 으로 고려합니다 라는 시계 매니아 다운 멋진 대답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시계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 조금 진정된 최근의 일입니다. 사실 지금도 무브먼트 30 대신 남들이 알아주는 브랜드 30으로 비율을 바꾸고 싶은 아주 고상하지 못한 욕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지금 와서 기계식 시계를 산 이유를 되돌아 보면 남들과 다르고 싶다는 욕구, 체면, 억누르고 있는 과시욕, 허영심, 속물근성, 기계에 대한 애정이 뒤엉켜 있던 도중 그것을 표출하기 위한 매우 적절한 표현 도구였을 겁니다.
물론 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몇 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했습니다. 단어와 숫자 에도 속아 보고, 귀가 얇아 남의 말에 넘어가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내린 결론은 롤렉스 입니다. 그 중에서도 ‘서브마리너’ 인데 지금도 마지막으로 어떤 시계를 사겠냐고 하면 롤렉스 서브마리너 ref.5512 를 말 할겁니다. 현행품은 흔하고 또 데이트인 ref.16610과 논 데이트인 ref.14060 사이에서 뭐가 더 정통성 있고 뭐 더 알아주느냐 하는 치졸한 계산을 하기 싫은데다가, 빈티지라고 하면 왠지 더 있어 보이기도 하니까요. 뭐 이놈의 가오 제일주의는 어딜 가지 않는군요. 뭐 고급 시계라는게 그런 사람의 마음을 먹고 사는 괴물이긴 합니다만.
바젤 월드에서 오메가는 신형 무브먼트 Cal.8500을 발표하고, 스피드마스터 50주년 기념 모델을 선보이는 등 떠들썩 했지만, 롤렉스를 따라 잡는 일은 요원해 보였습니다. 단순히 기계식 시계로 둘을 비교하자면 이제는 어쩌면 대등할지도 모르지만, 롤렉스라는 시계를 사면 함께 주는 투명 주머니가 오메가에겐 아직 없습니다. 그 주머니에는 앞서 말한 과시, 허영, 속물근성 같은 것이 남김없이 들어갑니다. 꽉 들어찬 주머니를 가지면 든든하기 까지 합니다. 게다가 주머니 안에 어떤 내용물이 들었는지 10미터 밖에서도 반짝반짝 잘 보입니다. 뭐 이거 시계가 가지는 의미 이상으로 훌륭하지 않습니까?
자 이제, 저처럼 자신이 고상하지 못한 속물이라고 인정하셨다면 모델을 골라보지요. 물론 롤렉스의 시계 들 중에서죠. 이왕이면 누군가 그 시계에 관심을 가지고 물어본다면 술술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도록, 역사나 뒷 이야기가 있는 것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음. 세수할 때도 행여나 해서 시계를 풀러 놓지만 세찬 빗방울 하나라도 시계 속에 들어가면 곤란하니 방수도 잘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말 이것 밖에 없군요. 아까 제가 말한 서브마리너. 이것저것 재어봐도 한번 사면 적어도 10년은 충분히 우려 먹을 수 있겠습니다.
어떠십니까? 당신과 저에게 정말 완벽한 아이템 아닙니까? 롤렉스 서브마리너. 훗훗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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