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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MAN BRAND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나는 시간이 구부러지고 접힌다거나, 평행우주 같은 다른 형태로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론적인 얘길 하는 게 아니다. 
그럴 리가, 나는 일상적인, 매일매일의, 우리가 탁상시계와 손목시계를 보며 
째깍째깍 찰칵찰칵 규칙적으로 흘러감을 확인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초침만큼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게 또 있을까. 

하지만 굳이 시간의 유연성을 깨닫고 싶다면, 약간의 여흥이나 고통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중에서... 



cronos_movie_poster.jpg cronos-see-an-do.jpg


이상스러울 정도로 공포나 스릴러 장르를 유난히 좋아하는 제 연인 때문에 얼마 전 우연히 보게된 크로노스(Cronos)란 영화의 포스터와 한 씬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는 '판의 미로'나 '헬보이' 같은 작품으로 잘 알려진 기예르모 델 토로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20여 년 전에 발표한 영화인데요. 제가 아주 어릴 때네요.ㅋ 

근데 공포영화나 뱀파이어 관련 영화 좋아하는 이들에겐 그토록 세월이 흘렀음에도 꾸준히 회자되고 컬트적 영화로까지 추앙되고 있다고 하는 군요. 
암튼 저는 공포나 스릴러, 범죄 장르 이런 거 솔직히 싫어해서(전 그냥 로맨틱 코미디나 훈훈한 드라마가 좋아요ㅎㅎ), 
이 영화 같이 보자고 하는데도 그냥 심드렁해 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제목 부터 크로노스(아시다시피, 시간이란 뜻이죠)이고, 
또 피를 빨아들여 불사를 선사하는 이상하게 생긴 기계 같은게 등장한다고 해서 왠지 호기심이 잔뜩 들어 일단 같이 보기로 했답니다. 






근데 오호... 막상 보고 나니, 영화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잘 만들었더군요. 이게 과연 20년전 작품 맞나? 싶을 정도에요. ㄷㄷ 
기예르모 델 토로가 내가 그간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비범한 사람이구나.... 새삼 실감한 작품입니다. 

내용은 비교적 간단해요. 몇 백년 전 영원한 불사의 젊음을 누리고 싶어한 한 연금술사이자 시계 제작자였던 한 남자가 
회중 시계의 원리를 이용한 곤충 모양(이집트 벽화에 등장하는 황금 풍뎅이 같은?)의 기계를 하나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크로노스입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후 멕시코의 한 오래된 건물이 무너져서 그곳을 발굴작업하던 중 뱀파이어처럼 온 몸이 창백하고 괴상하게 생긴 사람이 죽은채 발견됩니다. 
이후 이 사건은 정부에 의해 묻혀 조용히 잊혀지지만.... 크로노스의 행방을 불치병에 걸린 한 갱스터 보스가 찾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시골 한 마을에서 평범한 앤티크 샵을 운영하는 주인공의 수중에 이 크로노스가 흘러 들어가게 되고, 호기심에 이 기계를 작동한 뒤 그는 점차 뱀파이어가 되어 가지요... 
그리고 이 주인공을 악질 갱스터가 바짝 뒤쫓아 크로노스를 빼앗으려고 하는 과정이 바로 내러티브의 주요 틀입니다. 

암튼 결론은, 주인공은 크로노스라는 고대 곤충 모양의 기계 하나 때문에 남은 여생을 망치게(Fucked up) 되지만... 
젊음과 영원한 삶에 대한 갈망으로 몸부림치던 그 시간들 동안 자신이 평생 가장 사랑했던 한 여인(자신의 부인)과 손녀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확인하고 간다는
뭐 이런 식의 다소 허무한 결말로 갈무리됩니다.... 


전 애초 이 영화를 제목만 들었지 딱히 관심도 없어서 그랬는지 막상 뚜껑을 열고 나서는 나름 신선한 충격에 빠졌답니다. 
일단 기발하다 못해 절묘한 시나리오와 연출력에 놀랐고, 
20년전 작품인데도 게다가 B급 장르의 정서가 다분한 작품인데도 지금 관점에서 봐도 별로 촌스럽지 않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다루는 젊음과 불사, 삶과 죽음에 관한 테마(주제의식)가 묘하게도
요즘 제가 느끼고 곱씹고 있는 어떤 정서와 닿아 있어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나저나 영화 얘기가 나온 김에, 다들 007 스카이폴(Skyfall)도 보셨는지요? ㅋㅋ 저도 지난 주말에 애인과 친구들과 봤는데, 괜찮더군요... 
다니엘 크레이그 형님은 여전히 섹시 마초미가 쩌시고... ㄷㄷ 
남자가 봐도 참 멋진 스타입니다. 특히 강렬한 눈빛과 문장을 으깨듯이 내뱉는 특유의 중저음... 
007빠들 사이에서는 역대 본드의 갑은 숀 코너리라고들 하지만, 제게는 다니엘 형님이 짱인 거 같습니다. 






한 잡지 속 커머셜 컷에서 크레이그 형님은 오메가 PO를 선전하고 계시지만 ㅎㅎ 전 스타인하트 수동을 올려 놓고 몇 장 찍어 봤습니다. 


기계식 수동(Hand Wound)은 역시 매일 밥 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귀찮아서 며칠 밥을 안 주고 서랍 속에 처박아두었다가도 다시 꺼내 태엽을 몇 번 감아주면 팔딱팔딱하는 모습이 언제 봐도 귀엽고, 
곧잘 비유하는 애완 동물 내지 때로는 심지어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관심을 기울여주면 끊임없이 우리에게 알 수 없는 말을 걸고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만큼, 주인인 너도 매 순간 순간을 살아 있으라고 하는 듯 합니다. 
   

벌써 한해도 거의 저물어갑니다. 가을의 서늘함을 느끼기가 무섭게 곧 겨울이 오겠지요. 
그렇다고 우울해 하진 않습니다. 전 그렇게 계절을 타는 유형도 아닙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지고 한 여름 그토록 파릇파릇 무성하던 잎들도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로수를 보는 일이 전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니까요. 자연의 순리... 그저 그 뿐입니다... 한 번 흘러간 시간도 다시 돌이킬 수 없듯이 그저 그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참 좋아하는 팔로마 페이스의 멜랑콜리한 노래 한 곡 들려드리며 물러갑니다... 

Don't say nothing. just sit next to me. don't say nothing, shhh... just be.... ♬♬



회원님들 다들 따뜻하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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