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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oc 973  공감:23  비공감:-1 2020.10.0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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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와 기어가 맞물리며 돌아갑니다.


태엽을 끼릭끼릭, 슥슥 감으면 밸런스 스프링이 박동합니다.


째깍째깍 이스케이프먼트가 이스케이프먼트 휠을 제어하고,


초침이, 이어서 분침 - 시침이 규칙성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광경이 어떤 사람들에게는...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없는 움직임에 지나지 않겠지만...


어떤 실속없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인상적으로 느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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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가 깊고 깊은 스위스 산꼴짜기에서 수공으로 밸런스 스태프를 깍고 기어를 다듬던 시계공의 향수와...


뼈대있는 유럽의 왕공들과 귀족들만이 사용했다는 수백년된 기업들의 역사와 브랜드 히스토리가 가미되어 우리의 브레인을 마비시키면,


우리는 천만원짜리 시계도 싸다, 맛집이다! 하면서 허겁지겁 지갑을 열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 포장된 현대 마켓팅의 산물인 기계식 시계의 포장지를 하나 하나 까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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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볼품없이 쪼그라든 알맹이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기계식 시계는 결국 그 본질 자체가 한물 간 기술로 이루어진 뒤떨어진 구시대의 산물이며,


기계식 시계에서 기술력을 논하는게 얼마나 덧없는 일이며 자기모순적인 일인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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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1875년부터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브랜드 히스토리를 자랑하는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 AP)의 로얄 오크(Royal Oak; RO) 15300이 있습니다.


항상 빅3 안에 꼽히는 대단한 브랜드의 주력 상품일 뿐 아니라, 제 개인적으로도 제가 처음 겪어본 하이앤드 브랜드의 시계여서 더욱 애착이 가는 시계입니다.


P1014433.JPG


이 시계를 작동시키는 AP Cal.3120 또한 아주 역사적인, 이 업계에서 주로 쓰는 표현으로는 전설적인 무브먼트로서...


145년 전통의 AP 역사상 최초의 인하우스In-House 자동 무브먼트이며,


RO가 그리했던 것 처럼 하이앤드 브랜드의 스포츠 워치 무브먼트의 표준을 제시한, 그동안의 틀을 깬 무브먼트 입니다.


동시에, 구입 당시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기계식 시계에 대한 귾임없는 화두(話頭)를 던져주고 있는 무브먼트 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리고 언급이 많은 이슈라 식상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 무브먼트는 시간 조정시 분침이 튑니다.


그간 이 이슈의 대해서 여러번 찾아보고, 다른 시계를 경험해 보고, 소위 명장이라 불리우는 수리공에게 자문도 구해 본 결과...


이제는 이 이슈에 대해 결함이라 불러야 할지, 숙명이라 불러야 할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GearTrain[0].jpg

TraditionalMovmnt.jpg


기계식 시계의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기어 배열은 우리가 서브 세컨즈라 부르는 작은 초침이 6시나 9시에 위치한 배열입니다.


이 기어 배열은 6시나 9시 방향에 위치한 4th wheel에 서브 세컨즈가 꼽혀서 돌고, 시계의 중앙에 위치하는 2nd wheel(Center wheel)에 분침이 꽂혀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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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있는 곳에 바로(direct) 초침, 분침이 꽂혀 돌아가는 가장 단순한 기어배치를 가지기 때문에 이런 시계를 사용하시는 분들은 시간 조정시, 용두를 빼거나 꼽을 때 즉각즉각 반응하는 짱짱한 조작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계가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 작아짐에 따라, 조그마한 서브 세컨즈를 답답하게 느끼게 되었고 센터 세컨즈 시계가 나오게 됩니다.


IndirectCenterSeconds.jpg

IndirectCenterSeconds1.jpg


초기에는 6시나 9시 방향에 위치한 4th wheel에 기어를 걸고, 걸어서(indirect) 센터 세컨즈로 수정한 무브먼트들에서 시작했으나,


이윽고 4th wheel이 아예 무브먼트 정 중앙에 위치해서 그 위에 바로(direct) 초침을 꽂아서 센터 세컨즈를 구현한 무브먼트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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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 AP 3120이 바로 그런 무브먼트 입니다(사진 제공 -라쇼드퐁 블로그-).


자...그러면 중앙에 4th wheel이 위치해 버렸으니깐 이제 2nd wheel(Center wheel)은 중앙이 아니라 중앙에서 치우쳐져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기어 배치에서는 2nd wheel에 분침을 꽂아버리면 되었지만 이제 중앙에 위치하지 않는 2nd wheel 때문에 분침을 정 중앙에 위치시키려면 다시 기어에 기어를 걸어서 분침을 중앙으로 이동시켜야 하게 되었습니다.


방법은 2가지가 있습니다.

(시계에 대한 모든 해답은 TimeZoneTimeForum에 있습니다. 중앙 초침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테트니컬 게시판에 있습니다.

https://www.timeforum.co.kr/index.php?mid=Technical&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C%84%BC%ED%84%B0&page=4&document_srl=88044)


DirectSweepc.jpg


하던대로 2nd wheel에 기어를 걸어서 중앙으로 이동, 거기에 분침을 거는 방법과...


DirectSweepr.jpg


3rd wheel에 기어를 걸어서 중앙으로 이동, 거기에 분침을 거는 방법이 있죠.


각각의 방법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2nd wheel에 기어를 걸어 분침을 중앙으로 이동시키면 2nd wheel도, 분침도 항상 시계방향으로 돌고있기 때문에 양쪽에서 기어를 단단하게 잡아주게 됩니다.


덕분에 기어의 유격이 상대적으로 줄게 되서 시간 조정시 분침이 덜 튀게 됩니다.


대신 항상 양쪽에서 힘-저항을 받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흐르면 기어가 마모되서 분침이 밑으로 쳐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3rd wheel에 기어를 걸어 분침을 중앙으로 이동시키면 3rd wheel은 시계 반대방향, 분침은 시계방향으로 돌고있기 때문에 기어와 기어 사이의 유격이 느슨해 지게 됩니다.


덕분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어의 마모는 상대적으로 덜하게 되지만 시간 조정시 기어 사이의 느슨한 유격때문에 분침이 튀게 됩니다.


자...이제 눈치채셨겠지만 AP 3120은 3rd wheel에 기어를 걸어서 분침을 중앙으로 이동시키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3rd wheel에 기어를 거는 방식은 AP 3120 뿐 아니라 다른 무브먼트에서도 종종 보이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기어와 기어 사이의 이빨간 유격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체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 방식의 무브먼트들은 시간 조정시 어느정도 튀게 됩니다.


내 AP 3120은 안튄다! 후기에 생산된 3120은 괜찮다! 이건 아닙니다...


빠르던 늦던, 크던 작던, 지금 아니면 언젠가 당신의 3120 분침은 튀기 시작할 겁니다.


세상 사는데 정해져 있는건 세금과 죽음, 그리고 매덕스의 15승AP 3120의 분침 튀기 뿐이니까요...  


이러한 기어와 기어들로 이루어진 기계식 시계의 제한적인 운명 상 많은 기계식 시계들이 숙명적인 약점을 노출합니다.


여러분이 수십만원 짜리를 사던 수천만원짜리를 사던 언젠가는 들을 수 밖에 없는 그 관용어구...


'기계식 시계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를 눈으로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게 Gear & Gears 로 인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애정하는 시계도, 가장 존경받는 브랜드도 이 숙명은 피해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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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 데이토나...Cal.4130의 수직 클러치는 두께를 줄이기 위해 중앙에서 아랫쪽으로 비껴나 있습니다.


https://www.timeforum.co.kr/brand_HighendIndependent/17577321


여기에 크로노그래프 중앙 초침이 달리게 되는데 이게 중앙에서 비껴나 있으면 뭐다?


그렇죠. 중앙으로 옮기기 위해 기어를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데이토나 4130의 크로노그래프 센터 초침은 작동시 기어의 유격 때문에 덜덜거리는(Fluttering) 모습을 보입니다.


Patek_Caliber_324_S_QA_LU_24H_560.jpg


파텍 필립...Cal.324는 4th wheel이 센터를 버서난 기어 배치를 가집니다.


역시 초침을 중앙으로 옮기기 위해 기어를 걸었고...그래서 Cal.324의 초침도 덜덜 거립니다.


아...벌써 날아오는 돌이 눈에 보입니다.


내 롤렉스가, 내 파텍이...


제 이야기는 아직 안끝났습니다. 끝까지 읽으실때까지 잠시 돌은 손에 쥐고 계시고...


최근에는 이런 필연적인 숙명을 버서나고자 하는 노력도 있습니다.


시계라는 이름의 팔찌를 만들어 놓고 럭셔리함만을 강조하는 요즘, 그래도 시계는 시계여야 한다는 근본을 잃지 않는 브랜드는 역시 파텍과 롤렉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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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는 4130 무브먼트의 가장 최근 후기 버젼부터 크로노그래프 초침 기어에 레이저를 이용한 초정밀 가공으로 날개모양의 이빨을 새겨넣어 이를 이용해 기어와 기어가 꽉 맞물리도록 했습니다(-사진제공 다빈치-).


Patek-Philippe-Calatrava-Semainier-réf-5212A-001-d.jpg

5-Screenshot-13.jpg


파텍 필립도 Cal.324의 개량형인 330부터 LIGA 공정이라는 초정밀 가공을 통해 센터 초침 기어에 동일한 처리를 했죠.


자, 이제 롤렉스 4130의 크로노그래프 초침과 파텍 필립의 330 센터 초침은 덜덜거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도 돌을 맞을 필요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과연 옳은 방법일까요?


저 롤렉스와 파텍 필립의 기어 가공 방식은 초초 정밀 가공입니다.


기계로는 절대 못하는 정밀 가공이라 레이저를 사용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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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그런데 우리의 로망은 스위스 산꼴짜기의 기어깍는 장인이 아니었던가요?


저는 뭔가 제 기계식 시계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기둥이 하나 부러져 나간 느낌이 듭니다.


최근에 유행하는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도 그렇습니다.


반도체 제작하는 기계로 성형하는 초정밀 실리콘 스프링...


레이저 기술과 반도체 기술...이걸 우리는 정말 이 가격으로 사야 하는 걸까요?


그럴거면 레이저와 반도체 기술의 총아인 스마트폰을 사는게 좀 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이런 기술이 기계식 시계의 진보일까요?


기계식 시계는 이미 수십년 전 생명이 끝난-혹은 완성된 산업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기술 진보란 모순적인 자기부정일 뿐입니다.  


레이저, 초정밀 가공, 실리콘, 첨단소재...


모두 현대적인 기술의 끝을 달리고 있는 기술들이지만 싼 기술들입니다.


img.jpg


기계식 시계의 영역에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그렇지 이런 기술들은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기술들을 차용한 것일 뿐입니다. 


기계식 시계를 위한 기술이 아니며 더구나 우리가 지금 지불하고 있는 가격에 해당되는 기술들이 아니라는 것이죠.


기계식 시계의 가격은 브랜드의 이미지, 사치품적인 요소를 덜어내면 결국 수공, 인건비 이니까 말입니다.


시계차기 좋은 계절, 이 깊어가는 가을에...


여유로운 사색에 잠기기 좋은 이 연휴에...


저는 지금도 3120만 집어들면 머리속이 복잡해 집니다. 


AP도 언젠가 기어에 초정밀 가공을 해서 3120을 개선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건 좋아진 것인가 나빠진 것인가?


3120을 이대로 놔두는 AP가 좀 더 본질적인 브랜드인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러나... 


덜덜거리고 튀어도 숙명이니 산골짜기 수공 감성이 우선이냐...


감성 한스푼 덜어내도, 공장냄새 좀 풍겨도 좀 더 완벽으로 가까이 갈 것이냐...


휴...어느 예지동 현인의 명언으로 오랜만의 글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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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 거, 대충 차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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