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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게시글은 조회수1000 or 추천수10 or 댓글25 이상 게시물을 최근순으로 최대4개까지 출력됩니다. (타 게시판 동일) 어느 날이었던가, 집에 있는 옷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청바지가 참 여러벌 나왔더랍니다. 왜 이렇게 청바지가 많지 싶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군대 오고나서 입을 일이 줄어서 정작 입는 청바지는 한두벌 뿐인데 말이죠. 그 물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건 비단 청바지 뿐만이 아니게 되었지요. 군대를 마치고 언젠가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니게 되면 신어야지 하고 사놓고 박스 안에 고이 모셔놓은 구두들. 수트. 수많은 티셔츠들. 청바지들을 다시 들여다보니 그 중 멋스럽게 낡은건 대학시절 그 한벌로 일년 내내 입었던 청바지, 지금도 가장 종종 입는 그 청바지라는 걸 발견했습니다. 정작 내개 필요한 청바지란 그 한벌 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갑자기 생각나건데, 제가 대학시절 좋아하던 아가씨를 훗날 다시 만나서 같이 자리에 나온 누군가가 차고있던 샤넬 J12를 알아보고 그녀가 한마디 했을때 전 제 손목에 있었던 G-shock이 부끄러웠었습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그 자리에서 손목위에 드러난 경제력에 부끄러웠던거 겠죠. 경제력에 대한 부끄러움은 부끄러운게 부끄러운거다 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지만 아직 대범코 곧지 못해서 잠시 느꼈던 감정으로 치부하고 곧 잊어버린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시계"로서 시계를 찾은게 시작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식견과 노력과 시계에 대한 애정에 빌붙어, 아는 만큼 보인다고, 시계에 대한 지식을 위해 조금의 시간을 투자한 덕분에 아무것도 모르고 샀던 G-shock이 부끄러워할 시계가 아니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건전지가 안들어 가는 시계를 가지고 싶어졌고 싸거나 천박한 시계만 만든다고 생각해왔던 세이코가 그런 시계만 만드는게 아니란걸 배웠습니다. 홀대하고 무시하던 친구가 알고보니 정말 멋지고 괜찮은 놈이라는걸 알게 되고 그 반동으로 오히려 더 친해지려고 하는것 마냥 세이코가 갑자기 대단해 보였고, 고심 끝에 세이코 스피릿 SCVS013을 샀습니다. 그 시계를 비닐도 벗기지 않은채 손목에 올려놓았을 때 군대에서 매일 같이 밥먹고 같은 방에서 자는 마음맞는 친구가 정말 저와 잘 어울린다고 했고 저도 썩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걸 차면 사람이 깔끔해 보이겠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였어! 라고 외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생일이 다가와 제가 그렇게 고심해서 정말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해서 고른만큼 아버지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롤렉스를 한 개 가지고 계시지만 부담스러워서 자주 차지 않으시는 분이라 부담없이 차시라는 뜻으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제 손목위에 놓인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좀 더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이것 하나면 된다' 라는 시계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정장에는 당연히 정장 시계를 차야하고 캐주얼하게 입을때는 그에 맞는 시계를 차야한다라는게 그 전까지의 원칙이었지만, 기계식 시계라는 살아있는 물건의 특성상 언제나 차고다닐수 있는 시계를 찾게 되었습니다. 구두의 가죽은 꼭 하루 신으면 하루 쉬게 해주어야 수명이 길어지지만 기계식 시계는 벗어놓고 언젠가 다시 들여다보면 멈춰버릴 테니까요. 와인더 위에만 올라가 있는 시계의 모습도 상상해 보니 그 시계에게 미안할거 같았고요. "튼튼하고" "오래가는" 시계를 찾다 보니 다이버 시계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수영장에도 안가지만 이제 겨울이 왔지만 그 물 샐틈없는 튼튼함을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분수에 맞게 세이코 사무라이로 결정했습니다.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모습의 다이버 워치인것처럼 보여서요. 어젯밤엔 장난감을 얻은 어린아이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야광을 즐겼었고 하루에도 몇번씩 시계를 바라봅니다. 브레슬렛 길이를 잘 조정한건지 하루에도 몇번씩 샤프를 들고 길이를 다시 조정할까 망설이고요. "나에게 어울리는 시계인가?"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지만 "매일 차고 다닐꺼야?"하고 누군가가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일수 있을것 같습니다. 나에게 좋아보이는 시계이니까요.
.....................
PS. 뭐 다른 아쉬운 시계 없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단연코 해밀턴의 카키 메카니컬입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외모와 역사에다가 착한 가격이라 지금이라도 지르고 싶지만 매일 시계밥 주면서 차고 싶지만....... "난 한놈만 패"........ 야합니다.......... -_-;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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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쯔
2006.11.08 21:45
좋은 글이네요. 지샥에서 사무라이~ 좋은 시계란 결코 비싼 시계가 아니죠. -
링고
2006.11.08 22:18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군요...^^*
특별한 예외(나와 동갑인 사람들의 5% 이내?)를 제외하고 대부분 젊은 시절은 가난합니다.
그러나 가난을 벗어날 무렵에는 아내와 자식들이 생기게 되고...
조금은 넉넉해 져도 그 돈을 나만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만의 시계를 찾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의 경제력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라는 것을 언제든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경제력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괜스레 비싼 시계만 좋아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로 이 세상의 어떤 시계라도 살 수 있는 여유돈이 있다면 과연 가장 비싼 시계가 내게 어울려 보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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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os
2006.11.08 22:34
인생 가장 리치할때죠 -_-; 1/m 안해도 되니.... 어쨌든 지샥은 걱정없이 10년 수명 빳데리 기능을 시험받고있습니다. ㅎㅎ. 그냥 하도 차고 다녀서 멋스럽게 낡을수 있는 시계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남기고, 그리고!!!! 뭔가 또 지르는 행태를 방지하기위해 써놓은 글입니다. 이렇게 써놓고 "OOOOO를 질렀습니다" 라고 쓰기 두려워서 참겠죠!!!!! ㅎㅎㅎ -
알라롱
2006.11.08 22:41
훈늉하십니다. 마음 같아서는 포인트를 듬뿍드리고 싶지만. 크흑. -
Kairos
2006.11.08 22:42
자신의 스타일을 알아야 하는게 중요한거 같습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시계"를 찾기위한 길인거죠. 에르메스 켈리백을 동경한다고 해서 제가 그 백을 들고다니면 그건 성정체성에 의심밖에 더 받겠습니까. ㅎㅎ. 높은 가격의 시계를 가지고 계시는 분들 중에는 제가 지금 누리고있는 다른 "무언가"를 희생해서 가지고 그 시계를 가지고 있는 거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시계 자체를 동경하게 되는것에 더해 그런 경제력을 가진다는것을 동경하는 것도 사는데 삶의 경제 측면에선 원동력이 되어줄것 같습니다. -
Kairos
2006.11.08 22:45
쳇, 알라롱님. 다른 방법의 포인트 앵벌이에 착수해야겠군요! -_-; 퀴즈 이벤트로 인해 포인트 적립에는 왕도가 "있다"로 신념이 바뀌었습니다. ㅎㅎㅎ -
지노
2006.11.08 23:29
" 내 손목위의 시계 " ...^^
모든 시계들이 손목위에 얹혀지기 까지 사연들이 있기 마련이죠...
그 사연들까지도 즐기자구요....^^
준회원 축하합니다...^^ -
otium
2006.11.09 22:02
축하드려요(유령회원이) -
whybess
2009.08.28 16:11
좋은글입니다 -
OnEDiE
2010.07.20 12:55
ㅊㅊㅊㅊ -
브라자
2012.03.01 10:05
준회원은 어떻게 하면 되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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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근
2018.10.22 11:36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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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왕h
2019.08.07 06:03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