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믿으십니까?

제가 아까 11시 경..

납품 차 청계천을 가야 했기 때문에 가게를 나섰지요.

청계천 가는 길에 금천교 밑에 있는 남*상공이라는 전선 도매상을 들려야 했습니다.

가게에서 나가려는 찰라, 희한하게 전선이 안 올라온 거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남*상공은 공장이 화성에 있고 본사가 서울에 있어서 전 날 주문하면 다음 날 올라와 가져가는 식입니다.)

전화를 해서 담담자에게 우리 거 세 가지가 모두 올라왔냐고 물었습니다.

올라왔다고 하더군요.

출발했습니다.

남*상공에 도착하기 직전에 제 100 여미터 앞에서 웬 아저씨께서 자전거 타고 내리막길 내려오시다가 갑자기 넘어지셨습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아저씨께서 몸을 전혀 못 가누시는 겁니다.

아저씨 위로 자전거가 엎어져 있었고, 아저씨는 얼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급하게 저는 비상등 키고 차를 대충 덴 후 아저씨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자전거를 치우고 제가 부축을 해도 아저씨는 전혀 못 움직이시더군요.

얼굴-오른 쪽 눈 바로 밑-에서는 계속된 출혈이 있었습니다.

얼굴 뿐 아니라 팔이나 다리, 허리 쪽 뼈를 다치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그대로 두고 119에 전화를 했습니다.

신고 접수를 하려는데 아저씨게서 괜찮다고 일단 전화를 끊으라고 하시더군요.

전화를 끊고 한참이 지나자 아저씨께서는 조금씩 움직이셨습니다.

휴지로 막아도 피는 계속 나더군요.

자리에 앉으셔서 휴식을 좀 취하신 아저씨는 그제서야 괜찮다고, 가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걱정이 많이 됐지만 아저씨께서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이고 의식도 또렸하셨기 때문에 저는 일도 급하고 해서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남*상공으로 갔는데...

전선이 안 올라와 있는 겁니다.

전산 상으로는 올라온 것으로 돼 있었는데 실제로는 안 올라온 겁니다.

제가 가게를 나며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전화까지 했건만 실제로는 안 올라온 상황..

6년이 넘도록 거래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1시에 다시 올리도록 하고 저는 다시 가게로 들어왔습니다. 허탕을 친 거죠.

그런데 가게로 들어오며 문득 드는 생각이...

이게 다 아까 그 아저씨를 도와주기 위한 운명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운명이라고 하니 좀 거창하네요.

암튼, 운명(기독교인 저에겐 하나님의 뜻)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는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