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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스 2333  공감:65 2020.10.30 15:18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년쯤 지난 어느날

할머니께서는 이제서야 마음의 준비가 되셨는지 할아버지 유품을 정리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쓸만한거 찾아서 니들이 가져가라.


금고에서는 금화 등이 나왔기에 낡은 시계에는 다들 크게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시계를 좋아하는 저는 시계들을 하나하나 뜯어보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롤렉스 오이스터퍼페츄얼 모델이였습니다.

당장 연식은 알 수 없었지만, 리벳 브레이슬릿으로 보아 오래된 롤렉스라는건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거 시계 롤렉스인데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내가 차기엔 너무 작아."

"너무 낡아서 차지도 못하겠다."


작고 낡은 시계에 아버지를 포함한 삼형제는 관심이 없으셨고,

그 덕에 손자인 저에게 시계가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브레이슬릿을 탈거하고 시리얼을 확인해보니

레퍼런스는 1002, 1967년산 인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데이트도 없는 심플한 시계.

저는 그런 담백하고 순수한 시계를 좋아합니다.


취향도 유전인 걸까요?

가만히 책상 위에 놓고 보니

할아버지의 오이스터퍼페추얼과 제가 갖고 있는 구구형 익스플로러와는 참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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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리벳브슬은 구조상 사이즈 맞추기가 힘든데 제 손목에 잘 맞습니다.


왠지 할아버지의 온기가 느껴지는건 지나친 상상력일까요?


잠시 할아버지의 치열했던 생애를 추억해보면,

할아버지는 17살 맨손으로 서울에 상경하셨습니다.


보따리상으로 시작된 사업은 날로 번창하여 미군을 통한 사업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롤렉스 유통은 미군px를 통해서 였다고 하니, 할아버지도 미군px를 통해서 구하셨겠지요.


미군px에서는 섭마나 젬티도 유통됐다고 했는데,

오이스터퍼페츄얼이 아니라 4자리 스포츠 모델이면 어땠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봅니다.

물론 그랬다면 작은아버지들이 욕심을 내셨겠지요?^^



오버홀을 위해서 역삼 cs를 방문 하였습니다.



내부상태는 비교적 깨끗한데 밸런스브릿지 교체가 필요하며, 다이얼과 핸즈는 교체대상이라고 통보받았습니다.

할아버지 유품이기에 최대한 원형을 보전하고 싶다고 요청하니 다행히도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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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품일리는 없었지만 세월이 긴 탓에 양심없는 업자 손을 타지 않을까 했던 의구심이 말끔히 해소되었습니다.

마음 한켠이 개운하더군요.



시간이 흘러흘러 약속했던 두달이 지나고 롤렉스를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102.7만원

유리, 가스켓, 용두, 태엽, 밸런스브릿지 교체가 포함된 비용입니다.


다행히도 다이얼과 핸즈 교체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핸즈에서 야광물질 부식이 탈락되어 무브 고장이 날 수 있는데,

롤렉스에선 책임질 수 없다는 귀여운 엄포(?)를 놓네요^^


오버홀 후 일오차는 약 1초라고 합니다.

다만 빈티지인 관계로 한달 5분까지는 허용오차라고 강조하네요.

한달 5분 오차라고 해봐야 고작 하루 10초꼴 ㅎㅎㅎ


더욱 대단한 건 방수성능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뭐 이 시계를 차고 물속에 들어가겠냐만은 가랑비에 쫄지 않을 수 있겠네요.

빈티지에서 방수라니 롤렉스는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을 해냅니다.



집에 와서 오랜 세월 고생했을 리벳브슬을 탈거하고, 시계에 어울릴만한 스트랩을 찾아봅니다.

실버판은 세월에 익어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있네요.


그에 맞는 베이지색 세무스트랩을 체결해 봅니다.

어울리는 옷을 입힌거 같아 빙그레 미소가 돕니다.


이렇게 1967년 34살 할아버지 손목 위에서 빛났을 롤렉스는 31살 손자의 손목 위로 올라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저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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