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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그호이어 아쿠아레이서 1000 프로페셔널 슈퍼다이버와 칼리버 TH30-00

 

프레데릭 아르노가 CEO로 취임한 이후 태그호이어(Tag Heuer)는 빠르게 바뀌는 중입니다. 까레라, 모나코, 아쿠아레이서 같은 아이코닉 컬렉션의 디자인을 개선하고 매뉴팩처 무브먼트의 사용 범위를 확대하며 재정비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바젤월드에서 워치스앤원더스로 이적한 지난해 아쿠아레이서 300을 전면에 내세웠던 태그호이어는 올해 열린 워치스앤원더스 제네바에서도 아쿠아레이서를 들고 나옵니다. 이번에는 방수 능력을 의미하는 숫자가 1000으로 커졌습니다. 다이버 워치 인증을 받고 포화 잠수가 가능한데다가 COSC 인증으로 뛰어난 정확성까지 겸비했습니다. 헬륨 가스 배출 밸브도 설치했고, 독특한 구조의 크라운 가드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헌데 필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브먼트를 보고 호기심이 동했습니다. 범용 무브먼트를 가져다 쓴 아쿠아레이서 300과 달리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1000 슈퍼다이버에는 케니시(Kenissi)가 납품한 칼리버 TH30-00을 사용했습니다. 크로노그래프 기능이 있는 무브먼트만 직접 생산하는 태그호이어는 예전부터 아쿠아레이서 등 비교적 기능이 단순한 모델에는 외부에서 공급받은 무브먼트를 사용해왔습니다.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1000 슈퍼다이버도 시간과 날짜를 제외하면 별다른 기능이 없기 때문에 기존의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주목할 것은 케니시라는 신규 거래선을 발굴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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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에 작고한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전 스와치 그룹 회장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전 스와치 그룹 회장 니콜라스 G. 하이에크는 ETA의 기계식 무브먼트 공급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해당 발언은 시계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한때 스위스 시계 업계의 구세주였던 그가 빌런이 되기로 작정했던 걸까요? 회장님이 내세운 명분은 이렇습니다. 스위스 시계 제조 기술을 보호하는 한편 스위스 시계의 경쟁력을 강화한다. 이는 누구나 손쉽게 시계 업계로 진입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였습니다. 니콜라스 G. 하이에크는 많은 브랜드들이 손쉽게 부품이나 무브먼트를 사들인 뒤 조립해 내다파는 행태를 지적했습니다. 연구 개발과 투자를 등한시하는 무임승차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겁니다. 동시에 브랜드마다 자생력을 갖추는 게 궁극적으로는 스위스 시계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재고하고 한 단계 발전시키는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상품을 팔 건지 안 팔건 지, 판다면 얼마나 팔 건지를 결정하는 건 순전히 제조사의 권리입니다. 얼핏 보면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제조사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ETA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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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TA 2824-2를 기반으로 제작한 라도의 칼리버 C07.631

 

여러 브랜드와 무브먼트 공급업체의 성토에 스위스 경쟁위원회(COMCO)가 스와치 그룹의 행동에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당시 스위스 기계식 시계의 약 80%에 ETA 무브먼트가 사용될 만큼 수많은 브랜드가 ETA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무브먼트가 공급되지 않으면 시계 생산을 멈춰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결국 스와치 그룹은 스위스 경쟁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2008년말까지 예전과 동일한 수준의 기계식 무브먼트를 출하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니콜라스 G. 하이에크 회장은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습니다. 그는 2009년 또 다시 기계식 무브먼트 공급 중단 카드를 꺼내 듭니다. 이번에는 무브먼트 주요 부품까지 목록에 포함됐습니다. 다시 한 번 조사에 착수한 스위스 경쟁위원회는 스와치 그룹이 2019년말까지 점진적으로 ETA의 기계식 무브먼트 공급을 줄이고 이후부터는 스와치 그룹에게 재량권을 넘긴다는 중재안을 전달했고, 스와치 그룹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아슬아슬한 평화가 지속됐습니다. 하지만 협약 종료가 임박한 2019년 12월 스위스 경쟁위원회는 돌연 협약 1년 연장을 스와치 그룹에 통보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근로자 250인 미만의 사업체에만 무브먼트를 공급할 수 있다는 조건까지 내걸었습니다. 스와치 그룹이 ETA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시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조치였습니다. 스와치 그룹은 스위스 경쟁위원회의 일방적인 결정에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결국 2020년 7월 스위스 경쟁위원회가 스와치 그룹의 무브먼트 자율 공급을 인정한다는 성명문을 발표하고서야 20년 가까이 이어진 공방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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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리저브가 5일이나 되는 오리스의 매뉴팩처 칼리버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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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TA 7750을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한 IWC의 칼리버 69385

 

스와치 그룹이 촉발시킨 일련의 사건은 변화를 촉구했습니다. ETA 무브먼트의 공급이 줄어드는 혹은 완전히 끊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계 제조사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첫 번째 길은 무브먼트를 직접 만들 능력을 키워 매뉴팩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는 ETA에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시계 생산에 뛰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각자의 전략과 포트폴리오에 맞춰 원하는 디자인과 기능의 시계를 만들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합니다. 게다가 애호가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애호가 가운데 상당수는 범용 무브먼트보다 자체 개발 엔진에 우호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매뉴팩처라는 근사한 타이틀 하나를 얻을 수 있으니 홍보와 판매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단점은 당장 새로운 무브먼트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최초 기획에서 양산에 성공하기까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야 합니다. 무브먼트 생산을 위한 부지, 공장, 설비, 인력이 필요합니다. 시계 제조사에게는 어려운 길임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브랜드가 고난을 뚫고 매뉴팩처화에 성공했습니다. 오늘날 시계 업계는 매뉴팩처 브랜드들이 자웅을 겨루는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무브먼트에 담긴 고유한 개성과 정체성을 음미하고 기호에 맞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소비자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흠이 있다면 매뉴팩처 무브먼트를 탑재한 시계는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한 시계보다 대부분 비쌉니다. 제조사가 매뉴팩처로 전환하는데 발생한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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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리타 SW 200-1을 활용한 프레드릭 콘스탄트 칼리버 FC-310

 

또 다른 길은 새로운 거래처를 찾는 것입니다. 현재 많은 시계 제조사가 ETA의 대항마 격인 셀리타(Sellita)에게 손을 뻗고 있습니다. 셀리타는 특허가 만료된 ETA 무브먼트의 설계를 그대로 따라 만든 클론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시장에 공급하는 무브먼트의 숫자는 연간 1백만개가 넘습니다. 셀리타 무브먼트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완성도가 과거에 비해 개선됐고, 안정적인 수급이라는 측면에서 마땅한 대안을 찾기 어렵습니다. 셀리타처럼 ETA 무브먼트를 카피하는 소프로드(Soprod), STP, 콘셉토(Concepto)나 고급 무브먼트를 납품하는 보셰(Vaucher)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와치 그룹과 함께 시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리치몬트 그룹은 발 플러리에(Val Fleurier)를 통해 그룹 내 브랜드들에게 범용 무브먼트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무브먼트를 자체 생산하는 대신 외부에서 매입하면 매뉴팩처로의 이행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무브먼트 공급만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시계를 만드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단,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한 시계라는 꼬리표라든가 기계식 시계라면 응당 매뉴팩처 무브먼트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비판을 감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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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뉴팩처 칼리버 MT5612을 탑재한 튜더의 펠라고스

 

시계 제조사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는 길을 개척합니다. 필자가 보기에 이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행보를 보여준 브랜드는 튜더(Tudor)입니다. 최근 몇 년 간 무서운 속도로 주가를 끌어올린 이들은 일찌감치 매뉴팩처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니콜라스 G. 하이에크 회장이 두 번째로 ETA 무브먼트 공급 이슈를 언급한 지 불과 1년만인 2010년에 곧바로 기계식 무브먼트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합니다. 속전속결로 내린 결단과 부동의 업계 1티어인 형의 지원을 등에 업은 튜더는 5년 뒤인 2015년 바젤월드에서 매뉴팩처 무브먼트를 탑재한 신제품을 공개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스위스 제네바에 케니시(Kenissi)라는 무브먼트 전문 제조업체를 설립합니다. 케니시는 움직임(Movement)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키네시스(Kinesis)에서 유래했습니다. 케니시를 통해서 밝혀진 튜더의 계획은 놀라웠습니다. 튜더는 케니시를 지렛대 삼아 매뉴팩처로 도약하는 동시에 케니시에서 생산된 무브먼트를 외부에도 공급하기로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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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리티지 슈퍼오션 B20 시리즈에 들어가는 브라이틀링 칼리버 B20

 

신장개업한 가게의 첫 번째 손님은 브라이틀링(Breitling)이었습니다. 브라이틀링은 케니시로부터 칼리버 MT5612(브라이틀링 칼리버 B20)을 공급받기로 합니다. 필자가 보기에 브라이틀링이 케니시를 점 찍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롤렉스의 엔지니어링이 스며든 케니시의 무브먼트는 믿을 만하다는 계산이 있었을 겁니다(시계 업계에 떠도는 풍문에 의하면 롤렉스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의 칼리버 4130를 개발한 엔지니어 상당수가 브라이틀링이 칼리버 B01을 개발에 관여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인맥과 관련이 있습니다. 브라이틀링의 부회장을 역임했던 장-폴 지라딘(Jean-Paul Girardin)이 케니시의 디렉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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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튜더 블랙 베이 크로노와 칼리버 MT5813

 

둘의 거래는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브라이틀링은 케니시로부터 무브먼트를 받는 대가로 튜더에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B01(튜더 칼리버 MT5813)을 제공하기로 합의합니다.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가 필요했던(형의 칼리버 4130을 빌려올 수 없었던) 튜더와 단순한 기능을 갖춘 무브먼트가 필요했던 브라이틀링은 물물교환으로 서로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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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시 무브먼트로 교체한 샤넬 뉴 J12

 

브라이틀링의 뒤를 이어 케니시의 문을 두드린 브랜드는 샤넬(Chanel)이었습니다. 2018년부터 샤넬은 칼리버 12.1과 칼리버 12.2를 케니시로부터 공급받아 뉴 J12에 탑재하고 있습니다. 샤넬은 세계적인 패션하우스 중에서도 유독 시계에 공을 많이 들이는 브랜드입니다. 하이테크 세라믹을 도입한 J12나 무슈 드 샤넬, 프리미에르, 보이 프렌드 등 샤넬만의 정체성이 진하게 배어 있는 시계를 선보여왔습니다. 특히 독립 시계 제조사인 로맹 고티에(Romain Gauthier)의 지분 일부를 인수하면서 샤넬의 첫 매뉴팩처 무브먼트 칼리버 1 제작의 기반을 마련한 점은 샤넬이 시계를 대하는 자세가 진심임을 알 수 있게 해준 대목이었습니다. 샤넬은 케니시와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구사합니다. 2019년 샤넬은 케니시 지분의 20%을 매입합니다. 이는 무브먼트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안전장치로 보입니다. 대량 지분 확보에 성공한 샤넬은 케니시에게 무브먼트 공급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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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케인 프리덤 60 GMT와 칼리버 NN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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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티스 마린마스터와 칼리버 WERK-11

 

케니시의 고객은 하나 둘씩 늘어갔습니다. 2020년에는 스위스 비엘의 신생 기업인 노케인(Norqain)과 파트너십을 맺고 무브먼트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노케인은 GMT 기능이 있는 칼리버 NN20/2와 스리 핸즈 무브먼트인 칼리버 NN20/1를 케니시로부터 받아 쓰고 있습니다. 노케인이 ETA나 셀리타가 아닌 케니시를 파트너로 결정한 데에는 인맥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8년 벤 쿠퍼와 함께 노케인을 설립한 테드 슈나이더는 1979년부터 2017년까지 브라이틀링을 소유했던 슈나이더 가문의 일원입니다. 그의 조부는 윌리 브라이틀링으로부터 회사를 넘겨 받은 어네스트 슈나이더고, 그 뒤를 이은 시어도어 슈나이더는 테드 슈나이더의 부친입니다. 테드 슈나이더는 새로운 무브먼트 공급처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장-폴 지라딘이 있는 케니시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시계 업계에서 갓난 아이나 다름없는 두 신참이 손을 맞잡은 숨겨진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외에도 서두에 언급한 태그호이어나 한때 마린마스터로 인기를 끌었던 포티스(Fortis)도 현재 케니시로부터 무브먼트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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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6월부터 노케인 이사회 자문을 맡은 장-클로드 비버와 노케인 CEO 벤 쿠퍼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시계 업계는 좁은 곳입니다. 그렇다 한들 날고 기는 브랜드들이 순진하게 인맥만으로 케니시를 선택할 리가 만무합니다. 케니시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공급망 다변화입니다. 당장 무브먼트 공급이 중단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스와치 그룹 외부로 나오는 ETA 무브먼트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셀리타를 포함한 무브먼트 공급업체가 부족한 수만큼 무브먼트를 공급해야 합니다. 늘어난 수요만큼 공급이 이루어지려면 공장 가동률을 높이거나 증설을 해야 하는데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매뉴팩처 전환에 성공했거나 전환 중인 브랜드 입장에서는 매뉴팩처 무브먼트 비중을 높이는 방법으로 대응이 가능합니다만 그에 따라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컬렉션 구성이나 판매 전략을 재설정해야 합니다. 이는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원활한 무브먼트 공급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케니시는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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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획득한 블랙 베이 세라믹

 

두 번째는 성능입니다. ETA나 셀리타의 무브먼트는 태어난 지 오래된 노장입니다. 연식이 오래되다 보니 현대 기계식 시계에 요구되는 롱 파워리저브나 항자성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케니시에서 공급한 무브먼트는 프리스프렁 밸런스와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으로 안정성과 항자성을 확보했으며, 파워리저브도 70시간(소형 무브먼트는 50시간)에 이릅니다. 뿐만 아니라 COSC 인증까지 받을 만큼 정확성도 우수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도 거뜬합니다. 마지막은 정당성입니다. 케니시 무브먼트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브랜드는 고급 시계 제조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출시하는 제품의 가격은 보통 수백 만원입니다. 결코 저렴한 금액이 아닙니다. 게다가 오늘이 가장 싸다는 격언이 통용될 정도로 시계 제조사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제품 가격을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철 지난 범용 무브먼트를 고집한다면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습니다. 케니시 무브먼트는 상품성을 높이는 동시에 제품 가격 상승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시계 제조사에게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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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리버 MT5652를 장착한 튜더 블랙 베이 GMT

 

2019년 스위스 일간지 르 땅(Le Temps)의 보도에 의하면 케니시는 늘어난 주문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2022년 완공을 목표로 롤렉스가 소유한 스위스 르 로클의 부지에 공장을 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위치는 문을 닫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롤렉스의 르 로클 지사 바로 옆입니다. 현재 케니시는 네 가지 크기의 무브먼트를 제공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리고 다시 논데이트, 데이트, 빅데이트,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GMT 기능으로 세분화됩니다. 다시 말하면, ETA와 셀리타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무브먼트를 케니시의 무브먼트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겁니다. ETA나 셀리타를 뛰어넘는 무브먼트가 필요한 미드 레인지 브랜드에게는 매력적인 옵션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물려 인기를 끌고 있는 GMT 시계용 무브먼트가 있다는 게 강점입니다. 니콜라스 G. 하이에크는 시계 업계에 태풍을 몰고 왔습니다. 그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지금도 많은 매뉴팩처 브랜드와 케니시 같은 무브먼트 제조업체의 등장에 단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의 의도대로 시계 업계는 점점 다양해지고 더욱 발전해가는 중입니다. 빌런인 줄 알았던 회장님은 실은 누구보다 시계 업계를 수호하려 했던 다크나이트가 아니었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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